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영화로 옮겨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음을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1986년에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만들어진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국만화가 영화로 제작된 사례는 수십 편에 이른다. 하지만,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비록 당신이 열혈 한국 만화독자라고 하더라도 열 손가락을 채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곧 실사로 옮겨진 캐릭터와 스토리를 접할 때면 번번이 느껴온 실망감이 누적되어온 결과이리라.
그리하여 해마다 만화원작 영화 제작 소식이 들려올 때면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어렴풋이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자리 잡는 듯하다. ‘제발 원작의 아우라를 헤치지나 말았으면!’하는 희망사항 말이다. 특히, 싱크로율에 민감한 최근의 독자 혹은 관객들의 눈높이에 완벽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흡족함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만화 속 캐릭터와 사건들이 얼마만큼 영화로 잘 전이되느냐에 따라 승패의 갈림길에 놓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론이 다소 길었다. 하지만 이것은 동명의 만화를 영화로 옮긴 <은밀하게 위대하게>(이하 <은위>)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한 단초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은위>가 원작만화를 얼마나 ‘은밀하게’ 스크린 속으로 가져왔는지 알아보려 한다. 물론, 원작의 아우라가 부디 ‘위대하게’ 반영되었으면 하는 만화독자들의 희망도 함께 실어서!
원작 <은밀하게 위대하게>: 개그가 살아있네!
<은위>가 그려내는 주인공의 핵심은 그의 신분이 바로 ‘간첩’이라는데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간첩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사 작품은 <은위>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가령, 영화만 하더라도 <베를린>(2013, 류승완 감독), <의형제>(2010, 장훈 감독), <쉬리>(1998, 강제규 감독) 등 기억에 남는 굵직한 작품이 여러 편이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또 그만큼 민감한 소재인 것도 사실이다. 특히, 개성공단 폐쇄, 북핵문제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헌데, <은위>에서는 이처럼 민감하고 긴장된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기발하다. 바로 주인공의 ‘망가짐’에 있다. 작품은 “나는 들개로 태어났다. 우리에겐 혁명전사, 그들에겐 간첩”이라는 주인공 원류환의 묵직함이 느껴지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독자들은 당연히 긴장되고 심각한 전개를 예상하게 된다. 요인암살? 무장폭동? 그도 아니면 9.11테러에 버금가는 그 무엇? 특히, 주인공은 9년 동안 훈련받으며 20000:1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최후 5인 초엘리트 대원,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살인병기가 아닌가. 그야말로 뭔 일이 일어나도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이다. 헌데, 그 후 벌어지는 전개는 독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다. 주인공이 담당해야 할 몫은 ‘본 시리즈’의 제이슨과 같은 무적 스파이가 아니라. 바보 연기의 대명사 ‘영구’가 빙의한 동네 바보 역할이다. 콧물자국이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져도 마냥 웃을 수 있는 슬랩스틱 캐릭터! 이러한 특징을 스파이 캐릭터에 부여했다. 어쩌면 이건, 할리우드에서도 상상 못할 일이 아닌가.
심각하고 진중해야 할 스파이 캐릭터의 전형을 깨뜨림으로써, ‘한국형 블록버스터 개그웹툰’의 진면목을 보여주게 된다면 다소 과장일까. 만일, 블록버스터의 의미가 “내가 제일 잘 나가!”식의 히어로 캐릭터만 즐비하고 막대한 자본력으로 화면 가득 폭파장면만 담아내는 미국식 규모의 논리가 아니라, 기존 드라마가 범접하지 못했던 상상력의 논리로 얘기될 수 있다면, <은위>는 기꺼이 블록버스터의 타이틀을 가져올 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들의 댓글과 조회 수가 증명해 보일지니 바로 여기에 한국 웹툰의 저력이 숨어있다. 미국의 히어로물이나 유럽의 베데(Bande Dessinee)에서는 보기 힘든 ‘느낌 돋는 창의력’, 곧 독창적인 웃음이 독자들로 하여금 클릭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스파이’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림으로써 캐릭터의 전형을 파괴하는데 이어, 작품은 주인공이 보여주어야 할 ‘사건’에 있어서도 독자들의 예상을 산산조각 낸다. 일단, 주인공이 바보 역할을 하는 것은 남한에 침투한 후 적진을 교란시키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비밀리에 수행해야 할 ‘제대로’ 된 임무만 있다면 20000:1의 경쟁률을 뚫고 남파된 초엘리트 간첩으로서의 정체성은 지켜질 것이기 때문이다. 헌데, 작품은 요인암살이나 주요거점 테러 등과 같은 임무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은 ‘1일 3회 이상 1인 이상이 목격하는 상황에서 실감나게 넘어질 것’을 수행하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릴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작품은 주인공에게 간첩의 정체성을 증명할 만한 사건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바보 캐릭터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부여하게 된다. 즉, ‘달동네에 살고 있는 바보 동구’ 역할에 더욱 충실히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파지령을 받고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서울로 침투한 원류환은 2년 후 온 동네가 인정하는 바보로 연착륙한다. 즉,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보여주는, 인간으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액션 대신 동네 아이들이 날린 짱돌을 맞고 날렵하게 구르는 디테일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슈퍼 아주머니와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국그릇에는 언제나 고기 한, 두점을 더 담는 스파이적 치밀함은 여전히 살아있다.
