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오전, 만화경 편집부는 바쁘다. 웹툰 PD들이 각자 서치해 온 작품부터 연재 문의로 들어온 작품까지 모두 펼쳐 놓고 검토하는 편집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손에 작품이 오기까지 작가는 수없이 고민하며 수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하며 작품 검토를 한다. 수십 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구성원들의 마음 사로잡는 보석 같은 작품을 발견하곤 한다. 그럼 만화경의 웹툰 PD들은 어떤 작가에게 우선적으로 연락을 할까. 그리고 계약 성사가 된 작품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신인작가들이 가질 법한 이런 궁금증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다들 알겠지만 모든 웹툰 PD는 저마다의 작품 선정 기준과 플랫폼의 방향성에 맞춰 작품 계약을 한다. 본 필자도 그러함을 미리 밝힌다.
작품에서 유심히 보는 것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는 아이의 진로 상담을 위해 학교를 찾아가 이런 말을 한다. “바지 하나를 사도 따질 게 많은데, 점수 하나로 미래를 결정해요?” 하나의 대상을 평가하는데 단편적이고 획일화된 기준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웹툰 PD들도 작품 검토 단계에서 다양한 것들을 살펴본다. 이야기의 완결성, 소재의 참신함, 컷 연출 감각, 클리셰 등 작품의 디테일한 부분부터 플랫폼 방향성, 독자의 성향, 작가의 영향력 등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이런 많은 요소들 중, 만화경 웹툰 PD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3가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 새로운 이야기와 한 줄 요약
좋은 작품은 매력적인 한 줄의 로그라인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웹툰,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모든 콘텐츠에 해당되는 말이다. 물론 한 문장만으로 보고 싶게 만들거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웹툰 PD도 한 사람의 독자이기 때문에 흔하고 익숙한 것보다는 참신하고 새로운 것에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새로운 이야기이면서 매력적인 로그라인으로 정리된 작품이면 시놉시스부터 캐릭터 시트까지 더 꼼꼼하게 보게 된다. 그러면 이후 작가와의 미팅이 성사되었을 때 자연스레 작품에 대한 Q&A가 풍성해진다.
로그라인이 중요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전체 이야기를 한 줄로 압축하다 보면 핵심 사건과 캐릭터만 남게 된다. 그러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더 뚜렷하게 보인다. 가끔 신인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정의 내리지 못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존재하지만 로그라인으로 정리하다 보면 이야기가 평이해지고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이야기를 개선할지,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해야 할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2) 자신만의 스타일
다음은 그림 이야기를 해보자. 작화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작가들이 있다. 신인 작가임에도 수준급의 인체 드로잉과 풍부한 컬러, 배경 연출까지 뛰어난 작화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정도 실력이면 당연히 계약 여부를 검토할 정도의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만화경은 작화력만큼이나 작가만의 스타일이 있는지도 살펴본다. 꼭 웹툰 분야가 아니더라도 직업 작가로서 오랫동안 활동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의 것, 자기만의 스타일이 필요하다. 그림 한 장을 보고 누구나 그 작가를 떠올린다면 그 작가는 자신만의 스타일 구축한 것이다. 신인 작가에게 이러한 기대는 무리일 수도 있지만, 떡잎은 감출 수 없다. 아직 미완성일지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다. 만화경의 김마토 작가님을 예로 들어 보자. 독립출판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담은 단편집을 꾸준히 발간해 온 작가님은 만화경에서 <가가바이러스>, <너의 말 속을 걷다>을 연재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더 견고하게 만드셨다. 그림만 봐도 김마토 작가님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해서 모두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수천 편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웹툰 시장에서 본인만의 스타일을 구축한다면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귀한 자산이 될 것이다.
△ 김마토 작가의 <가가바이러스> ⓒ 만화경
3) 글의 힘
만화는 그림만으로 구성되어있지 않다. 그림만큼 글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만화에서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 그 작품과 작가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품 속 모녀가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 가족의 일상이 드러나고, 홀로 걸어가는 취준생의 독백에서는 그의 막막함과 고달픔이 전해진다. 만화경 웹툰 PD는 글을 그림만큼 신경 쓰는 작가를 선호한다. 잘 쓰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글도 만화의 한 부분임을 인지하고 세심하게 다루는 작가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런 작가는 그림도 허투루 그리지 않는다. 초록뱀 작가님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좋은 예시다. 이 작품은 어느 화, 어느 컷을 봐도 글에 진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작품이 10대 남학생부터 40대 주부까지 성별과 세대를 넘어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글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만화경이 계약한 첫 번째 단편 만화였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2020 우수만화도서에 선정되었다.
△ 초록뱀 작가의 <그림을 그리는 일> ⓒ 만화경
첫 미팅부터 데뷔작이 오픈하기까지
흔히 웹툰 PD는 작가의 런닝메이트로 비유되곤 한다. PD는 원고를 기계적으로 수급하고 관리하는 역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서로 소통하며 작가가 완주하는데 크고 작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신인 작가의 경우 이런 웹툰 PD의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신인작가가 만화경과 계약을 하고 데뷔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만화경은 작품 계약부터 작품 오픈까지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소요된다. 작가와 담당 PD는 오픈 직전까지 서로 충분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작품을 담금질한다.
