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언 맨이다.”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의 토니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 대사를 두 번 말한다. <아이언맨 1>의 마지막에 한 번, <아이언맨 3>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그러나, “나는 아이언맨이다”는 두 작품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아이언맨 1>에서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의 정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아이언맨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언론 앞에서 스스로 아이언맨임을 밝히면서 세상이 자신을 슈퍼히어로로 알아주길 바란다. 반면 <아이언맨 3>에서 “나는 아이언맨이다”는 토니스타크의 나레이션을 통해 표현된다. 또한 그는 아이언맨의 상징과도 같은, 가슴에 부착한 아크 원자로를 제거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수트(아이언맨이 되기 위해 착용해야 하는 무기)가 나에요” <아이언맨 1>에서 토니 스타크는 수트를 개발하고, 착용했기 때문에 아이언맨일 수 있었다. 토니스타크가 수트를 입고 하늘을 날고, 강력한 무기로 적을 제압해야 아이언맨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언맨 3>에서 수트는 무선 조종이 가능하다. 아이언맨과 연결된 인공지능 시스템 자비스도 수트를 조종할 수 있다. 또한 <아이언맨 2>부터 또 한 대의 수트를 조종하게 된 로드(돈 치들), 토니 스타크의 연인 페퍼(기네스 펠트로)도 수트를 조종할 수 있다. <아이언맨 3>에서는 토니 스타크를 노리는 킬리언(가이 피어스)이 수트를 빼앗아 이용하기도 한다. 수트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조종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수트 인플레이션 시대. 그 때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설정은 영화는 물론 원작 만화에서도 쉴 새 없이 토니 스타크를 괴롭혀온 것이기도 하다. 토니 스타크는 끊임없이 수트를 만들지만, 그 수트는 오히려 적에게 넘어가거나 토니 스타크의 정체성 혼란에 일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트가 많아질수록 토니 스타크의 고민은 오히려 늘어만 간다. 토니 스타크는 어떻게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답은 간단하다. 수트는 누구나 조종할 수 있지만, 수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이언맨 밖에 없다.
<아이언맨 3>에서 토니 스타크는 쉴 새 없이 수많은 수트를 만들어낸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외계의 존재들을 만난 뒤 불안증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한 없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수트를 개발하는데 매달린다. 지구에서는 언제나 주목받았던 삶을 살았던 그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는 것은 괴로운 일일 것이다. 또한 <어벤져스>의 전투를 통해 육체의 한 없는 나약함을 느낀 그는 끊임없이 운동하며 나약함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려 노력한다. 그러나, <아이언맨 3>가 잘 보여주듯 수트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수트는 누구나 조종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수트가 많아질수록 토니 스타크는 오히려 점점 더 불면에 시달리고, 불면으로 깨어있는 동안 계속 새로운 수트를 만들어낸다.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 그가 불안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자신만이 수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부터다. 자신이 아무런 장비 없이, 단지 마트에서 산 몇가지 도구만으로도 나름의 무기를 만들어 활약하면서,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아이언맨일 수 있는 이유를 찾는다. <아이언맨 3>가 유난히 두뇌를 강조하는 이유다. 킬리언은 두뇌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며 두뇌가 우주와 닮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가 이끄는 단체를 어떤 이름 없이 단지 ‘씽크’(think)탱크라고도 말한다. 토니 스타크는 두뇌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에야 굳이 수트에 탑승하지 않고 무선으로 수트를 조종하면서도 아이언맨다운 활약을 한다. 그가 모든 사건을 해결한 뒤 대부분의 수트를 폭파 시키는 것은 자신이 아이언맨인 이유를 찾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언맨 3>의 진정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토니 스타크는 수트를 만들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이언맨이다. 하지만 <아이언맨 3>에서 그의 적은 수트 같은 것 없이도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인간들이다. 킬리언은 유전공학자 미야 한센(레베카 홀)이 개발한 유전자 조작 약물 익스트리미스를 이용, 육체적 능력만으로 수트 이상의 전투력을 낼 수 있는 인간 병기를 만들어낸다. 토니 스타크는 수트가 없으면 그들 앞에서 속수무책일뿐만 아니라, 수트를 입은 상태에서도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한 인간들에게 열세를 면치 못한다. 