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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된 웹툰 <절벽귀>, 영화적 한수가 절실하다.

2006년, 강풀 원작의 <아파트>와 B급 달궁의 <다세포 소녀>가 영화화 되어 극장에 걸렸다. 결과는 둘 다 흥행참패. 독자들은 ‘만화에 나온 장면 그대로만 찍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만들었나’라며 실망을 금치 못했고 영화관계자들은 ‘그대로 찍는다고 영화가 나오는 건 당연히 아니며, 소설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영화로 옮기는 것보다 웹툰이라는 낯선 장르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고 항변했다.

2013-06-25 임지희
2006년, 강풀 원작의 <아파트>와 B급 달궁의 <다세포 소녀>가 영화화 되어 극장에 걸렸다. 결과는 둘 다 흥행참패. 독자들은 ‘만화에 나온 장면 그대로만 찍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만들었나’라며 실망을 금치 못했고 영화관계자들은 ‘그대로 찍는다고 영화가 나오는 건 당연히 아니며, 소설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영화로 옮기는 것보다 웹툰이라는 낯선 장르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고 항변했다. 비록 시작부터 쓴맛을 봐야했지만, 이때부터 영화계는 꾸준하게 웹툰의 판권을 사들여 영화를 만들었다. 웹툰이라는 만화연재의 새로운 방식이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닌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웹툰으로 데뷔한 작가들의 성장과 종이매체 연재를 고수하던 기성작가들의 유입, 웹툰 고유의 연출과 화법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새로운 작가들의 데뷔가 활발해졌고 더욱 더 다양한 이야기와 상상력이 넘실댔다. 서사와 장르가 뚜렷한 웹툰들이 많아지고 더 많은 독자들이 몰리면서 이전보다 ‘(영화로) 해볼 만한’ 작품들의 라인업을 짜기가 쉬워진 것이다. 하지만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는 일은 의외로 나타나지 않았다.
 
2010년, 드디어 ‘웹툰 원작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속설을 깬 작품이 등장한다. 윤태호의 <이끼>가 그것이다. 완성도에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35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이끼>를 위해 극장을 찾았고 그해 있었던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단순히 ‘가능성을 봤다’를 넘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지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웹툰의 판권을 구입하여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일은 점점 늘어났다.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작가가 인물을 만들고, 설정을 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일.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아이디어와 시놉시스를 만들어내는 기획 과정에서도 수많은 시도와 창작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웹툰에서는 이미 수많은 작가, 만화가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어느 정도 대중에게 검증도 된 상태다.
 
해외에서는 주로 대중소설이 원천 스토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대중소설이 대단히 취약하다. 개인이 기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무수한 이야기들이 외국에서는 대중소설로 세상에 선을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웹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소설이 주로 판타지와 무협, 로맨스 등 특정 장르에서만 팬덤을 만든 것도 한 가지 이유다. 한국에서 개성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 일상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매체는 바로 웹툰이다. 영화와 드라마 업계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찾고 있고, 이미 존재하는 인물과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이 더욱 수월하고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웹툰이 이야기의 원천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대성공이 더욱 더 웹툰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등 이미 여섯 편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강풀은 바로 이전 연재작인 <조명가게> 역시 영화 판권계약을 마친 상태다. 2012년과 2013년 최고의 화제를 모은 만화인 윤태호의 <미생>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이전에 각 등장인물의 에피소드를 담은 모바일 티저영상을 제작, 공개했다. 작가 HUN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해외 블록버스터들이 속속 개봉하는 와중에도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2013년 6월 현재, 올해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13편이며 판권계약을 마치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거나 이미 크랭크인 한 작품은 10여 편을 상회한다. 웹툰원작영화, 라는 신종 장르가 생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느 때보다 웹툰의 영화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절벽귀>와 조난괴담 ‘절벽’, 웹툰과 영화 사이
 
