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만들어진 가장 뛰어난 소년만화는 무엇일까. 가장과 뛰어난이 함께 있는 질문은 대답하기 힘들기 마련이지만, 21세기 가장 뛰어난 소년만화 만큼은 <강철의 연금술사>라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일찍이 원나블이라 불리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세 작품이(특히 앞의 두 작품이) 메이저 잡지인 『소년점프』에 연재되며 소년만화계를 평정하는가 싶었지만, 군소 잡지인 『소년강강』에 연재된 <강철의 연금술사>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균질한 재미와 완성도를 보이지 못했다. 반대로 말해 앞선 세 작품은 장기연재를 지향하는 『소년점프』 편집팀의 의도에 따라 작품의 길이가 늘어나면서 연재 초기에 생각한 작품 방향에서 벗어나게 된 반면, 편집팀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매체에서 연재했기에, 작가의 의도를 침해받지 않고 관철시킨 결과일지도 모른다.
△ 『소년강강』에 연재 된 강철의 연금술사
작품을 아직 감상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소년만화로서 <강철의 연금술사>의 장점을 소개하겠다. 먼저 소재부터 탁월하다. 등장인물에게 특정 능력을 고유한 세계관 안에서 부여하여 감상자에게 쾌감을 줄 것인가는 소년만화의 핵심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연금술을 소년만화에 접목한 <강철의 연금술사>는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모든 등장인물이 지켜야하는 규칙을 만든 뒤 강철, 홍련, 불꽃, 호완 등 캐릭터마다 고유의 특성을 부여하여 전투 시 말이 되는 위기 상황들과 해법들을 기가 막히게 제시했다. 일반 소년만화에 비해 단순한 그림체가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절한 연출을 통해 전투의 박력을 표현하는데 성공했으며, 단순하면서도 개성 있어 따라 그리기 쉬운 그림체는 많은 이들이 <강철의 연금술사>의 캐릭터를 그리도록 만들었다. 비극적 형제의 모험기에서 시작하여 건국의 비밀까지 어두운 음모는 깊어지고, 서양문명에서 시작하여 동양문명까지 확장되는 이야기는 중심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산재했지만,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감정선 하에 일관된 주제의식을 펼쳐내며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캐릭터들이 일회적으로 소모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이거 쉽지 않다.
△ 왼쪽부터 각각 2003년, 2009년 제작된 강철의 연금술사 TV시리즈
이러한 장점은 많은 이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왔고 두 차례의. TV시리즈(첫 번째 만들어진 시리즈는 원작이 완결되기 전에 제작이 시작되어 뒷부분이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스토리로 만들어졌으며, 원작 완결이후 만들어진 두 번째 시리즈는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옮겼다. 필자는 후자를 더 좋아하지만, 전자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다.)와 두 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이어졌다. 아직 안본 이들이 있다면 큰 부담 없이 추천할만한 소년만화다.
이렇듯 뛰어난 소년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와 관련하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사실이 하나있다. 바로 <강철의 연금술사>를 탄생시킨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지난 글에서 밝혔다 싶이 일본 만화계는 작가의 성별과 장르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다카하시 루미코의 〈이누야샤〉나 사토 후미야가 작화를 담당한 〈소년 탐정 김전일〉처럼 여성작가가 그린 소년만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주인공이 초능력을 바탕으로 벌이는 전투가 핵심에 있는 기본적인 소년만화 스타일의 작품을 그린 여성작가로는 아라카와 히로무가 단연 눈에 띤다. 소년만화와 유사한 설정과 세계를 배경으로 한 클램프의 만화들도 치정 문제가 핵심이지 않은가. 〈강철의 연금술사〉 외에도 <수신연무>, <아르슬란전기> 전기 등 소년만화 형식의 작품을 꾸준히 그리고 있는 그를 소년만화 작가라 불러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 왼쪽부터 <수신연무>, <아르슬란전기>
아라카와 히로무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신비주의적으로 활동한 것은 아니다. 그는 홀스타인(젖소)을 마스코트로 내세우며 자신의 이야기를 후기 형식으로 다뤘고, 작가에 관심을 갖은 이들은 그가 출산을 하면서도 <강철의 연금술사>를 휴재 없이 연재한 에피소드를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가 여성일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은 일반적으로 여성이 다루지 않는 장르에서 정공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제로다크서티>, <하트로커>, 와 같이 훌륭한 밀리터리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이 여성인 캐서린 비글로우라는 점이 놀라운 것과 같다. 성별에 따른 작품 경향의 표준분포표가 있다면 아라카와 히로무와 캐서린 비글로우는 그 끄트머리에 위치할 사람들이다.
