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표절 논란이 일었던 tvn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최근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드라마 중 눈에 띄는 뉴스가 있었다. 지난 3월부터 방영됐던 tvN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가 만화가 고동동의 과거 공모전 응모작이었던 ‘피리부는 남자’를 도용했다는 주장을 (사)한국만화가협회가 적극 옹호한 것이다.
지난 5월 9일에 (사)한국만화협회는 ‘창작물을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 조성을 희망하며’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통해서 “‘기획개발공모’ 형태의 아이디어 중심의 멘토링 시스템에 의한 공모전 특성상 참가작을 악용할 위험에서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 끊이지 않는 아이디어 도용, 무단 인용 문제가 반복됨에 따라 창작물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요소를 보호할 사회적 합의와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 만화의 표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혐의를 벗기 위해 작가 혼자 싸워야 했었다면, 이제는 만화가협회와 같은 관련 단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표절과 아이디어 도용 문제를 개인의 편향된 주장이나 잠깐의 논란거리로 치부했던 시각이 변화한 것이다. 나아가 공동체 차원에서 창작자의 오랜 노력의 산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보아야한다. 그러한 배경에는 최근 우리 창작만화가 각종 영상화 작업을 위한 아이디어의 원천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그런 과정에서 표절, 무단 사용과 같은 부작용도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오랜 인식이 변화하기까지 과거 우리 만화와 표절 사건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 좌로부터 <밀림의 왕자>, <소년케니아>
국내 만화 중 최초로 표절 만화라고 비판받은 것은 1950년대에 발표된 『밀림의 왕자』이다.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에 따르면 『밀림의 왕자』는 1951년부터 일본의 산업경제신문에 연재된 야마가와 쇼지의 『소년 케니아』의 소재, 줄거리 등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 김낙호 만화평론가는 “표절에 대한 철퇴를 가하기에는 당대 문화상황이 열악했고 (중략) 해외 히트작을 표절하는 것이 창작노동의 고됨을 줄이고도 손쉽게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증명했다”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공식적으로 국내 표절만화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남긴 것은 시인이자 만화평론을 발표했던 오규원이 1979년 “뿌리깊은 나무” 잡지에서 당시 단행본으로 출간된 『가불도사』와 사또오 산뻬이의 『현대만화선집』에 대해 비교한 것이다. ‘왜 이토록 산뻬이와 닯았나’라는 글은 한국만화사에서 표절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비판한 비평이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 “나는 가불도사와 사또오 산뻬이의 작품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참으로 막막하다. 창작이 아니라 번안이라고 해야 마땅할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도무지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떻거나 유능한 한 작가의 작품집에서 이런 사실을 보고 유쾌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제발 이것이 우연한 일치이었기를 바랄뿐이다.”라고 썼다.
이후에도 같은 잡지의 ‘잘 베낀 사람과 잘 만든 사람’이라는 글에서는 “만화도 원작자가 있는 예술양식의 하나이다. 원작자를 밝힐 용기조차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만화가일 수 있으며 원작이 어떤 것인가를 알면서도 글, 그림 아무개 또는 아무개 각본, 아무개 그림이라는 투로 이름을 버젓이 달도록 용납하는 편집자가 어떻게 좋은 아동잡지를 만들 수가 있겠는가를 생각하면 우리의 아이들이 정말로 불쌍하다”고 말했다. 또한 ‘남이 꺼리는 만화비평에 내가 왜 나섰나’를 보면 “‘일본 만화 베껴먹기 시비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만화의 해묵은 병폐’라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해묵은 병폐를 여태까지 왜 그냥 두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 해묵은 병폐를 여태까지 잘 두었다가 이제 들추는 까닭은 이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우리 만화란 남의 것을 베껴먹는 정도의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므로 논의의 대상으로 삼기조차 마땅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 만화를 좋다고 하는 글이 나왔으니까 그것은 지적해서 바로 잡아야 겠다라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낮은 수준의 만화들이야 ‘만화같은 짓’을 하든 말든 보아줄 수 있지만 비평이란 모양을 하고 나온 글까지 그런 것은 보아줄 수가 없다는 의도를 그 기사에서 읽을 수 있었다”라고 했다.
