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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이토록 뜨거운 신세계 - 웹툰의 지평을 넓혀온 과거 작품들

웹툰을 매일 챙겨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제 조석의 마음의 소리는 안다. 설사 마음의 소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웹툰에서 탄생한 유행어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는 안다. 그만큼 웹툰은 현재 가장 핫한 엔터테인먼트이자 가장 다양한 장르가 포진돼있는 놀이터다.

2011-09-23 이가온
웹툰을 매일 챙겨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제 조석의 마음의 소리는 안다. 설사 마음의 소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웹툰에서 탄생한 유행어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는 안다. 그만큼 웹툰은 현재 가장 핫한 엔터테인먼트이자 가장 다양한 장르가 포진돼있는 놀이터다.
 
하지만 불과 5~6년전만 해도 강풀 작가와 강도하 작가라는 양대산맥이 중심축을 이루었고, 그들은 웹툰 1세대 작가라 불렸다. 최근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는 웹툰 작가들이 스스로를 웹툰 2세대 작가라 칭하는 지금, 약 1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웹툰으로 손꼽히는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봤다. 강풀의 순정만화와 타이밍,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메가쑈킹의 탐구생활, 조석의 마음의 소리 그리고 하일권의 3단합체 김창남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순정만화
작가: 강풀
연재기간: 2003.10.24~2004.4.12
연재사이트: 다음
 
강풀의 첫 장편만화. 18살 여고생과 30살 노총각의 로맨스. 선뜻 응원하기 힘들다. 아름답다 혹은 순수하다는 말보다는 삐딱한 시선이 앞설 수밖에 없는 사랑이다. 하지만 강풀은 두 사람의 사랑을 거부감없이 그려냈고, 심지어 읽는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수줍은 노총각 연우와 당돌한 여고생 수영은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다. 교복 넥타이를 집에 두고 온 수영이 출근하는 연우의 넥타이를 빌리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된다.
 
그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외로움이라는 정서는 띠동갑이라는 나이차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서로에 의해 점차 바뀌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쭈뼛쭈뼛 앞만 보고 서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서로를 생각하는 장면은 두 사람이 두르고 있는 목도리만큼이나 포근하고 따뜻하다.
 
물론 순정만화의 주인공은 연우와 수영뿐만 아니라 남고생 숙이와 9살 연상의 하경 등 여섯 사람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위로받고, 또 서로를 아프게 하고 다시 보듬어주는, 얽히고설킨 관계다.
 
비단 남녀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연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순정만화에는 입 밖으로 내뱉는 대사보다 내레이션이 더 많이 나온다. 상대방에게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열 마디 넘게 생각하지 존재가 바로 사람이 아니던가. 이후 순정만화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여고생 수영 역에는 이연희가, 수줍은 노총각 연우 역에는 유지태가 캐스팅됐는데, 서툴지만 그래서 더 순수해보이는 첫사랑의 느낌을 잘 구현했다.
 
 
위대한 캣츠비
작가: 강도하
연재기간: 2005.3.2~2005.10.31
연재사이트: 다음
 
강풀이 순정만화, 아파트, 바보를 연이어 연재하는 사이, 또 다른 웹툰 1세대 작가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정착했다. 그가 바로 강도하다. 위대한 캣츠비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스크롤에 맞춰 마치 영화처럼 연출한 기법이 돋보인 작품이다.
 
위대한 캣츠비의 세 주인공, 캣츠비와 페르수 그리고 하운두. 이 청춘들이 아프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곧 철거가 예정된 달동네의 옥탑방처럼. 즐기기엔 너무 짧고 쉽게 증발하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봄처럼. 그렇게 위대한 캣츠비에서는 배경과 공간마저도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
 
6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로부터 다른 남자이 이름이 새겨진 청첩장을 이별선물로 받은 캣츠비는 친구 하운두와 함께 노래방에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이 머물고 있는 그 공간은 어느새 답답한 관이 변해있다. 몇 컷에 걸쳐 캣츠비의 얼굴을 클로우즈업했다가 관 속에 갇힌 그의 모습을 풀샷으로 담아내는 과정은 마치 몽환적인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만큼 연출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대사 한 마디, 캣츠비가 결혼정보회사에서 받은 C급이라는 사회적 몸값 등은 20대 후반이 겪고 있는 고민과 성장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강도하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빵 하나로도 청춘의 씁쓸한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물론 가장 씁쓸한 사실은, 위대한 캣츠비가 끝난 시기와 배경이 된 현장이 사라진 시기가 일치했다는 점이다.
 