만화 <은위>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주인공들의 동선이 그려지는 활동영역, 즉 배경에 있다. 작품의 핵심적인 배경은 영화 <쉬리>처럼 서울의 주요공간들이 역동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며, 영화 <베를린>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이국의 땅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달동네가 주요배경이다. 즉, 이곳은 세상이 뒤집어질만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스펙터클한 공간이 아니며, 희대의 스파이가 비밀첩보임무를 수행할만한 획기적인 공간도 아니다. 이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대의 이벤트는 고작해야 여자팬티를 훔치는 변태가 출몰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정도랄까.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평범한 소시민적 공간이 달동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설정이야말로 ‘바보 동구’ 캐릭터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이웃이 죽어나가도 모르는 몰인정한 아파트 숲 속에서는 ‘동네’ 바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란 한판도 배달을 부를 수 있는 끈적함이 살아있어야 뒤따라 남파된 리해랑과 리해진 역시 옹기종기 모여 함께 이불빨래를 하거나 멸치 머리나 딸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원작이 살아있네!
만화 <은위>는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남파된 후 바보 설정으로 달동네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 원류환의 모습과 함께 리해랑, 리해진 등 핵심인물들의 등장을 보여주는 것이 1부라면, 2부는 북한 수뇌부의 모습이 드러나며 남파된 ‘연어’들에게 전원 자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면서 갈등구조가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3부는 자결을 거부한 연어들을 직접 처단하기 위해 특수부대 총교관 김태원이 남한으로 내려와 원류환 등과 대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흐름은 동일하지만, 원작이 3부로 구성되었던 것과는 달리 영화는 전체 구성에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가 원류환 등 주요 인물들의 남한살이를 보여준 것이라면 북한으로부터 자결명령이 내려오고 그에 대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 후반부라 하겠다. 무엇보다 영화는 원작이 지닌 스토리의 흐름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다. 동시에 영화에서 불필요한 장면들은 잘라내고, 원작이 보여주지 못한 액션의 호흡에 치중함으로써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원작이 보여준 3부의 흐름이 영화에서는 전후반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눠진 것처럼, 영화를 이끌어가는 장르적 속성 역시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즉, 전반부는 코믹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고, 후반부는 액션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전반부의 경우 원작과 마찬가지로 동구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남파간첩이지만, 신분을 숨기기 위해 동네 사람들에게 연일 바보짓을 보여주며, 당으로부터 명령이 오기를 기다리는 원류환의 모습이 스크린에 살아난다. 그리고 그 바보짓 하나하나는 모두 원작 웹툰이 보여준 모습 그대로다. 주인공 역의 김수현은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골목길에서 변을 보는 장면까지 만화의 그것과 동일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영화를 보던 여성 관객들 대부분은 안타까운 비명을 보내게 되지만, 남성 관객들의 경우 이미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연하는 모습에 박장대소한다. 혹, 누군가는 ‘별로 관심에도 없지만,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그냥 좀 잘 생긴 남자배우’로 알고 있던 주연 배우에 대해 ‘연기 쫌 하는데~!’라는 인식의 변화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웹툰 속 주인공 동구와 김수현 식 동구의 싱크로률은 완벽에 가깝다.
기타리스트로서 위장하여 오디션에 합격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리해랑’과 고등학생으로 위장한 감시자 ‘리해진’의 모습 역시 웹툰 속 캐릭터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들이 움직이는 동선은 원작을 콘티 삼은 것처럼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에 재현되며, 그들이 나누는 대사는 웹툰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생각해보니, 한국영화에서 만화를 이렇게 충실히 가져온 사례가 지금껏 있었던가 싶다. 이 배우들, 왠지 갖고 싶다!
바뀐 것은?