그래도 <아이언맨 3>는 토니스타크가 기지를 발휘해 킬리언에게 승리하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하지만, 토니스타크의 수트가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한 인간에게 물리적으로 밀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영화는 물론 동명의 만화 원작에서도 갖는 아이언맨의 딜레마다. 토니 스타크는 수트를 개발해 아이언맨이 되면서, 지구상의 평범한 인간들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언맨> 속 지구는 인간들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지구에는 <아이언맨 3>에서 ‘망치 든 떡대’라 말한 토르처럼 신과 같은 외계의 존재, < X-MEN >의 울버린 같은 돌연변이들도 잔뜩 있다. 토니 스타크는 두뇌와 기술을 통해 평범한 인간 중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벤져스>에서 겪었던 것처럼 그가 상대하거나 비교당할 대상은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존재들이다. <아이언맨>의 제작사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만화에는 지구 정도는 손쉽게 날려버릴 수 있는 신적인 존재들도 자주 등장한다. 좀 더 강력한 수트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익스트리미스의 존재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언맨 3>에서 익스트리미스는 토니스타크, 또는 아이언맨의 한계를 절감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그러나, 만화에서 익스트리미스는 토니스타크에게 그 한계를 뛰어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아이언맨 : 익스트리미스>에서 토니스타크는 익스트리미스를 투약 받으면서 수트를 착용하지 않아도 어떤 슈퍼 히어로에 밀리지 않을 엄청난 능력을 갖는다. 익스트리미스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재조합하면서 몸 자체를 수트의 내피로 만들었고, 이로인해 그는 언제 어느 때나 수트를 착용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인간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반사신경과 엄청난 힘,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가도 금새 재생되는 능력을 갖는다. 게다가 그의 가장 큰 무기였던 뇌마저 훨씬 강화된다. 그의 뇌는 마치 컴퓨터처럼 지구상의 모든 네트워크에 접속해 그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그의 정보 처리 역시 슈퍼 컴퓨터처럼 빨라진다. 이 때문에 토니 스타크가 뇌의 정보처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혼란스러워 할 정도다. 익스트리미스는 처음에는 적의 무기로 등장하지만, 결국 토니스타크의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설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아이언맨 3>가 흥미로운 것은 익스트리미스의 설정을 끌어들이면서,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로부터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다는데 있다. 만화에서 익스트리미스는 거의 전적으로 미야 한센이 만들어낸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미야 한센을 지원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반면 <아이언맨 3>에서 익스트리미스는 미야 한센이 풀지 못한 공식을 토니 스타크가 보완하면서 개발에 성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 속에서 익스트리미스는 인간에게 주입했을 때 실패 확률이 매우 높은 약물이다. 오직 토니 스타크만이 익스트리미스를 안정화 시킬 수 있다. 만화 속의 토니 스타크가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하면서 능력을 확대하는데 그친다면, <아이언맨 3>에서 토니스타크는 자신이 익스트리미스를 개발한 셈이다. 앞으로 나올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토니스타크가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해 능력을 업그레이드한다면, 그것은 결국 토니스타크가 자신의 능력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또한 만화 <아이언맨: 헌티드>에서 익스트리미스는 97.5퍼센트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은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2.5퍼센트의 인간들 뿐이고, 그 중 상당수는 지능이 떨어지는 등 정상적인 생활에 문제가 있다. 반대로 토니 스타크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동시에 유전자의 문제를 가졌기에 극단적으로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아이언맨: 헌티드>는 토니 스타크를 비롯한 극소수의 인간만이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할 수 있도록 설정하면서, 사실상 토니 스타크만이 익스트리미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언맨 3>도 토니스타크만이 익스트리미스를 안정화 시킬 수 있는 인물로 설정하면서, 토니 스타크만이 익스트리미스를 부작용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다시 말하면, 만화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토니스타크가 익스트리미스를 활용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우연이 겹친 결과다. 하지만 영화에서 익스트리미스는 토니 스타크가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다.