웹툰 영화가 화제가 되는 와중에 조용히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는 작품이 있다. 옴니버스 호러영화 <무서운 이야기>(2012)의 두 번째 편인 <무서운 이야기 2>. 네이버에 연재된 오성대 작가의 9화로 맺음한 짧은 만화 <절벽귀>가 첫 번째 이야기로 나온다. 조난괴담 ‘절벽’이라는 이름의 단편은 원작을 그대로 옮겨왔다. 두 친구가 함께 산에 갔다가 실수로 절벽에서 떨어져 조난을 당하고, 생존본능과 이기심 때문에 벌어진 사소한 사건 하나가 계기가 되어 그만 실수로 친구를 죽이고 만다. 살아남은 한 명은 무려 일주일을 버틴 끝에 가까스로 구조되지만 죄책감과 자괴감과 두려움 등이 뒤범벅되어 정신적 불안증세가 계속되고, 급기야 죽은 친구의 환각과 환청마저 들리는 상황에 이른다. 그 때 죽은 친구의 동생이 그의 앞에 나타나고, 형의 죽은 곳에 가서 유골을 뿌리고 싶다는 동생과 함께 친구를 애도하기 위한 또 한 번의 산행이 시작된다는 게 대략의 줄거리다. 원작을 본 독자라면 영화를 볼 때 해당 장면들이 눈에 선할 정도로 대부분의 장면들이 웹툰과 흡사하게 만들어졌다. 다만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에게 약간의 배경설정을 추가했다. 친구의 죽음이 실수가 아닌 고의성이 담겼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이 심플하면서도 섬뜩한 원작을 이식한 영화는, 함량미달이었다. 좋은 콘텐츠는 그대로 다른 장르에 이식해도 여전히 좋은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과했던 걸까. 우선 리얼리티를 따져보자. 제아무리 겨울이라 수분손실이 적다고 한들 일주일씩이나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생존할 수 있을까?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보통 4~5일이며, 길게 잡아야 일주일 정도인 것으로 본다. 체중의 6-70퍼센트를 수분이 차지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오줌 1.5리터와 땀과 호흡 등으로 0.5리터 정도를 배출하는데 그만큼의 수분을 섭취해서 보충하지 않으면 곧 탈수증상이 시작된다. 일주일을 물 없이 버텨내려면 외부의 빛과 완전히 차단되고, 체온과 외부온도의 차이가 크지 않아야 하며 습도가 높은 장소에서 조난을 당해야만 가능하다.
 
추운 날씨와 거센 바람, 몸을 가릴 곳도 없이 외부에 완전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위치라니. 게다가 벌써 며칠 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상태에서, 과연 초코바가 넘어갈까? 글쎄, 탈수로 바싹 마른 목구멍으로 초코바를 씹어 삼킨다면 통증에 눈물이 절로 흐를 것 같긴 하다. 생존자가 구조되는 시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한밤중에 헬기를 띄워 쏘는 조명 하나에 의지해 수색작업을 벌인다. 밤. 헬기. 생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라 의뢰를 받은 즉시 밤낮을 떠나 헬기를 띄울 수는 있다. 하지만 구해달라고 소리 지르고 어필할 기운도 정신상태도 못되는 생존자 하나를 달랑 조명 하나로 찾아낼 수 있을까.
 