영화의 전반부가 코믹함을 무기로 삼아 원작을 충실하게 살렸다면, 후반부는 액션 그 자체다. 급변하던 정세 속에 남파된 연어들은 모두 자결하라는 지령이 내려온다. 그리고 20000:1의 경쟁을 뚫은 엘리트 전사는 북녘 땅에 두고 온 어머니의 안위만 보장된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명령을 수행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약속을 담보하지 않는 명령은 수행할 수 없으며, 이 지점에서 주인공에게 갈등이 부여된다. 그리고 그 갈등은 바보 동구로부터 핸섬하고 샤프한, 인기절정 꽃미남 배우의 카리스마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물론, 이와 같은 후반부의 액션 위주 스토리 역시 원작이 가진 흐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카메라의 연출이 담아낸 배우들의 합은 2차원 평면에 갇혀 있던 캐릭터들의 움직임에 ‘살아있네~!’를 가미시켜 더한 매력을 뿜어낸다. 웹툰에서 영화로, 장르의 변화가 불러온 매력이 한껏 발산되는 순간이다. 원작의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배우들의 이미지와 영화의 존립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 만화원작 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한편, 원작을 보고 영화를 마주한 이들은 아마도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갔네~!’라고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동구가 좋아하는 아가씨 윤유란의 회사근무 장면이나 말썽장이 유준이 다른 학생들과 다투는 장면 등은 웹툰에서 해당 인물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빠진다고 한들 이야기 전체 흐름에서는 큰 지장을 주지 않은, 말하자면 대세에는 영향이 없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과감히 가지를 친다. 말썽장이 유준의 캐릭터는 동구에 대한 태도나 새롭게 남파된 간첩 리해진을 똘마니로 데리고 다니는 장면으로 충분하며, 윤유란의 회사생활은 퇴근길까지 쫓아와 치근거리는 상사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대체된다. 두 시간 안에 주연 캐릭터의 설정과 핵심 사건만을 보여주어야 하는, 압축적인 기승전결이 필요한 영화로서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서수혁의 캐릭터를 대폭 수정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원작에서는 자신의 아버지가 김태원에게 살해당하는 사연을 지니고 있는 이중 스파이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개인사가 드러나지 않는 남한정보기관 요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 말미에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보다 집중하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잡는데 주력할 수 있게 한다.
반면, 비슷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다. 일테면, 리해랑의 오디션 불합격 장면을 웹툰에서는 오디션 받으러 가는 모습으로부터 바로 탈락한 것으로 연출되었던 반면, 영화의 경우 실제 오디션 장소가 나타나고 별 볼일 없는 실력으로 ‘피스~!’를 외치는 리해랑의 모습을 추가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또한, 웹툰에서는 경찰로 등장했던 두식이 영화에서는 경찰지망생으로 등장한다. 덕분에 일개 건달이 현직 경찰을 두들겨 패는 설정으로부터 일반인에 대한 해꼬지로 변모하면서 리얼리티를 높이고 있다. 원작의 아우라는 계승하면서 영화적 완성도는 높이는 것.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비정하게 부드럽게!
작품이 보여주는 긴장감의 원천은 주인공의 신분이 간첩이라는 사실에 기인하지만, 사실 주요 갈등에 있어서는 기존 간첩이 등장하는 작품들과는 궤적을 달리한다. 즉, 남-북 갈등이 주를 이루었던 지금까지의 이야기들과는 달리, <은위>는 북-북 갈등이 핵심 테마로 등장한다. 국제 정세가 변화하면서 그 사용가치가 없어진 남파간첩들에 대해 북한의 권력층은 자결을 명령하고, 투철하게 훈련받는 대부분의 간첩들은 자결을 받아들이지만 정작 최고엘리트 대원인 주인공은 명령에 불복함으로써 작품의 긴장감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감시자인 해진은 자결하지 않은 류환과 해랑을 처단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해진 역시 그 역할을 거부한다. 들개로 길러져서 ‘서로를 물어뜯지 않고선 이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뿐 이들에게는 서로를 죽일 만큼 악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새로운 대척점으로 김태원이 등장함으로써 북-북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자신이 기른 연어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해야 하는 상황은 비정함의 끝을 보여준다. 김태원 일당과 대치했던 주인공들이 건물 아래로 추락하면서 작품은 일단락된다. 모든 소란스러움은 잦아들고, 이어 동구를 기억하는 슈퍼 아주머니의 모습이 하얀 눈이 쌓인 골목길 위에 등장한다. 그리고 동구와 함께 찍은, 담벼락에 붙은 사진을 보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 역시 영화는 웹툰의 그것을 충실히 재현했다. 이때쯤 우리는 웃음과 액션 속에 숨어있던 또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로 ‘감동’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 작품-웹툰이든, 영화든-이 줄곧 간직하고 있던 주제와도 닿아있다.