1) 작가 가이드북과 웹툰뷰어
계약이 성사되면 만화경에서는 가장 먼저 작가에게 원고 제작을 위한 ‘작가 가이드북’을 제공한다. 가이드북은 특히 신인 작가에게는 정독과 숙지를 당부하고 있다. 신인작가에게는 플랫폼이 요구하는 원고 규격과 양식이 생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레이어 분리와 관련된 실수가 잦은 편인데, 추후 있을지 모를 출판 및 해외 서비스를 위해서는 원고 내 적절한 레이어 분리가 필수다. 때문에 신인 작가들이 처음부터 좋은 원고 작업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강조하며 안내한다.
같은 맥락에서 ‘웹툰뷰어’라는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1) 일반적으로 작가는 PC에서 원고를 작업을 한다. 때문에 작업한 원고가 스마트폰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원고를 모바일로 옮기거나, 블로그 또는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고 확인을 해야 한다. ‘웹툰뷰어’는 이러한 번거로운 과정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다. PC에서 작업한 자신의 원고가 모바일 환경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싶다면 PC에서 ‘웹툰뷰어’ 사이트에 접속해서 보면 된다. 단말기 템플릿 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렇게 ‘작가 가이드북’과 ‘웹툰뷰어’를 숙지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 만화경에서 제작한 서비스 '웹툰뷰어' ⓒ 만화경
2) 원고 피드백과 편집부 시스템
만화경에서는 대부분의 신인작가에게 콘티 단계부터 꼼꼼하게 피드백을 드린다. 작가가 작성한 시놉시스의 내용이 원고에 잘 구현되어 있는지, 설정했던 캐릭터들 간의 관계는 제대로 표현되었는지, 대사는 자연스러운지 등 콘티 단계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체크한다. 펜선과 컬러까지 끝난 원고의 경우에도, 수정 사항이 발견되면 수정 요청을 드린다. 이렇게 완성된 원고가 나오면 개인 PD가 아닌 편집부 차원의 최종 검토가 진행된다. 단편을 제외한 모든 신작의 1화는 작품 오픈 전에 이 과정을 겪는다. 원고 완성도를 위해 더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컷 전개에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사회적 부정 이슈에 연루될 소지는 없는지, 초상권 침해 여지는 없는지, 본의 아니게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부분은 없는지 등등 다각도로 체크한다. 담당 PD가 놓쳤던 부분을 편집부 시스템을 통해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만화경은 원고 피드백에 있어 신인작가와 기성 작가와 차별점을 두진 않는다. 경력이 많은 기성작가라도 작가가 희망하면 콘티 단계에서부터 피드백을 드리고 있다.
3) 작품 표지와 띠지 제작
만화경의 모든 작품들에는 저마다의 표지가 있다. 단행본 출판물처럼 띠지도 있고, 작품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홍보 문구도 넣는다. 표지 일러스트는 작품 오픈 한 달 전에 작가에게 요청하는데,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인 만큼 작가도 정성껏 작업을 한다. 표지는 작품의 개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담당 PD가 영화 포스터나 책 표지 등 레퍼런스를 찾아 공유하면 작가가 참고하여 시안을 잡는다. 시안을 잡을 때는 주요 캐릭터 배치와 구도, 배경 묘사, 작품 타이틀 디자인 등 꼼꼼하게 의견을 교환한다. 이때 총 3종의 일러스트를 작업하는데 이 중 1종은 표지용 일러스트가 되며 만화경 디자인팀의 후반 작업을 거치면 표지가 완성된다. 표지로 사용하지 않은 일러스트는 만화경 앱 또는 SNS에서 작품 홍보용 이미지의 소스로 활용된다. 작업한 각 일러스트는 기획 콘텐츠로 분류하여 별도의 제작비용이 책정된다.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 리소스가 들어가는 작업이지만, 런칭 당일 작품이 가장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만화경 작품의 표지들 ⓒ 만화경
글을 마치며
만화경의 웹툰 PD들이 작품을 검토할 때 유심히 보는 부분과 작품 계약부터 오픈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만화경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에 대해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만화경이 생각하는 ‘좋은 만화’는 두 가지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 첫째, ‘가족에게 추천할 수 있는 만화’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는 만화라면 좋은 만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둘째, ‘백 명이 알고 있는 만화보다 열 명이 사랑하는 만화’에 주목하려 한다. 무엇이든 빠르게 바뀌는 요즘, 오랫동안 간직하고 소장하고 싶은 만화를 독자에서 선보이고 싶다. 오늘도 만화경 편집부는 좋은 만화와 신재미발견을 위해 온/오프라인을 탐험하고 있다.
1) 웹툰 뷰어 서비스는 만화경 작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https://www.webtoon-view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