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문화콘텐츠 창의포럼 첫째 날-진지한 접근들 아마도 인천공항에서 직선으로 황해를 건너면 가장 가깝게 닿을 도시 중의 하나는 옌타이(烟台)일 것이다. 5월 24일부터 2박 3일간 열린 ‘한·중 문화콘텐츠 창의포럼’은 체리와 사과로 유명한 옌타이 시에서 개최되었다. 연안 지방에서 가장 늦게 개발된 도시의 거리는 깨끗했으며 분위기는 의욕이 넘쳐 보였다. 신라방(新羅坊)에서부터 재중 한국인이 가장 많은 산둥은 그래서 만나는 사람도 풍광도 친근해 보인다.
만화가를 비롯해 부천과 옌타이 시 당국자, 산업계, 학계가 두루 참가한 이번 행사는 양국의 시 정부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옌타이 광고창의산업단지가 주관해, ‘한·중 문화콘텐츠 창의포럼’이라는 큰 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첫째 날인 24일 화요일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호텔에서 비즈니스 교류회(피칭쇼)와 만화포럼(2016년 제3차)이 동시 개최되었다. 피칭 쇼는 국내 대진아리마루, 스튜디오애니멀, 씨엔씨레볼루션, 아트라이선싱, 아트플러스엠, 픽토 6개 기업과 중국의 옌타이롱쥔소프트웨어과기유한공사, 옌타이비하이문화예술자순유한공사, 옌타이하이싱영상동화설계유한공사, 옌타이스한동만설계유한공사, 옌타이싱위동만유한공사, 옌타이페이상동만제작유한공사 6개 기업, 모두 12개의 양국 관련 업체가 자사의 콘텐츠와 교류에 대해 발표가 이어졌다.
다른 장소에서 진행된 만화포럼은 모두 3명의 발제자가 나섰다. 김소원 교수는 ‘소녀 잡지와 만화의 장르확립’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일본과 한국에서 특화된 소녀만화와 잡지의 정체성에 대해 논했다. 서은영 교수의 ‘1960~70년대 불량만화 담론의 전개’는 당시 한국만화에 대한 당시의 불온한 시선과 흐름을 점검했다.
이어 박기수 교수의 ‘웹툰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거점화 시론(試論)’은 웹툰의 향유를 지속 강화 확산하기 위한 전략이자 새로운 방법론 제안으로서 의의가 있었다.
특히, 박 교수는 “웹툰과 만화는 다르다. 개방적이고 조형적이며 장르와 전파방식, 물적 토대도 상이하다. 따라서 웹툰은 이제 만화의 하위 장르가 아닌 독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는 논리로 새로운 논쟁을 예고했다. 실제 만화현장에서 벌어지는 정체성에 대한 적절한 문제제기였다.
그리고 원작소스가 순차적으로 확장되는 OSMU와 다른 개념으로서의 트랜스 미디어를 설명했다. 향유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조립이 가능한 형태의 스토리월드가 핵심인 이 전략은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 거점화로 웹툰이 미래 보다 폭넓은 생산성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웹툰원작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 못 하는 이유를 <미생>과 다른 작가 작품을 예로 들면서 장르 중간에 향유자가 재밌게 놀 공간이나 요소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첫날 설렘을 안고 시작한 컨벤션과 학술 소행사는 이렇게 끝났다.
한·중 문화콘텐츠 창의포럼 둘째 날-교류를 위해 머리를 맞대다 둘째 날은 이른바 몇 년간 양쪽 시 정부가 준비한 것을 오픈하고 선을 보이는 메인데이였다. 첫 오전 행사는 부천시와 옌타이시의 한·중 창의문화산업 시범단지 제막식이었다. 역동적인 양쪽 두 도시의 소개 영상상영과 함께 이루어진 제막식은 행사장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이어 참가자들은 버스에 나눠 타고 단지에 조성된 한·중만화영상체험관(?中?漫???)으로 향했다. 즈푸구 1681광고산업기지에 개설된 체험관은 800㎡ 면적에 만화 49종과 애니메이션 7종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한·중 공동프로젝트 첫 성과로 소개되었다. 한국 웹툰을 소스로 영화관, 멀티체험관이 조성되어 있으며, 전체 단지는 다양한 매장과 편의시설, 유관 사무실이 모인 집적화 된 공간이었다. 더구나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연태구냥’ 술이 소개돼 그 의미를 더했다. 술병 겉면에는 이희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이 직접 도안한 그림이 채택되었다.

