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인 너의 삶을 보고 웃는 나 <이상징후>
야근을 하는데 지인이 카카오톡으로 말을 걸었다. 어이없는 일이 있었는데 들어달라고. 얘기를 들은 후 나는 말했다.
“매일 이런저런 엉망진창인 일이 있기 마련이고, 저도 오늘도 자잘하게 뚜껑 열리는 일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일로 죽었다면 벌써 재가 되었겠죠. 못 죽여서 내가 죽게 생겼네요.”
결국 우리의 대화는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했고, 그저 우리 자신의 스트레스를 약간 경감시켰을 뿐이었다. 대한민국 직장인과 프리랜서 두 사람의 평범한 하루일 뿐이지만, ‘평범’이라는 단어 안에는 온갖 불쾌하고 피곤한 감정들이 들끓는 것도 사실. 잇선itsun 작가의 <이상징후>를 보게 된 것은 그런 보통의 어느 날이었다. 이 글을 쓰는 8월 말 기준으로 11회까지 업로드되었다.
△ 잇선 작가의 <이상징후> (출처 : 카카오 웹툰)
<이상징후>는 에피소드마다 중심인물이 바뀌는 구성으로 에피소드당 2회차 이상으로 구성된다. 모든 에피소드에는 사람 한 명과 고양이 한 마리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보자.
이십 대 중반의 소현은 엄마와 둘이 산다. 일을 안 한 지는 벌써 반년째. 딱히 사람도 안 만나고 집에만 있는데, 뒹굴대는 게 너무 달콤하다. 다만 문제는 고생하는 엄마를 보는 일. 엄마의 걱정에 차분하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 밖에 나오는 말은 영 딴판이다.
“밥 먹는데 그런 얘기 좀 하지마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게 조옴...”
말을 하고 나니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갑자기 반성이 되면서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차오른다. 결심한다. 이제 방문을 열고 생산적인 일을 하자. 책상에 앉은 지 30분이 지나자 식곤증이 몰려온다. 잠깐만 눕자. 핸드폰으로 일자리를 찾으면 되니까. 잠들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누워서 제대로...웹서핑을 잔뜩 하다가 스르르 잠들어버린다. 불현듯 잠에서 깨 자책하며 또 누운 채로 일자리를 찾고자 핸드폰을 하다가... 웹서핑을 해버린다.
하루가 벌써 다 갔네... 나 대체 뭘 한 거냐?
제대로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소현. 눈을 떴더니 손이 몽실거린다. 거울을 보니 버섯이 되어 있다. 엄마와 소현은 다음날 ‘이상현상 연구원’에 찾아간다. 연구소장 서리는 아무렇지 않게 자고 일어났더니 버섯이 되었다는 소현의 사연을 들어준다. 그리고 묻는다.
“혹시... 부모님에게 조금... 의존하면서 지내셨나요?”
“혹시... 열심히 살겠다고 말만 하고 낮잠만 세시간씩 막!?”
문진 결과 진단은 이렇다.
“버섯이 되신 이유는... 무기력증과 우울감 때문인 거 같습니다. 쉽게 말해 내부적으로 ‘감정 환기’가 안돼서 그렇게 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 첫 번째 에피소드 '버섯 사람'에서 버섯이 되어버린 소현
<이상징후>는 갑자기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 사람들의 사연과 그들이 찾는 이상현상 연구원의 서리와 서리의 말하는 고양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원인은 다종다양하지만, 대체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스트레스나 무력감이 그 원인이다. ‘휑한 사람’ 에피소드에서는 뭘 해도 감흥이 없던 유진이 뼈와 사람 가죽이 완전히 분리되는 일을 겪는다. ‘복어 악마’ 에피소드의 주인공 다빈은 잘 웃고, 잘 들어주고, 리액션 잘하고, 분위기를 잘 깨지 않고, 부탁을 잘 들어주고, 싫은 소릴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다빈의 내면에는 미쳐버린 악마가 살고 있다. 화를 제때 내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문제를 알았다고 자동으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다빈은 분노가 끓어오르고 말로 제대로 표현을 못하면 분노의 원인이 된 사람을 복어로 만들어버린다. (정확히는 ‘사람을 복어로 만드는 눈’이 개안되었다.) ‘성공 사람’은 갑작스레 ‘갓생’을 살아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지윤의 이야기다.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초현실적인 문제를 겪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진단하는 수상쩍은 인간과 고양이. 이상현상 연구원의 서리와 서리의 고양이는 환자가 돌아가고 나면 둘이 대화를 한다. 이 대화가 알려주는 사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서리와 고양이 둘 다 심보가 못된 편이다. 환자를 도우려는 건 사실이지만 놀리는 느낌이 없지 않다. 어떤 증상들은 환자 입장에서는 충격적일지 몰라도 사실은 흔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증상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이상징후>의 재미가 있다. 서리는 (마치 셜록 홈스가 왓슨에게 하듯) 검은고양이의 질문에 답을 해 준다. 뭘 해도 감흥이 없다가 뼈와 사람 껍데기가 분리된 유진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를 한다. “저 사람은 달라지고 싶다고 말은 해도 사실 달라지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아마 낫지 못할 거라는 식이다.
잇선 작가는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잘 표현한다. 마치 두들겨 패는 듯한 타인의 말과 비웃음을. 그런 상황에서 화가 나서, 속상해서, 부끄러워서, 나 자신이 싫어서 등등의 이유로 가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는 듯한 현대인의 뇌 내 고통을 시각화하면 <이상징후>의 환자들이 될 것이다. 서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은 나 자신의 것이거나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를 옮겨둔 듯 친숙하고, 그들이 경험하는 뜬금없는 변신의 과정은 카프카의 <변신>보다는 귀엽고 신기하다. (이것이 바로 그림체의 힘이다. 심지어 ‘복어 악마’ 에피소드에서는 악마가 나오는데, 정작 악마로 변한 뒤에는 하찮고 귀여워서 이모티콘이나 굿즈로 만들면 대성할 느낌이다.) 서리와 고양이는 진지하다기보다는 장난끼 넘치는 인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대목들은 만화를 보는 ‘지친 현대인’의 마음에 정통으로 와서 꽂힌다.
△ 귀여운 악마 캐릭터
어떤 증상은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시간을 보내야 가라앉고, 어떤 증상은 고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스트레스인 줄 알았던 것이 스트레스받을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지만, 어떤 사람은 도저히 과거의 현실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도, 저런 삶도 있다. <이상징후>는 씁쓸하지만 그럴 법한 순간들로 가득해서, 늘 챙겨보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바뀌어야 하는데, 나 자신이 사라지는 편이 더 빠를 지경이다. 몸과 마음의 ‘이상현상’에 현실의 우리가 대처하는 방식이 아마도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