만화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의상이나 대사 등 디테일 역시 다소 아쉽다. 추운계절 산을 올라 2주간 산장에 머무를 것이라 했던 이들의 옷차림이 수상하다. 산행을 하는데 스트리트 패션지에 나올법한 ‘야상’을 걸치고 등산배낭이라기 보다 차라리 책가방이라 해야 할 만큼 그리 넉넉하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백팩을 매고 있다. 제아무리 구두에 셔츠 차림으로 지리산을 종주하고 슬리퍼를 신고 월출산 돌길을 일상적으로 오르내리는 생활 산악인이라 해도 겨울 산행, 그것도 장기간의 산행을 계획했다면 옷차림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요즘은 등산에 관심 없는 젊은이들도 일상적으로 아웃도어 패션을 선호한다. 활동이 자유로운 반바지에 두꺼운 레깅스차림, 단단한 등산화나 트레킹화 그대로 히말라야 등정이 가능할 두껍지만 가볍고 비싼 패딩점퍼차림은 북한산 등산로만큼 홍대나 강남 등 젊은이들이 밀집한 곳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적당한 복장을 찾아 입히는 건 영화를 완성하는 것에 비하면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영화가 안고 있는 이런 문제들은 원작에서도 감지된다. 리얼리티와 디테일은 작품의 완성도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꼽는 덕목이다. 그러나 한 편을 보는데 고작 몇 분이 걸리고, 이마저도 독자가 원한다면 더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버리는 것이 가능한 웹툰과 누구나 같은 속도로 감상해야하는 영화는 엄연히 허용의 한계가 다르다. 강풀의 만화를 보면서 작화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독자는 없다. 윤태호의 만화를 보면서 히로인의 미모가 묘사보다 모자라다고 비판하는 독자 또한, 없다. 강풀의 만화에서는 얼핏 평범한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연출의 힘에 감탄하고 윤태호의 만화를 보면서 심도 깊은 취재를 바탕으로 쌓아올린 리얼리티의 힘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영화에서는 리얼리티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영상은,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익숙한 풍경이 그럴듯하게 나타나야 한다. 어느 정도의 과장이나 왜곡, 생략 등이 허용되는 만화의 장르적 특성이 영화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적인 영화에서 드러나는 미숙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은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연극보다도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도저히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들이 보여질 때, 상영 도중 나가버리지 않는 이상 그 어색함과 작위적인 장면을 외면하는 건 불가능하다. 관객에게 그건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절벽’ 이야기
 
‘좋은 콘텐츠는 그대로 다른 장르에 이식해도 여전히 좋은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과했다’는 말을 앞에서 했다. 원작을 좋아해서 영화로 각색된 작품을 일부러 극장까지 찾은 관객들이 영화에 실망하며 늘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원작을 콘티 삼아 그대로 찍어도 이거 보다 낫겠다’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면 곤란하다. 만화의 경우 컷과 컷 사이의 공백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메우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독백이나 해설 등 텍스트의 삽입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 상황의 설명을 영화적 연출 없이 독백으로 메울 수는 없다. ‘절벽’이 공포영화라는 것에 주목하자. 공포영화는 테크닉이 중요한 장르다. 만화에서 느끼는 공포의 포인트와 영화에서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편집의 리듬감을 달리 하거나 소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거나 혹은 만화에서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닌, 배우의 연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잘 섞여야 비로소 관객에게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만화에서 생략이 가능한 사건 발생의 ‘이유’를,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어내기 위해 곳곳에 보이는 빈틈을 메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당위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두 친구는 절친한 사이인 것 같지만 주인공이 프리 트레이더(증권투자로 돈을 버는 직업)로, 친구의 돈을 가져와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고 그 돈을 가로채기 위해 친구를 ‘의도치 않았지만’ 죽였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보여준다. 원작만화는 오로지 절벽에 떨어진 이후의 이야기만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지만, 기왕에 뭔가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을 만들어냈다면 적절하게 이용을 해야 한다. 설정의 빈 공간만을 채우고 끝낼 것이 아니라 설정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완벽히 고립된 환경에서 의지할 것은 서로의 우정이 아니라 주머니에 든 초코바 하나뿐이다. 둘도 없는 친구는 고작 초코바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화를 내고 싸우고 거짓 연기를 하다가 결국 한 명의 죽음에 이른다.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구조 후에 내가 벌어들인 돈을 전부 차지해야 하는데”란 생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절벽 아래로 떨어져버린 초코바를 구하기 위해 내려간 친구를 고의로 놓아버리거나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놈의 초코바를 먹기 위한 다툼을 더 비열하고 파괴적으로 그려 관객 역시 다른 이유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그 초코바의 행방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유도하는 건 어땠을까. ‘절벽’에서 두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절박하지 않아 보인다. 혹은 작위적으로 보이거나. ‘절벽’은 각색의 실패사례다. 인기 웹툰이 원작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 속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비판의 강도만큼 더해가는 흥행열풍 <은밀하게 위대하게>
 
