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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극장가를 점령한 슈퍼히어로들

음속을 뚫고 하늘을 난다. 맨손으로 자동차를 격파하고, 몰려드는 수십명의 악당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다. 화려한 불빛으로 스크린을 수놓는 슈퍼히어로들의 초능력. 그런가하면 초능력의 초자도 모르면서 악으로 깡으로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으로 슈퍼히어로 타이틀을 거머쥐고야 마는 독한 녀석들도 있다.

2013-08-27 이규원
음속을 뚫고 하늘을 난다. 맨손으로 자동차를 격파하고, 몰려드는 수십명의 악당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다. 화려한 불빛으로 스크린을 수놓는 슈퍼히어로들의 초능력. 그런가하면 초능력의 초자도 모르면서 악으로 깡으로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으로 슈퍼히어로 타이틀을 거머쥐고야 마는 독한 녀석들도 있다. 아이언맨, 맨 오브 스틸, 토르 같은 위엄 있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이름까지 독한 히어로도 있다. 킥 애스. 소위, 엉덩이 주차삐까.
 
2013년은 슈퍼히어로의 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상반기만 해도 벌써 <아이언맨 3>, <맨 오브 스틸>, <더 울버린>까지 DC와 마블을 대표하는 최고 인기 캐릭터들이 극장가를 점령했다. 창공을 누비는 히어로들의 활약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시원하다.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이들과 순위다툼을 벌여보지만, 여전히 슈퍼히어로물의 인기는 좀처럼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새로운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올 때마다 흥행 기록이 경신되는 것이 그 증거중의 하나다. 더구나 <어벤저스>, <저스티스 리그>, <엑스맨>, <가디언즈 오브 유니버스>, <판타스틱 포> 등 슈퍼히어로들이 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앞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소식에 기대감은 더욱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다.
 
올 7월 공개된 국내 최장수 혼성 그룹 코요테의 싱글 앨범 헐리우드를 보면 제목은 헐리우드인데, 커버에는 마를린 먼로 의상을 입은 신지가 가운데에 있고, 양쪽에는 배트맨과 아이언맨의 의상을 입은 김종민과 빽가가 서 있다. 말하자면 헐리우드 하면 영화사 100년을 대표하는 마를린 먼로 같은 은막의 스타들과 최근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라는 이야기다. 당분간 헐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 극장가는 슈퍼히어로물이 대세를 이룰 것 같다.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원작 만화가 있고, 거기에 서로 간에 세계관이 공유되고 있는 까닭에 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 TV에서는 지난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24시간 재방송된다. 이게 처음에는 정식 먹기 전에 가볍게 애피타이저를 즐기는 기분인데, 영화가 나올 때마다 슈퍼히어로 특집이 계속되니, 이젠 아예 밀린 방학 숙제를 하는 기분이기도 하고, 수가 너무 많다보니 어떨 땐 좀 엄두가 안날 때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리부트가 필요할 수밖에.
 
90년경부터 근 20여년간 쌓인 영화 콘텐츠는 그 수도 많아서 그간 나온 배트맨과 스파이더맨 영화만 보더라도 하루가 꼬박 걸릴 정도이고, 슈퍼 히어로 패러디물들이나 저예산 영화는 물론, 슈퍼히어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원작 그래픽 노블들이 서점가에 풀려 기대치를 높인다. TV의 책을 통해서 슈퍼히어로물의 지식(?)을 쌓은 팬들에게 영화는 일반 영화를 관람할 때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올해만 해도 올해 최초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이런 제목의 저예산 영화다. <모든 슈퍼히어로는 죽어야 한다.> 그래. 다 죽이고 리부트를 해야 우리가 숨통이 트인다. 그간의 영화도 워낙에 우리고 또 우려서 이젠 아예 말간 국물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히어로물 자체가 질리는 건 아니다. 밀린 숙제가 너무 많으니 은근히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다.
 
슈퍼히어로, 혹은 초능력과 관련된 TV 드라마들도 한몫한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초능력자다. 슈퍼 히어로물은 아니지만 근래 큰 인기를 거둔 좀비 미드인 ‘워킹 데드’는 유명한 미국 만화가인 로버트 커크먼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로버트 커크먼은 마블 코믹스의 세계관에도 좀비 바이러스를 도입해서 모든 슈퍼히어로들을 좀비화시켰던 전력까지 있는 작가이니 따지고보면 워킹데드의 상상력이 아주 약간은 슈퍼히어로물의 세계와 연결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10년 이상 큰 인기를 끌어온 미드 ‘스몰빌’의 슈퍼맨에 이어 이젠 스몰빌에서도 상당히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했으며, 한때는 배트맨의 아류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혁명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며 DC 세계관의 메인 캐릭터로 당당히 자리잡은 ‘그린 애로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드까지 나왔다.
 
<아이언맨>과 <토르>, <어벤저스> 등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여러 영화들에 출연하며 그만의 독자적인 팬층을 가져왔던 쉴드 요원 콜슨을 등장시키는 미드 <에이전트 오브 쉴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말 버라이어티 쇼에 등장하는 유명 MC들도 걸핏하면 슈퍼히어로 티셔츠를 입고 나오고, 슈퍼히어로 패러디는 TV 개그 프로의 패러디 소재로도 종종 사용된다.
 
