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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매니지먼트의 과거 ― 만화편집자로서의 매니지먼트 방식

최근의 디지털 만화에서의 편집과 이전의 잡지체제의 그것의 간격을 일부러라도 벌려 양쪽을 비교해보는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이 양쪽 사이의 차이나 변화, 발전 등을 대비해 보이겠단 생각이다.

2016-06-15 이재식


들어가며
만화편집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그들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가. 실무에서는 어떤 매뉴얼을 갖고 있는가. 디지털만화시대엔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
이 글은 만화편집자로 일해 온 글쓴이의 현장 보고이다. 글쓴이는 근 20여 년가량 만화잡지와 디지털 매체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이 글에서는 최근의 디지털 만화에서의 편집과 이전의 잡지체제의 그것의 간격을 일부러라도 벌려 양쪽을 비교해보는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이 양쪽 사이의 차이나 변화, 발전 등을 대비해 보이겠단 생각이다.

#1994년 가을, 어느 만화출판사 공채 면접장
그해 가을이 막 시작되던 때. 나는 만화 편집자 공채에 응했다. 편집자 채용을 낸 회사는 주간 만화잡지를 2년 전에 창간해서 청소년 잡지, 순정 잡지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이 회사는 “젊은 작가들에 더 무게를 두고, 신인 작가를 집중적으로 키운다”는 평이 따랐다.
먼저 상식과 에세이, 영어 시험을 치렀던 거로 기억하고,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 대기실에서 응시생 중 누가 질문을 한다.
“만화편집자가 뭔가요, 어떤 일을 하나요?” 그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 만화편집자 면접을 앞두고, “그게 뭐냐,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솔직하기엔 초보적이고, 엉뚱하다고 하기에도 도발적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조차 나중에 덧씌워진 것이고, 그때는 솔직하고 진지한 쪽이었다. 왜냐면 만화편집자에 대해 이 질문부터 하고 싶은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만화편집자에 대해 모르진 않는다는 자신도 있었지만,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방송국 PD로 보면 된다. 만화작품을 구상하고, 기획하고, 작품을 작가와 같이 만들어 나가는 일을 하는 거니까.”
면접을 진행하던 사람(나중에 입사해서 보니, 편집부 수석기자였다.)은 이렇게 설명했다.
다시 누군가 질문하길. “편집자가 만화를 직접 그리지는 않지요?”
“물론 그렇다”고 진행자는 명료하게 답했고, 듣는 이들은 비로소 안도하는 한숨을 가늘게 토해냈다. 다들 여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만화 콘텐츠를 다루는 프로듀서. 만화편집자를 방송국 PD에 비유한 선배는 적절한 비유를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만화와 웹툰을 다루는 현장의 기획자는 대개 PD란 직함을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꽤 매력적인 말로 받아들였지만, 한 번도 그렇게 말해 보진 못했다. PD는 곧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상당한 전문성과 권위 같은 게 느껴져서다. 한참 지나 2000년 이후로 디지털시대가 본격화되고, 디지털콘텐츠 기획과 관련한 다른 업종의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PD라는 말을 점차 사용하는 것을 봤다.

“아니 도대체 좋은 만화란 무엇인가?”
나는 만화편집자로 일하는 내내 정체성에 어떤 강박이 있었다. 만화는 알겠는데, 편집은 뭐냐, 그래서 만화에서 무슨 역할을 하느냐는 식의 질문에 부닥쳤다. 그러면 상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답을 해야 했다. 그 상대는 내 오랜 친구일 때도 있고, 처음 만난 사람일 수도 있다. 상황은 만화와 관련된 일인가, 아닌가란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오랜 친구들은 내가 만화를 그리고 싶어 했단 걸 안다. 그런 이들한테는 내 일이 만화 그리는 일이 아니란 걸 해명해야 했다. 반면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는 그냥 일본만화 이야기하는 게 더 상대를 쉽게 이해시킬 방법이 된다. 일본에선 만화가 인기 있고, 수백 만 부나 나가는 만화잡지가 많은데, 잡지에서 일하는 사람이 편집자란 식이다. 여기까지 따라오면, 일본 만화출판사엔 이런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좋은 만화는 없다, 다만 훌륭한 편집자가 있을 뿐이다.”
일본 고단샤 만화편집부가 모토로 삼고 있는 말로 알려져 있다. 누구한테 들었는진 기억할 수 없지만, 이 말은 내 삶에 대한 지향을 대신하는 말이고, 한편으로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을 대신하는 말이었다.
나는 훌륭한 편집자가 될 수 있을까, 좋은 만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 도대체 좋은 만화란 무엇인가?