웹툰 원작 영화를 보며 ‘각색’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와중에 최근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작품이 있다.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연재된 HUN의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그 주인공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개봉 2주차인 6월 20일 현재 550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북한의 남파특수공작 5446 부대 최고의 엘리트 요원인 원류환, 공화국 최고위층 간부의 아들이자 원류환 못지않은 실력자인 리해랑, 최연소 남파간첩 리해진 세 사람은 조국통일이라는 원대한 사명을 안고 남파한다. 무사히 남한으로 내려와 달동네에 정착한 그들의 첫 번째 임무는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완벽하게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달동네 바보와 가수지망생 그리고 고등학생을 각각 연기하며 조국통일에 일조할 위대한 임무를 기다린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신체능력과 비상한 두뇌를 가진 원류환은 동네 모자란 형 행세를 하며 슈퍼마켓 집 위층에 세 들어 산다. 가게 앞을 쓸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등의 잡일을 하며 그와 시차를 두고 남파한 리해랑 그리고 리해진과 접촉하며 북쪽의 상황파악과 전달되지 않는 명령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만큼 뜻밖이고 비장한 임무가 전달되고, 이제 그들은 목숨을 건 사투에 뛰어들게 된다는 게 작품의 줄거리다.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연재 당시에도 신선한 설정과 비장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캐릭터들의 유머, 그들이 달동네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들이 한데 어우러져 큰 인기를 얻었다.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져 바보로 스며들다’는 영화의 카피처럼 인간병기로 길러진 살벌한 남파간첩들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 세상에 스며들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생기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독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이미 인기가 검증된 이 웹툰의 영화화 소식이 알려졌을 때 독자들은 이전의 웹툰들이 영화화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원작만큼만 재미있기를’ 바랐다. 김수현, 이현우 등의 청춘스타가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연기파 배우인 손현주가 합류하며 기대는 점점 높아졌고, 개봉 직후 과도한 스크린 점유에 대한 말들이 많았지만 해외 블록버스터들이 속속 개봉해 점유 스크린 수가 현저히 줄어든 지금도 착착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원작을 넘어서는 영화’를 만들기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인기와 작품성이 검증된 원작을 어떻게 해석해서 만들든 원작을 소비한 관객이라면 만족감보다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은 이런데 왜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을 안 넣었나”, “비중은 적어도 원작에서 이 역할은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왜 통편집 당했나” 같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제작되는 영화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리라. 검증된 원작을 가져와 영화로 만들면 원작의 유명세와 인지도까지 함께 얻으며 마케팅과 관객동원에 도움이 된다는 이점이 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요소들 때문에 영화 제작에 있어 운신의 폭이 줄어들기도 한다. 물론 감독의 역량에 따라 그 폭은 더욱 광활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완성도에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뛰어난 원작에 기대어 별다른 수정 없이 마치 만화의 한 컷 한 컷을 나열할 뿐인 영화다, 꽃미남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팬심에 호소하는 영화다, 만화에서는 허용되는 설정과 연출의 빈 공간을 채워 넣지 않은 나이브한 영화다, 등등. 영화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 SBS TV <접속 무비월드>에 출연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대해 “우리까지 이 이상한 열풍에 낄 필요는 없다” “스토리의 메인 줄기와 세부적인 디테일이 조응하지 않으며 흐름이 끊긴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돌직구’나, 혹독한 비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흥행일로를 달리고 있다. 왜?
 
