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이끼>가 선사한 짜릿함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2009년 7월 <이끼>의 마지막을 본 이후 윤태호 작가의 차기작이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린 지 2년 반, 우리는 <미생>이라는 다소 생경한 제목의 작품과 만나게 된다. 2012년 1월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표제와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낸 <미생>은 연재가 거듭될수록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왜 이제야 이런 작품이 나온 거야’라는 탄식을 나오게 만들었다. 그만큼 <미생>은 신선했으며, 또한 획기적이었고, 그래서 다음 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인지를 경험하게 만든 작품이 되었다.
장그래의 성실함과 오과장의 파이팅 그리고 김동식의 상냥함으로 이어지는 영업 3팀의 완벽한 플레이는 독자들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았고, 급기야 <미생 프리퀄>이라는 독특한 기획의 모바일 무비 탄생을 불러왔다. <미생 프리퀄>은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연재되는 영화’라는 컨셉으로써 기존 드라마나 영화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미생>이 그랬던 것처럼, <미생 프리퀄> 역시 신선했으며, 그래서 원작이 있는 콘텐츠이면서 동시에 독립된 하나의 콘텐츠로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부여한 작품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미생>과 <미생 프리퀄>이 보여준 뉴미디어시대에 있어 웹툰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기해보려는 시도다.
<시마과장>과 <미생>: 미생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윤태호의 <미생>을 이야기 할 때면 우리는 자주 <시마과장>을 함께 언급하고는 한다. <시마과장>은 샐러리맨 ‘시마’를 통해 직장인으로서의 실패와 성공담을 그려내어 대표적인 직장인 만화로 얘기되어진다. 하지만, ‘<시마과장>에서 나타나는 샐러리맨의 모습이 과연 현실적일까’라는 물음 앞에서는 대부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 시마가 보여주는 성공과 실패에 있어서 그 인과관계는 시마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 특히 여성들과의 관계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성공이 묵묵함과 성실함에 대한 증명이라기보다는 요행과 꼼수가 중요한 처세술로 다가오기도 한다.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이견이 없지만, 여성편력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결말들은 일종의 판타지일 뿐이다. 어려울 때면 주인공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등장하여 앞다퉈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야기 속에서 시마의 현실은 매우 만화적이다. 반면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보여주는 실패와 성공의 여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의 성공에는 우연이 배제되고, 실패마저 사실적이다. 그리하여 희망의 결과가 달콤해지기 위해서는 성실과 노력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함을 우리는 <미생>을 보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독자들이 <미생>을 보고 ‘감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미생>이 보여주는 작품의 세계관은 내적 완결성과 더불어 현실과의 개연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나는 여인마다 조력자가 되고 로맨스를 불러오는 시마의 모습에서는 찾기 힘든 공감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미생>을 보고 현실을 읽을 수 있으며, 현실을 거울삼아 <미생>을 들여다본다. <미생>이 보여주는 현실, <시마과장>이 보여주지 못한 세계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시마과장>을 읽고서는 느끼지 못했던 ‘공감’의 영역을 <미생>을 통해서는 경험할 수 있다. 주인공의 처지가 작품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장그래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거기에는 요행을 바라는 꼼수도, 자신만 살겠다는 노림수도 숨어있지 않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살이의 ‘정석’이 담겨져 있다. <미생>이 독자에게 부여하는, <미생>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런 것이다.
<용하다 용해>와 <미생>: 다르면서도 같은
최근 많은 만화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옮겨지고 있긴 하지만, 모든 만화가 영상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인기 있는 만화라 할지라도 영화로 옮기기 힘든 경우가 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닌데도 영상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웹툰 <미생>을 미디어믹스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 기반할까. 지난 5월 24일 다음 모바일앱을 통해 개봉한 모바일 무비 <미생 프리퀄>의 인기는 매주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연일 화제가 되었다. 누가 어느 역할을 했는지도 관심사가 되었고, 원작과 연결된 내용은 웹툰을 다시 한 번 정주행해야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러한 세간의 화제는 누적 조회 수를 기사화하는 언론의 데이터를 통해 구체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남성 직장인들이 호응이 높았다고 하니 원작이 지닌 주 독자층과의 연관성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쯤에서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미생> 이전에도 샐러리맨을 대표하는 국민만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무대리’가 그것이다. ‘무대리’는 원래 <용하다 용해>(강주배 작)의 주인공으로 1999년에 한 스포츠일간지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후,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연재가 되어왔으며, 현재도 웹툰으로 발표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무대리의 개성은 연일 직속상사와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라는 점에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인기는 이러한 무대리 캐릭터를 활용한 머천다이징으로 입증된다. 열쇠고리, 라이터, 먹거리 등에서부터 여러 공공기관과 기업의 정책 및 관련 사업을 알리는 홍보만화에 등장했으며, 노동부 일자리정책이나 장기전세주택의 홍보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명실공이 ‘아기공룡 둘리’ 이후 최고의 만화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무대리’가 캐릭터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이 시트콤이라는 형식으로 연재되면서 작품의 핵심 포인트를 웃음에 두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3등신 비율의 전형적인 만화체 형태를 띤 캐릭터의 모습도 캐릭터 사업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즉, 캐릭터의 개성에 기반을 둔 미디어믹스가 더 적당함을 설명해주고 있다.