“(…) 편집일은 만화를 아주 그만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야.”
나는 다행히 편집자 공채에 붙었다. 만화출판사에서 ‘OO 편집부 기자’란 명함을 받았다. 왜 기자일까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부 기자의 줄임말인가.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사람을 기자라고 하지는 않고, 편집자라고 하는데, 기자라고 할 때는 매체의 영향 말고는 달리 없어 보였다. 만화잡지가 있기 때문에 기자인 양 생각했다. 다만 앞서 PD에 비유한 데서 든 생각처럼, 기자라고 할 때도 어떤 권위 같은 게 묻어나는 듯했다. 수습 딱지가 붙은 터라, 천천히 알아가자고 생각했다.
이 시험 바로 전에 나는 만화아카데미라는 만화 작화과정을 다닌 적이 있다. 나의 꿈은 작가였던 거다. 그때만 해도 편집자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대학 때부터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가 일러준 일이 있다. 그 선배는 대학 졸업 후,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긴 만화과에 들어갔다. 만화가로 만날 것 같던 선배가 만화잡지 편집자로 취직했다고 알려왔다. 몇 번 편집부를 구경삼아 간 일도 있다.
그때 선배 말이 생각난다.“작가의 길은 멀고 험하다. 편집일은 만화를 아주 그만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야.”
작가로 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선배가 스스로한테 위로하듯 한 말로 들렸다. 나중에 편집자 동료나 선후배한테서 이 비슷한 말을 자주 듣게 됐다. 내 또래에 유독 이런 고민을 하는 이가 많았다. 이들은 대학 학보사에서 만화를 그린 경력이나 아마추어 동인 활동을 하면서 만화가를 동경하다 직업으로 편집일을 택했다. 내 첫 직장에서 만난 오태엽 씨, 성인만화잡지에서 만났던 고 이동훈 선배, 나중에 서울문화사에서 같이 일한 동갑내기 정영훈, 김준영 등이 있다. 후배 중에도 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작가 데뷔를 꿈꾸는 편집자를 여럿 봤다.