오후에 개최된 제1회 한·중 문화콘텐츠 창의포럼 세미나는 전반적인 교류협력을 위한 제언과 토론의 시간이었다. 기조발제에 나선 오재록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원장은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사업모델이 되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하고 포럼에서 제기되는 제반 문제를 양국 정부 당국이 준비하고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뒤이은 기조강연 두 가지는 중국콘텐츠 산업의 현황과 협력모델의 점검이었다. 첫 번째 발표자 황젠밍 베이징영화학원 교수는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황과 과제를 주 내용으로 발표했다. 중국 콘텐츠 중에서 애니메이션이 영화시장에서 20%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잠재력이 크다고 진단하고 그럼에도 IP(OSMU)를 통한 활로 모색과 스토리 소스의 적극적인 개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중국과의 현지협력 대표모델로서 강연에 나선 김형철 화체합신문화전파유한공사 대표는 2016년 중국의 대형 콘텐츠제작업체인 화체(??)와 한국의 영화사 NEW의 합작회사가 이룬 성과를 먼저 공개했다. 특히,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적절한 협력모델로 제시되었다. 오래전부터 중국진출과 현지경험의 토대를 갖춘 협력회사가 제시한 효율적인 중국진출의 선결 조건은 먼저 무지한 상태의 진출이 위험하며, 중국 업체를 소개받으면 그 회사 콘텐츠를 볼 생각은 않고 회사규모부터 물어보는 식의 외형적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부딪히고 경험해야 하며 메인 타깃과 확장타깃을 구별하고 양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주제 보다는 오히려 한국 국내에 충실한 것이 중국에서 통할 수도 있다는 진단도 내렸다. 그리고 결론은 역시 ‘재밌는 스토리’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Maker Cloud에 대한 소개 강연이 있은 뒤 이어진 첫 번째 세션 주제에서는 3명의 발제자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첫 번째 발표자는 김준한 경북콘텐츠진흥원장이 지역문화콘텐츠 성공사례를 발표했다. ‘지역이 잘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그간 경북콘텐츠진흥원이 벌여 온 웹툰사업, 뮤지컬, 가요 콘텐츠 개발과 확장전략을 발표하고 앞으로 옌타이와의 협력도 강조했다.
이어 리우춘강 베이징동만연맹 비서장은 베이징의 애니메이션 업계의 현황과 시장상황브리핑에서 게임과 애니메이션산업이 성장세는 확연하지만, 오히려 인재난에 시달린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따라서 밝은 중국 콘텐츠산업의 필수조건은 인재개발이며 국제협력도 이 방면으로 특화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세 번째 발표자 취보어 중국과학원 저장 디지털콘텐츠연구원 부원장은 ‘디지털콘텐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주제로 중국 현지의 디지털 작업에 대한 현황을 발표했다.
이화자 공주대 교수 사회로 이어진 주제토론에서 안종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한·중 웹툰콘텐츠 발전방안으로 두 나라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 이를 토대로 세계시장에 함께 진출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웹툰 콘텐츠를 공동 제작하고 양국의 온·오프라인 배급망을 활용해 공동 배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웹툰정책 협의체를 신설하고 만화산업의 한·중 웹툰 벤처펀드를 조성하여 웹툰콘텐츠에 투자하고 구체적 방안으로는 웹툰작가의 육성 프로그램인 한·중 웹툰아카데미 사업도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황젠밍 교수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빼꼼>의 경우, 한·중 합작모델로 인상이 깊고 시사점이 많은 케이스라고 칭찬했다. 리우춘강 베이징동만연맹 비서장은 최근 몇 년간 중국정부의 플랫폼과 작품에 대한 겸열 문제를 거론하며 상대 문화에 적합한 소재 찾기와 아울러 심사기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 내 심의문제는 매우 적절하고 실제적인 문제제기였다.

두 번째 세션은 <한·중 문화콘텐츠산업의 현재와 제도적 지원>을 주제로 한 발제와 토론이었다. 처음 발제에 나선 한창완 세종대 교수는 현재 한·중합작 지원정책의 현황과 대안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발표했다. 현재 진행 중인 정책으로는 현지 맞춤형 콘텐츠 기획과 개발, 제작지원, 합작콘텐츠 제작지원, 맞춤형 인재양성, 수출매니지먼트, 번역지원, 해외교류지원 사업이 있다. 또한, 앞으로의 맞춤전략으로는 투자펀드 조성, 한중 FTA 효율적 운용을 위한 상호 시행령 마련(계약, 세금 등), 세제 혜택을 위한 공정계약서 마련 및 저작권 관리, 전문인력 양성과 육성시스템을 제안했다.