 
완성도 순대로 흥행 순위가 결정되면 얼마나 좋을까
 
다들 알다시피 영화의 예술성이나 만듦새, 완성도와 흥행은 비례하지 않는다. 다소간의 미진함을 상쇄시킬 만큼 다른 요소가 매력적이면, 혹은 대부분 별로라 해도 단 한 가지 관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면 충분히 흥행이 가능하다. 어마어마한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 한 사람의 힘이나,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집단에 확실히 어필하는 코드가 될 수도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해당 웹툰을 좋아하는 집단에 어필하는 동시에, 잘생긴 청춘스타들을 대거 출연시켜 그들의 팬 층에 어필하는 데도 성공했다. 거기에 하나 더. 극중에서 미모의 세 남자 배우의 끈끈한 유대, 그들 간의 로맨스(?)를 상상하게 만드는 BL(Boys Love)코드를 적절히 활용해 배우 개인의 팬 뿐 아니라 팬픽(보통 남자 아이돌그룹 멤버들끼리 커플을 커플을 만들어 전개하는 팬들이 쓰는 소설)을 즐겨보는 1020 여성들, 팬픽을 소비하는 계층과 교집합을 가졌지만 결이 다른 BL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는 데에 성공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꽃미남들의 ‘므흣’하고 ‘흐뭇’한 비주얼, 그리고 미남들의 처절한 싸움에 열광했다. 재관람 열풍도 불고 있을 정도다. 그들에게 있어 원류환이 왜 굳이 동네 바보 형 행세를 해야 했는지, 길에서 볼일(?)을 봐야만 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영화에 나오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팔로 물구나무서기 한 상태에서 푸쉬업을 할 때 드러나는 복근의 섹시함이나, 클라이맥스에서 그들의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이입을 할 뿐이다. 그게 나쁜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건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다.
 
‘절벽’ 으로 돌아가 보자. <절벽귀>를 본 독자들이 영화 ‘절벽’에서 원하는 게 무엇일까. 포털사이트에서 ‘절벽귀’를 검색해보자. 절벽귀의 절벽 까지만 검색해도 따라 붙는 자동검색어 중 상위에 있는 것이 ‘절벽귀 깜놀’이다. 정확한 예는 아니나 해당 작품이 어떤 식의 입소문이 났으며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관검색어는 한 명이 검색해본다고 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이는 독자들이 ‘절벽’에 기대하는 바 이기도 하다. 무서운 이야기는, 무서워야 한다. 관객을 불시에 깜짝 놀라게 해야 한다. 뒷목이 서늘하게 만들어야 한다. 공포영화는 응당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관객이 실소를 터뜨린다면 <무서운 영화>가 아닌 이상 그건 실패한 공포영화다.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구신은, 만화에서는 단 한 컷만으로도 공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영화는 다르다. 귀신이 나오기 전에 인물의 동선과 리듬으로 상황을 조성하고, 분위기를 끌어내야 한다. 만화의 연출 리듬과 영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영화에서는 ‘깜놀’이 존재하지 않는다.
 
<절벽귀>는 소재가 탁월하고 치밀하게 구성해 종국에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복선이 있으며,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대목까지 고루 갖췄다. 걸작이라고 말할 만큼은 아닐지라도 분명 잘 만든 짧은 이야기다. ‘절벽’은 각색을 하는 과정에서 고민 없이 원작의 결을 그대로 답습하며 공포‘영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공포’를 잊어버렸다. 그건 웹툰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원작의 각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설사 원작에 허점이 많다 해도 각색하는 과정에서 치밀하게 보완하고 새로운 요소를 투입하여 영화만의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 그게 각색의 기본이다. 원작을 그대로 만든다며 부족한 점까지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태만이고 능력부족이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 3부작은 첫 편인 ‘저승편’이 연내 개봉을 목표로 한창 촬영 중이며 정연식의 <더 파이브>는 이미 제작을 마치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일권의 <목욕의 신> 장이 <미확인 거주물체> 황미나 <보톡스> 서나래 <낢이 사는 이야기> 등 판권이 팔리고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만나길 기다리는 작품들이 줄을 서있다. 지금까지 나온 웹툰 원작 영화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작품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있지만 웹툰이 가진 장점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영화적 재미를 살린,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바라건대 원작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영화적으로 뛰어난,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뛰어난 영화가 나오기를 바란다. 위에 언급한 저 작품들 중 하나가 그런 영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두가 무릎을 탁 치는 훌륭한 영화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