“작가와 작품 매니지먼트. 그것은 작가의 작품을 받아서 마감하는데 급급하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는 만화편집자로, 수습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소년만화, 순정만화, 단행본팀, 미술팀, 국제팀, 영업팀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내 입사동기로 단행본팀 여직원이 3명 있고, 내가 속한 소년만화팀은 그해 초에 3명을 뽑은 일이 있다고 한다. 한 해에만 여러 명을 새로 들일 만큼 만화 경기가 좋았던 때이다. 내 깜냥에 만화는 좀 알지, 준비된 신입이야, 하는 마음으로 어떤 일이 주어질까 싶었는데, 여기선 특별한 업무가 없었다. 수습 기간 내내 그랬다. 회사가 요구한 첫 번째 지침은 수습 기간 동안은 정장 차림으로 근무하란 것이었다. 편집팀 말석에 앉혀두고, 만화책을 보든, 선배들 일하는 걸 보든 내버려뒀다. 그나마 한 일이 있다면, 잡지의 독자엽서 집계를 나눠서 한 일, 복사하기, 만화 원고지에 수정액 처리하기, 출력 필름지의 티끌 긁어내기 등이었다. 제판소에서 가져다준 필름은 처음 봤고, 인쇄의 한 과정이란 설명을 들었다. 선배들은 필름에서 뒤늦게 발견한 오자를, 여분의 필름에 있는 글자로 대체하거나, 로터링펜으로 감쪽같이 그리는 ‘신공’을 발휘해 보였다. 제법 감탄이 나올 처방이었고, 마감의 긴박감도 전해져왔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작가들과의 만남이었다. 마감 임박해서 원고를 들고 오는 작가들을 만났는데, 급한 상황인 만큼 대개 선 채로 인사만 나눈 정도였다. 이 회사에서 업무와 관련된 기억은 이게 전부다. 꼭 수습기간 동안만 여기서 몸담았기 때문에, 더는 진전이 없었던 것도 있다.
얼마 후 나는 다른 출판사로 옮겼다. 그때 국내에 성인만화잡지가 3종이나 새로 생겼는데, 내가 평소 생각하던 대로 나오는 잡지를 발견하고 무작정 일하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이 출판사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잡지는 일본 만화를 싣지 않고, 우리 작가의 작품만으로 편집한 성인잡지를 내세운 전략으로 독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전 회사와 비교하면 규모에선 훨씬 못 미쳤다. 편집장은 단행본팀까지 총괄했고, 성인잡지팀엔 편집부 3명, 미술부 2명이 있었다.
이 출판사에선 성급하게도 첫 출근한 날부터 일이 맡겨졌다. 마감을 나눠 하자며, 곧바로 작가를 배정해 담당을 맡겼다. 편집자한테 담당이라고 하는 것은 각별한 의미다. 해당 작품을 업무 일부로 배정받은 것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작품과 작가를 담당하는 책임을 지고 관리하는 총체적인 것을 말한다. 전 회사에선 마냥 부러운 눈으로 선배들과 담당 작가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만 봤던 터다.
이 조직에선 나한테 곧바로 일을 맡기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편집부 수석 기자가 있는데, 평소엔 출근을 안 했다. 불규칙하게 며칠 오가다, 마감 때 자리를 지키는 정도였다. 나로선 그 선배가 신기했다. 회사 사무실은 마치 베이스캠프 같았다. 팀원들과 필요할 때 만나는 공간, 마감하는 편집실, 작가들과 약속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 직종의 일터는 작가 화실이라고 했다. 구태여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 없이 바로 작가 화실로 간다고 했다. 작가 화실은 대개 밤샘 작업을 하고, 늦은 오후나 돼야 일과가 시작하는데, 편집자는 그런 시간에 맞춰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밤늦게까지 화실에 있는데, 아침에 출근하는 건 형편에 맞지도, 효율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주장했다. 일본 만화잡지사를 보라고, 그들은 이렇게 하고 있다고.
