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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만화공부하기 2 : 사소한 몇가지, 의외의 사태들

불어를 말하기에 최악의 조건이라면? 나이든 것, 결혼한 것,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 즉 나이들면 혀가 굳어 힘들고, 결혼하면 사소한 걸 불어로 잘 모르다보니 한국말만 하게 되고, 나긋나긋한 불어에 경상도의 억센 억양이 걸림돌이란 뜻이다. 이것이 수업시간에 자기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발표를 해야만 하는 시간이 닥치면 거의 악몽이 되는 것이다.

2000-10-01 한수경

hugo 작



평소에 잘 하던? 발음도 혀가 굳고, 앉아 있는 모든 학생들이 조선시대에 외국인을 봤다면 이런 느낌일까로 변함은 물론이고, 교수역시 발표꺼리를 미리 타자로 쳐서 손에 쥐어줬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결국 혼자서 원맨쇼를 하고 나면 교수가 진지하고 약간은 미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뭔 말이냐?" 쇼킹!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니라고 위안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기분을 당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아! 잊을 수 없는 최초의 발표 순간이여!

사실 이런 수업중 발표는 상당히 중요한 편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교수로부터 논리의 헛점을 지적받는 자리이다. 그 당시의 고민거리는 너무나 초보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이었는데, 뭐 멋있는 식으로 말하자면 "만화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가?"란 주제였던 것 같고, 이것을 뿌생(Poussin: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화이다...우리는 회화에서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과 레싱(Lessing : 회화와 시는 당연히 분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화는 공간적 예술이고 시는 시간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의 회화에 관한 이론과 연결해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본론을 말하기도 전에 쏟아지는 날카로운 공격! "한국에서는 만화를 뭐라고 부르는데?" 당황! 아니 만화를 만화라고 하지 뭐라고 하나? 뭐 한자를 풀어서 불어로 번역해서 말해야 하남?

그냥 망가처럼 나도 한번 멋있게 "만화"라고 해야 하나 어쩌구 망설이고 있는데, 이 막막함을 읽었는지 어쨌는지 그냥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렸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것은 그 질문이 얼마나 허를 찌르던 아니던 간에, 만화를 너무나도 당연시 "La bande dessinee(라 방드 데시네)"라는 불어로 사용한 나의 안일함에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가장 기본적인 단어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로 당장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좀 황당한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자,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프랑스의 방드 데시네와 우리나라의 만화는 다른 종에 해당한다! 처음엔 장난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사실 생긴것도 너무 틀리고...) 실지로 프랑스에서는 캐리커쳐와 신문의 한 컷만평, 유머스러운 한 컷 그림들은 방드 데시네에 포함되지 않는다. 각기 따따로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만화라는 개념이 훨씬 더 광범위하므로 정확한 동일한 양의 가치를 지닌 번역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만화는 단지 만화일 뿐이다. 또 바로 여기에서 만화와 망가의 차이점을 제시하라는 공격을 받는 것이다.

불어는 굉장히 섬세하므로(바로 이것 때문에 이 동양권 유학생들이 X하게 고생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용어나 개념 선택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또 이 나라의 학문적 전통이라는 것이 뭐냐 거기기 그 유명한 바로 데까르트 할아버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닙니까? 그러니 아무리 그 저명한 들뢰즈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항상 되돌아 오는 말이 있다.

"아, 그야 들뢰즈 생각이고, 자네 생각은 뭔가?" 그렇다. 저명한 철학자나 이론가에게 책임전가는 무리. 내 생각은 뭐냐? 내가 직접 생각하지 않으면 나의 이론이 아니라는 것. 생각은...음, 프랑스 만화는 우리나라 만화의 세례를 듬뿍받고 자란 이에겐 사실 좀 귀찮다...는 것이다. 외국의 만화를 제대로 읽기 위해선 한 3년은 지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유는? 사실 만화는 대중적인 문화에 해당하므로, 그래서 더욱 자국의 역사와 감수성에 더 친밀하기 때문일 것이다.



moebius 작



프랑스에 있으면 프랑스의 자료를 쉽게 구할수 있을까? 오우! 전혀 아닙네다. 처음엔 좀 크다는 서점마다 가서 뒤져봤지만 만화에 관한 이론서적은 씨가 말라 있었다. 사실 큰 서점이라고 우리나라 교보나 종로처럼 모든 분야의 책이 골고루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치 80년대엔 사회과학 서점이라는 전문적이 서점이 있었던 것처럼, 서점과 도서관도 분야에 따라 많이 전문화되어 있는 편이다.

그리하여 아, 이 책 한번 찾아서 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뒤져보면 몇 전문적인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긴 하지만, 대출은 불가능, 정 필요하면 복사를 해야한다. 책 한권을 복사하려면 뒤에 줄선 사람의 있는 눈치 없는 눈치를 다 봐야 할 것이다. 읽으려면 아마 매일 출근해서 한 10일쯤은 가야겠지. 그러나 우리나라 도서관처럼 아침 9시부터 밤10시까지 여는 도서관은 거의 전무. 게다가 아줌마는 오후 5시면 업무를 끝내고 아기 찾으러 가야하므로 도서관에서 보는 계획은 포기.

큰 서점에 가서 찾는 책을 주문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이런 출판사는 자기들과 연관이 없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선 이런 경우를 당할래도 힘들걸.) 만화전문 서점을 찾아가서 어렵게 떠벌떠벌 이런 책을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면, 점원이 아주 친절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아, 출판된지 10년이 지났군요" 불쌍한 듯이 한번 흘낏 본 후에, "저기요, 10년도 지난 책을 찾아달라는 건요, 사실은 점원을 놀리는 것에 해당하거든요...정 필요하시면 출판사로 직접 연락을 해 보시죠. 절판될 수도 있겠지만" 라고. 그렇다. 여기도 만화이론서적을 보는 인구가 얼마나 되겠는가? 1판 찍으면 거의 절판이 되는 것이다.

겨우 한 6개월 전부터인가, 프랑스에서도 인터넷상에서 책주문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들어가서 뒤져보면 불행히도 왠만한 책은 절판. 그리하여 학생의 임무중엔 큰 서점엘 가서 중고책이 나왔나를 기웃거리는 것도 들어가게 된 것이다. 재수가 좋으면 꽤 오래전에 절판된 책도 완벽한 상태로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중고서점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책과 헌책을 같이 판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라고나 할까. 부지런히 서점을 드나드는 사람은 책을 잘 구입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책 한권 건지면 그런 기쁨이 없다. 혹 프랑스 자료를 뒤지는 분들을 위해 미리 여러분에게 알려줄 사이트 주소가 있다. 프랑스의 책,자료 구입 사이트는 alapage.com 그리고 <국립만화 이미지 연구센터>사이트는 cnbdi.fr이다. 혹 구입하고픈 자료가 있다면 일단 이쪽을 뒤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