주인공이 북한의 특수부대에서 혁명전사로 키워지며 남파되어 활동할 수 있는 바탕에는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 충성심은 자신은 죽을지언정 자신의 어머니는 조국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핏줄로 이어지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보호해줄 더 큰 어머니로서 조국은 온전히 주인공의 행동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즉, 살인병기로 키워지며 조국에 대한 끝없는 충성이 뇌 속에 각인될수록 자식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사모곡도 동반되었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없이 자결하라는 상부의 명령에도 어머니의 안위만 확보된다면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는 의지가 함께한다. 혁명전사와 사모곡,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가지 특징은 원류환이라는 주인공 캐릭터에 있어 다양성을 확보시켜 준다. 즉,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요컨대 조국이 어머니의 안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에게 남아있던 혁명전사로서의 신념은 더 이상 실효성을 지니지 못한다. 그만큼 주인공에게 있어 ‘어머니’는 그 어떤 가치보다 선행되는 존재였으며, 주인공이 보여줄 내적 갈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편, 남파된 지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자신을 보살펴주는 슈퍼 아주머니에게로 전이된다. 동구를 자신의 둘째 아들이라고 여기며 함께 살고 있는 그녀, 그리고 동생으로 여기고 있는 두식의 모습으로부터 주인공이 북녘 땅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한 ‘가족’의 따뜻함이 그려진다. 아주머니와 두식의 따뜻함에 대응하듯, 가게에 들이닥쳐 물건을 부순 건달을 혼쭐내는 것 역시 가족의 울타리에서 진행되는 셈이다. 북한에 있는 어머니의 안위가 산산조각 나며 주인공이 삶의 끈을 놓아버린 종반부에 등장하는 월급통장은 가족의 유대감을 재확인 시켜주며, ‘아들장가밑천’이라는 문구를 통해 관객들의 가슴 속에는 뭔가 울컥하는 것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담벼락 사진 밑에 숨겨진 ‘엄마 아프지 마요’라는 글 속에서 마침내 감동이라는 단어가 구체화 될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당신이 비록 상남자일지라도, 흐느끼거나 훌쩍거려도 창피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동구가 동네 곳곳을 누비며 모든 사람들과 마주친다는 설정으로부터 작품의 주요한 배경이 되는 달동네 전체를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묶이게 만들기도 한다. 꼬마 하나가 한밤중에 갑자기 사라지자 동네 사람 모두가 뛰어나와 찾아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부터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겹쳐진다.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키워드가 가족이라는 단어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동시에 북녘 땅의 어머니가 당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다시금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만드는 불씨가 된다.
에필로그
<은위>는 사실 만화의 기본적인 특징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즉, 간첩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무너뜨림으로써 만화 본연의 특징, 요컨대 풍자를 통한 희화화 연출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작품이 지닌 핵심적인 사건은 바로 ‘남파된 간첩의 일상’에 있다. 헌데, 남북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간첩이라는 테마는 어떤 장르에서건 매우 민감한 소재임에 반론의 여지가 없으며, 과거 반공 포스터에 출현한 간첩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까, 작품의 제목처럼 ‘은밀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는 소재다. 그러나 작품은 이러한 은밀한 소재를 ‘바보’라는 간첩과는 전혀 상반된 컨셉을 통해 더 이상 망가뜨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림으로서 오히려 ‘위대한’ 이야기를 뽑아내기에 이른다. 심각함을 유쾌함으로 반전시키는 역발상이며, 만화가 지닌 ‘전통’, 곧 풍자에 충실한 연출이다.
반전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기절정의 남자배우가 과연 바보 연기를 얼마나 잘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 자체가 지닌 샤프한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실사가 보여줄 수 있는 바보 동구의 모습을 리얼하게 연기했다. 그로 인해 만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어서 웹툰을 보지 않은 채 영화를 봤던 이들은, 도리어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원작과 영화가 윈윈 할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일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원류환의 원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웹툰을 보는 것일 수 있다. 혹은 영화의 이야기가 만화의 그것과 같은지 혹은 다르면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서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만화를 몰랐던 이들이 영화를 보고, 다시 만화를 보게 된다면 그것만큼 추천할만한 선순환 구조가 또 어디 있을까. 2013년 여름, <은위>가 만화계 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전반에서 주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