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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인만화다! 1 : 성인만화라는 유령을 호출하다.

나는 성인만화다. 이름은 있으나 존재는 없다. 아니 존재는 있으나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다. 마르크스의 선언의 서문을 빌어,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성인만화라는 유령이."라고 말한다.

2011-05-31 박인하
나는 성인만화다. 이름은 있으나 존재는 없다. 아니 존재는 있으나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다. 마르크스의 선언의 서문을 빌어,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성인만화라는 유령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보호받아야 마땅할 청소년을 투명하게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보호법을 만들었다. 청소년을 보호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청소년 보호법은 모든 것들 안에 투명하게 맑고 고운 심성만을 담으려 한다. 그러니까 게임을 하다 누군가가 전기를 내려 컴퓨터가 꺼지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랑스럽게 "어! 전기가 꺼졌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의 모습만을 매체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안에 어떻게 성인만화가 있을 수 있으랴.

 

하지만 성인만화는 유령처럼 어디라도 배회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반정부당치고 정권을 잡고 있는 적들로부터 공산주의라고 비난받지 않은 자들이 어디 있겠느냐며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이야기했지만, 성인만화는 진짜 유령처럼 있으나 없고, 없지만 있다. 모바일 만화도 투명한 정리로 성인만화가 사라졌지만 스포츠 신문 사이트에만 들어가면 성과 폭력을 주제로 시시껄렁한 농담을 개그라 우기는 성인만화가 있고, 웹하드에는 일본의 성인용 포르노 만화들이 단돈 몇 십 원에 내려 받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방마다 초고속 통신망이 깔려있는 축복받은 환경에서, 청소년보호법이 그렇게도 지켜주고 싶은 청소년들은 인터넷 강의를 틀어놓고 토렌토를 돌려 성인만화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정말 답답한 건, 스포츠 신문 사이트에 연재되는 시답지 않은 농담의 성인만화는 완성도나 서사의 측면에서 쌍끌이 답답이고, 실시간 대패질에 번역까지 갖춰 웹하드나 토렌토에 유통되는 일본산 성애만화(아직 용어에 대한 합의가 없지만 포르노에서 세미포르노 에로만화를 통칭 전부 성애만화)는 너무 과하다. 너무 조잡하거나, 너무 과하다는 말이다. 도대체 성인들은 무슨 만화를 보지? 여기서 잠깐 시계를 90년대 중반으로 돌리자.

 

 

좋았던 시절의 성인만화잡지

 



























[그림1. 90년대를 이끌었던 성인만화잡지 - <투엔티세븐>, <빅점프>, <화이트>, <마인>]


90년대 중반, 한국의 잡지시스템이 일본 모델을 열심히 도입하던 때다. 서울, 대원, 학산 3사에 한국자본 세주까지 모두 4사가 잡지를 내던 때였다. 그리고 만화 3사는 일본의 거대 잡지모델을 본받아 우리도 열심히 연령별, 장르별 분화를 해 나갔다. <투엔티세븐>, <빅점프>, <미스터블루> 3대 성인만화 잡지가 나왔고, 순정만화에서도 <화이트>, <마인> 같은 성인만화잡지가 있었다.

 

80년대 반짝 붐을 이루었던 <주간만화>, <만화광장>, <매주만화> 이후 최고의 전성기였다. <투엔티세븐>과 <빅점프>는 국내 만화와 함게 일본만화도 소개했는데, <투엔티세븐>의 대표작은 <아이언맨>이었고, <빅점프>는 <시마과장>이었다. 그런데 이들 대원, 서울의 성인만화잡지와 달리 100% 순수 한국작가들로만 구성된 <미스터블루>라는 성인만화잡지가 있었다. 창간호인 1995년 5월 25일자를 보자.

