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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뷔 스토리 : 박물관 학예사에서 웹툰작가로

처음부터 만화가를 준비하진 않았지만 결국에는 만화가가 된 꼬 작가의 데뷔 이야기

2021-07-23



나의 데뷔 스토리 : 박물관 큐레이터에서 웹툰작가로

 

나의 하루 일과는 여전히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으로 시작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책상 위에 놓인 물건과 모니터 속 화면이다. 과거 학예실의 내 책상에는 각종 도록과 보고서, 유물 카드 등이 쌓여있었고, 모니터 화면에는 준비 중이던 특별전 기획서나 표준유물관리시스템이 띄워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책상은 커다란 액정 태블릿이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화면 속에는 작업 중인 웹툰 원고 페이지가 있다. 지금의 나는 만화경에서 <붉은 꽃 푸른 열매>를 연재하고 있는 웹툰 작가지만, 데뷔 전 나는 박물관 학예사였다. 흔히 큐레이터라고 말하는 그 직업이다. 



△ 만화경에서 연재 중인 <붉은 꽃 푸른 열매>

나의 첫 직업, 박물관 학예사

중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 늘 만화와 역사 두 가지를 꼽았다. 초등학교 때 연습장에 낙서처럼 끄적이던 것이 그림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만화동아리 활동에 몰두하며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부모님은 만화 관련 학과로 진학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만화에 대한 어른들의 부정적인 생각, 취미는 취미일 뿐 전공이나 직업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그 시대의 인식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만화만큼 좋아했던 역사로 진로를 결정하였다. 사학과에 입학한 후 역사 공부를 더 깊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더불어 학부 때부터 현장에서 직접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기에 박물관 인턴십에 참여하여 4년간 인턴으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박물관 학예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되었고, 경력을 쌓고 자격증을 취득하며 학예사의 꿈을 이뤄나갔다.

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하며 내가 주로 담당했던 업무는 유물관리와 전시기획이었다. 학예실에 출근하여 그날 업무를 확인한 후에는 전시실과 수장고롤 산책하듯 쭈욱 둘러보며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게 오전 일과 중 하나였다. 학예사의 장점 중 하나는 유물을 눈앞에서 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학예사는 늘 소장유물의 현황을 파악하고 상태를 점검하며, 보존처리나 유물 출납(出納) 등 유물 전반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때문에 학예사가 아니었다면 만져보지 못했을 다양한 유물을 직접 보면서 유물에 담겨있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배울 수 있었다.

박물관 업무의 꽃은 전시다. 연구나 유물관리, 교육프로그램 등 박물관이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나, 그 모든 것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다. 학예사로 일하면서 수차례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주제를 선정할 때에는 대중의 흥미 여부와 소장유물의 현황 파악, 타 기관의 전시 현황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효과적으로 유물을 전시하는 방법이나 관람객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설명 방법 등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때문에 학예사는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미적 감각이나 시각적 기술이 많이 요구된다.

전시 보조를 맡다가 처음으로 기획전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에는 새로 공부해야 하는 것도 많고 고민해야 하는 부분도 많아서 힘든 점이 많았다. 하지만 전시가 개막하고 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가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내가 구상하고 제시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통한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다. 이후 전시를 기획하면서 전시 주제와 메시지를 보다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즐겁게 고민하며 준비하게 되었다.

 

학예사로 일하다가 다시 만난 그림 그리기

학예사로 지내는 동안 나에게 만화는 창작보다는 소비의 대상이었다. 만화를 보면서 문득 ‘내가 계속 만화를 그렸다면….’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획전을 준비하는데 전시 설명에 들어갈 삽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삽화 작가를 구하고, 조율 과정을 거쳐 작가가 전시에 맞는 삽화를 그리고, 삽화를 설명판으로 제작하여 전시실에 설치까지 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삽화 작가를 구하기엔 시간이 모자라고, 삽화 없이 만들기엔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때 농담으로 ‘정 힘들 것 같으면 제가 그려볼까요?’라고 했는데, 농담이 진담이 되어 정말로 내가 그리게 되었다.

전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전시 담당자가 나니까 어떤 내용의 삽화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려낸 삽화가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낮에는 전시 준비를 하고, 밤에 집에 와서는 삽화로 들어갈 컷 만화를 그렸다. 전시기획자의 욕심으로 삽화를 추가로 더 그리기도 했다. 이후 내가 그린 그림이 담긴 설명판이 전시실에 붙고, 브로셔로 제작되고, 전시 도록에도 실리게 되었다.

