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근 이슈가 된 ‘만화 공모전 출품작의 무단 도용 논란’을 중심으로 만화 표절에 대하여 접근한다.1) 이번 호의 연관 글에서 전반적인 한국만화 표절과 계보를 다루기에 이 글에서는 개괄적인 부분을 제외한다. 글은 논란과 대응 방안, 현실과 한계를 살펴보고 지향점을 찾아보려는 논의의 시작으로 연결하려 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킬미 힐미>, <용팔이>2)는 이미 해가 바뀐 사례이며 공모전과 연관이 없어 제외하고, 2016년에 발생한 공모전과 관련된 두 사례만 예로 든다.3) 물론 만화 공모전은 아니지만 공모전 관련 표절 논란은 드라마로 한정하더라도 이미 흔한 사례이다. 2004년 방송된 <여름향기>는 당시보다 10년 전에 공모전에 출품한 시나리오 작가가 소송하여 합의금 지급으로 종결됐다. SBS 드라마 <청담동 엘리스>는 CJ문화재단 주최의 공모전에서 1차 통과한 소설 <청담동 오두리>(이혜영 작가)의 문제 제기를 받았는데 이 경우도 드라마를 쓴 박상연 작가가 공모전 심사위원이었다. 2015년 방송된 KBS2 드라마 <너를 기억해>(권기영 작가)도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 CJ와 타 방송사 공모전에 제출한 작품이었다며 소재의 유사성을 들어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은 드라마 제작사가 CJ였기에 더욱 확대됐다.
△ 지난 4월 26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최근 이슈의 두 사례 중 하나는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tvN, 2016년, 류용재 작가) 논란이다. 2014년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주최의 창작 스토리 기획개발 시나리오 공모전에 <피리부는 남자>를 출품했던 고동동 작가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2016년에 ‘tvN’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피리부는 사나이>(류웅재 작가)가 방송됐다. 제목에서 느끼는 유사성은 물론이고 내용 상 아이디어의 동일성4), 게다가 당시 공모전의 심사위원이 류 작가였다는 정황에서 만화 공모전 출품작의 무단 도용 논란이 제기됐다.5) 물론 이에 대하여 류 작가 측은 “유럽 동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삼았고 작품의 아이디어가 겹친 것뿐이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웹툰 원작 이전에 ‘문학동네’ 수상작 <피리부는 사나이>(2009년)와 네이버 웹툰 <피리부는 남자>(2013년 연재 종료)6)가 있다는 것이 고 작가의 원작 주장 자체가 부당하다는 예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심사위원과 관련하여 “책 2권 분량으로 받은 심사대상 작품 중 하나로 고 작가의 작품을 접했으며 심사 후 제출 작품은 규정대로 파기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표절할 생각이었다면 논란이 빚어질 유사 제목을 정했겠느냐는 반문을 했다.
둘째 이슈가 된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KBS2, 2016년, 극본 이향희) 논란도 공모전 출품이 표절 의혹을 부추긴 예이다. SBS 측이 <천원짜리 변호사>와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유사성에 대해 이향희 작가가 해명해달라고 보도자료를 내면서 논란이 공개됐다. <천원짜리 변호사>(최수진 작가)는 2015년 SBS 문화재단 극본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2016년 2월, 최 작가는 본인 저작물을 표절한 드라마로 <동네변호사 조들호>에 문제 제기를 하며 이러한 표절로 자신의 작품이 SBS 하반기 편성에서 무산되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최 작가는 두 드라마의 줄거리와 캐릭터 유사성7)을 비교해 저작권 침해 관련 내용 증명을 보냈다.
이에 대하여 <동네변호사 조들호>(2013년 연재 시작) 웹툰의 원작자인 해츨링은 동일한 설정8)이 원작 웹툰에 이미 있다는 것을 근거로 최 작가가 오히려 웹툰을 표절한 것이라고 반론을 펴고 있다.
웹툰 전성시대를 맞은 현재, 중앙 정부 주도의 만화 공모전은 물론 각 포털 사이트와 만화 서비스 플랫폼, 대학이나 지방 자치단체 등을 통한 다양한 공모의 기회를 맞고 있다. 만화의 유통 형태 중에서 웹툰으로 한정하더라도 최근 10년 간 발표된 작품의 수는 5,726편에 작가는 4,661명에 달한다.9) 이처럼 세상에 공개된 작품과 달리 공모전을 통해 데뷔를 하려 했던 작품의 양적인 규모는 최근 10년 간 5만 편이 될지 10만 편이 될지 가늠조차 어렵다. 완성된 만화 원고는 물론 스토리 형태의 원고도 포함되는 이 수치는 공모전 출품작의 표절 문제를 양산하게 된 기본 배경이 된다.
