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 - 프랑스>
안시는 , 오타와(캐나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 히로시마(일본) 페스티벌과 더불어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축제 중 하나로 10만명의 입장객, 300명 가량의 프레스를 비롯 6천명의 전문가들이 몰려드는 가장 커다란 애니메이션 축제이다. 1958년부터 시작한 이 행사에서는 장-단편, 커맨드, 졸업작품, 인터넷, 텔레비전의 5개의 부문 하에 전 세계에서 1년간 만들어진 작품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치른다. 또한 행사의 또 다른 축들, 제 15회를 맞이하는 미파(Mifa)-즉, 판매시장과 더불어 다양한 테마를 선보이는 컨퍼런스, 거기다가 업체와 학생들을 이어주는 고용창출의 장 등과 더불어, 학교에서 업체,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어주는 총체적인 문화적이면서도 상업적인 장을 형성하고 있다. 프랑스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운하와 호수와 몽블랑 산에 둘러 쌓인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애니메이션계에 몸담은 모든 이들에 있어, 자극이자 위로이며 또 한 해를 준비하기 위한 휴식이기도 하다. 올해는 63개국에서 1,622개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이중 32개국의 207작품이 최종적으로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물론 이런 경쟁작들, 비경쟁장들 이외에도, 특별프로그램으로 <캐나다 열정> 이라는 테마 하에 10종의 각기 다른 상영회, <정치적으로 부조리한> 등을 비롯한 10종의 다양한 프로그램, 또한 10종의 야외상영 및 시사회가 벌어진다. 자그마치 50여종의 상영회, 영화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초토화되는 관객들로 성행을 이룬다.

▲ 전시장 풍경
그러나 안시는 여기서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을 듯 하다. 단지 1년에 한번 있고 마는 일회성 행사에 안주하지 않고, 명실공히 애니메이션의 요람지가 될 걸음마를 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ITIA(Cite de limage en mouvement : 움직이는 이미지의 도시)는 1984년에 설립된 애니메이션 국제센터(Le Centre international du cinema danimation : CICA)에 의해 그 대부분의 뼈대가 제안되었다. 그간 CICA는 페스티발과 미파 , 애니메이션의 진흥과 전파와 지지 , 멀티미디어 자료센터의 설치와 발전 등등을 책임져왔다. 내년부터 이 시티아는 안시의 역사예술 박물관에 자리를 잡고, CICA와 멀티미디어 섹션을 담당하던 PUMMA를 통합하여 명실공히 애니메이션, 멀티미디어, 상호작용 매체들을 총괄하는 기본적인 조직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주요업무를 문화, 경제, 교육 세 분야로 나누고, 문화는 제반 소스들의 제공(관련자료 보관, 전시), 경제는 작품제작을 위한 장학금과 기금 조성, 교육은 안시의 고블랭 학교, 사보아 대학 등에 관련 과정의 설치를 뜻한다. 대중들은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이런 사전 움직임은, 역사예술 박물관에서 시티아의 이름 하에 막을 올린 전시회로 표면화되었다. 안시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관련 자료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특별히 빌려온 다양한 오리지널들과 더불어 세심한 정성과 주의를 기울인 이 전시는 시티아의 활동에 기대를 걸 만하게 만들어주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오른쪽엔 캐나다의 애니메이터인 노만 맥로렌 (Norman McLaren)의 사진들이 주욱 걸려있다. 올해가 캐나다 초청의 해이다 보니, 수많은 존중 받아 마땅한 작가들 중 그가 우선적으로 선택된 듯 하다. 그리고 왼쪽엔 간략한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다양한 평면-입체적인 이미지들과 더불어 나열되고 있다. 이 복도를 지나면 드디어 입구에 다다른다.
오늘날의 우리들이야 움직이는 이미지들에 익숙해지다 못해 , 심지어 정지된 이미지들 속으로 걸어 다니는 일을 점점 더 소홀히 하게 되었지만, 사실 이미지가 움직인다는 것, 또는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은 아주 기나긴 과정을 걸쳐왔다. 이 전시의 다섯 섹션 중에서, 그 첫 번째 섹션이 <이미지와 마술(Image et Magie)> 이라는 건 이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미지와 마술(이마지-마지)은, 보다시피 다섯 개의 동일한 알파벳으로 구성되어있다. 발음상으로도 뭐 굳이 비슷하다고 우기면 비슷하다고 쳐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비슷한 것은 그 의미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동굴벽화에 그려진 소는 이미지이자 동시에 마술이었을 것이다. 이미지와 마술이 이처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인 것은, 이미지가 움직인다는 것에 대한 그 당시 동시대인들의 놀라움을 상상해본다면, 더 밀접하게 보인다. 움직인다는 것은 생명이 깃들어있는 것으로, 애니메이션(animation)의 어원인 된 아니마(anima)가 <혼> 과 같은 의미라면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정지된 것에 움직임을 줌으로써 생명을 불러일으킨다는 진정한 마술이 아닌가. 이러한 문맥 안에서 이 전시는 <움직임> 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연구들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하고 있다. <그림자 극장(Theatre dombre)> 에서 <마술등(lanterne magique)>같은, 유명한 형태의 눈속임과 환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에서부터, 마치 부채처럼 생긴 형태들을 돌려서 착시를 통해 움직이게끔 하는 것들, 아주 늘어져 보이는 그림 위에 반사되는 원형통을 놓으면 거기에 원래적인 형태를 되찾는 그림들 등 대중적으로 사용되던 물품들까지, 우리는 최소한 150년은 꺼꾸로 올라간 곳에 위치해있다.