손상익 만화평론가의 『한국만화통사』에 따르면 당시의 상황을 “출판 자유의 물결을 타고 러시를 이뤘던 아동용 만화책 발행 붐에 편승하여 일본 만화를 그대로 베껴 국내 작가의 작품인 양 도용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런 관행은 우리나라가 1987년 국제저작권보호협약에 가입하기 전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의 열악한 문화의식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하나의 예술문화 장르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인식이 존재했었다. 성숙한 의식을 바탕으로 부끄러운 표절 사례를 드러내어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70~80년대 잡지, 문고판 만화와 순정만화의 표절 △ 좌로부터 <황금날개>, <바벨2세>, <유리의 성>
70년대의 한국만화는 불합리한 심의제도와 특정 유통사의 독점 체재 속에서도 소비계층의 변화와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전심의와 강압적인 검열로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특정 유통사가 전국의 대본소 만화 유통을 좌지우지한 탓에, 독자들은 점점 대본소 만화를 멀리했다. 그럼에도 만화를 향한 관심은 아동만화, 잡지만화, 스포츠만화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다작을 연재했던 작가와 출판사는 높은 수익을 얻었고 왜곡된 수익판매체제임에도 대본소, 만화방의 유통 시장 중심에서 잡지와 단행본의 구매 시장으로의 사업성을 점치게 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도 일본만화 표절은 계속됐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어린이 만화잡지가 속속 등장했지만 그 내용이나 편집방식은 일본의 것과 비슷하거나 짜깁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1980년 ‘뿌리깊은 나무’ 5월호에 실린 이상룡의 ‘걱정거리투성이의 아동잡지’란 글을 보면 “아이 잡지를 호되게 비판하는 사람이나 더러 두둔한 사람이나 우선 입을 모아 나무라고 나서는 것은 딴 나라의 아이 잡지를 그대로 베끼는 일이다. 이 나라의 몇몇 아이 잡지는 처음부터 끝가지 베끼는 것으로 메꾸려는지 몰라도 표지와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목차는 물론이거니와 속모습까지 나날이 일본의 아이 잡지를 더 닮아간다. 이를 테면 ‘소년 중앙’은 표지에 찍힌 한글을 일본 글자인 가나로 바꾸어놓으면 일본의 ‘소학관’에서 펴내는 ‘소학‘과 구별이 쉽지 않고 ‘새소년’도 글자만 바꾸어놓으면 일본의 만화잡지인 ‘소년마가진’과 구별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이중에서 일본만화를 모작한 예를 들면서, ‘새벗’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999’를 그대로 베껴 실었고 ‘새소년’의 ‘우주여객선’도 마츠모토 레이지의 ‘퀸 에메랄데스’, ‘소년중앙’은 ‘지구로 돌아온 엑스 삼만세’, ‘어깨동무’의 ‘혹성로봇 델타’, ‘새소년’의 ‘아빠는 어디에’, ‘천사 애이미의 노래’는 “창작만화로 보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현대만화사’에 따르면 “1970년 우리나라 소년잡지에서는 많은 일본만화가 연재됐습니다. 그 중에서는 거의 원작에 수정 없이 연재된 ‘바벨2세’같은 만화도 있고 원작을 3분의 1이상 잘라먹은데다 마지막에 승부까지 바꿔버린 ‘도전자 허리케인’같은 만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특이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건 한국만화가가 원작 만화를 베껴 다시 그리는 경우죠. 이런 만화의 대표격이 바로 ‘타이거마스크’였습니다. ‘타이거마스크’의 경우 잔인하고 나쁜 만화로 지목된 만큼 상당히 수정이 필요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수정하느니 차라리 다시 그리는 게 편했던 것 같습니다. ‘타이거마스크’의 경우 클라이막스 부분은 세계의 복면레슬러와 벌이는 리그전입니다. 이 리그에는 여러 가지 특이한 링에서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피라니아를 풀어 놓은 풀 한 가운데 링을 세우고 싸우는 경기, 거미집같은 로프 링에서 싸우는 경기 등이죠. 이 클라이막스 부분부터는 우리나라 만화가가 그렸습니다”라는 증언도 있었다.
