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게시판에 최고의 직장인 만화라고 해서 봤는데, 정말 최고네요! 퇴근하고 정주행 완료!!”
미디어다음에 연재되고 있는 <미생>에 달린 어느 독자의 댓글이다. 이 댓글로부터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게 만드는 힘이 이 만화 <미생>에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웹툰 댓글놀이는 초딩이나 하는 짓’이라고 핀잔 놓았을 30~40대 어른들로 하여금 로그인까지 감수해가며 최고라는 수식어를 남기게 만드는 매력이 이 만화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체 이 만화가 무엇이길래, 무엇을 보여 주길래 그런 것일까.
드라마나 영화로 안 나왔으면 좋겠네요!
‘최고의 웹툰’이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미생>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의외로 많다. 원작이 지닌 감동과 재미가 영상화되었을 때 반감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적당한 여자캐릭터를 내세운 흔한 연애이야기’로 변질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말이다. 이처럼 독자들이 작품의 아우라를 걱정하는 작품, <미생>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만큼 <미생>은 기존 만화에서는 접하기 힘든 캐릭터의 디테일과 사건의 풍부함을 보여준다. 일단 캐릭터에 대해 살펴보자. 주인공 장그래는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이력도 남다르다. 프로바둑기사를 꿈꾸며 10대 시절을 반상에 쏟아 부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평범한 삶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백수가 널린 현실에서 ‘고졸’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입사동기가 모두 정규직이지만 자신만 계약직이라는 사실 역시 일종의 자격지심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바둑을 통한 그의 세상읽기는 깊이 있고 사려 깊으며, 독창적인 만큼 매력적이다. 그래서 그의 자격지심은 안타까움을 부르고, 그의 통찰력은 탄성을 만들어낸다. 그만큼 장그래라는 캐릭터는 살아있다.
장그래 뿐만 아니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서 숨을 쉰다. 가령, 한석율은 무턱대고 현장만 좋아하는 신입사원이 아니라,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책상물림을 할 수 있는 가문의 자랑이다. 안영이 역시 그냥 똘똘한 신입사원이 아니라 ‘어렸을 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자신이 대기업에 취업하자 대출을 부탁하는 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괜히 현장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잘나서 예전에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팀장으로서 오 과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오상식도 등장하며,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선 차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달픈 워킹맘으로서 선영도 그려진다. 마치 각자의 사정을 가진 현실 속 우리들처럼 <미생> 속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한 움큼씩 쥐고 있다. 인물이 지닌 사연을 보여주고, 그래서 그 인물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마치 친구에게 오늘 힘겨웠던 일을 토로하는 우리들처럼 스스럼없이 캐릭터들이 독자에게 사연을 들려준다. <미생>은 그렇게 살아있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각각의 인물들이 지닌 배경과 사연은 작품 전체의 서사와 연결된다. 인물이 지닌 사연은 서사의 바탕이 되고, 서사는 인물들의 사연을 구체화시킨다. 박종식의 요르단 비리는 박종식이라는 캐릭터에서 출발하며, 중국통인 전무의 캐릭터로부터 콴시(관계)에 얽힌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캐릭터와 사건, 부부 같고 애인 같다. 부부 같고 애인 같아서 너무 현실적인 만화. 그러니 독자는 스크롤을 내리며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편으로 눈물을 흘린다. 만화 <미생>과 <미생>의 독자, 연인 같고 친구 같다. 자웅동체다. 이쯤 되니, 독자의 염려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깨알 같은 디테일, 그러면서도 확고한 개성, <미생>이 보여준 감동들이 또 다른 ‘미생’의 이름을 달고 혹시나 불러올지도 모를 실망감에 대한 독자들의 염려, 자웅동체로서 당연한 일이다.
모든 회사의 신입사원 필독서로 삼아도 손색없을 듯합니다
<미생>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축은 크게 두 가지로 좁힐 수 있다. 주인공 장그래가 인턴에서 계약직 신입사원으로, 다시 신입사원에서 경력이 쌓이는 직장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한 가지다. 또 하나는 오 팀장, 김 대리 등 영업3팀이 합심하여 신규아이템을 발굴하고 그것을 실제 사업으로 구체화시켜나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이야기의 완성도를 최고점으로 끌어 올린다. 회사라는 조직과 그 조직을 이루는 개인의 관계를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가령, 주인공 장그래의 인턴 첫날을 떠올려보자. 그는 김 대리로부터 데이터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지만, 자신의 기준에 따라 재정리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되돌아온 반응은 “혼자 하는 일 아닙니다. 함께 하는 일이라구.”라고 꾸중을 듣는 것이다. 개인의 뛰어난 실력보다 전체적인 조화가 중요하며, 그래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공서적에서라면 ‘조직화’ 혹은 ‘시스템’과 같은 딱딱한 용어로 논의될 내용이 <미생>에서는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등장해 긴장감 있는 드라마로 구성된다. 요컨대, 다른 작품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실용과 오락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미생>만의 한 수(手)인 셈이다.
이처럼 현실이 드라마가 되고, 드라마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장면들은 <미생> 전체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테마다. 판타지가 아닌 실재의 재현은 특히 계약직, 내부고발, 워킹맘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식과 함께 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동기들과 함께 입사시험을 통과했지만 계약직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장그래의 모습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언제 쫓겨날지 몰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비리를 파헤쳐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음에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영업 3팀의 모습은 교과서에서 배운 공정함과 정의로움이 현실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음을 반영한다.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직장과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는 선 차장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님은 실제 회사생활을 해보신 분인가요?’라는 독자들의 궁금증은 작품이 보여주는 철저한 현실반영에 대한 또 다른 찬사인 셈이다.
