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잘 되는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 : 이렇게 사는 작가도 있습니다
'작가'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사람들이 작가에 대해 떠올리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극단적인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아주 성공하고 유명해서 내는 작품 족족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고, 여기저기 강연과 북토크를 다니며 '팬이에요 작가님!' 소리를 듣는 게 일상인 작가. 또 하나는 좁고 비좁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고, 가난을 비롯한 현실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것을 예술로 승화하는 작가. 5년 차 작가인 나는 이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아주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로 일하면서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벌고 있다. 처음부터 내 작품을 하는 그런 작가는 아니었지만 돌고 돌아서 결국은 내 작품도 하는 그런 작가가 되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결국엔 작가가 된,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작가라는 이름의 환상
어린 시절부터 나의 꿈은 작가, 만화가, 화가였다. 뭔가를 만들고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참 좋아했다. 나에게는 여느 문과 성향의 아이들이 그렇듯 언젠가 꼭 내 이름을 내건 책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내가 작품을 접하는 곳은 주로 동네서점과 만화방이었다. 그곳들을 수없이 들락거리며 언젠가 그 진열대와 책장에 내 작품이 놓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는 작가를 꿈꾸게 됐다. 하지만 그 꿈은 몹시도 막연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되는지, 또 내가 어떤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나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잘하는 편이었기에 미대에 진학했다. 그것이 나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아마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그 길을 선택했으리라.
△ 이런 화기애애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1월 한강 물만큼 차가운 현실
현실은 냉혹하다. 서울에 있는 미대에 진학한 뒤 결국 나는 작가라는 꿈을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렸다. 작품을 하는 사람은 수십만 명이고, 그중 주목받을 수 있는 사람은 겨우 1%에 불과하다. 아니, 1%도 안 되는 것 같다. 꿈만 가지고 덤벼들긴 너무나 적은 수치였다. 세상은 넓었다. 나는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실력자를 보고 그만 기가 죽어버렸다. 마치 작은 동네에서 요리로 칭찬 좀 받던 소년 만화 주인공이 전국 요리대회 예선에 진출해 각종 능력자들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게다가 시장은 해마다 믿을 수 없이 더 차갑게 얼어붙는다. '어라? 여기서 더 나빠질 것이 있어?'라고 말할 때마다 그걸 비웃듯이 정말로 더 좋아지지 않았다. 물론 소년만화 클리셰대로였다면 여기서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서 전국을 제패하는 전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의 재능이 그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나는 포기를 아는 사람이었다. 나의 열정은 빠르게 식었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대충 비집고 앉을 자리를 찾았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시 창작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그것도 정말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말이다. 돈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계획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 단절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아니, 뭐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내 경력은 소위 말하는 물경력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물경력도 이후 작가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아니, 나중에 서술한다.) 그렇게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을 위태롭게 버텨가던 나는 우연히 기회를 잡아 회당 5만 원을 받으며 작은 만화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노동 착취에 가까운 단가였지만 매주 5만 원씩 들어오는 그 푼돈은 박봉의 직장인에게는 상당히 짭짤한 용돈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번 시작했더니 이후로도 작업 기회가 꾸준히 주어졌다.
그즈음 아이 육아 문제와 그 밖의 어려움을 이유로 슬슬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작고 소소했던 외주 수입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자 마침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나는 전업 작가라는 간판을 걸고 꾸준한 수입을 올리며 한 아이와 고양이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게 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무슨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정말 그랬다. 경력단절이 될 것 같아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다 보니 결국 돌고 돌아 꿈에도 그리던 작가를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내가 어린 시절 꿈에 그렸던 그 작가의 삶과 지금 내 작가로서의 삶은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그래서 어떤 작업을 하고 먹고사느냐 하면
처음에는 브랜드나 기업의 홍보를 위한 웹툰과 일러스트를 그렸다. 틈틈이 내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딸린 입이 두 개라 돈이 들어오는 작업을 우선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작가로 일한다는 소식을 들은 대학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원작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아동 도서 작업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 물었다. 그때 당시 나는 아동 작업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원고료는 필요했기에 빠르게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듬해 나는 친구가 다니던 출판사에서 10권가량의 책을 뽑아냈다. 그리고 지금은 4개의 출판사와 일하며 매달 책을 뽑아내고 있다. 그 외에도 웹툰, 일러스트나 디자인 외주도 종종 받아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자,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께서는 결국 인맥 빨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인맥 빨 맞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다음 그리고 그다음의 다음은 낙하산이 아니라 내가 잘해서 받은 일이었다. 그럼 작업을 잘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가 신춘문예 뺨치게 문학성이 좋은 글을 냈을까? 아니면 문화부 장관 표창이라도 받을 수 있게 생긴 뛰어난 만화를 그렸을까? 전혀 아니다. 나는 회사가 원하는 방향에 맞는 적당한 수준의 글과 만화를 마감을 잘 지켜가며 만들었다. 마감을 못 지킨다면 연락이라도 꼬박꼬박하고, 원하는 방향대로 완벽하게 맞춰줄 수 없다면 피드백을 명확하게 주었다. 고만고만한 아웃풋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작업에서 내가 생각한 차별점이 그것이었다. 나의 장점은 회사원처럼 깔끔하게 일하는 작가라는 것이었다.