이런 다양한 실험들을 거쳐, 우리는 드디어 에밀 레이노(Emile Reynaud)에 의해1877년에 만들어진, 유사한 여러 움직이는 이미지 장치들 가운데 가장 정교하다고 일컬어지는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와 대면하게 된다. 아마도 에밀 레이노가 다양한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파리의 그레방 극장(오늘날엔 박물관)에서 가져온 듯한 이 기계들 옆엔 밀랍으로 만든 이 작가가 서 있다. 옆의 단추를 누르면 이 인형이 기계를 작동시키고, 위에 설치된 화면에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최초의 애니메이션 작가라고 통칭되는 에밀 콜(Emile Cohl)과 그의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전시장은 나머지 네 개의 주 테마, <움직인다는 환영> , <생을 포착하다> , <움직임의 창조> , <빛과 움직임> 에 따라 전개된다. 윈저 맥케이(Winsor McCay)의 수많은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을 필름화시킨 작품에서부터, 셀 애니메이션, 컴퓨터의 도입과 모션 픽쳐, 클레이에서 3D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그 한 세기를 아우르는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르네 랄루(Rene Laloux)의 오리지넬 셀들, 폴 그리모(Paul Grimaut)의 오브제들, 노만 멕로렌(Norman McLauren)에서 폴 드리센(Paul Driessen), 알렉산더 페트로프(Alexander Petrov), 라울 세르베(Raoul Servais)에서 빌 플림턴(Bille Plympton)까지,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작품들의 오리지널 자료들을 보면 아마도 누구나 침을 흘릴 지도 모른다. 심지어 에밀 콜의 경우는, 아예 기존의 자료를 근간으로 해서 에밀 콜이 작업하던 작업공간을 그대로 재현해두기도 했다.



그다지 넓은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간을 잘 조직하면 이 정도의 광범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리지널과 더불어 그 모사품을 더불어 전시함으로써 관객 누구나 그 마술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때로는 작가들의 사유가 베어 나오는 친필의 복제본을, 때로는 그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이 전시장에 들어오는 누구나-잘만 본다면- 아주 두꺼운 책 여러 권쯤은 읽은 듯한 경험을 가지고 나갈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좋은 전시란 이런 게 아닐까? 어떤 식이건 보고 나서 무엇인가, 지식적이건, 감각적이건, 새로운 다른 무엇인가를 얻어갈 수 있는 것 말이다. 전세계에서 몰려든 애니메이터들에게 필름만이 아니라, 그 필름이 만들어진 그 본래적인 호기심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 현대에 작업을 하는 그들이 가지는 모든 경제적인 물질적인 수공업적인 시간적인 고통을 잠시 뒤로 하고, 역사를 거슬러가서 다시 한번 그 두근거리던 <마술> 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 바로 이런 점이 안시를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도 다양한 <국제> 라는 타이틀이 붙은 행사들이 있다. 적어도 이 타이틀이 단순한 과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연구, 깊이 있는 내용을 지닌 부대행사들이 곁들여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너무도 당연한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