영화 <아이언맨>과 만화 <아이언맨>은 이 지점에서 갈린다. 만화에서 익스트리미스는 토니 스타크가 다른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나 빌런(악당)에게 뒤지지 않게 해주는 도구의 성격이 강했다. 반면 영화에서 익스트리미스는 토니 스타크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은 물론, 토니 스타크의 뛰어난 두뇌를 증명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결국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이런 미묘한 설정의 변화는 영화 속 토니 스타크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만화에서도 토니 스타크는 다소 오만한 인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만화에서 토니 스타크는 매우 진중하고, 자신을 부각시키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토니 스타크는 스스로를 ‘유명인’이라 말하는 존재다. 기자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 “나는 아이언맨이다.”라고 말하는 인물. 그가 <어벤져스> 이후 불안 증세에 시달린 것도 자신이 우주 안에서 한 없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됐기 때문 아닌가. 그래서, 그의 불안 증세는 단지 수트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해 육체적인 강인함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엄청나게 강한 에고를 가진 캐릭터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돼야 불안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해 엄청난 힘을 갖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자신이 익스트리미스 개발의 열쇠를 쥐고 있어야만, 토니스타크는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만화로서의 <아이언맨>은 1963년에 시작,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그 때의 토니 스타크는 천재적인 두뇌로 막대한 부를 쌓기는 했지만, 오만한 바람둥이의 캐릭터는 가질 수 없었다. 반면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는 토니 스타크에게 만화보다 훨씬 강한 자아를 부여하고, 독설과 유머를 더했다. 영화의 성공에는 오만하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재치와 매력을 가진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언맨 3>는 만화와는 다른 이런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보다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전의 두 편에서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가 영화의 재미를 보강하는 정도의 역할을 했다면, 토니 스타크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아이언맨 3>는 이야기의 핵심을 토니 스타크의 내면으로 옮겨 놓았다. 강한 에고와 자신감을 가진 지구 최고의 유명인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그의 몸을 업그레이드 시킬 기술을 손에 얻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아이언맨 1>과 <아이언맨 2>가 만화의 설정들을 다양하게 가져와 영화화 시킨 작품들이라면, <아이언맨 3>는 영화에만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로 이야기를 꾸며가면서 만화와는 다른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아이언맨 3>에 이르러, 영화 <아이언맨>은 만화와는 또다른 세계를 완성해나간 것이다.
만화에서 토니스타크가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한 것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변 상황에 의한 것이 가장 컸다. 만약 복용하지 않아도 됐다면, 토니 스타크는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면 영화에서 토니 스타크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 남기를 바라는 욕망을 가졌다. 그가 자신의 두뇌로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한 인간을 이긴다 해도 그는 좀처럼 만족할 수 없다. 완벽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적을 이겨야만,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아이언맨 3>는 앞의 두 편의 작품에서 뿌려놓은 캐릭터 설정이 가진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끌어 올리면서 영화로서의 <아이언맨> 시리즈가 계속 뻗어나갈 가능성을 마련했다. 영화에서 토니 스타크는 지구의 평화 이전에 자기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싸우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가 익스트리미스를 받아들인다 해도, 영화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제로 <아이언맨 3>의 후반부는 곳곳에 토니 스타크가 이미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했을 수도 있다는 복선을 깔아두고 있다.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토니 스타크의 심장 주변에 있는 폭탄 파편은 지금까지 치료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아이언맨 3>에서는 한차례 수술을 거쳐 그 파편을 제거한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심장 수술만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만약 토니 스타크가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했다면, 그는 유전자 변형을 통해 얼마든지 심장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토니 스타크는 기술의 진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나레이션을 하기도 한다. 그 기술적 진보는 익스트리미스의 복용일 수도 있다. “수트는 나에요”라는 그의 말 또한 중의적 의미로 여겨진다. 토니 스타크가 두뇌 플레이로 결국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한 킬리언을 이기는 <아이언맨 3>의 스토리상 이 말은 표면적으로 수트를 만들어내는 자신만이 아이언맨의 자격이 있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그러나, 만화에서 토니 스타크는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한 뒤 몸을 변형해 수트의 내피를 안에 장착하게 된다. 정말로 수트가 자신이 된 셈이다. “나는 아이언맨”이라는 선언은 그가 정말로 수트 없이도 아이언맨의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게다가 <아이언맨 3>에서 페퍼는 킬리언에 의해 억지로 익스트리미스를 주입받은 뒤,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녀는 익스트리미스의 효과를 발휘하는 상태에서 수트를 일부 착용해 킬리언을 물리친다. 