작가가 되는 길을 이야기하며 회사원 같이 일하는 타령을 하게 되어 상당히 유감이지만, 사실 세상에는 훌륭하고 개성 넘치고 획기적이며 뛰어난 작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애플에서 아이폰 11, 12를 대대적으로 출시하면서 동시에 아이폰 SE이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출시한 바 있다. 혁신은 아이폰 11, 12에서 하고, 그 외의 수요는 SE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나는 확률이 적은 '혁신을 하는' 쪽 대신 안전한 후자를 택했다. 나는 엄청난 재능과 운을 타고 나지도 않았고 유명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되는 쪽에 나의 모든 것을 걸기에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유명한 작가에게 맡기기에는 예산이 부족한, 하지만 분명한 수요가 있는 시장을 노렸다.
평범한 내가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어? 그렇다면
세상에는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대체 왜 인기가 있는지 모를 작품도 많다. 하지만 문제는 그 도대체 왜 인기 있는지 모를 작품이 하나 있으면 대체 왜 아무도 이 작품을 몰라주나 싶은 뛰어난 작품들은 10개쯤 있다. 솔직히 내 취향을 떠나 도대체 왜 아무도 발굴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작가님도 많다. 내가 가서 도대체 무슨 재주로 이런 걸 만드셨냐고 다짜고짜 찾아가 묻고 싶을 만큼 좋은 작업도 많다. 문제는 그런 작가님들이 너무너무너 너무너무너무 많다는 점이다. 내가 작가라는 꿈을 20대 초반에 빠르게 접은 까닭도 여기에 있고.
누가 그랬던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라고. 나는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무명의 작가들은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소수에 한정되어있다. (심지어 인기와 관심은 실력순도 아니다. 사실 이 분야가 실력으로 순서를 매길 수 있는 분야도 아니긴 하지만.) 아무 대답 없는 메아리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열정만 가지고 적은 돈 혹은 한 푼도 못 받으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아무리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그렇다. 나는 이게 꽤 많은 작가 지망생과 나를 비롯한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이 이 길을 포기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이 길을 포기하는 것 대신 타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성실한) 존버는 승리한다
나는 '존버'를 믿지 않는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 버티는 게 답이라고? 존버를 하기 위해서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확신 없는 존버는 그냥 무모하게 시간 혹은 돈을 날리는 행위일 뿐이다. 투자나 투기뿐 아니라 작품 활동이나 인생도 마찬가지다. 작가를 꿈꾼다면서 한없이 멋진 한방을 기다리며 이것도 저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안 되는 일, 확률이 적은 일에 매달리지 말고 작은 기회라도 잡아서 받은 고료에 알맞은 퀄리티의 작업을 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그리고 결국 그 다양한 경험들은 당신의 작품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주로 외주작업을 했지만, 마침내 작년 <어떤 엄마 저런 사람>이라는 자전적 만화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평소 애 딸린 이혼녀의 삶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씩 구성을 짜보긴 했지만 기회가 없어 묵혀두고 있었다. 해묵은 기획이 책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정부의 지원사업 덕분이었다. 덕분에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되는 것'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경험들도 결국엔 다 쓸모가 있었다. 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는 회사원 시절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신청서를 낼 때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꽤 깔끔한 서류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작업이 반쯤 완성되자 출판사를 찾기 시작했는데, 나는 출간을 위해 출판사의 문을 막무가내로 두드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동안 '내 작업'이라고 말하기는 뭣한 작업들을 해오며 신뢰를 쌓은 여러 곳의 출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시하고 재미없는 내 것도 아닌 작업들은 결국 나를 내 작업을 할 수 있는 길로 이끌었다.
△ 내 첫 단독 작품 <어떤 엄마 저런 사람>
나 역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과연 지금 나는 어떤 작가일까? 나는 지치지 않고 1월 한강 물 같은 냉정한 시장에서 5년을 버텼다. 플랫폼에서 내 웹툰을 1년 넘게 연재하기도 했고, 내 책까지 출판했으니 어렸을 적 꿈은 다 이뤘다. 나는 내가 올린 성과에 꽤 만족하고 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대단히 뛰어난 작품을 만들지도 못한다. 대신 내 가족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고,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작업도 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 이 현실에 완전 만족하냐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게 만족하지는 않는다. 나라고 언젠가는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왜 없겠는가! 다만 아직 그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뭐 아주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뭐 어떻겠는가. 세상에는 유명하고 뛰어난 작가만 있는 것도, 자신의 세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작가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을. 세상에는 이렇게 묵묵하게 성실하게 소처럼 개미처럼 일하는 어떤 사람, 저런 작가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