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포트폴리오 만드는 방법 : 어떤 SNS를 활용해서 어떻게 쌓을까?
대학을 막 졸업한 프리랜서 1년 차 시기였다. 일이 너무 없었다. 이번 달 월세는커녕 다음 주 식비조차 간당간당했다. “왜 일이 들어오지 않을까?” 같은 작업실을 쓰던 동생과 식탁에 마주 앉아 고민해보았다. 당시 유료 온라인 포트폴리오 사이트였던 '산그림', '바이 일러스트' 등에 그림들을 올려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생과 나는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출판사들을 직접 돌며 포트폴리오를 뿌려 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문구점을 들러 포트폴리오 파일철 묶음을 샀고, 동네 인쇄소에 들러 컬러 레이저 프린터로 그림들을 모아 인쇄했다. 그렇게 10개의 파일철에 누구라도 좋아할 법한 무난하고, 돈이 될 법한 그림들을 가득 채워 넣었다. 파일철 세로 라벨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두었고, 뒷면엔 명함도 코팅해 붙여두었다. 그것이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줄, 세상이라는 게임 속 치트키가 돼주길 바라며 출판사들이 몰려있는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출판사의 직원들은 사전연락도 없이 찾아간 우리들을 '요즘 시대에도 이런 애들이 있어?'라는 표정으로 맞아 주었다. 그들은 우리 그림을 세심히 살펴봐 주었고, 몇몇 출판사에서는 차를 내어주기까지 했다. 아침에 나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작업실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우리는 만족스러웠다. 그런 관심과 친절이라면 적어도 몇 군데에서는 연락이 올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열 군데의 출판사 중 연락이 온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 당시 포트폴리오에 부족했던 것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내 포트폴리오엔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 번째, 누구라도 좋아할 무난한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무난한 그림은 어디에 들어가도 어울리지만 반대로 어디에 붙여놔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시장에는 선점 효과라는 것이 있다. 누구라도 좋아할 법한 무난한 상품은, 압도적인 품질을 갖지 못하는 한 경쟁력을 가지기 힘들다. 돈이 오가고, 경쟁이 있는 시장이라면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다. 배고프고 힘든 신인 작가 시절,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친구 라면을 예로 들어보자. 삼양라면, 안성탕면, 진라면의 아성을 무너뜨릴 새로운 라면이 나올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무난한 라면이라는 것은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 관념으로 자리잡혀있다.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면 굳이 새로운 것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어야만 새로운 상품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매년 괴랄하다 싶을 만큼 특이한 신제품 라면들이 출시되는 것이 이에 대한 반증이라 볼 수 있겠다. 작가의 포트폴리오도 라면과 마찬가지다. 신인 작가의 포트폴리오가 눈에 띄려면 차별성이 필요하다. 기성 작가들을 압도하는 퀄리티를 갖지 못할 것이라면 자신만의 명확한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번엔 필력을 전투력으로 환산해 보자. 일반적으로 신인 작가의 전투력이 기성 작가의 그것에 비해 높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력이 낮다고 해서 전투원으로 활동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RPG에서는 탱커, 힐러, 데미지 딜러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전투원이 존재하고 그들은 모두 각자의 쓰임새가 있다. 만화 <드래곤볼>에서 괴물 같은 전투민족 사이어인 사이에서 크리링이 자기만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마어마한 파워의 ‘에네르기파’를 날릴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속도도 느리고 투박해 보이지만 무엇이든 다 잘라내 버리는 ‘기원참’과, 상대의 눈을 순간 멀게 만드는 ‘태양권’을 구사할 수 있어서였다. 전투력이 기성 작가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는 신인 작가들은 명확한 대상층을 가진 개성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유리하다.
두 번째, 양이 너무 부족했다.
에디터들 역시 인간이기에 개인 취향이라는 것이 있다. 내 포트폴리오가 취향인 에디터도 분명 어딘가에는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작 10개의 파일철로는 내 그림이 취향인 에디터에게 가닿을 수 없었다. 만약 100개 정도를 뿌렸다면 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작업으로 파일철을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10개의 파일철이 고작이었다. 하나라도 일을 더 따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줘야만 한다.
온라인 포트폴리오의 시대 : 나한테 맞는 플랫폼 찾는 법
△ 온라인은 양적 고민을 없애주었다
요즘 시대에도 출판사를 돌며 종이로 된 포트폴리오를 돌리는 작가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온라인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의 효율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작가들에게 SNS는 포트폴리오 갤러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인스타그램은 그림 작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고, 유튜브는 작가의 삶마저 아카이빙하는 공간이 되었다. SNS 계정은 작가의 연혁이자 명함이 되어가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등,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은 이제 너무나도 많다.
선택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선택하기
그러나 수많은 SNS 중 어떤 것이 내게 맞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결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 전달 방법이라고는 직접 인쇄한 종이를 거리에 뿌리며 ‘호외요~'를 외치던 것뿐인 사람들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들에겐 발로 뛰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고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신문에 광고를 싣는 건 많은 돈이 필요했고, 잡지에 게재되는 건 특정 장벽을 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시간여행이라는 것이 생겨나 그 시대를 살던 사람을 지금 시대로 데려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술의 발전에 행복해하며 자신에게 꼭 맞는 서비스를 선택해 행복한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술 문명의 혜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선택의 홍수에서 더 큰 혼란을 겪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다 좋아 보이는데 이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까?