물론 공모전 문제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만화 표절 논란이 증가하는 경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첫째, 절대적인 만화 작품의 증가 및 유통 채널의 다변화10) 둘째, 원작으로서의 만화를 접하는 기회 증가와 접근의 용이성11), 셋째, 표절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이를 통한 표절 논란 제기 증가, 넷째, 의혹 제기와 논란이 쉽게 발생하는 범죄의 불명확성 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공모전의 저작권 귀속 조항은 표절이라는 저작권 침해를 더욱 방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공모전 모집 요강의 저작권 귀속 조항은 기본적으로 출품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명시하는 것이 맞으며, 공모 성격에 따라 수상작에 한하여 복제, 배포, 전시, 연재, 2차적 저작물 작성 등을 계약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공모전 모집 요강이 감추고 있는 악의는 저작권 유의 사항이라는 항목에 담겨 있다. 보통 ‘모든 출품작에 대한 저작권은 주최 측에게 있다.’라는 문장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출품자와 주최자 간에 공모 참여라는 형태로 계약이 맺어졌다 하더라도 불공정 계약이다.12) 더 나아가 공모전을 진행한 뒤에 ‘수상작 없음’이라면서 출품작의 저작권을 갖는 악의적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공모전 출품작의 저작권 귀속이라는 독소조항은 웹툰 뿐만이 아니라 광고, 캐릭터, 디자인, 영상 등 제반 분야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독소조항 문제는 창작분야의 반발과 문화부 주도의 ‘공모전 작품 저작권 귀속 가이드 라인’이 발표되면서 출품자에게 저작권이 있다는 기본 방향으로 안정화되고 있다.13) 그럼에도 2016년 현재 독소조항이 포함된 공모전 모집 요강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14)
그러나 본 글에서 다루는 출품작 아이디어의 도용은 이러한 가이드 라인과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제 불가능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이다. 즉, 저작권의 출품자 귀속 여부와 무관하게 공모전 출품이라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노출된 이후,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2차적 저작물 형태15)로 이용되는 도용 행태를 말한다. 그것이 최근 이슈가 된 드라마 표절 논란의 사례이다. 표절은 양심의 범죄라는 지적이 이 사례에서 다시 작용하고 있다.
절 공방의 해석 : 논란에 비해 명확한 판단이 어려운 이유 최근의 표절 논란도 법적인 판단을 받은 상태가 아니며 양 측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전의 표절 논란이라고 해도 ‘각주 3항’에서 보듯이 법적인 판단을 받은 사례16)가 많은 것도 아니다. 결과는 패소 또는 논란으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17) 이 결과를 만화에 대한 홀대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좀 더 들여다보면 법의 한계, 즉 표절을 법적 기준으로 명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무단횡단처럼 단순, 명확한 행위에 의혹 제기를 누가 하겠는가? 반면에 복잡하고 입증이 곤란하며, 전문적 각색으로 구체성을 달리할 편법이 기능하는 표절의 경우에는 의혹 제기가 다반사로 나타나게 된다.
먼저 최근 사례를 중심으로 법적인 기준의 표절 판단을 대입해 보면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표절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저작권 침해에 있어 법은 구체적 표현을 저작권으로 보호한다는 전제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아이디어는 저작권법 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개념이며 표절 판단에서는 ‘실질적 유사성’18) 항목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인간이 탑승하여 조종하는 거대 로봇 설정은 아이디어이며 이 로봇의 주요 무기 탑재나 메카닉 설계가 같다면 구체적 표현이 같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기준의 한계는 공모전에 출품된 이야기 구조의 핵심 아이디어19)를 훔쳐서 그 내용의 구체적 표현을 달리하면 표절 행위로 죄를 묻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행위는 전문적 표절 행위로 지적되기도 하나 법적인 판단에서는 여전히 보호 대상이 아닌 범위에서의 행위일 뿐이다. 아이디어가 아닌 구체적 표현에서의 실제적 유사성은 등장인물의 이름과 역할이 같거나 특정 상황의 묘사가 같은 경우를 말한다.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은 주인공의 머리띠가 같고 신발이 같아야 표절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법이라는 것이 최소의 상식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면 법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쉽지는 않다. 한편에서는 표절의 인정이 창작의 위축을 수반하므로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둘째는 ‘접근성’을 통한 판단이다. 풀어 말하면 표절했다는 사람이 원작에 접근하여 볼 수 있었느냐의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이 판단은 원작 발표가 앞서고 그 원작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작일 경우에 인정받는다.20) 물론 공모전 심사위원과 공모전 출품작이라는 상황은 당연히 접근성이 인정받는 경우가 된다. 반면에 접근성은 표절 논란에서 해프닝을 보이기도 하는데 표절했다고 고소당한 작품이 알고 보니 먼저 발표된 경우를 말한다.
