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세상을 가장 많이 바꾼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 인터넷? 인터넷은 90년대 이미 대중화를 시작했다.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티브 잡스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던 순간, 우리는 전혀 달라진 세계를 만나게 됐다.
일단 그 전에는 피처폰으로 전화나 문자를 통해 이야기하던 것이 모두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싸이월드가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로 소통하기 시작했고, 모바일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웹툰이 흥했다. 인터넷 문화는 게시판 시대를 지나 유튜브와 트위치 등 스트리밍으로 중심을 옮겼고, 넷플릭스가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시대가 됐다.
스마트폰이 등장한지 불과 약 15년만에 벌어진 일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발표가 2007년 1월이었으니, 거의 15년이 다 됐다.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친숙해진 지금, 우리는 초거대 플랫폼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드라마나 영화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그리고 디즈니, 인터넷 셀럽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스포티파이와 유튜브와 애플뮤직이 음악을 꽉 잡고 있다. 이 기조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됐다.
넷플릭스의 게임 진출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 지난 7월 21일, 넷플릭스는 2분기 실적 보고서를 통해 게임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다고 주주 서한을 통해 밝혔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모바일 게임에 집중하며, 게임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구독 서비스를 이용중인 구독자에게는 추가 비용을 징수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넷플릭스는 ‘콘텐츠 추가 투자’를 천명한 셈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기업이다. 2020년 투자 추정액만 20조원이다. 보통 콘솔 시장에서 말하는 AAA게임의 개발비용이 수백억~1천억원 가량인 점을 생각하면, 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바일게임의 경우 넷플릭스가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적어도 투자금액의 면에서는 말이다.
이 발표가 있은 한달 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폴란드에서 베타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폴란드는 2018~2020년 가장 많이 성장한 모바일게임 시장을 갖춘 나라고, 동유럽 최대 게임시장으로 손꼽힌다. 그만큼 최근 트렌드에 밝은 유저가 많고, 국가적 정책지원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폴란드를 테스트베드로 꼽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리고 11월에는 글로벌 서비스를 천명했고, 안드로이드부터 시작해 iOS로 차츰 서비스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서비스 게임 종류는 카드 블래스트, 슈팅 훕스,티터 업: 아슬아슬 균형잡기, 볼링 볼러 등 단순한 캐주얼게임 4종과 자사 IP인 <기묘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기묘한 이야기 3: 게임, 기묘한 이야기: 1984까지 총 6종을 선보였다.
특기할만한 점은 넷플릭스에서 직접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앱을 다운로드 받아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으면 무료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마치 쿠팡에서 ‘로켓와우 멤버십’을 결제하면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아직까진 넷플릭스가 가진 파급력을 생각하면 파괴력이 상당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서비스 초기 단계에서 적극적인 홍보보단 ‘서비스가 있다’를 알리는 수준이라 본격적인 마케팅이 시작되어야 파급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P를 가진 넷플릭스, 멀티플렉스의 꿈을 꾸는가
넷플릭스는 일단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료 고객, 2억 1천만명이 넘는 유료 고객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IP를 확보하고 있는 곳이다. 2억 1천만명은 2021년 6월 기준 78억 7496만명 중 전세계 인구 중 2.6%에 해당하는 숫자다. 무지막지한 플랫폼 파워를 가진 넷플릭스는 아직 게임 개발 역량은 없다. 하지만 1년에 수십조를 투자하는 막강한 자금력, 그리고 2억명이 넘는 ‘잠재적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다.