그 선배의 이런 근무 태도는 회사 임원이나 조직원한테 설득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근무 태도에 대해선 모두 좋게 보지 않았다. 불성실하고 통제가 안 되는 것으로 비난이 따랐다. 편집장과 콘텐츠 담당 임원이 그 선배의 자질과 성품을 보고 그렇게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 선배는 명문대 학부를 나오고 만화과에서 다시 공부한 특이한 이력이 있었다. 이런 작은 출판사에서 능력 있는 직원한테 충분한 대우를 못 해줘 이렇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선배한테서 같은 말을 들었다. 이런 말을 듣고는 다소 측은한 심정도 들었다. 이 분야가 참 열악하단 생각이 들었다. 환경이 열악했던 것은 사실인데, 나는 선배 덕분에 덩달아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또 선배와 나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만화에 대한 생각이나 문제의식에서 닮은 구석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만화가를 꿈꿨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고, 만화평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단 인식도 같이 했다. 일본 만화와 그들의 산업규모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선배가 어느 날 내 자취방에 와서 장래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새운 적이 있다. 그는 유럽 만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실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유럽 만화 현장을 답사하고 와서 탐방기를 책으로 냈다. 마감 후에 한잔 술이라도 하는 날엔, 작품 매니지먼트를 단골 안주로 삼았다. 작가와 작품 매니지먼트. 그것은 작가의 작품을 받아서 마감하는데 급급하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떤 때는 다 그만두고, 어느 작가 매니지먼트만 했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나누기도 했다.
이때 했던 고민은 만화편집의 정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일해야 하나. 실무에선 어떤 구체적인 매뉴얼이 있나. 그런데 회사의 편집장이나 선배, 동료들, 또 작가들과 숱하게 작품에 대해 말하면서도 늘 갈증이 있었다. 어떤 구체적인 가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선배들의 처방에 따르고,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결론을 얻었다. 이전에 수습이어서, 여기선 조직이 작아서 그런 걸 접하지 못할까는 생각이 미쳤다.
돌이켜보면, 그때 편집장이 ‘생존의 문제’로 강조하던 지침이 있다. 작가들한텐 나이를 불문하고, 선생님으로 호칭하고 공손하라, 작가들끼리의 작품은 비교하지 마라 등. 작가 화실에 가거든 사인해달라고 하지 말라는 지침을 들었다. 아마추어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 말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나는 아직도 작가를 만나 사인해달란 부탁을 한 일은 없다. 겪어 보니, 사인받기는 꼭 못할 일은 아니고, 작가들도 좋아하는 일인데, 어떤 철칙처럼 각인돼 따르게 됐다.

