BL은 보이즈 러브의 약어로, 잘 아시듯이 남성간 동성애를 다루는 만화다. TL은 틴에이지 러브의 약어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소프트 에로물을 뜻한다.
초기 일본의 휴대폰 배급 만화들은 이 장르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가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왜곡된 이미지로 전달되어 있지만, 일본에서도 나이어린 학생들이나 여성이 당당하게 에로물을 서점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아무도 열람해볼 수 없는 자신의 휴대폰에서만 볼 수 있는 만화 콘텐츠를 사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인 스트림을 만들어내는 잡지들이 커버하기 어려운 시장이 만들어 지고, 일본의 메차 코믹이나 만화왕국, NTT 솔마레와 같은 만화회사들이 기반을 마련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전해가던 일본의 디지털 만화가 결정적인 변화 시기를 맞이하는 것은, 물론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이라 불리는 새로운 디지털 디바이스를 들고나오면서 부터이다.
아이폰은 2007년 처음 출시가 되지만, 의미있는 발전을 이루는 3GS모델이 등장하는 것이 2008년 부터이다. 기존 휴대폰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큰 액정을 탑재하고 조작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진다. 스마트 폰에서 구동되는 앱 산업이 크게 대두된다.
일본에서도 물론 이런 앱을 통한 콘텐츠 유통에 다들 흥미를 가지면서 만화 콘텐츠도 유력한 사업 대상으로 떠오른다.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2013년 경이다.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 폰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때 일본 거대 IT기업인 DeNA가 [망가박스]를 등장시키며, 역시 또다른 IT기업인 NHN 플레이아트가 만화 앱[코미코]를 등장시킨 것이다.
망가박스는 일본의 거대 IT기업이 자본을 대고, 고단샤 출신의 유명 편집장을 영입하여 출범시킨 스마트 폰 전용의 만화 전문 플랫폼으로 한껏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플랫폼의 성격과 서비스 방식은 기존의 만화잡지들과는 달랐지만 내부의 콘텐츠는 거의 동일했다. 즉, 아직까지 일본 고유의 펼친 두페이지 독서에 근거한 흑백 만화 콘텐츠가 실렸다.
코미코는 처음부터 망가박스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즉 이미 당시에는 한국에 광범위하게 정착된 세로연출에 컬러만화들을 실은 것이다. 작가 인력풀을 운용하는 방향성에 있어서도 다른 정책을 택했다. 망가박스는 이전 출판만화 인력을 영입하여 작품을 제작시킨 반면에 코미코는 한국의 도전 만화가 코너와 비슷한 [베스트 챌린지]코너를 운용해서 이전과는 다른 만화제작 인력을 현장에 끌어들였다.
승부는 일찌감치 갈린다. [망가박스]와 [코미코]는 두 매체 모두 과감한 텔레비전 광고공세 등을 바탕으로 독자들을 끌어모으지만, 코미코 쪽이 [리라이프]와 같이 스마트 폰으로 열람하기 쉬워서 새로운 독자세대인 중학생과 고등학생 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웹툰형식 대표만화들을 내세워 대성공했다. 코미코는 전세계에서 3000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한다.
코미코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자, 일본의 회사들도 발빠르게 움직이면서 속속 스마트 폰 용 어플리케이션을 선 보이기 시작한다.
[이누야샤][터치]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출판사 쇼가쿠칸은 [망가 왕!]을 만들어 이 어플리케이션 전쟁에 적극 참여한다. 이어, [원피스][드래곤 볼]을 만들어온 슈에이샤가 [소년 점프 플러스]를 만들고 어플리케이션 전쟁에 참가한다.
△ 현재 존재하는 일본 스마트 폰 만화 어플리케이션들
2019년 현재는 가히 춘추전국 시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숱한 만화 어플리케이션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디지털 만화가 유통되고 팔리는 것을 다들 당연하게 생각한다. 특히 10대와 20대 젊은층은 만화를 책이라는 물리적인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당연히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로 사서 본다.
2018년에는 각 만화 어플리케이션들이 기록하고 있는 대략적인 매출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한국의 네이버 만화 깊은 연관을 가진 LINE망가가 218억엔의 매출을 기록하며 1위, 한국의 카카오 페이지와 연관을 가진 픽코마가 57억엔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것은 어플리케이션들이 올린 실적이고 일본의 출판만화들을 디지털로 서비스하는 웹 서비스 들의 매출이 집계되지 않은 수치다. 그것을 포함하면 일본의 디지털 바람은 굉장히 거세다.
다만, 한국 방식의 웹툰은 아직 취급하는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형편이다. 이전부터 한국식 웹툰 방식을 도입해 고수하는 코미코, 이후 신규주자로 눈부신 성과를 내는 중인 픽코마, 한국과 깊은 연관을 가진 라인망가 등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이들 매체에서 한국에서 직수입된 만화들이 내는 성적은 눈부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정도다.
디앤씨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세계의 황비], [황제의 외동딸]은 코미코, 픽코마 지면에서 막대한 매출을 기록했다. 씨앤씨 레볼루션의 [이미테이션] 과 [허니 블러드]도 높은 매출을 기록하며 일본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기억되는 타이틀이 되었다. 디앤씨 미디어의 [황제의 외동딸]은 일본 유명출판사인 카도카와에서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어 수십만부의 누적 판매고를 올리는 중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라인망가로 소개된[여신강림]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만화들이 일본의 젊은 독자층에게서 높은 인기를 얻는 중이다.
이러한 호성적들이 이어지자 일본의 유명출판사들도 한국방식의 세로/컬러 웹툰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모 회사가 자체적으로 세로/컬러 전문 편집부를 꾸린다거나, 기존의 편집부 들도 팀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중이다.
이런 거센 디지털 바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만화 출판은 수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달성하고 있으며 많은 히트작 들이 존재하는 중이다. 이것이 본격적인 디지털 이전과 스마트 폰에서 열람을 전제로 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일본 만화업계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한 것으로 펼친 두페이지 연출과 흑백작화에 익숙한 제작주체인 작가진과 이들을 서포트하고 이끄는 편집진들이 웹툰 체제와 같은 생경한 방식을 처음부터 익혀야 하는 것에 체질적인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일 매체에 작품[위장불륜]을 연재한 히가시무라 아키코 작가의 사례와 같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일이 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