잡지뿐만 아니라 단행본 만화에서도 표절 양상은 비슷했다. 1972년 ‘새소년’를 비롯한 어린이 잡지에서 연재된 만화와 소설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이른바 클로버문고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정영숙의 ‘유리의 성’, 김동명의 ‘바벨2세’, 윤도원의 ‘오뚝이 행진곡’은 일본만화인 ‘유리의성’, ‘바벨2세’는 원제목 그대로 내놓았고 ‘오뚝이 행진곡’은 치바 데츠야의 ‘1,2,3과 4,5 로쿠’라는 작품을 그래도 베낀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판 ‘바벨 2세’의 인기로 ‘황금날개’, ‘바벨 3세’를 그려야 했던 김형배 작가는 한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만화 표절 문제에서 기성 작가 대부분이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만화를 창작품이 아닌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등 만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결과다. 출판업자들은 돈벌이에 급급해 작가들에게 베끼기를 강요했고, 작가들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했다. 만화가와 우리 사회 모두 피해자다.”
순정만화 역시 이런 관행과 무관하지 않았다. 한국만화통사에서는 순정만화의 효시인 ‘영원한 종’부터 그림체가 일본 소녀만화 캐릭터의 모방이라고 지적했다. 엄희자, 민애니, 송순희 등 여성작가에 의한 순정만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60년대부터 일본만화를 베끼는 일이 횡행했다는 것이다. ‘한국 순정만화와 일본 소녀만화의 관계 연구’ 논문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민애니 작가는 “다 일본만화 다 카피에요. 보고 그리는 거. 그대로 찍으면 걸리니까 보고 조금씩 틀리게 그리고 집 이런데서 7~8명씩 책 갖다놓고 다량으로 베껴서 나오면 출판사들은 돈 벌고 작가들도 돈 벌고”라고 말했다. 이러한 출판사의 제안은 80년대까지도 이어져서 데뷔를 앞둔 신인작가들이나 어려운 생활고를 벗어나고픈 기성작가들에게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민애니 작가는 “일본만화 카피하는 거를 한 달에 4권 내지는 5권씩 했는데 1년 카피를 했는데 34평 아파트하나 살 만큼은 벌었어요. 출판사에서 이름을 한 열 개 만들어놔요. 난 원고만 갖다주면 누구 이름으로 나갔는지도 몰라요. 이 이름도 붙였다 저 이름도 붙였다 뒤죽박죽이니까. 그건 내 작품도 아니고 나는 상관할 필요도 없고. 출판사들은 돈 잘 벌지. 그걸 하면”라고 말했다. 차성진 작가는 “아주 옛날에 야구만화 하나 출판사에서 해달라고 해가지고 1권인가 한번 한 적이 있어요. 일단 쉽고 오리지날 창작하려면 시간적으로 많이 걸리고 그런데 이미 스토리 나와있고 그림 나와있고 하니까 뻔한데 원고료는 거의 비슷하게 주고 조금 더 작기는 했지만”라고 말했다. 김동화 작가는 “‘오빠에게’라는 타이틀을 바꿔서 나온 게 있었는데 그게 일본만화를 베꼈어요. 내가 지금도 아주 아마 죽는 날까지 부끄럽게 여길 텐데 어떤 식이었냐하면 그 때 ‘내 이름은 신디’, ‘우리들의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으로 해놓고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별 생각 없이 당시에는 그런 게 아마 많이 있었나봐요. 나도 한번쯤 이렇게 애썼으니까 쉽게 좀 한 번 해보자”라고 당시를 고백했다. 김진 작가도 "어느 출판사인가 갔더니 일본 만화를 싹 뜯어가지고 베껴오라고 그러더라. 데뷔하기 전이에요. (중략) 석 장인가를 딱 뜯어주더라. 그래서 갖고 가서 갈등했지. (그래서)난 데뷔를 안했어”라고 말했다.