이후에 나는 만화잡지사로선 제일 규모가 큰 회사로 옮겨 일하게 됐다. 내심 어떤 규범과 매뉴얼이 있을지 기대됐다. 여기선 여성잡지를 새로 창간하는 일을 맡았고, 소년잡지의 기자와 팀장으로 일했다. 그런데 어느 팀에 가나 명문화된 업무 지침은 따로 없었다. 예를 들면, 내가 순정잡지팀에서 만난 편집장은 “잡지를 만드는 것은 편집장이다. 편집장의 철학이 그 매체의 모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험스럽지만 단순화시키면, “나만 따르면 된다.”는 거였다. 이 편집장은 자신의 최대 장점이 임기응변에 빠른 대응이라고 하며, 어떤 경우든 자신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런 확신 있는 리더와 일할 땐, 리더의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이 매뉴얼이다.

“세상이 바뀌긴 했나 보다. 작품 하는 데 계약도 하고.”
내가 ‘훌륭한 편집자’가 되려고 했던 지침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만화편집자로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매니지먼트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매뉴얼은 어디 있나. 이런 갈증은 계속됐다. 여기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 주로 편집팀 동료나 선후배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제일 많이 나왔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것들은 정례화된 것도 기록으로 남은 것은 아니다.
내가 업무 매뉴얼을 문서로서 인식한 것은, 훨씬 나중으로, 2000년 디지털매체로 옮겨서다. 이때는 닷컴 열풍이 불 땐데, 만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만화웹진을 만드는 벤처회사로 옮겨와 있었다. 만화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IT 회사에서는 작품을 만들기 전에 작가와의 계약서부터 작성하라고 했다. 그리고 작품의 서비스 방향에 대해 자료를 요구했다. 회사는 콘텐츠 운영에 대한 원칙, 계약서 같은 실무적인 자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회사의 사장은 만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이현세 이름 하나였다. 그래서 세상에 만화라는 걸 새로 소개하는 양 기본을 강조했다. 한편으로 회사로선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계약서라는 증빙자료는 필수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또 나로선 편집장으로 역할을 맡다 보니, 원칙을 새로 세우고 매뉴얼을 만들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IT업계가 만화계에 미친 좋은 영향으로 이때 계약서를 작성한 관행이 비로소 생겼다. 이전엔 드물게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작품의 연재, 단행본 출판 등은 그저 일상적인 일로 보고, 계약서 없이 진행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계약서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그것이 만화편집과 매니지먼트를 대표하는 실체란 생각에서다. 계약서에는 작가와 회사의 약속이 담긴다. 회사의 비전과 운영방침이 반영된다. 또 디지털매체에선 사업의 내용과 범위, 말하자면 서로 약속하고 이행해야 할 것이 이전과 달라졌다. 회사의 비전과 작가의 약속이 만나는 지점이 계약서이고, 이 실천이 편집에선 매니지먼트의 가장 구체적인 실체이지 않을까.
내가 새로 시작한 디지털회사는 디지털과 글로벌을 핵심 정책으로 정했다. 따라서 디지털에 대해 규정하고, 해외 서비스의 실천적 제안을 해야 했다. 이전에 잡지에 연재하고, 책으로 내던 걸 당연시했다면, 여기서는 디지털에서 전송하기 위해 컬러를 할지, 말지, 디지털 서비스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또 2차적 저작권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규정하기 시작했다. 영화, 드라마, 게임 등으로 콘텐츠가 확장하는 게 시대적 요구인데, 이것은 계약서에 반영되고 또 그런 비전을 제시해야 했다. 이전에 이런 권한이 출판사에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그런 매뉴얼이 없었다. 계약서가 없었던 것이다.
계약서를 두고 당시 최고 인기의 한 순정작가와 얘기하던 생각이 난다. “세상이 바뀌긴 했나 보다. 작품 하는 데 계약도 하고.”라며 작가는 환영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계약서에 적힌 2차적 저작권에 대해선 단호하게 거부했다. 지금까지 이게 출판사의 것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로 만약 작품이 드라마가 된다면, 그게 회사의 공로겠느냐, 아니면 작가의 힘이겠냐고 물었다. 그때 나도 순순히 작가의 힘이란 데 동의하고 2차 사업화 권리는 모두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주장에 설복한 것은 나 자신이 그때까지 그런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작가는 이미 자기 작품을 드라마로 만든 전력이 있었고, 나와 신생 만화 회사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만화잡지는 여느 일반 잡지와 다르다.”
이전에 편집자들의 매니지먼트란 철저하게 잡지 중심이었다. 그것도 자기가 속해 있는 그 잡지에 한정된다. 잡지를 내지 않던 단행본 출판사는 책을 내는 행위 자체를 매니지먼트로 봤겠지만, 잡지가 없는 만큼 매니지먼트라고 할 만한 실체가 크게 없었다. 매니지먼트는 철저하게 잡지를 중심으로 실체를 갖는 것이었고, 만화편집자들은 다음과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만화잡지는 여느 일반 잡지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잡지는 정보 전달, 기록의 출판 매체로 저널의 일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 만화잡지는 만화 작품을 싣는 이유가 다른 데 있다. 만화잡지는 작품을 만드는 하나의 전일적인 시스템이다. 그것은 연재 방식을 채택해 작품의 질을 고도화하고, 작품을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잡지 자체에선 수익이 안 나도 된다. 작품을 묶은 단행본 출판에서 수익을 바란다. 이른바 ‘잡지-단행본체제’가 만화잡지만이 갖는 고유성이다. 일부 문예잡지도 이런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주간 단위로 발행되는 만화잡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철학을 공유하고, 확신 속에 선배들로부터 전해오는 지침을 매뉴얼로 일을 했다. 이때의 우리의 매니지먼트는 철저하게 잡지 중심으로, 마감과 작품의 순위 경쟁을 했다. 작가와 친해지는 것이 매니지먼트의 최고 미덕으로 꼽혔다.