△ 아라카와 히로무의 오너캐(젖소)
성별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장르에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그에 관해 말하기 앞서 작가가 여성이라서 작품에 차이가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다가 혹시 작가가 여성일지 모른다고 느낀 지점이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여성캐릭터의 대우‘다. 솔직히 말하자, 소년만화에서 여성캐릭터들은 온전한 캐릭터인 경우가 드물다. 액션은 남성들의 영역이고, 여성 캐릭터는 남성 의존적이거나, 머리만 긴 남성이다. 예상 독자인 남성들을 위한 서비스 전용 캐릭터로 남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드래곤볼>, <원피스>, <나루토> 등을 떠올려보라. 그들 세계의 주체는 남성이다.
그런데 여성작가가 쓰고 그린 <강철의 연금술사>는 다르다. 자신만의 인생관을 따르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연금술’이라는 기술을 통해 무력을 사용함으로 육체적 강함이 부가적인 능력인 만큼 여성도 남성만큼 강해지는 것이 가능하다.(작중의 강한 여성캐릭터들은 완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남성만큼 강하게 나온다.) 주인공들의 스승인 여성 이즈미 커티스는 세계관 최강자 중 한명으로 등장하고, 국가의 북부를 책임지는 장군 올리비에 밀라 암스트롱 소장은 강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 냉철한 지휘자이자 야심가라는 여성캐릭터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는 특징이 주어졌다. 그는 뛰어난 지략가이며, 작중에서 큰 판을 그려내는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소년만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중요한 순간 감정을 선택의 기준으로 하거나, 아예 무너져 내리는 것과 매우 대비적이다.
△ 왼쪽부터 시그 커티스와 이즈미 커티스, 올리비에 밀라 암스트롱
섹시한 악역 러스트나 남성캐릭터의 보조역할인 호크아이는 기존 소년만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지만 그 대우가 매우 다르다. 러스트가 색욕의 상징으로 뇌쇄적인 복장을 하고 있더라 해도 작가는 그를 관음적인 시선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스토리상 노출이 필요할 때라도 관음적 시선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강철의 연금술사>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호크아이는 자신이 흠모하는 남성캐릭터를 위해 힘쓰지만 전장에서 그는 엘리트 군인으로서 매우 유능하다. 여성이기 이전에 전문가로서 면모가 전면에 드러난다.
△ 왼쪽부터 러스트, 리자 호크아이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 만화에서 무력이 전무한 캐릭터들의 표현에 있다. 히로인 윈리는 에드워드의 의수와 의족을 손봐주고 그가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남성 주인공의 심신의 안정을 주는 기능적 캐릭터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에드에게 힘을 주기 위해 등장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드라마를 가지고 있다. 이는 윈리보다 더욱 특별한 능력이 없고, 등장도 적은 옆집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 윈리 록벨
<강철의 연금술사>의 모든 캐릭터는 입체적이다. 부끄럽게도 소년만화에서 모든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자신만의 드라마를 품고 있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어쩌면 남성작가들은 남성만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기존의 소년만화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불편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아라카와 히로무는 여성캐릭터를 포함하여 모든 캐릭터가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이점은 <강철의 연금술사>를 특출 난 소년만화라 부를 수 있게 한다.
문화컨텐츠에서 여성의 역할이 한정된 것은 비단 일본 소년만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 영화를 만드는 여성 감독을 보기 드문 헐리웃 영화도 여성캐릭터를 대하는 태도는 문제시 되어왔다. 이와 관련하여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만화 에서 제시한 영화의 성평등 평가 방식인 벡델 테스트가 유명하다.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한다.
2.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
3. 이야기의 주제가 남자에 대한 것 이외이다.
이 세 가지 항목에 부합한 영화, 특히 대형 영화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근래에는 벡델 테스트와 다른 형식의 마코 모리 테스트(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마코 모리의 이름을 땄다.)가 등장하기도 했다. 다음 항목에 모두 부합하는 영화는 얼마나 되는가?
1. 최소 한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하는가
2. 그 여성이 자신이 이야기를 갖고 있는가
3. 그 이야기가 남성 인물의 이야기를 보조하는 데 그치진 않았나.