익스트리미스와 수트의 조합은 어떤 슈퍼 히어로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는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한 후의 토니 스타크가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 암시한 대목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토니 스타크가 속편에서 익스트리미스를 복용한 것으로 확인되면, 그는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영화 안에서 가장 강력한 두뇌에 더해 가장 강력한 육체를 가진 존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아이언맨 3>는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그리고 앞으로 제작할 슈퍼 히어로 영화들의 중대한 분기점이다. <아이언맨 1>, <아이언맨 2>에서 에고가 강한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는 영화적 재미를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아이언맨 3>는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그가 더 강한 육체를 원하는 이유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의 욕망은 수많은 지구인들이 슈퍼 히어로물을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토니 스타크, 또는 DC코믹스의 대표 캐릭터 배트맨의 정체인 브루스 웨인은 평범한 인간의 육체를 가졌다. 대신 그들은 인간 중 가장 뛰어나다 해도 좋을 두뇌를 사용해 슈퍼맨이나 토르같은 초월적 존재마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인간이 맹수에 비해 한없이 연약한 존재이면서도 지구에서 가장 강한 생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두뇌 때문이듯, 배트맨과 아이언맨 같은 캐릭터는 인간의 두뇌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더 강한 육체를 갈망한다. 마블코믹스와 DC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부터가 ‘누가 누가 더 세나’라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않은가. 두뇌와 시스템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이 엄청난 육체적 능력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슈퍼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공통적인 욕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언맨 3>는 바로 이 욕망을 건드린다. 우주 최강의 존재일지는 모르겠지만 우주 최강의 에고를 가진 것은 분명한 그를 통해, 한 없이 강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건드린다. 그것은 <아이언맨 3>를 보는 영화팬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토니 스타크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 것인가. 아이언맨은 헐크나 토르보다도 강해질 수 있을까. 어찌보면 유치하지만, 그만큼 원초적인 욕망. <아이언맨 3>는 그 욕망을 영화에만 존재하는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통해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간다. 끊임없이 세상 유일의 존재가 되려는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통해, <아이언맨 3> 이후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영화들은 ‘누가 누가 더 세나’를 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만화가 만화일 수 있었던 이유를 영화 안에서 보여줄 수 있게 됐다.
페퍼가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한 상태에서 아이언맨의 수트를 일부 착용하고 킬리언을 제압하는 장면은 그 점에서 슈퍼 히어로를 다루는 만화와 영화 양쪽에서 역사적인 순간이라 할만 하다. 익스트리미스를 주입받은 페퍼가 눈에서 쏘아내는 빛의 색깔은 만화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익스트리미스를 주입받은 인간들이 쏟아내는 빛과 색감마저 똑같다. 또한 어떤 설정에 의해 더 강한 능력을 받은 캐릭터가 난공불락이었던 적을 물리치는 것은 슈퍼히어로만화가 선사하는 가장 강력한 쾌감이다. <아이언맨 3>는 이런 만화적 재미를 코믹스에 영화 안에서 그대로 구현했다. 그것은 흔히 ‘만화적 표현’이라 불리는 과장된 연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언맨 3>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페퍼가 킬리언을 물리치는 장면은 <아이언맨 3>에서 뿌려놓은 다양한 설정들이 페퍼의 몸을 통해 하나로 모여 낳은 결과물이다. <아이언맨 3>는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로부터 출발해 영화 특유의 현실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만화적인 상상력이 주는 쾌감을 함께 가진다. 1963년부터 시작한 만화가 초기의 황당한 설정들을 점점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듬어 가면서 진지한 분위기를 끌어냈다면, 영화는 반대로 현실적인 설정으로부터 만화의 판타지적인 설정들을 하나씩 끌어들인다. <아이언맨 3>는 만화와 영화의 크로스오버, 또는 그 경계에서 생겨난 새로운 장르라 할만하다.
단지 <아이언맨 3>뿐만이 아니다. <아이언맨 3>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안에서 익스트리미스라는 극단적일 만큼 만화적인 설정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어벤져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벤져스>는 초반에는 토니 스타크를 중심으로한 유쾌한 농담과 다소 과장된 듯한 캐릭터의 설정이 분위기를 잡았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어벤져스>의 슈퍼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적과 싸우며 지쳐 간다. 또한 뉴욕에서 벌어진 슈퍼히어로와 외계인들의 전쟁으로 인해, 뉴욕 시민들은 슈퍼 히어로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된다. <아이언맨 3>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는 슈퍼 히어로의 활약으로 인해 머쓱해진 정부가 더 강력한 힘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황당한 것 같았던 설정이 영화 속 세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상상 밖 문제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세상. 마블 코믹스의 작품들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작품들에서도 당연해질 일들이다.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그들이 발표하는 영화들을 ‘마블 씨네마틱 유니버스’라 명명했다. 만화의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듯,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들은 제작사의 분류에 따라 각자의 유니버스에 존재한다. 그들은 단지 가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각각의 우주에서 실제 존재하는 인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블엔터테인먼트는 이 세계를 영화에까지 확장했다. <아이언맨 1>에서 “나는 아이언맨”이라고 말한 토니 스타크의 돌발 행동은 슈퍼 히어로들이 참여하는 비밀 조직 쉴드가 움직이도록 만든다. 쉴드의 움직임은 다시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의 캐릭터에 영향을 준다. 각각의 캐릭터가 벌이는 행동이 다른 캐릭터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만들어낸다.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만화를 영화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슈퍼히어로가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유니버스를 만들었다.