“만화시장에 에이전시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에 내가 있는 회사의 편집팀 PD들이(나도 비로소 이 말을 사용한다) 이런 말을 했다. 정부 지원사업의 작품심사를 받는 자리에서 심사위원 한 사람이 우리가 응모한 작품에 대해 작가와 에이전시 계약을 한 것인지, 매니지먼트 계약을 했는지를 묻더라고 한다. 경력이 짧은 PD는 다소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몰라서가 아니고, 이렇게까지 통용되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같은 문맥에서 나는 요즘 에이전시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는 예전에 출판사 혹은 만화편집자란 질문과는 차이가 있다. 한동안은 이 질문에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만화를 기획하고 출판하는 일, 또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운영하는 일을 해왔는데, 새삼 에이전시는 뭔가 싶었다. 에이전시의 뉘앙스에서 얼핏 거간꾼 같은 뉘앙스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이걸 방어할 요량으로 퍼블리셔라고 자신의 역할을 말하는 사람도 봤다. 이런 사람들은 게임업계를 보라면서, 퍼블리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라고 했다. 이때 에이전시의 위상은 단순 중개자 정도로 낮춰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에이전시 계약이라 함은 단순 중개 역할로, 대개 10% 많아야 20% 정도 수수료를 받는 계약이냐는 의미가 된다. 반면 매니지먼트 계약이란 작품에 대한 구속력이 이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작품 기획과 사업화에 대한 구상에서 작가와 어느 정도 관계하는가, 작가를 지원하는 시스템은 어느 정도인가를 묻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작품을 넘어 작가와 매니지먼트 계약 관계냐는 물음이다.
에이전시는 현재 만화시장을 말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다. 이전에 출판만화시대엔 에이전시의 존재와 개입은 아주 미미하거나 제한적이었다. 예를 들면 국경을 넘어서는 업무에 해당할 경우에나 에이전시가 개입하는 정도였다. 이는 외국책을 들여오거나, 수출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밖에 에이전시 활동은 다소 우발적으로 이뤄졌다. 만화계 밖에서 일하던 사람이 이 분야로 들어오면서 급한 대로 에이전시라고 하는 걸 봤다. 지나치게 좁혔는지 모르지만, 현실 인식은 이럴 것으로 본다.
그런데 만화시장에 에이전시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이유는 만화 플랫폼이 앞 다퉈 생기고 대형화되면서다. 이들 대형 플랫폼은 콘텐츠 수급이 가장 큰 이슈가 됐고, 이것이 시장에서 에이전시들이 나오도록 했다. 특히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카카오페이지는 에이전시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는 카카오페이지의 전반적인 운영정책 때문으로 보인다. 이 플랫폼은 모바일 기반의 콘텐츠 오픈마켓이다. 시장을 열어 두고, 물건을 팔 사람과 살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인데, 이때 에이전시는 시장에 훨씬 기민하게 대응하게 된다. 카카오페이지의 웹툰은 무료로 운영되어 여느 포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웹툰의 수급에서도 모두 에이전시에 맡겼다. 전문 플랫폼은 작가와 직접 계약을 하면서, 동시에 에이전시에서 콘텐츠를 공급받는다.

나오며
그럼 이때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는 얼마나 간격이 있을까.
에이전시가 만화시장의 핵심 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시장에서 에이전시의 역할이 고도화돼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이 곧 매니지먼트의 다양한 유형이다. 매니지먼트의 사전적 정의가 어떻든, 시장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대체로 이렇다. 먼저, 1) 작품을 기획, 제작, 퍼블리싱하는데 있어, 전방에 대한 기획을 강조한다. 밸류체인에선 생산 쪽에 가까울수록 전방으로 본다. 곧 콘텐츠 기획의 강화이다. 2) 콘텐츠 가치사슬의 전후방을 통합하는 미디어믹스 전략을 실천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 구체적인 성과를 낸다. 3) 나아가 작품을 넘어 작가를 브랜드로 관리한다. 이런 접근에서는 이전 만화잡지시대의 매니지먼트는 첫 번째 항목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전의 매니지먼트가 효용이 다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울 점이 많다. 이전의 잡지시대 작품매니지먼트에선 지금보다 더 철두철미한 매니지먼트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하지 않는가. 일반적으로 디지털 콘텐츠 가치체계에선 프리프로덕션 기능을 간과하거나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 플랫폼이 양적 변화를 거쳐 질적인 경쟁을 하면서, 또 전문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예전의 매니지먼트에 대한 향수가 다시 일고 있는 징조가 보인다. 이는 플랫폼의 경쟁력이 콘텐츠에 달렸기 때문이다. 또 웹툰이 원작산업으로 각광받고, 미디어믹스의 실천이 매니지먼트의 요체로 평가받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매니지먼트는 원천 콘텐츠를 더 강하게 담금질해야 하는 데까지 소급된다.
최근 이충호 작가는 페이스북에서 예전에 잡지시대에 그림에 몰입했던 정서를 토로했다. “그림에 과욕을 부리고, 그림만 파는 패기있는 작가가 디지털시대에도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그림 잘 그리기로 소문났던 당대의 작가들 이름을 호명하기도 했다. 그것은 오롯이 작가가 할 일이지만, 한편으로 편집자들은 자기들이 힘을 보태야 할 책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케미’를 일으킬 때, 우리는 매니지먼트라고도 했다. 만화편집자의 유전자가 다시 꿈틀거린다. 온고지신. 디지털시대 매니지먼트를 다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