 

이현세 <황금의 꽃>

허영만 <마요일>

이두호 <바람소리>

이재학 <황혼령>

황미나 <윤희>

안세희 <제왕의 법칙>

김형배 <화석>

이상세 <파일 X>

탁영호 <패러디 극장>

양영순 <누들누드>

강성태 <계약위반>

최호철 <즐거운 성클리닉> (<태일이>의 최호철 작가와 동명이인)

백우근 <클라잉게임>

박연 <산딸밭 사람들>

정재택 <시사코믹 슈퍼YS의 하루>

 

환상적이지 않는가? 이현세와 허영만 빅 2에 역사만화로는 이두호가 있고, 김형배는 전쟁연작에 이어 현대로 돌아왔다. 여기에 만화방 만화에서 날리는 이재학, 안세희까지. <나는 가수다>가 화려한 그들의 소환으로 화제를 모았다면, <미스터블루>의 작가를 모은다면 <나는 만화가다>를 해야할 판이다. 여기에 젊은 작가 탁영호와 여성작가 황미나, 박연이 있고, 데뷔한 신인이 무려 양영순이다. 게다가 시사만화와 개그만화로 정재택, 백우근, 최호철의 만화도 있다. 그야말로 ‘잡지’의 원래 의미에 충실하게 다양한 만화를 모아 완성된 잡지가 <미스터블루>다.

 

 



























[그림2. <투엔티세븐>, <빅점프>와 함께 90년대 3대 성인만화 잡지로 명성을 떨치던 <미스터블루>]


어느 시대건 성인만화잡지는 진지하게 성인을 위한 만화를 만들었다. 90년대 빅 3도 그랬고, 80년대 <만화광장>, <주간만화>, <매주만화> 빅 3도 그랬다. 이들 잡지가 있어 이두호의 <객주>도 이현세의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도, 허영만의 <오! 한강>도 나올 수 있었다. 60~70년대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성인 주간지 <선데이서울>이 있어 박수동의 <고인돌>과 방학기의 <바리데기>가 있었다. 김동화는 <황토빛 이야기>를 통해 순정만화가에서 시작해 소년만화가로 마침내 성인만화가로의 변신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그림3. 80년대 대표 성인만화잡지 <주간만화>, <만화광장>]

 

 

그런데 다 옛날 일이다. 지금은 성인만화가 뛰어야할 경기장이 없다. 이야기 만화를 하려면 웹 스크롤 만화로 가야하니, 성인만화는 꿈도 못 꾼다. 성인만화잡지를 만들면 된다고? 왜 90년대의 잡지들은 모두 시장에서 사라졌냐고? 1997년 시행된 청소년보호법 이후 모두 이들 잡지는 유통망을 빼앗긴 상태에서 차근차근 산소호흡기를 떼어버렸다. 인터넷도 안 된다, 잡지도 안 된다, 그럼 단행본으로? 단행본도 19세 성인용이 되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랩으로 싸고, 인터넷에서도 실명확인해 성인이 된 이들만 볼 수 있다. 장사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만 없는 성인만화, 잡지

 

미국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고, 일본에는 많은 성인매체가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쉽게 야동을 볼 수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몇 십원만 내면 되는 웹하드, 신나게 돌리는 토렌토....

하긴, 시트콤에 야동순재가 나와 히트하는 나라니까. 성인물은 모조리 불법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돌들도 미디어에 나와 야동운운한다. 그렇게 몰래 약자로 ‘야동’이라 부르지 말고, 차라리 ‘포르노’라고 부르거나, 아니면 ‘성애장르’라고 부르자. 좀 이제 떳떳해 지자.

 

성인만화가 필요하다. 야하건, 슬프건, 웃기건, 풍자적이건 어른들만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성인만화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몰래 좀 봐도, 창피하지 않을 성인만화가 필요하다. 나는 성인만화다, 이런 오디션 사이트라도 만들어 우리 성인만화를 한번 해 보자.

 

 

* 본 기사는 디지털 만화규장각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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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만화평론가, 서울웹툰아카데미(SWA) 이사장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
前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정책그룹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