휘황찬란한 맛을 자랑하는 개성 있는 음식들이 메뉴판에 가득하다. 모두 다 하나씩 맛보고 싶지만, 우리에게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효율적 포트폴리오 아카이브를 위해 내게 가장 잘 맞는 플랫폼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
유튜브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담는 플랫폼이다. 그림 작가라면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글 작가라면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유튜브에 기록하게 되는데, 이는 작가의 개인 브랜딩에 큰 도움이 된다. 작품의 가치는 보통 그 작가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의 매력도 있지만, 드라마틱한 그의 삶이 한몫했을 것이다. 유튜브는 작가의 삶 자체를 아카이빙하는 공간이고, 작가의 작품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곳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개인 브랜딩에 관심 있는 작가라면 꼭 운영해보길 추천하는 플랫폼이다.
▷단점
작품 창작 외에 '영상 편집'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노동이 추가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갖추지 못한다면 영상 콘텐츠는 힘을 가질 수 없다. 즉 영상 자체를 또 하나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접근하지 않는다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유튜브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작품 창작 외에 추가적인 노동을 할 여력이 있는지 꼭 고려해보자.
▷Tip
조회 수나 구독자 수가 아닌 ‘개인 브랜딩’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콘텐츠는 우리의 작품이고, SNS는 그것을 마케팅하는 보조 수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은 그림 작가에게 최고의 포트폴리오 공간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유튜브와 쌍벽을 이룰 정도의 거대한 광고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에 공간 자체가 지닌 가능성도 크다. 또한 국적 간 장벽이 낮기 때문에 계정의 특색만 명확하다면 외국 유명 기업들로부터 오퍼가 들어오기도 한다. 작가들에게 인스타그램이 필수 SNS로 손꼽히는 이유다.
▷단점
접근성이 쉬운 만큼 눈에 띄기가 힘들다. 레드오션이라는 말이다.
▷Tip
작품 포트폴리오 계정에 일상 내용을 올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 계정과 포트폴리오 계정은 따로 구분하자. 작품은 대중성보단 독특함, 즉 개성을 택하는 것이 초기 전략으로 유리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이미지 중시의 플랫폼이라면 페이스북은 글 중심의 플랫폼이다. 또한 인스타그램이 캐주얼한 젊음을 표방한다면, 페이스북은 신뢰감과 안정감을 추구한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은 프리랜서와 예술가들에게 어울리고, 페이스북은 기업가들에게 어울린다. 페이스북의 장점은 외부 플랫폼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페이스북에 그 링크를 불러와 보자. '외부 콘텐츠 링크에 대한 레이아웃이 이보다 더 깔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페이스북은 타 플랫폼 친화적이다. 특히 폐쇄형 블로그인 브런치나 포스타입 등을 사용하는 작가들이라면 콘텐츠 유통수단으로 페이스북을 이용해 보길 바란다.
▷단점
콘텐츠보다는 인간관계에 집중한 알고리즘이라 포트폴리오 아카이브에 적합한 형태는 아니다.
▷Tip
이미 블로그에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던 작가라면 페이스북 페이지에 링크를 가져와 공유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가능하다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키우길 권한다.
▶트위터
트위터는 속보를 퍼뜨리기에 가장 용이한 알고리즘을 가진 SNS다. 하지만 그만큼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떠돌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포트폴리오 용도나 개인 브랜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덕질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라 할 수 있겠다.
다 알겠는데 구독자 수가 안 늘어요 : 그렇다면?
△ 나한테 맞는 플랫폼을 파악한 그 다음은...?
인스타그램, 유튜브가 개인 브랜딩에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효과가 미미한 것이 문제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메뉴판을 줄이세요.'
TV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메뉴가 수없이 많은 식당들이 문제 식당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그 가게 주인들은 다양한 손님들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많은 메뉴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님의 입장이 되어보자. 세상에 식당은 많다. 파스타가 먹고 싶으면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곳에 가면 되고, 칼국수가 먹고 싶으면 칼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곳에 가면 된다. 굳이 한 곳에서 모든 음식을 파는 곳을 찾아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집은 전문성도 없어 보이고 맛에 대한 신뢰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즉 메뉴판을 줄이는 행위는 결국 그 식당의 전문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작가의 포트폴리오 공간도 다르지 않다. 클라이언트 입장이 되어보자. 이것도 적당히 저것도 적당히 잘하는 작가는 별 매력이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가 있고 자기만의 명확한 장점이 있는 작가들이 많기 때문에, 자기가 필요로 하는 개성을 가진 작가에게 연락하면 되기 때문이다. 적당히 약점 없는 무난한 포트폴리오는 언제나 1순위가 되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날 뿐이다. 결국 전문성을 인정받고 손님이 또 찾아오는 '맛집'이 되려면, 자신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작품에는 '로그라인' 이라는 것이 있다. 이야기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할 이 용어는, 내 작품을 단 한 줄로 요약한 문장을 뜻하는 말이다. 포트폴리오 공간에도 로그라인이 필요하다.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한 줄로 표현했을 때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만약 이것도, 저것도 다 담고 있는 것 같다면, 지우개를 들 타이밍이다. 당신도 알고 있듯 명작은 연필이 아닌 지우개에서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꾸준함의 힘
세상의 모든 유명 맛집은 한 장소에서 묵묵히 하나의 음식만을 고수하는 식당이었다. 그런 곳들은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단골들이 생겨난다. 내로라하는 맛집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 맞는 플랫폼에서 개성을 가진 명확한 컨셉의 포트폴리오를 묵묵히 쌓아나가자. 대상층이 좁은 양질의 포트폴리오가 구축된 공간은, 당신에게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깃들게 하고 당신만의 작품을 찾는 마니아층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에는 당신을 다른 누구로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작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