영화로서 <아이언맨> 시리즈는 이 유니버스의 시작이자 중추이며 전환점이다. <어벤져스>에 등장한 캐릭터들 중 <아이언맨>만 속편은 물론 3편까지 발표했다. <아이언맨> 첫 편은 엄청난 흥행성적과 함께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차기작이 안정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아이언맨 2>는 토니 스타크의 육체적 문제를 드러내면서 전편에 비해 좀 더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었고, 동시에 <토르>와 <어벤져스>로 가는 길목 역할을 했다. 그리고, <어벤져스>를 지나 발표된 <아이언맨 3>는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영화들이 이제 얼마든지 진지해도 재미를 보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 편의 <아이언맨>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슈퍼히어로물의 만화적인 상상력을 영화의 현실적인 느낌에 결합하는 일은 먼 훗날의 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로서 <아이언맨>의 인기는 다시 만화 <아이언맨>을 바꿔 놓는다. <아이언맨>은 분명히 인기 캐릭터였지만, 영화 발표 전 마블 코믹스 최고의 인기 캐릭터는 스파이더맨이나 헐크였다. 하지만 <아이언맨 1> 개봉 후 아이언맨은 마블 코믹스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의 위치로 격상됐다. 만화 속에서 아이언맨은 마블 코믹스의 최대 이벤트 중 하나였던 <시빌 워>이후 마치 악역같은 느낌마저 줬다. 초인 등록법을 찬성하는 입장에서 이에 반대하는 슈퍼 히어로를 압박하면서 교활한 이미지마저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언맨>의 개봉과 함께 아이언맨의 인기는 급상승했고, 동시에 만화에서도 <시빌워>이후 아이언맨의 말 못할 고뇌를 다룬 작품들이 등장하며 아이언맨의 매력도 다시 살아났다. 특히 아이언맨이 새로운 쉴드의 국장으로서 활약하는 <아이언맨: 디렉터 오브 더 쉴드>와 <아이언맨: 헌티드>는 익스트리미스로 업그레이드된 아이언맨의 놀라운 능력과 뛰어난 두뇌를 활용한 스마트한 활약이 이어지면서 아이언맨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영화 속 인기가 만화에 영향을 주고, 영화와 만화의 캐릭터가 각자의 세계에서 동시에 위대한 슈퍼히어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영화 <아이언맨>과 만화 <아이언맨>은 그렇게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고, 상호 영향을 주며 확장된다.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세계관과 표현방식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아이언맨> 시리즈는 그 세계의 중심에 서있다. 우주 최고의 존재가 꿈일지도 모를 에고이스트, 토니 스타크의 꿈은 이미 실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이언맨이다”라는 토니 스타크의 선언은 마블 엔터테인먼트와 마블 코믹스, 영화와 만화, 그리고 토니 스타크가 지난 50년간 이어온 여정을 모두 정리하는 한마디다. 50년동안 만화를 연재하고, 여러 편의 영화를 찍고, 수트를 만들고, 결국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자신의 몸을 수트처럼 만든 뒤에야, 토니 스타크는 진정 아이언맨이 됐다. 그리고, 아이언맨을 통해 마블엔터테인먼트와 마블코믹스는 그들만의 우주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코믹스와 영화 각자가 독립된 세계를 갖고 있고, 장르와 장르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새로운 장르로 나아가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토니 스타크가 추구하던 “진보”의 개념에 걸맞는 슈퍼 히어로물의 진보일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아이언맨이다”라는 선언은 “나는 코믹스다”, “나는 장르다”, 또는 “나는 우주다”와 같은 의미일런지도 모른다. 한 캐릭터가 우주의 중심에 섰다. 이보다 더 슈퍼히어로다운 일이 어디있겠는가. 토니 스타크는 드디어 자신의 꿈을 이뤘다. “나는 아이언맨이다”라는 선언이 곧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누구도 더 유명할 수 없는 유명인이자 최고의 슈퍼히어로가 되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