<피리부는 사나이> 논란이 합당한 이유는 먼저 명확히 드러나 있는 드라마 제작사 측의 접근성 부분이다. 물론 내부 공모 규정에 의해 원작을 보고 폐기했다고 하지만 기억마저 폐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질적 유사성 부분은 이것이 유사 설정의 사례인지 논란이 있다. 그러나 지하철이 비행기로 묘사되고 국회의원이 기업 회장으로 바뀐 것이 구체적 표현이 달라진 증거로 인정되는 것은 다시금 표절 논쟁을 야기하게 한다. 표절이라는 도둑질에서 훔친 그릇을 내 그릇에 섞어 두고, 일부분에 덧칠을 하면 그 그릇은 도둑의 것이냐는 비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종합적이고 세밀한 검토를 통해 법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만 현재의 논란만으로도 의혹이라는 표현을 지나친 사례이다.

△ 고동동 작가의 웹툰, 《피리 부는 남자》
1. 공모전 저작권 조항 개선
2016년 5월 9일 발표된 (사)한국만화가협회의 <피리부는 사나이>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은 표절 대응의 현재를 보여 주는 한 예이다. 만화계 여러 단체가 입장을 표명한 내용을 보면 ‘공모전 시행 시 참여하는 작품 중 특히 탈락 작품의 보호 장치 필요성, 아이디어를 선정하여 멘토링을 통해 작품을 개발하는 기획개발 공모의 저작권 보호 취약함’을 화두로 던지고 있다. 결국 정당한 계약에 의한 저작물의 2차적 저작권이 꽃피는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서 모집 요강의 저작권 개념 정립은 선행 조건이다. 향후 공모전 기획자나 출품자는 아래 사항에 유의할 것을 권고한다.
기본적 전제로 모든 출품작의 저작권 귀속은 저작권자에게 있으며 수상작의 경우 공모전 취지에 부합된 이용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저작권이 위임됨을 명시하여야 한다. 동시에 비수상작 또는 수상작 없음의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공모 주최자에게 저작권이 귀속될 까닭이 없다.
공모전 취지에 부합한 경우라 하더라도 주최자에게 저작권이 귀속되는 경우, 그 이용 형태나 범위, 기간에 대한 명확한 요강이 있어야 한다. 특히 과거 출판 형태의 유통 시대와 달리 전자적 형태의 웹툰 서비스인 경우 저작권 활용 범위에 대한 명시가 더욱 중요한 조항이 된다. 출판 환경에서의 국가 개념은 웹툰 서비스 환경에서 서비스 언어의 구분으로 확장됐다.
따라서 만화 관련 공모전의 저작권 조항에 있어 바람직한 예시는 “출품작의 저작권은 출품자에게 있으며, 수상작의 경우 주최 측에게 공모전 취지에 부합되는 연재 또는 출판, 드라마나 영화 등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을 명확한 계약 범위와 기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문장이 된다.