이를 소년 만화에 적용하면 <나루토>의 주요 여성 캐릭터 사쿠라와 히나타는 72권에 달하는 분량 동안 각각 남성 캐릭터인 사스케와 나루토에 종속되어있다. 그러나 캐릭터의 매력을 부각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야기 또한 2시간 내외에 한정된 영화와 달리 수십권 동안 진행되는 만화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있는 여성캐릭터들이 남성이 아닌 주제로 말하는 장면’이 어찌되었든 들어갈 확률이 높다. 특히 등장인물간의 관계보다 거대 악과의 싸움이 주가 되는 소년 만화는 의외로 저 두 테스트 쉽게 통과한다.
△ <나루토>의 등장인물, 하루노 사쿠라
그러나 여성캐릭터의 대우는 적지 않은 경우 헐리웃 남성 위주 액션 영화보다 더 괴상하다. 실제 인간이 연기하는 영화와 달리 그림으로 이뤄진 소년만화는 남성들의 판타지를, 혹은 무의식 속의 선입견을 더욱 쉽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년만화가 생산되는 일본이 문화환경이 주요국가 중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가장 강한 국가라는 점 또한 작 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소년 만화들을 떠올려보자. 호흡이 너무 길어져 독자가 지치는 것을 막기 위해 개그를 삽입한다. 그중 ‘판치라(여자 캐릭터 팬티 보이기)’로 대표되는 페티시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 <드래곤볼>에서 부르마 등의 캐릭터들이 개그 혹은 상황 전환을 위한 성희롱/추행 상황에 던져졌는가. 그리고 남성 캐릭터의 어떤 ‘계기’를 만들어주거나, ‘내조’하는 역할로서 자리를 굳혀 왔는가. 일본에서 제작된 수많은 만화 중 반례를 찾을 수야 있겠지만, 여전히 주류는 성별의 고정관념을 재생산 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금부터는 스테레오 타입에 가득한 일본 만화계와 그 만화계가 뿌리를 내린 일본 문화 하에서 성장한 아라카와 히로무가 어찌하여 그러한 제약을 이겨내고 뛰어난 소년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를 그리는 예외적 개인이 되었는지 흥미삼아 추론해보자.
‘작가는 ㅇㅇ한 성장과정을 거쳐 ㅁㅁ한 가치관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작품에 ㄹㄹ한 영향을 주었다.’라는 식의 추론은 종종 미리 내린 결론에 작가의 삶을 끼워 맞추는 작업에 전락할 수 있다. 하지만, 아라카와 히로무는 자신의 삶을 담은 <백성귀족>과 농고시절 경험을 바탕으로한 <은수저>를 그리고 후기만화와 여러 매체를 통해 <강철의 연금술사>등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의견을 밝힌 바 있기에 이러한 접근이 가능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가 생각하는 <강철의 연금술사>가 존재 가능케 한 아라카와 히로무의 특성은 육체노동을 통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이뤄내는 일이 뼛속까지 박힌 사람이라는 점이다. 훗카이도 농가에서 건장한 신체를 갖고 태어난 작가는 남녀 형제 가릴 것 없이 몸 쓰는 일로 1인분을 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으며, 취미로 가라데 등을 배우며 굉장히 단련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만화가가 되겠다고 고향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가의 삶과 주체적 육체노동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기존과 반대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없을 때 스테레오 타입을 내재화 하곤 한다. 그리고 일본에는 소년만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격투와 간접적으로라도 연관된 신체활동이 남성에게는 적극 권장되지만 여성에게는 안 해도 되는 일로 여겨지고, 어떤 일에 있어 여성이 ‘주체가 되지 않아도 됨’, ‘중심에 있지 않아도 됨’과 같은 사회풍토가 존재한다. 남성 소비자를 주 소비대상으로 예상하는 소년만화의 스테레오 타입을,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 반례인 작가가 깨는 일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흥미 삼은 추론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부적절한 스테레오 타입을 깬 소년만화를 그리기 위해 육체노동을 경험해본 여성작가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강철의 연금술사>가 남긴 긍정적 선례를 따라 가는 것이다. 만화를 보며 “저게 말이 돼?”라는 질문은 종종 무의미하다. <드래곤볼>의 세계에서 7개의 드래곤볼을 모아 소원을 빌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것은 작품의 내적 논리를 깨는 일이 아니다. 생산적인 질문은 특정요소가 작품의 내적 논리를 깨는 것인가, 아닌가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작품의 내적 논리를 단단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의 관계와 문제 해법에 더욱 다양한 길을 열어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더 좋은 소년만화의 등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내가 보는 만화의 여성 캐릭터들은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을 품은 채 만화를 보기 시작한다면 그 이전보다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 어떤가, 불편한 대신 〈강철의 연금술사〉처럼 기존의 한계를 넘어선 뛰어난 작품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감상자로서 더 기쁘지 아니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