70년대는 만화시장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때였다. 성인에서 어린이, 청소년으로 독자층이 이동했고 만화방 중심의 대여 만화 시장에서 잡지, 문고판의 구매 만화 시장으로 변화했다. 비록 사전 검열과 독과점 공급, 유통 시스템으로 당시 만화산업은 왜곡됐지만 꾸준히 만화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열혈 독자들이 형성된 상태였다. 그로인해 양질의 일본만화를 베껴서 수익을 챙기려는 행태가 벌어졌다. 정부의 불합리한 심의 정책과 특정 유통사의 독점 공급 시장이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만화의 재미에 푹 빠진 독자들의 욕구를 표절만화를 통해서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1980년대는 일본문화를 개방하지 않았지만 일본만화만큼은 홍수처럼 쏟아졌다. 비록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서 조악한 인쇄와 판형으로 독자들의 손에 쥐어졌지만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북두신권’, ‘공작왕’과 같은 히트 만화들을 접할 수 있었다.
김낙호 평론가는 당시를 “80년대 중후반 소년만화계를 주름잡던 최고의 히트만화가를 꼽아보라면 ‘성운아’와 ‘전성기’다. (중략) 그것이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이 알려지기전까지는. ‘다이나믹콩콩시리즈’는 기존의 여타 판매용 만화책 단행본과는 차별화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라고 평가했다. ‘친미’(해적판 용소야), ‘일격권’(해적판 권법소년), ‘세인트 세이야’(해적판 성투사) 등 일본의 인기 만화를 인명, 지명 등을 바꿔서 손바닥한 크기에서 일반 단행본 판형 등으로 500원에서 15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이러한 해적판 만화로 인기를 모은 대표적인 출판사가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다. 친미보다는 용소야, 이치게키보다는 한주먹이 더 익숙한 것도 바로 여기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낙호 평론가는 “콩콩류의 만화들은 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이들은 만화방 외의 단행본 위주의 소장용 출판 시장을 가늠했으며, 판매망을 문방구 등지까지 넓혀낸 첫 공신이라는 점에서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효과들은 철저한 출판사 위주의 기획, 해적판이라는 불법성의 한계를 극복해내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
90년대에 들어서 서울, 대원과 같은 만화전문출판사들이 정식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일본만화를 출간하면서 해적판의 인기는 잦아들었다.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슬램덩크’뿐만 아니라 ‘캔디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같은 고전 순정만화도 정식으로 출간됨에 따라 질낮고 조악한 해적판 만화를 찾는 독자들도 줄어든 것이다. 비록 제삼아트, 하이북스, 이메일과 같은 해적만화 출판사들이 BL만화, 성인만화 등 다양한 종류를 선보였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어 온라인 만화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80, 90년대에 번졌던 일본만화 히트만화의 충격은 독자의 안목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창작욕에도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순정만화 작가들도 그러한 일본만화의 영향을 인정했다. 권교정 작가는 “고1 때 처음으로 ‘드래곤볼’이라든지 ‘터치’라든지 ‘북두신권’같은 걸 보고 거의 문화적 쇼크라고 해야하나? 연출이라든지 그런 게 굉장했어요. 그러니까 속도감이라고 해야되나? (중략)일단 그런 게 뒷받침되니까 내용도 훨씬 재밌다고 해야되나?”라고 말했다. 원수연 작가도 “‘올훼스의 창’을 보고나서 만화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연출이 너무나 멋지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화의 세계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라고 고백했다. 80년대부터 한국 순정만화가 주목받기 시작한 배경에는 이런 영향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현상과 함께 일본 만화를 표절하는 부작용도 끊이지 않았다.