전시실에 걸린 내 삽화를 봤을 때의 기분은 정말 오묘했다. 관람객들이 내가 그린 그림을 본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기분 좋았다. 오랜만에 시도한 그림이라 좀 더 잘 그릴 걸, 후회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이후에도 전시에 필요한 만화나 유물 그림 등의 삽화를 종종 그리게 되었다. 그림을 다시 그린다는 게 즐거우면서도 내가 기획한 전시 스토리와 메시지를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내 그림’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 박물관에 재직하던 당시 습작으로 그렸던 유물들

그렇게 다시 만화를 시작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를 다쳤다. 다리가 불편하니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목발을 짚고 출퇴근하긴 했지만 이전처럼 전시실에 드나들거나 수장고를 둘러보는 일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자리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고, 여유시간에는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일러스트였지만 점차 그림과 그림이 연결되는 짧은 컷 만화를 그렸다. 만화를 그리며 오랫동안 덮어뒀던 만화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갔다. 내가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나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다시 하게 된 시기가 이때였다.

시간이 지나 다리는 나았지만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다. 그동안 덮어왔던 그림에 대한 욕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과연 만화를 다시 시작해도 될까? 만화에 다시 도전해본다면 어떤 스토리를 담아내야 할까? 여러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내가 해왔던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즉 역사와 만화를 접목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재미있고 보는 사람도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기보다, 동양 사상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만화를 준비했다. 스토리를 짜고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잊고 지냈던 옛 감정들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다.

그때부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리는 '주경야작'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퇴근 후 밤에만 작업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지만 한 컷 한 컷 완성될 때마다 괜히 흐뭇하고 뭐라도 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 화씩 완성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전만화에 올렸다. 몇 화 업로드 후 베스트도전에 올랐을 때에는 당장 뭐라도 될 듯이 기뻤다. 10화가 넘어가니 앞에 만들었던 회차가 맘에 들지 않아 리메이크를 하기도 하고, 만화 관련 책을 사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라면 노력도 저절로 하게 되었다.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 결국 고른 것은 만화였다

하지만 박물관 일과 웹툰 원고를 만드는 일을 병행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잠을 줄여가며 원고를 만들다 보니 당연히 낮에는 기운이 떨어졌고, 밤에는 원고 작업을 할 때 집중력이 떨어졌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보다 한 가지를 선택하여 집중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점차 들었다.

결정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레 이직도 준비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직할 다른 박물관을 알아보던 중 ‘이대로 그림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공부하고 쌓아온 경력을 뒤로 한 채, 기약 없는 작가 지망생이 되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선택은 결국 ‘웹툰 작가 지망생’이었다.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르지만, 원했던 박물관 학예사를 해 본 것처럼 더 늦기 전에 어릴 적 꿈꿨던 만화가가 되어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박물관 학예사를 그만두고 웹툰 작가 지망생으로 준비를 한 지 6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에 운 좋게 데뷔를 할 수 있었다. 내가 데뷔했던 플랫폼은 작품이 완결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지만, 덕분에 주간 마감 지옥도 겪어보고 원고를 만드는 노하우도 생겼다. 열심히 준비했던 스토리와 캐릭터를 완결 맺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컸지만, 이를 계기로 차기작을 더 열심히 준비해서 연재 기회를 잡고 꼭 완결을 맺자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그렇게 준비한 웹툰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붉은 꽃 푸른 열매>다. 종종 생각했었던 ‘내가 과연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했다. <붉은 꽃 푸른 열매>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사실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으로, 독자들 역시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품을 보며 함께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리고 있다.

 


언제나 사람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한다. 그 선택의 끝이 어떤지는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막연하고 알 수 없는 분야에 뛰어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나 역시 시간을 되돌려 다시 그 기로에 선다고 해도 망설임 없이 웹툰 작가의 길을 선택하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만화의 길로 오고 나서 힘든 순간보다 즐겁고 기분 좋은 순간이 더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게 즐겁고, 백지를 채워나가는 게 즐겁다. 내가 만든 세상을 통해 독자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두근거린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고 공감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빈 원고를 채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