<미생>에 따라오는 댓글 가운데 자주 접할 수 있는 내용이 샐러리맨, 특히 신입사원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다. 물론 <미스터 초밥왕>이나 <신의 물방울>처럼 이전에도 어른들을 위한 추천만화는 존재했다. 특히, <시마과장>의 경우 샐러리맨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으로서 직장인 필독서로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일본만화 일색으로 리스트 업 되어있던 직장인 추천만화는 <미생>으로 대체된다. 이유는 분명한다. 우리의 ‘현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이라 적고 인생이라 읽는다.
<미생>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바둑’이다. 연재횟수 표기부터 횟수(回數)가 아니라 수(手)로 표기한다. ‘제 1회 웅씨배 결승5번기 제 5국 웨이핑 9단과 조훈현 9단의 대국’ 첫 수를 1회로 표기한 이후 연재횟수가 더해질 때마다 기보의 흑점과 백점도 쌓여간다. 수가 늘어나는 만큼 장그래는 성장하고, 반상에 펼쳐지는 우주가 넓어지는 만큼 그의 경력도 쌓여간다.
알다시피, 주인공 장그래는 프로바둑기사를 꿈꾸던 인물이다. 10대 시절, 바둑에 인생을 걸어보고자 치열하게 수련했던 그였기에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바둑은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로 작용한다. 즉, 어떤 상황에 닥치면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바둑의 수가 떠오르는 것이다. 가령, 한석율과 한 팀을 이루어 PT시험을 준비하던 장그래는 자신을 챙겨주는 선임과 동기들을 보며 “혼자 싸워야하는 반상 위보다 세상은 훨씬 친절하고, 따뜻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업1팀 고 과장이 스티브한의 외국인 바이어에게 개고기를 접대했다는 사실과 관련, 고 과장의 상사인 김 부장이 스티브한에게 사과하기 늦은 상황에 대해 ‘외통’이라고 정의내린다. 한편, 업계용어를 알지 못해 팀원으로서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장그래가 입사동기 장백기로부터 “용어끼리 꼬리가 물고 물리는 ‘관계’를 만들어야 외우기 쉽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바둑알은 기억하기 힘들다. 서로간의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장그래에게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가 바둑인 것처럼 해결책 역시 바둑으로부터 찾아낸다. 한석율과의 PT시험 주도권 싸움에서 “생각과 경험의 최선, 바둑에선 그것을 정석”이라고 부른다고 되뇌이며, 외통에 걸린 김부장의 입장에 대해 “끝났어야 할 문제(죽은 말)가 계속 이어져서 커지게 되면(대마) 판 자체가 큰일 나지 않을까요?”라며 오과장에게 조언한다. 관계를 이용해 용어를 외우라는 장백기의 조언 역시 “정식대국 바둑판을 보고 나서는 상당히 많은 수를 그대로 복기할 수 있는 것은 인과의 힘”으로 연결지으며 마무리한다. 마치, 사람들이 인생을 바둑에 비유한 것처럼 장그래는 회사생활을 고스란히 바둑에 접목시킨다. 그래서 <미생>에는 바둑이 있고, 또한 인생이 있다.
하지만 바둑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인생을 통찰하는데 별다른 묘수가 없는 것처럼 바둑에 대한 지식이 작품의 이해를 배가 시키는 것은 아니다. 조치훈 기사의 말처럼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니까. 그러므로 <미생>이 바둑의 묘수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기예가 아니라 삶에 대한 통찰이다. 초심을 잃어버리고 비리를 저지른 박종식 과장의 모습으로부터 “반집이라도 이겨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면서 “이 반집의 승부가 가능하게 상대의 집에 대항해 살아준 돌들이 고맙고, 조금씩이라도 삭감해 들어간 한 수 한 수가 귀하기만 하다.”는 얘기를 들려주며 과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순간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반집의 승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순간을 놓친다는 건 전체를 잃고 패배하는 걸 의미한다.”는 생각 속에 담긴 깊이는 판타지만이 만화의 전부가 아님을 입증한다. 통찰의 승리다. 우리가 이 작품을 보는 이유다. <미생>이 진짜 재미있는 까닭이다.
댓글을 달아주는 독자들의 감상과 수준도 대단하네요. 감동적입니다.
최고의 웹툰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겨진, 그래서 작품 자체를 보는 재미를 넘어 <미생>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감동은 바로 ‘독자’,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 웹툰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미생>에 달리는 댓글들은 때로 진지하고 때로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느꼈던 감동의 여운을 다른 독자들이 남긴 댓글을 읽으며 되새김질 한다. 오 팀장의 파이팅과 김 대리의 상냥함에 박수를 보냈던 충족감은 댓글을 읽고 두배, 세배로 확장된다. 모니터 넘어 수많은 독자들은 ‘초딩 수준’의 댓글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to be continued’에서 느껴야하는 아쉬움을 선플을 보며 달래는 독자들에게 무분별한 악플은 절대 퇴출감이다.
말하자면, 작품의 수준은 독자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그런 독자들이 모여 다시 작품을 이야기한다. 선의가 또 다른 선의를 구축하고, 작품이 낳은 감동은 댓글을 통해 확대재생산 된다. <미생>이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은, 장그래의 반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독자들의 응원과 격려로 대차게 아름다워진다. 그렇게 감동은 또 다른 감동을 불러온다. 신입사원 장그래가 지나온 시간은 이제 고작 1년 반. 독자들은 여전히 감동에 목마르고, 더욱 아름다울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