2억 명, 지구 인구의 2%가 구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오징어 게임>의 대 흥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모바일 개발에 소요되는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의 효과는 없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넷플릭스 안에서 영상과 게임을 모두 즐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이미 검증된 IP를 수도 없이 가지고 있다. 게임에 잘만 녹여낸다면 충분히 강점은 있다. 경쟁력이 아니라, 강점이다.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를 한 공간에서 즐기는 경험을 우리는 이미 한 적이 있다. 바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다. 보통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부대시설로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과 함께 오락실이나 인형뽑기 같은 시설을 마련해놓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는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오락실’을 모바일 세상에서 구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남으면 인형뽑기나 게임 한두판을 하곤 한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서비스를 구독하는 경험을 통해 여러가지 서비스를 한번에 누릴 수 있는 ‘티켓’을 팔고, 그것이 마치 멀티플렉스처럼 다양하게 소비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중심으로 사고하기 - 가로에서 세로로 전환된다면?
자, 지금까지 넷플릭스가 그리는 그림에 대해서 알아봤다. 지금까지 콘텐츠가 따로 즐기는 기기가 필요했다면, 스마트폰은 이 기기들을 모두 통합시키는 역할을 했다. 우리는 스마트폰 상에서 우리가 즐기고 싶은 것들을 모조리 다 즐길 수 있다. 자, 그럼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방법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쥐는 방식에 따른 차이가 있다. 세로와 가로 방식이다. 세로 방식은 스크롤을, 가로 방식은 고정된 화면을 전제로 한다. 세로 방식에서 주로 즐기는 콘텐츠는 소셜미디어, 기사, 그리고 웹툰과 같은 콘텐츠들이다. 가로 방식은 주로 영상과 게임이 있다.
여기서 넷플릭스가 왜 하필이면 게임을 통해 멀티플렉스를 모바일 상에서 구현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넷플릭스에서 ‘세로 스크롤’은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해메는 ‘검색’과 ‘탐색’의 시간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기기를 가로로 돌리는 행위는 콘텐츠의 감상과 연결되어 있다. 넷플릭스가 굳이 ‘게임’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가로로 콘텐츠를 즐기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럼, 세로 스크롤인 웹툰은 OTT 서비스의 콘텐츠 확장에서 벗어나 있는 걸까?
IP의 연결, 원작부터 직접 키운다면?
넷플릭스는 영상을 중심으로 IP를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기엔 ‘영상 중심’이 핵심이다. 즉, 넷플릭스가 IP를 확장시키는 계획에는 단순히 IP를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상을 즐긴 사람들을 위한 보조도구로서의 게임이 돋보인다. 특히 복고풍 영상미로 눈길을 끌었던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도트 게임으로 재해석해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웹툰은 넷플릭스의 계산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온다. 물론, 언젠가 넷플릭스도 웹툰 플랫폼을 포함시키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웹툰은 ‘웹툰 본연의 스토리’가 있고, 영상으로 그것을 확장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입장에선 영상과 웹툰이 동등한 스토리매체, 즉 굳이 영상을 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독립된 매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분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디즈니다. 디즈니는 마블코믹스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다, 디지털 감상 플랫폼인 마블코믹스의 구독서비스인 ‘마블 언리미티드’를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이 마블 언리미티드는 월 9.99달러에 무제한 마블의 만화를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구독 서비스다.
여기에 마블은 지난 9월 9일, 인피니티 코믹스를 공개했다. ‘인피니티 코믹스’, 즉 무한 만화(?)는 말 그대로 무한한 스크롤로 펼치는 웹툰 방식의 세로 스크롤 만화다. 넷플릭스의 시도가 ‘영상물을 중심으로 콘텐츠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였다면, 마블의 시도는 ‘콘텐츠의 깊이(Depth)’를 넓히려는 시도다.
넷플릭스가 지금 당장 원작을 키워낼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디즈니는 마블을 통해 ‘웹툰 원작의 영상매체’를 만들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아마존 역시 기반이 ‘서점’인 만큼, 점차 콘텐츠 분야에서 발을 넓혀가는 모양새다. 이처럼 다채로운 OTT들은 각자의 경쟁력으로 시장에 새로운 콘텐츠를 던지고, 다시 플랫폼으로 사람을 유입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OTT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두 기업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콘텐츠 분야 관계자들이 주시해야 할 변화다. 나비의 날갯짓 만으로도 세상이 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하물며 이들은 거대한 공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