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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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의 대중적 접촉공간으로도 채울 수 없는 향수병

프랑스는 워낙에 비도 많고 가을이 없고 바로 겨울이 오니까, 10월이 넘어가면 슬슬 겨울쉐타를 준비해야 한다. 바람도 불고, 누구 말에 따르면 뼈에 스며드는 추위가 시작되는 것이다. 왜 바로 그럴 때, 기억 하나가 살짝 떠오르고, 그것이 대책없는 향수병의 시작이다. 연탄인지 석탄을 때는 난로같은 것 위에 뜨뜻한 오뎅과 떡을 넣은 냄비가 있고, 그 주변에 수많은 만화책들이 쌓여있는 공간. 바로 만화방이다.

2000-11-01 한수경

프랑스는 워낙에 비도 많고 가을이 없고 바로 겨울이 오니까, 10월이 넘어가면 슬슬 겨울쉐타를 준비해야 한다. 바람도 불고, 누구 말에 따르면 뼈에 스며드는 추위가 시작되는 것이다. 왜 바로 그럴 때, 기억 하나가 살짝 떠오르고, 그것이 대책없는 향수병의 시작이다. 연탄인지 석탄을 때는 난로같은 것 위에 뜨뜻한 오뎅과 떡을 넣은 냄비가 있고, 그 주변에 수많은 만화책들이 쌓여있는 공간. 바로 만화방이다.

무슨 40대 후반도 아니고, 이 기억이 실지의 기억인지 아니면 어떤 곳에서 본 강렬한 이미지가 남아서 그것이 마치 나의 기억처럼 체화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건 만화방에 갈 때의 그 두근거림과 어떤 책이 새로 나왔는지 쫙 훑어볼때의 기대감과, 기다리던 책을 발견했을 때, 돈을 내고 자리를 잡고 페이지를 열어볼때까지의 심장이 두드려대는 그 소리...아마도 만화사이트에서 이런 기사들을 뒤적이시는 모든 독자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 겨울쯤 되면 호떡이나 풀빵 같은걸 곁들여 집까지 빌려와서 아랫목이나 이불 속에 배를 깔고 누워서 만화책을 볼 때의 그 호사한 기억이라니! 건강한 만화적 장의 형성을 위해, 책을 사서보는 풍토에 기여해야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좀 아쉬운 듯 하다. 게다가 어떤 시간땜방용이 아니라, 한층 더 유사떠는 만화중독중에 걸린 필자같은 경우에, 좋아하는 모든 종류의 다양한 책들을 다 사서 보기란 힘든게 아닐까.

몇 년전으로 기억하지만 어느 대학도서관인가 만화책을 도서관에 비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각 지역 도서관(구청에서 관리하는)에 가면 당연히 만화책이 비치되어 있다. 지역구민의 경우는 1년에 일정액의 돈을 내면(물론 그것도 일률적이진 않고, 얼마나 돈을 버느냐에 따라서 내는 돈이 틀려진다) 비디오나 시디를 빌릴 수 있고, 책이나 만화책은 공짜로 빌릴 수 있다. 물론 만화전문도서관이 아니므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모든 만화책들을 다 보유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동네 만화방 수준은 훨씬 넘어선다. 일반적인 도서분류의 원칙에 따라서 성인용과 청소년, 아이용으로 분리되어 있고, 작가별로 분류되어 있는데, 한쪽으로 가면 만화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초기의 만화들이 죽 꼽혀있다.

물론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그런 것까지 손을 대진 않는다손 치더더라도, 윈저 맥케이의 <리틀 네모>시리즈나 미국 황금기의 만화들 <타잔>이나 알렉스 레이몽드의 <플래쉬 고든>까지, 프랑스의 초기만화들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손쉬운 만화이론서까지...어떤 도서지침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선정해서 진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분류되어 있다. 아마 구도서관에 만화전문가가 있는 건 아닐테고, 프랑스의 구립 도서관을 관리하는 단체에서 만화를 구입할 때의 어떤 지침서 같은 걸 뿌리는게 아닐까 하는 거의 확실한 예측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성인용 코너로 발을 옮기면, 프랑스의 저명한 만화가들의 작품들을 대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독립작가군들까지 수용하는 것 같지는 않고, 구민들의 요청에 따라 구입한 듯한 별 의미없는 책들로 굴러다니긴 하지만, 잘만 뒤져보면 꽤나 재미있는 책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프랑스만화의 동향을 설명하는 몇가지 잡지도 구비되어 있고, 사서가 권할만한 책들은 따로 골라내어 진열대위에 진열해놓기에 아무래도 그런책들은 지나가면서 한번 더 들춰보게 된다. 한 구석에는 오토모의 <아키라>도 있고 비록 양은 많지 않지만 몇몇 망가들로 들어와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만화방과 도서대여점에 깔려나가는 숫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겠지만, 작가들의 작품이 전국의 도서관망을 통해서 보급된다는 것도 꽤나 의미가 있다. 양적으로 많이 차지한다기 보다는, 만화를 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도서관이 보유하고 관리하고 교양하는 대상의 하나로 본다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는 만화방이라는 관습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다양한 만화를 접하기 위한 창구로써 도서관이 훨씬 더 필요했겠지만, 만화가 이렇게 양지에서 버젓이 돌아 다니는 모습은, 솔직히 부럽다.

만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도, 일단 책을 펼지면 들어오는 어떤 한국이나 일본의 만화가 주는 관습적인 이미지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무슨말인가 하면, 아무리 의무적으로 프랑스 만화를 본다 하더라도(물론 점점 나아지곤 있지만) 내게 익숙한 만화를 볼 때의 그 어떤 즐거움이 그립다는 것이고, 우리가 알건 모르건간에 이미 인이 박혀있는 게임의 규칙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만화는 당연히 어떤 한 표현 양식이고 고유의 쟝르이다. 즉, 이 만화가 어떤 것을 이야기한다라는 내용상의 측면을 떠나, 이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고유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처님의 삶을 영화로 만들때와 회화로 그려낼 때와 만화로 작업해낼 때 그 표현방식이 틀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어떤 표면적인 형태들 즉, 그림과 글자로 이루어졌다라는 첫 번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쉽게 연상하기 위해, 프랑스의 채색만화에 질려서 우리나라의 간결한 흑백의 색채로 된 만화를 보고 싶은데, 그게 여의치 않아서 프랑스의 흑백만화를 본다고 해서 그 어떤 목마름이 채워지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둘 사이의 표현방식(즉 게임의 규칙)이 너무나 틀리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장기판에서 바둑 둘 수 없듯이. 그리하여 도서관에서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향수병을 이끌고 시내로 나가 결국은 <망가>코너에 이른다. 거기에 북적이는 수많은 나이 어린 인파들에 섞여서 책을 훔쳐본다. 좀...자존심이 상한다...흑흑. 물론 파리에도 두 군데 한국 만화책을 빌려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참다참다 못하면 거기라도 가서 혹 본지 오래된 책이 있나 하고 뒤져봐서 한번씩 빌려오긴 하지만, 양도 많지 않고 새로 들어온 책도 거의 없어서 욕구를 채우기엔 태부족이다. 언젠간 나의 이 향수병을 프랑스의 서점이나 도서관의 만화코너에 가서 달랠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면서...고요히 외쳐본다. 만화애호가 여러분! 한국만화의 해외진출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첫걸음, 만화책을 사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