 
타이밍
작가: 강풀
연재기간: 2005.6.10-2005.11.7
연재사이트: 다음
 
타이밍은 아파트에 이은 강풀의 두번째 미스테리심리썰렁물이다. 스릴러 장르답게 인물간의 관계와 스토리를 치밀하게 구성했다. 덕분에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스크롤을 멈추기 어렵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까지 기다리고 있다.
 
여기, 희한한 능력을 가진 네 사람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초능력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은 저주받은 능력이기도 하다.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김영탁, 10분 후의 미래를 볼 수 있지만 바꿀 순 없는 장세윤, 10초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눈 앞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봐야했던 강민혁, 미래의 참사가 일어나는 장면을 꿈 속에서 미리보는 잔인한 능력을 지닌 박자기. 그들은 김영탁이 다니는 학교에서 열흘 뒤 발생할 참사를 막아야만 한다.
 
그 열흘 동안 학교에는 자살하는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간다. 이미 한 차례 대형사건이 종결됐지만 그들이 막아내야 할 끔찍한 일은 3일 뒤에 일어난다. 초능력과 스릴러, 반전을 내세운 타이밍. 그러나 결국 타이밍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순정만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과 외로움이다. 누군가는 그 능력 때문에 가족들한테 멸시받아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능력 때문에 가족들의 죽음을 몇 번이나 지켜봐야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등지고 외롭게 살아왔다. 그들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결국 서로의 아픔을 발견하고 치유해주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탐구생활 1~4
작가: 메가쑈킹
연재기간 및 연재사이트 : 탐구생활 1(파란, 2005.10.13~2006.06.20), 탐구생활 2(네이버, 2007.8.13~2008.03.31), 탐구생활 3(네이버, 2008.5.6~2009.4.24), 탐구생활 4(네이버, 2010.3.4~2010.4.18)
 
미리 말해두지만, 탐구생활은 초등학생들이 방학 내내 방치해두다가 개학하기 이틀 전에 겨우 행방을 찾아보는 그 탐구생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건 30년 넘게 발로 그리는 메가쑈킹의 인생 탐구생활이다.
 

탐구생활 1은 다들 맛없다고 하는 식당, 재미없다고 하는 영화에 푹 빠져있는 메가쑈킹의 독특한 취향을 담아냈고, 그 뒤에 이어진 탐구생활 2 혼신의 신혼여행은 자전거 신혼여행기를, 탐구생활 3 소인배라이프는 탐구생활 1보다 좀 더 깊게 파고든 메가쑈킹의 일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연재가 중단된 탐구생활 4 그대와 함께 하이킹은 (지금은 이혼한) 부인과 제주도 올레길 전 코스를 걸었던 도보여행기다.
 
네 시리즈의 공통점은 모두 쫄깃하다는 것이다. 그 질감은 바로 언어에서 나온다. 메가쑈킹 70선이라는 제목의 어록 모음집까지 인터넷에 돌아다닐 정도로 메가쑈킹의 언어구사능력은 옴팡지게 환상적이다. 개그맨 지상렬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던지는 멘트와 흡사하다.
 
그의 언어를 거치면 초췌한 몰골은 노숙자 자격증 1급 소지자의 안면디자인으로,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은 여기서 굴렀다간 천당 동사무소에 바로 전입신고 해야 된다구로 치환된다. 굳이 탐구생활을 보지 않더라도 순간 염통이 쫄깃했어, 니가 겁을 일시불로 상실했구나, 여기서 요것들이 사랑의 굿거리장단을 맞추고 있었구나와 같은 문장들을 소리 내 읽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화려한 대사들 사이사이에는 메가쑈킹의 여행기록들을 비롯해 가끔 백설공주 코스프레와 같은 황당한 사진들이 올라온다. 에피소드 말미에는 항상 오늘의 탐구과제를 제시하거나 독자들의 여행사진을 실어주면서, 웹툰을 읽는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소홀하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지난해 4월을 마지막으로 탐구생활 연재가 중단된 상태다. 이렇게 쫄깃한 탐구생활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젠장찌개!!
 