2. 분쟁을 대비한 방어적 수단 : 저작권 등록제 활용/공모전 심사자 윤리 조항 강화
전술한 드라마 공모전 표절 논란 중에서 2015년 방영된 KBS2 <너를 기억해> 드라마 사례는 특이한 논란이 있었다.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 의혹을 제기한 작가 지망생의 글이 올라왔는데 그 내용 중에 “제 작품의 창작연월일은 작년 3월 10일과 8월 21일에 저작권 등록을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후에 달린 드라마 작가 권기영 씨의 글에서도 “저의 저작권 등록일은 2014년 7월 17일이고 작품 기획은 2013년 말부터 노상훈 감독님과 함께 시작했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일반적으로 저작권법상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때부터 발생하며, 어떠한 절차나 형식의 이행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21) 그럼에도 위 사례에서처럼 등록과 관련한 내용이 양측 주장에 등장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작과 동시에 자동으로 저작권이 발생함에도 이렇게 등록하는 목적은 ‘공시적인 효과와 함께, 일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추정력과 대항력 등의 법적 효력을 부여하여 사후적인 입증의 책임을 경감시키고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즉 저작자로 실명이 등록된 자는 해당 등록저작물의 정당한 저작자라는 것과 등록된 창작연월일과 공표연월일에 저작물이 창작 또는 맨 처음 공표된 것으로 추정된다.22) 둘째, 등록된 저작권, 배타적발행권, 저작인접권, 출판권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한 자는 그 침해 행위에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추정력만을 부여하기 때문에 반증이 있다면 이를 번복할 수 있지만, 실제 소송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이에 대한 입증책임이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으므로 그 실익이 크다.23)
현실에서 등록의 강점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저작권 효력이 아니라 저작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추정력 및 대항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모전에 출품하는 완성작은 물론 시놉시스 형태의 내용도 저작권 등록이 가능하다. 또한 작품이 등록되어 있다는 것은 표절하려는 자의 욕심을 억제하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하게 한다.24)
이와 동시에 공모전을 진행할 때에는 그 창작물에 접근할 수 있는 자와 심사위원들에게 저작권 준수에 대한 교육이나 규정을 숙지시켜야 한다. 현재 서약서 등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미공개 창작물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표절 행위로 연결되지 않도록 규정에 의한 서약이든, 심사위원 수락에 필요한 비밀유지 조항 서명이든 인식을 개선하려는 최소한의 절차적 체크가 필요하다.
3. 전문적 표절을 막기 위한 실질적 유사성 판단 기준 연구
여기에서 전문적 표절이란 구체적 표현을 달리하여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작품으로 포장하는 기술을 말한다. 유사성 논란에 있어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강경옥 작가의 〈설희〉를 표절했다는 논란에서 실질적 유사성은 아이디와 소재(광해군 일지) 공유로 판단됐다. 이처럼 유사성 논쟁은 피해자 입장에서 동일한 부분이라 주장해도 가해자 입장에서는 일부가 같다거나 장르의 일반적 묘사, 별도의 원작 참조, 구체성이 다르다는 반론이 나와 상충하게 된다.

△ 좌로부터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강경옥 작가의 《설희》
따라서 현재 유사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도용된 분량과 독창적 창작 표현의 유사성이 중요한 근거가 되므로 이에 대한 명료한 연구가 요구된다. 즉 전체 분량에서 몇 컷에 불과하거나 몇 % 이하라고 해서 표절이 아닌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창작 핵심이나 노력이 집약된 중요 부분을 사용한 경우라면 양이 미미하더라도 표절 행위로 볼 수 있다. 도둑이 남의 집에 있는 물건 10개 중에 2개만 가져 왔다고 해도 절도는 절도이다. ‘스파이더맨’ 캐릭터 설정을 한 페이지로 가져와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에 시공간을 녹였을 경우 그 분량이 미미하더라도 핵심적인 아이디어와 표현이 집약된 창작 부분을 표절한 것이다. 당연히 분량과 무관하게 표절로 분류되어야 한다.
또한 구체적 표현을 비틀어 캐릭터의 직업을 바꾸고 배경을 바꾸더라도 창작자의 독창적 설정을 변형하여 재창작하는 것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는 법적 판단을 피해가는 수단이 되었지만 유사 설정과 묘사의 중복은 실제 표현이 달라졌더라도 표절로 구분되기를 희망한다.
