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전문가 칼럼] 레진 코믹스는 왜 댓글 기능이 없을까? (상)

레진코믹스는 왜 '댓글없는 플랫폼'을 내세웠을까? 작가와 독자 측면의 이유

2020-11-05 황선태


레진 코믹스는 왜 댓글 기능이 없을까?
레진코믹스는 왜 '댓글없는 플랫폼'을 내세웠을까?
작가와 독자 측면의 이유

황선태



웹툰과 댓글
댓글은 웹툰의 시작부터 함께한 웹툰만의 고유 특성이다. 웹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수많은 학자들이 웹툰을 정의 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완벽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연구 초기, 정확히는 레진 코믹스의 등장 이전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했던 웹툰만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댓글 시스템이었다. 

웹툰 플랫폼인 포털 사이트는 화별로 댓글과 별점을 줄 수 있는 장치를 기본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작가들 역시 독자들이 단 댓글에 작품 내외적으로 적극 대응하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웹툰의 댓글은 출판 만화처럼 창작자가 콘텐츠를 만들고 독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수직적인 소비 형태가 아닌 체험, 참여, 공유하는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댓글 시스템은 웹툰이라는 콘텐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로 자리잡았고, 작품 감상과 별도로 댓글 자체를 즐기는 문화까지 생기게 되었다. 댓글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작품을 연재하는 작가도 생겼고, 작품보다 댓글이 더 재미있다며, 작가가 깔아준 멍석 (작품) 위에서 서로 댓글로 대화하며 신나게 노는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다.

레진 코믹스의 등장

그러던 중, 댓글 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표방하고 나선 레진 코믹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했다. 대체 왜? 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레진 코믹스의 등장 배경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레진 코믹스는 당시 양대 포털 사이트 외에는 웹툰이 거의 없던 시절, 웹툰만을 위한 공간을 표방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 당시,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하던 웹툰 작가들의 처우는 지금에 비해 상당히 열악했고, 후발 주자인 레진 코믹스는 기존 웹툰 작가들을 섭외하기 위해 ‘작가들을 위한 플랫폼’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작가 영입을 시도했다. 레진 코믹스는 기존의 포털 사이트보다 작가들에게 유리하고 좋은 조건을 내걸고 작가들을 영입했는데, 포털 사이트보다 (살짝) 높은 고료 책정과 함께 댓글 시스템이 없다는 것으로도 작가들에게 어필을 많이 했다.

작가를 위한 배려
무슨 말이지? 댓글이 작가와 독자들이 신나게 노는 문화라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이 존재하는 법. 작품의 댓글이 언제나 밝고 희망차고 긍정적일리가 없지 않겠는가? (지금도 많이 바뀐 것 같진 않지만) 당시에는 악플에 대한 처벌이나 관리가 지금보다 더 미흡한 편이었던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작품에 달린 악성 댓글로 힘들어하던 작가들도 주변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댓글에 대한 스트레스로 멘탈이 망가져 작품 연재를 힘들어할 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 연재를 중단하는 작가들도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반대로 댓글에 휘둘려 원래 기획했던 대로 작품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속된 말로 작품이 산으로 가는 경우도 생겨났고 또 그에 실망한 독자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이렇듯 댓글이 (일부 작가들에게는) 실제로 독이 되기도 했었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는 작가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레진 코믹스는 공식적으로 ‘작가가 오로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회사 측의 배려’라고 설명했다. 물론 소통의 부재에 대한 걱정을 하는 작가들을 위해 작가가 원하면 작가의 블로그나 SNS를 노출하고 있어서 독자들은 링크를 타고 바로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은 웹툰의 댓글 문화와는 전혀 다른, 굳이 따지자면 출판 만화 시절 독자들이 작가에게 팬레터 보내는 문화와 일맥상통한다고 보인다.

독자를 위한 배려
레진 코믹스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독자가 만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라고 밝혔는데, 이 또한 레진 코믹스의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댓글로 인해 작품 감상이 즐겁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웹툰에 달린 댓글을 보면 간혹 한쪽 방향으로 의견이 쏠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종종 볼 수 있는 댓글이 바로 이런 댓글 보기가 싫어서 더 이상 작품을 클릭하고 싶지 않다는 식의 글이다. 분명 나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댓글에 작품이 재미없다는 글로 채워지면 기분이 상할 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애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무료 웹툰 플랫폼과 달리,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계속해서 다음 회차 구매를 하는 충성심 있는 독자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한 레진 코믹스 같은 플랫폼에서는 댓글의 부작용이 큰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댓글을 없애고 그야말로 오롯이 작품만 즐기게 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그들의 배려 혹은 통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굳이 커뮤니티나 포털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의 평을 읽기 전까지는 온전히 내 생각에만 집중하고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필진이미지

황선태

웹툰 스토리 작가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아무』(2017), 『곡두』(2015), 『잔인한 축제』(2013), 『대디고라운드』(2012), 『오늘또오늘』(2011), 『아내를 죽였다』(2010) 연재
『크라우드소싱 웹툰 스토리텔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