<미생>은 <무대리>와는 좀 다르다. 우선 그림부터 만화체가 아닌 극화체가 적용된다. 극화체는 아무래도 이야기의 중심이 웃음보다는 서사에 있다. 시트콤이 아닌 정통 드라마로 가야 하는 것이며, 웃음보다는 감동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감정의 과도한 점프나 웃음을 위한 인위적 설정은 가급적 배제되어야 하며,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확실해야 한다. 그래서 서사체로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현실은 작품을 보는 독자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은 독자에게 동일시되는 경험을 선사해야 하고, 독자는 캐릭터와 서사로부터 완벽한 감정이입이 되었을 때 감동을 허락할 수 있다. 우리가 <미생>을 접할 때 느끼는 울림은 이런 요소가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로만 느낄 수 있는 감동, 이제 독자는 만화에서 느꼈던 감동을 영상으로 전이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무대리’에 대한 얘기를 좀더 해보자. 작품이 처음 선보였던 1999년은 IMF 사태가 가져온 충격이 계속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직장을 떠난 많은 이들은 고통과 실의의 나날을, 해고의 태풍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도 생존의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무대리’는 웃음으로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료했다. 언제나 상사에게 구박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무대리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웃음을 얻고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웃음과 위로는 인터넷드라마와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지게 된다. 특히, 드라마로 옮겨진 무대리는 당시 인터넷, DMB 등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뉴미디어에 적합한 콘텐츠로 제작되면서 기존 TV드라마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즉, 안방에서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시청자들을 만나오던 기존의 유통과 배급방식을 벗어나 걸어 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드라마, 이른바 인터넷드라마로 등장했던 것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시트콤으로 제작된 드라마 <무대리 용하다 용해>는 이처럼 브라운관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공급된 독특한 콘텐츠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것은 <미생 프리퀄>과 묘한 접합 지점을 지닌다. 즉, 모바일 무비의 타이틀로 공개된 <미생 프리퀄> 역시 유통 방식에 있어서 기존 영화 혹은 드라마의 방식이 아닌 앱을 통한, 실험적인 방식을 택했다. <무대리 용하다 용해>가 그랬던 것처럼 <미생 프리퀄> 역시 안방을 벗어나 이동 중에 어디에서서라도 볼 수 있게 모바일 기반의 콘텐츠로 제작된 것이다. 또한, <무대리 용하다 용해>가 기존 드라마의 상영시간보다는 훨씬 짧은 8분 내외의 분량으로 제작된 것처럼 <미생 프리퀄> 역시 5~10분 사이에서 한회가 마무리되도록 제작되었다.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유저들의 특징에 따라 몰입도를 최대치로 높일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한 런닝타임이다. 또한, 총 60편으로 이어진 <무대리 용하다 용해>는 매회 완결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데, 화별 완결되는 에피소드 형태라는 측면은 <미생 프리퀄> 역시 마찬가지다. 될성부를 작품, 독자가 알아본다
<미생>은 재미있는 만화다. 동시에 이 작품은 ‘좋은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좋은’이라는 단어가 매우 주관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독자들의 수많은 댓글과 응원메시지가 그 사실을 객관화시키기 때문이다. 좋은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지금껏 좋은 작품들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많은 좋은 작품들이 독자를 만날 것이다. 그 중 상당수의 작품이 많은 독자에게 웃음과 함께 진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며, 몇몇 작품은 깊은 울림을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성찰을 (강요가 아닌) 제안할 수 있는 작품은, 단언컨대 손에 꼽을 만한 귀한 작품이다. <미생>은 그런 성찰을 제안할 줄 아는 작품이다. 가령, 먼저 퇴근하라는 김 대리의 이야기에 ‘그럴 수가 없잖습니까? 우린 팀인데...“라는 장그래의 속마음으로부터 직장인이 회사에 다니는 것이 단순히 돈 때문만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비록 직장인에게 돈과 승진을 빼면 남는 게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삶을 꿈꾸게 하는 것은 다른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숨어있는 진정성에 독자는 함께 호흡하고 감동한다. <시마과장>에서는 쉽지 않았던 호흡과 감동을 <미생>을 가능하게 했다. 굳이 이것은 리얼이라고 얘기할 필요도 없다. 리얼은, 그리고 진정성은 독자가 먼저 알아본다.
연재를 시작한지 1년하고도 또 반년의 시간이 훌쩍 넘었다. 감동의 시간도 그만큼 흘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인공 장그래는 자신의 성장에 갈증을 느끼고, 독자들 역시 <미생>의 이야기에 목마름을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갈증이 더해진다. 10여년 전, <무대리>를 통해 느꼈던 웃음과 재미가 <미생>을 통해서는 감동과 공감으로 되살아난다. <무대리가>가 IMF의 힘겨운 시간 속에 웃음으로 사람들을 다독여주었듯이 <미생>은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 시대 청춘들을 위로한다. 그러므로 ‘또 다른 미생’에 대한 욕구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미생 프리퀄>은 <미생>에 공감하는 이들을 위한 <미생>이 주는 하나의 선물이다. 그러니, 보고 느끼고 즐기고 또한 감동하자. ‘이제 살아있는 자’가 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