이에 덧붙여 유사성의 판단에 있어 그 관점이 누구인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 관점은 만화의 표절 논란에서 늘 반복되는 현상이다. 독자와 네티즌들이 유사함으로 의혹을 제기하지만 전문적이거나 법적인 시선으로 판단하면 별개의 창작이 되는 의견 차이 현상을 불러 온다. 이것의 원인은 몇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관찰자’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보통의 관찰자 관점과 전문가 관점론25)은 여전히 각자의 논거를 지니고 양립하고 있다. 법원은 그 사회의 평균적인 경험과 지식을 갖춘 일반인의 입장에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누가 평균적인 일반인인가가 문제될 수 있는데, 만화의 경우 해당 만화 작품의 독자군이 평균적 일반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실질적 유사성은 창작물 소비자 입장에서 두 ‘작품’의 전체적인 관념과 느낌의 유사 여부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이론이 우세해지는 것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공모전과 관련하여 위임되는 저작권의 범위는 수상작도 제한적인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출품자 입장에서는 출품 당시에 이 내용을 따져가며 반발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공모전 탈락작의 저작권 귀속 여부는 특히 저작권자에게 오롯이 있음을 주최측이 명시해야할 기본 조항이다. 차후 공모전에서 특별한 사유와 정당한 계약에 의한 예외적 사항이 아니라면 탈락작의 도용으로 창작자를 두 번 매장하는 범죄가 하나라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26) 특히 정부 부처나 정부 지원을 받는 기관의 공모전과 대학 주최 공모전이 먼저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반 기업이나 특정 단체의 공모전에도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4. 기타
즉각적인 조치로 만화계 내부에서 공모전과 관련한 권고 사항이나 가이드 라인을 공표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 귀속 여부에 대하여 간단한 조항을 명시만 하더라도 지원자들에게 올바른 저작권리를 알게 할 수 있다. 실제로 공모전 출품 시 저작권 항목에 대한 유의 사항이나 기타 조항을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있음을 고려할 때 주의를 환기시키는 문구 하나의 힘도 결코 작지 않다.
또한 일부 공모전 기획의 경우 비전문가가 요강을 작성하거나 공모전 주최 측의 악의적 의도에 의해 저작권을 양도받으려는 공모전이 되기도 하는데 이들에게도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맺음말
표절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기보다는 누군가의 사회적 매장과 잠시의 흥미 기사로 다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반복은 표절에 대한 판단의 모호함 때문이다. 동시에 표절 판단을 단순 계산 법칙처럼 법에 명시할 수가 없다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표절에 대한 인식은 점차 변화하고 있으며 이 사회적 합의가 표절 논란을 줄여 나갈 것이다. 양심의 문제라는 표절에서 올바른 창작 보호를 위하여 제도적 보완은 제한적 접근이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변형되어야 할 사안들이다.
한편에서는 만화가 표절하는 것에 대하여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이 또한 바람직한 변화 중 하나이다. 저작권 자체가 가해자를 동시에 피해자로도 만들고 피해자가 어느새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영상을 불법 업 로드하면서 번역 자막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이나 타인의 표절을 힐난하면서 자신의 과제물에 복사와 붙여 넣기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국 만화가 표절 논란에서 유난히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독창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고 발표하는 특출함에 있다. 동시에 한국만화사에서 표절은 빠질 수 없는 치부이기도 하며 현재도 수많은 데뷔작들 중에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례들이 회자되고 있다. 만화 검색에 트레이싱이나 싱크로, 표절이라는 단어를 결합하면 쉽게 논란들을 접할 수 있다. 만화계 내부의 자성은 만화계 외부의 표절에 당당히 대할 수 있는 동력이 되고 만화창작의 재도약을 담보할 것이다.
주석
1) 공모전 출품작의 표절 논란이라는 제한적 범위와 달리 표절 자체의 논의는 광대하고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근대만화와 표절’은 피해자와 침해자 입장에서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스토리와 구체적 그림 표현이 결합한 만화 형식(서사구조의 영상물 범위)에 있어서의 표절 개념의 정립이 요구된다.-필자 주
2) 드라마 <용팔이>의 왕진 의사 캐릭터가 논란이 됐다. 만화 <도시정벌>의 신형빈 작가는 유사하다는 입장에서 에이전시의 검토를 의뢰하기도 했는데 네티즌들은 표절로 단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도시정벌> 7부에 다뤄진 내용 중 상속녀가 계속 잠들어 있는 설정, 상속녀의 오빠 배역과 역할, 남자 주인공이 조직폭력배를 상대로 불법 의료 행위를 하는 출장 의사인 설정을 꼽았다. 심지어는 상속녀가 침대에 누워 있지 않다는 것만 빼곤 같은 것 아니냐는 댓글도 많았다.