공자오후이 베이징 영상후기산업연맹 비서장은 현재 애니메이션 시장의 전망과 인재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김재웅 중앙대교수 사회로 열린 주제토론에서 <빼꼼>의 제작사 김강덕 (주)달고나 대표는 애니메이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방영권료 현실화와 저작권 강화, 그리고 캐릭터 상품화 사업자 육성 및 스토리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내 최대 플랫폼 중에 하나인 유요치(u17) 위샹화 총재는 협력모델에서 가장 난제인 번역의 문제를 예로 들며 개선을 촉구했고, IP마케팅에서 한국과 중국의 입장 차이를 좁히는 문제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자고 역설했다. 또한, 종루밍 광둥성 동만협회회장은 현재 중국의 애니메이션이나 콘텐츠가 지나치게 기술에 집착하기보다는 콘셉트와 지적능력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중 수교는 올해로 24년이 넘었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만큼 새로운 시장에 대한 확신보다는 아직도 한국인들의 기대와 우려는 현재진행형이다. 언론인, 철학자에서부터 중국전문가를 참칭하는 수많은 사람이 각기 자신들의 경험과 전망을 내 놓고 있지만 백화제방(百花齊放)이자 제각각이다. 동만(?漫)이란 이름으로 만화, 애니메이션을 묶어 국가주도로 확장시키려는 중국에 진출하려는 관련업계도 이와 연결된 학술, 만화가들의 교류도 마찬가지 처지이다.
결국, 일반화의 오류와 디테일이 빠진 외형적 교류와 협력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라 할 것이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경험치가 일반화되는 것이 가장 큰 위험요소이며, 마치 그것은 베이징, 상하이를 다녀와서 중국은 이러이러 하다라고 판단 내리는 것과 같다. 일개 성(省)이 한국보다 큰 나라에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도 많고 아무리 국가주도의 산업시스템이라도 지나친 매뉴얼 식 대응은 일을 그르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중국진출 한국기업이 연착륙에 실패한 사례를 그래서 우리 문화콘텐츠 분야가 연구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는 현지화를 위한 세심한 준비들이다. 검열과 중국 트렌드에 맞는 작품을 만들고 판매하려면 가장 먼저 인력이 중요하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지인, 조선족 동포, 국내인력 파견 등등 전문인력 채용부터 쉽지 않다. 결국, 최근엔 국내 관련학과 유학을 끝낸 현지인 채용이 늘고 있는 것과 같은 사례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번역과 통역, 계약 등의 때문에 한국만화 일본 진출에서 보여준 수많은 오류를 중국에서는 오래 반복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한국만화 진출의 속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조사한 바로는 중국에서 히트하는 국내 작품 1,2위는 <기기괴괴>나 <마음의 소리>이다. 공통점은 어떤 특수한 지역이나 세대정서가 없고 전체연령이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소재들이란 점이다. 이렇게 소프트한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2000년대 초 국내 웹툰이 시작할 때 에세이툰을 상기하면 언듯 이해가 간다. 어떤 특정분야가 새롭게 연착륙하려면 범용적이고 가벼운 것부터 적응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과의 교류와 사업 협력이든 이제 양국 관계자들이 좀 더 디테일하게 접근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쌓아 온 신뢰와 경험을 토대로 하나하나 상호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직도 ‘속인 대상은 없는데 서로 속았다’라는 말이 한국과 중국 시장에서 주로 나오고 있다. 필자도 실제 경험한 일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중국의 대학은 한 곳의 대학만 특정하여 교류하지 않으며, 같은 조건을 동시에 여러 곳에 보낸다. 계약서와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구두약속이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서로의 몰이해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기 보다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크다’라는 것이다. 미국, 일본의 다른 대학과 상대할 때와 달리 중국을 ‘거대하고 성장전망이 우수하며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 같은’ 선입견을 갖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우수한 작품을 갖고 있건 중국 내 인맥이 튼튼해도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들은 디테일이다. 일본과의 교류나 사업을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그들은 어떤 일이든 촘촘하고 끈질기며 세밀해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진행하면 할수록 오류가 적고 신뢰가 쌓여 오히려 일정단계가 되면 편하다. 대학 간의 MOU건 업체의 계약서, 작가의 진출조건이든 이제 중국과 손을 맞잡을 때는 서로 세밀하게 접근하자. 진수성찬과 꽌시라는 외부적 형식과 내부적 문화가 전부는 아니다. 이제는 그간의 성숙한 교류의 기간만큼 세밀하게 점검하고 장애를 하나씩 개선해 나가자. 기대와 성과주의를 넘어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기가 왔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