국내 최초 순정만화 잡지인 르네상스에서 1997년 7월, ‘바람과 나무의 시’의 작가 다케미야 게이코와 황미나 작가가 대담을 나눴다. 당시 다케미야 게이코 작가의 “당신은 오리지널 작가입니까?”라는 물음에 황미나는 작가의 “수치심을 느꼈다“라는 소감이 공개됐다. 이에 하이센스 10월호에 김영숙 작가는 “오리지널 작가의 의미가 어느 만큼 중요했길래 한 사람의 일본 작가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 만화계의 모든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온 한 작가가 너무 불쌍하기만 합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모방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들을 연구하는 작가입니다라고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르네상스 11월호는 일본만화를 연구한다는 미명아래 그들의 작품을 가져다 그대로 베껴내거나 또는 몇몇 작품을 혼합 각색하여 뻔뻔스럽게 자기 것인 양 발표하는 창작행위는 독자를 기만하는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 당시 일본 순정만화의 그림과 내용을 베끼거나 짜깁기하는 만화가라고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겨졌던 김영숙 작가의 이런 발언은 후에 하이센스가 6개월 정간을 당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일본만화가 정식으로 수입됐고, 2000년대가 되어서야 일본대중문화가 전면적으로 개방됐지만 그 이전부터 불법 복제판 일본만화는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런 불법 복제만화의 홍수 속에서 자란 작가와 독자들로 인해 양질의 국내 창작만화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그렇지만 아무리 국내 만화계에 좋은 영향을 주었더라도 표절과 무단복제라는 불명예마저 지울 수 없다는 것 또한 변함없는 사실이다.

△ 좌로부터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와 <두근두근 체인지>, <바람의 나라>와 <태왕사신기>, <설희>와 <별에서 온 그대>
2000년대에 들어 한국만화는 오프라인 출판만화에서 온라인 웹툰으로의 역동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청소년보호법으로 출판만화에 대한 표현의 자유, 성인만화의 규제가 가해지자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로운 인터넷으로 만화를 즐기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출판만화를 스캔해서 온라인에 서비스하는 시스템과 대형 포털사이트의 컬러 웹툰이 급성장했고, 한국만화는 곧 웹툰이라고 여길 정도로 온라인 만화콘텐츠가 보편화됐다. 국내 작가뿐만 아니라 평소에 감상하기 힘들었던 해외의 유명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들도 온라인을 통해서 손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온라인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만큼 더 많은 모작과 표절작으로 의심받는 만화들이 나타났다. 이른바 트레이싱이라고 불리며 원작의 그림체, 구도, 연출 방식 등을 그대로 베꼈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을 근거로 한, 재판 아닌 재판이 온라인에서 종종 벌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2015년 4월에 연재됐던 박미숙의 ‘내 남자친구’가 중국 탄지우의 웹툰 ‘SQ(그들의 이야기)’, old선先 작가의 ‘19天’과 그림체, 구도 등이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박미숙 작가는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겠다고 했지만 만화 속 유사한 특징이 연이어 드러났고 결국 연재를 중단했다.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하는 웹툰 작가가 트레이싱이라는 혐의를 받으면 위의 경우처럼 연재종료를 하거나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새롭게 창작활동을 하는 등 제각각으로 움직인다. 트레이싱이란 부정적 혐의가 온라인에서 비롯됐듯 그에 따른 제재도 마땅한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활동 여부도 오로지 작가 개인의 결정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얻은 팬들의 지지가 곧 웹툰 창작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온라인 여론에 귀를 기울여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웹툰의 인기로 각종 영상화작업이 이뤄지면서 ‘미생’과 같은 좋은 선례를 남긴 반면,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혐의로 법적 대응까지 이른 사례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현재 우리 문화계가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대형 미디어사업으로부터 개인의 창작물이 법적으로 어떻게 대우받는지 알 수 있다.
