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웹툰은 왜 'AI 페인터'를 만들었을까?
지난 10월 21일 네이버웹툰에서 AI 페인터를 공개했다. AI 페인터는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업로드하고 몇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자동으로 그림에 채색이 입혀지는 웹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누구든 사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되었다. AI 페인터가 공개된 지 얼마 안 되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서는 #자동채색 해시태그가 빠르게 올라왔다. AI 페인터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많은 사용자가 자신의 스케치를 업로드해 AI 페인터로 자동채색한 뒤 이를 트위터에 게시했다. 마치 새로운 놀이문화가 생겨난 듯한 풍경이었다.
네이버웹툰이 개발한 AI 페인터는 웹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팟캐스트 <툰에어>에서 성인수 작가는 ‘지금 당장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웹툰 작가가 작업 환경에 AI 페인터를 바로 도입하긴 어렵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여러 작화가 천편일률적인 채색을 보이리라 우려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만화를 대상으로 출시된 첫 번째 프로그램'이며, 컨셉스케치 등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고 AI 페인터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적용은 어렵더라도, 추후 기술 발전에 따라 AI 페인터가 더욱 많은 영역의 채색 스타일을 지원한다면 웹툰 작가의 노동 시간 감축에는 분명 크게 일조할 것이다. 디지털만화규장각에 실은 칼럼 <웹툰 원고의 월화수목금토일>에서 조사한 웹툰 작가의 평균 작업 기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웹툰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채색 작업에 평균 1일에서 1.5일을 소요했다. AI 페인터가 더 고도화되어 이 작업에 투입될 수 있다면 현행 6일~6.5일에 이르는 작업 기간을 단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네이버웹툰에서 개발한 AI 페인터
AI 페인터의 목적은 결국 ‘재투자’
AI 페인터 이외에도 네이버웹툰은 2019년 자체적으로 머신러닝 개발팀을 꾸리고 2020년 AI 스타트업 '비닷두'를 인수하는 등 AI 개발에 꾸준히 공력을 쏟으며 채색 이외에도 다양한 웹툰 창작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웹툰 플랫폼이 직접 만화 생태계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런 활동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네이버웹툰과는 다소 결이 다르긴 하지만, (구) 다음웹툰은 만화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2014년 독자 및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만화 창작에 필요한 유료 폰트를 무상 제공했으며 이후에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의 서체를 '미생체'로 제작해 무료 배포하기도 했다.
영상 플랫폼도 이와 유사한 활동들을 진행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2021년 3월 한국에서 번 매출액 5,100억 원을 다시 한국 콘텐츠에 모두 '재투자'한다고 밝혔다. 벌어들인 수익을 다시 투자함으로써 플랫폼은 더 나은 콘텐츠를 발굴하고, 창작자는 창작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흥행을 터뜨린 작품 <오징어게임>도 넷플릭스에서 수백억을 투자한 작품이다.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에서 투자한 비용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재투자의 실효성을 입증했다.
△ <오징어게임>의 투자비용은 약 250억원 가량이지만, <오징어게임>의 가치는 1조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네이버웹툰이 AI 페인터를 만들고, (구)다음웹툰이 폰트를 배포한 것도 이런 콘텐츠 재투자의 한 영역이라 볼 수 있다. 넷플릭스처럼 특정 콘텐츠에 직접 제작 비용을 투자한 건 아니지만, 이들은 대신 창작환경에 투자한 셈이다. 주기적으로 만화공모전을 개최하고, 수상작을 플랫폼에 연재하는 것 역시 재투자의 한 형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재투자를 위해서는
재투자의 목적은 수익이다. 그러나 이 수익은 다시 벌어들이는 말 그대로의 ‘돈'(단기적 수익)일 수도 있지만 생태계 활성화에 따른 시장 확대라는 장기적 이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재투자의 영역으로 플랫폼이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할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불법 웹툰 사이트를 뿌리 뽑는 일이다. 현재에도 플랫폼마다 불법 웹툰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와 기술적 조치 등을 이어가고 있지만, 불법 웹툰 사이트는 계속 성행 중이다. 대표적인 불법 웹툰 유통 사이트의 운영자 '밤토끼' 검거 이후 불법 유통 사이트 트래픽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불법 웹툰은 작가의 수익에 직접 영향을 끼치며 웹툰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가장 거대한 위협이다. 그러나 이 위협에 대응하는 것도 작가들의 몫이다. 현행에서는 작가들이 불법 웹툰 사이트에 일일이 자신의 작품을 내려달라고 거듭 요청하거나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통해 부담되는 법률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작가 개개인이 모든 불법 유통 사이트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불법 웹툰 유통 문제에는 무엇보다도 플랫폼의 적극적 개입이 절실하다.
재투자는 콘텐츠 영역뿐만 아니라 창작 환경 개선, 생태계 활성화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플랫폼이 재투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재투자와 함께 또 하나 짚고 싶은 건, 창작자의 지속가능한 창작 활동을 위해서는 비단 'AI 페인터'와 같은 기술적 재투자 이외에도 수익 배분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웹툰 작가들이 플랫폼을 통해 분배받는 수익은 적게는 30%, 많게는 50%에 이른다. 플랫폼에 지급하는 수수료 50%를 떼고 나면 다시 작품에 대한 수익 배분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에이전시, 원작자, 혹은 글/그림 작가 배분 등을 거치고 나면 실제 창작자 손에 쥐어지는 수익은 얼마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이 수익은 기본 고료가 보장되지 않은 것으로, 오로지 수익만이 MG제에 따라 배분되기 때문에 현행 수익 구조에서 창작자들은 노동량 대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인기 있는 소수 작가는 몇 억씩 소득을 올리지만, 인기 물이 아닌 소수 장르나 특색있는 개성 작가의 경우에는 고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분배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웹툰 창작자들의 지속적 창작 활동은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재투자와 분배는 플랫폼이 책임을 이행하는 통로
생태계는 말 그대로 여러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상호 작용을 이루는 복잡한 군집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동등한 권력을 갖고 같은 크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웹툰 생태계 안에서 플랫폼들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고, 또 그것을 통해 어느 정도의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는지 파악한다면 플랫폼에 요구되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의 무게 역시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재투자와 분배는 플랫폼이 자신의 책임을 이행하는 통로이다. 네이버웹툰의 AI 페인터가 기존 재투자의 패러다임을 뒤집는 혁신적인 기술적 시도였다면, 이제 웹툰 향유 문화와 수익구조 개선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변화 역시 기대해보고 싶다. 물론 네이버웹툰만을 향한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