3) 타 분야의 만화 도용 논란 사례-언론 보도 취합
피해 작품(만화)
도용 사례
비고
〈해피(우라사와 나오키)
드라마 〈토마토〉(1999, SBS)
방송사는 클리셰로 주장.
논란 후 방송사는 정식 계약 후 드라마 〈라이벌〉 제작, 방송.
〈내게 너무 사랑스런 뚱땡이〉
(이희정)
드라마 〈두근두근 체인지〉
2005년 패소.
실질적 유사성 불인정.
〈바람의 나라>(김진)
드라마 〈태왕사신기〉
2007년 패소. 실질적 유사성 불인정.
〈윅더글 덕더글(황미나)
뮤지컬 〈점프〉
2008년 판결. 1심은 실질적 유사성 불인정.
2심에서 합의금 형식으로 종결.
〈설희>(강경옥)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2014년 소송, 3자 중재로 소 취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이충호)
드라마 〈킬미 힐미〉
2015년 분쟁 기사화.
〈도시정벌>(신형빈)
드라마 〈용팔이〉
7부 에피소드 도용 논란.
4) 고 작가는 유럽 동화인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피리 부는 사나이를 희대의 테러범으로 해석했고, 테러 이유가 부패 권력에 맞서는 방법이었으며, 가스 살포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부분이 드라마와 자기 작품의 유사성이라고 했다. 또한 드라마 방영 중 극 후반에 모든 부패의 원인으로 지목된 재벌 회장의 아들이 납치될 것으로 예견했고 실제 이 내용은 드라마에서 방영됐다. 류 작가의 반론은 드라마와 달리 웹툰의 주 배경은 지하철이며 두 명의 협상가와 앵커 캐릭터가 없으며 테러를 통한 사회적 복수는 일반화된 설정이라는 것이다.
5)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family/216/read?bbsId=G005&articleId=29841561&itemId=63
6) 복수를 위해 연쇄살인을 하는 피리 부는 남자를 추격하는 내용이다.
7) 최 작가는 남자 주인공이 사채업자를 찾아가서 피해자의 돈을 찾아 주는 장면, 특수부 검사가 꼴통 변호사가 되는 과정 등이 유사하다고 했다.
8) 두 작품의 유사점을 정리한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가) 서민적이고 괴짜 같은 독특한 캐릭터의 변호사가 허름한 사무실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도우며 정의를 지킨다는 핵심 컨셉, 나) 주인공 캐릭터가 전형적 변호사가 아니라 괴짜이고 유들유들하며 소탈한 이미지라는 설정, 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힘이 없는 아버지의 분신자살 시도를 본 뒤 성장하여 검사가 된 점, 라) 주인공이 검사가 된 후 상사의 지시에 따라 악행을 저지르는 비리검사가 되는 점, 마) 주인공이 검사 시절 강압수사를 마다하지 않다가 본인이 수사했던 피의자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며 검찰에 사표를 낸다는 점, 바) 상대 주인공을 연수원 동기로 라이벌 관계로 설정한 점, 사) 주인공이 법 지식을 통해 사채업자를 쥐락펴락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 아) 검찰을 나온 주인공이 이후에는 서민을 위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 설정, 자) 기타 다수의 설정 및 에피소드, 각 에피소드의 구체적 표현, 등장인물 간의 갈등 관계에서 양자가 상당히 동일하거나 유사하며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등 주요 배역의 캐릭터나 설정 등도 흡사하게 대응되거나 유사한 점 등이다.
9) 2015년 12월 기준, 25개의 웹툰 플랫폼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 같은 시장은 1996~2015년 10년 간 아래의 데이터를 기록했다.(KBS NEWS ‘컬처 스토리’ 2015. 9. 26 ‘빅데이터로 본 대한민국 웹툰’, 김석 기자)
구분
내용
비고
웹툰 이용자 수
95,900,000명
웹툰 서비스 상위 5개사 집계
웹툰 작품 수
5,726편
1995~2014년 기준
웹툰 작가
4,661명
1995~2014년 기준
10) 만화 출판사와 출판 유통시대는 포털 사이트의 만화 서비스와 만화전문서비스 플랫폼의 시대로 변화됐다.