2004년,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의 이희정 만화가는 MBC가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드라마를 방송하자, 드라마 작가, 드라마 프로듀서, 방송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영상저작물처분 및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후 2005년에 발표된 판결문은 “원저작물을 토대로 작성된 저작물이 단순히 사상, 주제, 소재 등이 같거나 유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두 저작물 사이에 사건의 구체적인 구성, 전개과정, 등장인물의 교차 등에 공통점이 있어서 새로운 저작물로부터 원저작물의 본질적인 특징 자체를 직접 감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만화와 드라마는 저작물의 성격과 유형, 줄거리,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호관계 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어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2006년 <바람의 나라>의 김진 작가는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에 대한 판결을 “두 저작물은 줄거리와 캐릭터의 성격에 있어 일부 유사점이 있지만 김씨 작품은 단행본으로 출간된 완전한 형태의 만화인 반면 드라마 시놉시스는 최종 저작물이 아니라 앞으로 저술할 드라마 시나리오의 개요에 불과해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또한 “역사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동일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사용했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2014년 <설희>의 강경옥 작가는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대해 유사한 줄거리와 설정을 가졌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당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가 표절논란에 휩싸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비록 소송을 제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취하됐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한류 히트 상품이 표절논란에 벗어나지 못했단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외에도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와 뮤지컬 ‘퍼펙트맨’, 이충호 작가의 ‘지킬박사는 하이드씨’와 드라마 ‘킬미힐미’, 최근의 ‘피리부는 사나이’ 논란까지 표절과 도용의 혐의와 결백주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만화 표절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콘텐츠를 따라함으로써 창작의 수고를 덜고 검증된 상품으로 손쉽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역학관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전후 침체된 문화적 상황에서 일본 만화를 베껴서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고 수익을 창출했다. 지금은 영상화 작업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웹툰의 설정과 아이디어를 통해서 미디어 믹스의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영화, TV드라마 뿐만 아니라 웹드라마라는 새로운 미디어 형식에 웹툰을 결합시킴으로써 시장을 개척하고 있기도 하다.
저작권이나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인식은 아직 다소 미진한 현실이지만, 이제야 창작의 산물을 지키기 위해서 작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나서야 한다는 저변의식이 퍼지고 있다. 그런 배경에는 웹툰 작가의 데뷔 장벽이 낮은 만화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누구도 표절과 아이디어 도용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누구나 표절과 도용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콘텐츠 제작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환영받는 한국 웹툰의 오리지날리티를 누구도 돌보지 않는다면 아무도 국내에서 웹툰을 그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피리부는 사나이> 사태에 한국만화가협회가 발표한 성명도 더 이상 만화작가들이 일부 미디어믹스 사업의 재주부리는 곰으로만 남지 않겠다는 연대 선언인 것이다.
또한, 전 세계의 문화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에 맞는 표절의 구분점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에는 그림과 구도, 스토리와 구성을 만화에서 만화로 옮겨졌다면 현재는 일러스트,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이미지부터 문학작품, 방송 광고, 해외 드라마의 스토리까지 영감과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얻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표절과 도용 사례를 구분할 기준을 마련해야 긍정적인 문화 콘텐츠가 다양하게 생성될 수 있다.
한국만화사에서 표절의 그림자가 지금까지도 드리워진 만큼, 이제는 그런 오욕을 벗어날 수 있는 객관적인 법적 근거와 해명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절실한 실정이다. 만화계 안팎이나 문화계 전반에서 다양한 콘텐츠가 안전하게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각 산업계의 협조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창작자가 먼저 오리지날리티의 자긍심과 부도덕한 행위를 멀리하는 양심을 갖춰야 한다. 이런 관련업계 전반의 변화를 통해서 국내 웹툰계와 문화산업 모두 윈윈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고자료
김성훈, 오규원, 만화비평가로서 재조명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발표된 비평을 중심으로, 2014, 4, 만화비평지 ‘엇지’
손상익, 한국만화통사
박인하, 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
노수인, 한국 순정만화와 일본 소녀만화의 관계 연구 : 순정만화가들과의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 2000 이화여대 석사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