 
마음의 소리
작가: 조석
연재기간: 2006.9.8~현재
연재사이트: 네이버
 
마사루의 센스를, 이나중의 황당함을 뛰어넘는다!는 각오로 함께 연재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에피소드 형식의 웹툰이라 어떤 회부터 시작해도 무방하지만, 한 번 마음의 소리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정주행과 역주행은 무한반복 필수코스가 되어버린다.
 
마음의 소리 마니아들에게 가장 부러운 사람은 마음의 소리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미처 보지 못한 마음의 소리 한 편을 발견했을 때다. 마음의 소리는 좀처럼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병맛스럽게 진행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 와중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와 같은 유행어를 남기기도 한다. 마음의 소리의 병맛이란 가령 이런 식이다. "설마 이런 거겠어?"라는 독자들의 의심을 깨고 그것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보여준다.
 
"간병인이라는 건 먹여주고 품어주는 마치 어미새 같은 거라고"라는 대사가 나온 후, 정말 환자에게 밥을 떠먹여주고 환자 위에 올라타 어미새처럼 품어주는 모습이 이어진다. 옆집 치킨가게는 주문한 지 5분 만에 배달해준다는 말에 그러면 우린 주문하기 전에 배달하자는 황당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한다. 이상할 게 없는 그런 하루...편에서는 뭔가 음산한 분위기를 조장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켜놓고는 진짜 이상할 게 없었던 하루라는 허무한 엔딩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포스도 범상치 않다. 조석, 조석의 형 조준, 조석의 (한 때) 여자친구 애봉이는 만화 속에서 하나같이 못생겼지만, 그들이 모델로 삼은 실제 사진은 하나같이 훈남, 훈녀다. 뭐, 기분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의 미친 존재감을 한 명 꼽으라면 바로 조석의 친구로 나오는 가짜 예수다. 물놀이를 할 때도 아, 전지전능해서 수영이 안 됨이라며 물에 둥둥 떠 있고, 그의 주민등록증에는 태어난 년도가 AD 1이라고 쓰여 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그 무엇을 만화로 구현해내는 사람이 바로 조석이다. 그러니 사무실에서 몰래 마음의 소리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웃거나, 먹고 있던 커피를 모니터에 뿜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의 소리가 한 편씩 업데이트될 때마다 수많은 독자들은 조석을 향해 이렇게 울부짖는다. 엉엉 조석님 날 가져요
 
 
3단합체 김창남
작가: 하일권
연재기간: 2008.7.4~2008.12.19
연재사이트: 네이버
 
인간은 외롭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로봇이 찾아와 인간의 손을 잡아준다. 로봇은 감정을 느낄 줄 모르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은 로봇에게 끌린다. 결국 인간과 로봇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빤한 스토리지만, 하일권 작가에게는 그 빤한 스토리를 눈물나게 감동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가슴에 확 꽂히는 절절한 대사, 두 주인공의 아름다운 사랑과 대비되는 인간의 무한한 이기심, 그 인간들에 의해 한없이 망가지고 추락하는 과학 그리고 매 회마다 자주 등장하는 역겹다는 말.
 
이야기의 무게가 꽤나 묵직한 웹툰 3단합체 김창남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호구와 인간형 로봇 시보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나간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꼬붕이 되는, 이미 인간성을 상실한 교실에서 가장 인간다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로봇 시보레다. 시보레는 짝꿍이 된 호구에게 나쁘고 이상한 건 괴롭히는 인간들이라 말해주고, 호구의 손을 잡아주고, 호구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에 뛰어든다. 그 사이,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창남전자는 거대로봇 프로젝트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시보레를 인형처럼 팔아먹기로 결정한다.
 
갈수록 이야기에 몰입되는데, 가장 압권은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두 사람의 슬픈 운명과는 정반대로 그들을 둘러싼 공간은 한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 불균형의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누구라도 울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