11) 과거 저작권이 복사와 출판에 대한 권리문제였음을 상기할 때 현재의 만화소비형태는 과거 출판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접근성의 변화를 지녔다. 창작문화의 웹 기반 유통과 소비는 역설적으로 아이디어 엿보기를 너무나 손쉽게 만들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증가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인일 수도 있는 특이한 범죄 유형이 표절인 이유 중 하나이다.-필자 주
12) 모든 계약은 당사자 간에 약속이며 사회는 개인의 약속을 존중한다. 공모전 저작권의 주최자 귀속이라는 항목도 공모전 출품 행위와 동시에 동의한 것이 되므로 출품자는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공모전 출품작의 일방적 저작권 양도 조항은 불공정 계약으로 무효화될 여지가 있으나 사전에 공정한 계약을 하는 것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낭비와 개인의 고통을 회피하는 길이다.-필자 주
13) 특허청 발표에 의하면, 2013~2014년의 아이디어/기술 분야 공모전(199건)의 ‘저작권 유의 사항’을 분석한 결과 공모된 아이디어의 소유권에 대하여 제안자 귀속 비율이 지속적 증가 추세임. 즉 전년 17.9%에서 56%로 증가하였고 일반 창작공모전 분야도 이러한 증가 추세를 보임.-특허청/2015
14) 최근 필자는 경기도 소재 대학교의 만화 공모전에 탈락한 학생을 상담하면서 저작권이 대학에 귀속된 것이 ‘불만’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다. 출품 당사자가 문제의 불공정 조항이 아니라 단순히 불쾌의 감정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필자 주
15) 공모전 출품작을 표절하여 드라마로 만들거나 영화로 만드는 것은 정상적 저작권 위임 계약에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에 해당된다. 흔히 업계에서 판권이라고 쓰는 이 형태의 위임에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저작권료(판권료)가 지불되어야 한다. 표절은 이러한 정상 거래를 회피하는 범죄이다.
16) 특히 만화가 승소한 경우는 판례에서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필자 주
17) 3자 중재 또는 원만한 합의로 보도되는 경우, 합의금을 통한 해결인 경우가 포함되므로, 소 취하가 표절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필자 주
18) 유사성이란 우연의 결과로 보기 힘들고 원작을 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을 정도를 말한다. 유사성이 실질적으로 유사한가에 관해서는 많은 이론이 적용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이다. 게임 분야의 유사 판례를 보면 아이디어와 표현의 개념적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즉 일본 게임 제작사 허드슨의 <봄버 맨> 시리즈를 표절했다고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에 소송을 제기한 사례이다. 한국 법원에서 진행된 이 소송은 서울중앙지법이 2007년,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판결했다. 그 이유는 게임의 규칙을 아이디어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19) 아이디어라는 부분과 아이디어가 창작성을 지니며 컨셉의 핵심인지를 따지는 구분도 표절 논쟁의 주요 동기가 된다.
20) 구글 검색으로 실루엣까지 원본을 찾아내는 시대에서 유명하다는 기준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무명작가의 작품이라고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키워드의 ‘+’ 조합으로 원하는 내용을 선별하여 접근할 수 있는 현실이다.-필자 주
21) 저작권의 효력 발생을 위해서 창작 이외의 별도 절차가 필요없어 이를 무방식주의(無方式主義)라고 한다.
22) 본래 저작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창작했음을 입증해야 할 것이나, 등록된 저작물의 경우에는 등록된 자가 일단 정당한 권리자로 추정되고, 등록자가 정당한 권리자가 아님을 주장하고자 하는 자가 이러한 반대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창작한 때로부터 1년 이후에 등록된 경우에는 창작연월일에 대한 추정력은 발생하지 않는다.(다음 백과사전 참조)
23) 자동차 급발진이나 의료 분쟁 소송에서 입증 책임이 제조사나 병원에 있다고 생각해 보면 이 실익을 실감할 수 있다. -필자 주.
24) 저작권 등록 온라인 신청 사이트 https://www.cros.or.kr/main.cc
오프라인 신청은 한국저작권위원회(1800-5455)에서 담당한다.
25) 전문가와 달리 보통 관찰자란 해당 사회의 평균적 경험과 지식을 갖춘 가상의 그룹을 의미한다. 이를 유사성 논쟁에 있어서 다수의 독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필자 주.
26) 사례에 등장한 피래 작가 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 표절 논란의 상대 측에게 다른 조건도 없이 인정과 사과만을 요구한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