이런 광경들을 보면 언듯 나름대로 격세지감이랄까, 그런 감정을 느낀다. 사실 나는 슈퍼히어로 세대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홍콩 영화와 일본 만화가 한국을 휩쓸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개인적으로 요즘 슈퍼히어로들을 보면 마치 예전의 홍콩 액션 스타들을 보는 것만 같다. 이소룡, 성룡, 이연걸,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그들의 화려한 발차기와 기합소리, 남성미가 물씬 풍겨나는 비장한 건액션을 보고 극장 밖을 나오면, 마치 잠시 무릉도원 같은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 묘한 기분이 들곤했다.
 
그래서인지 극장에서 나온 뒤 얼마간은 나도 모르게 이들 배우들의 액션을 따라하곤 했었는데, 최근엔 슈퍼히어로 영화들에서 그와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총을 쏴대도 결코 닳지 않던 주윤발의 탄창이나, 맞아도 맞아도 오뚜기 같이 팔짝팔짝 일어나던 성룡의 용수철 액션은 아무리 엎어지고 자빠져도 부활하는 슈퍼맨과 같다.
 
나는 아이언맨 가면이나 배트맨 비디오 게임 대신에 이소룡의 쌍절곤을 사서 가지고 놀았고, 주윤발이 영화에서 사용하던 권총 모형을 사려고 문방구를 기웃거렸으며, 에어울프 헬리콥터와 전격 제트작전 자동차 모형이나 람보와 코만도의 대형 기관총이 전시된 문방구 유리창 앞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비싸서 못사고 100원짜리 심지어 50원짜리 건담 모형 하나 사서 돌아와서는 그걸로 몇 시간을 재미있게 놀던 초딩이었다.
 
 
방학 때는 외사촌 형들의 건담 백과사전과 쿵후보이 친미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외갓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피서지였다. 용돈을 받으면 주윤발 우유 탄산음료와 장국영 초콜릿을 사먹었고, 트럼프 카드를 처음 배울 때는 히든 카드를 양 손바닥에 끼우고는 주성치처럼 열심히 비벼대며 원하는 카드 모양과 숫자가 나오는 주문을 외웠다. SBS에서 해주던 배트맨 만화보다는 김종서의 주제가를 외우며 ‘도전자 허리케인’의 허리케인 죠의 복싱 경기가 재미있었고,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아이언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 게임들이 대신에는 그 시절 스트리트 파이터와 버츄어 파이터의 손기술을 외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아이언맨 종합 과자 선물 셋트나, 헐크 에너지 드링크는 호기심에서 사기는 해도 역시 한창 뭔가에 몰입하고 순수하게 그것을 좋아하던 중딩 시절과는 느낌이 다소 다를 수밖에. 사실 처음에 배트맨 영화가 나왔을 때는 이성에 눈을 뜨고 샤론 스톤의 ‘원초적 본능’ 같은 영화를 몰래 구해보던 시기라 솔직히 배트맨 영화는 너무너무 재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 당시는 대니 드비토의 다른 코미디 영화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만일 그 무렵에 슈퍼히어로 만화의 세계에 눈을 떴다면 80년대 미국 만화의 대 변혁과 90년대 슈퍼히어로들의 죽음과 부상의 스토리들을 정말 생생하게 즐긴 진짜 산 증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동양 제일의 주먹으로 등장하던 전설의 ‘시라소니’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시라소니가 있다면 미국판 시라소니는 아마 울버린일 것이다. 박치기가 시라소니의 장기라면 최강의 금속 아다만티움 두개골을 가진 캐나다 오소리 울버린의 박치기도 만만치 않다. 정치 깡패들의 비겁한 음모에 휘말려 40대 1의 혈투를 벌인 끝에 적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야인 중의 야인 시라소니. 몰려드는 핸즈의 닌자떼를 상대로 선혈이 낭자한 날것 그대로의 액션을 보여주는 울버린은 야인시대의 전설의 주먹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하튼 이젠 그 예전의 청소년들을 열광시키던 람보와 코만도와 이소룡과 주윤발과 도전자 허리케인과 사이버 포뮬러 대신하여 슈퍼히어로 영화가 그들을 매료시키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핵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날 정도로 슈퍼히어로가 대세가 되었다. 말하자면 슈퍼히어로의 유토피아인 셈이다. 그러나 실제 만화 역사를 돌아가보면 2013년은 실은 디스토피아가 예견된 미래였다.
 
실제 2013년에서는 영화 <더 울버린>이 개봉했고, 2014년에는 엑스맨의 고전 중의 하나인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개봉하기로 되어 팬들의 기대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고전 원작 만화에서 그려지는 2013년의 미래는 암울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다.
 
이 이야기에서 그려지는 2013년의 미래는 이렇다. 우선 인간은 세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지고, 이 세 계급은 각각 H. A. M. 이라는 문자로 구분된다. H는 휴먼. 뮤턴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정상의 인간들로 자녀를 낳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
 
A는 비정상인. 뮤턴트는 아니지만 뮤턴트 유전자가 발현될 가능성을 보이는 사람들로 자녀를 낳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M은 뮤턴트. 강제 수용소에 갇혀서 살며 거대 로봇 센티널들의 감시를 받으며, 휴먼에겐 증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계급이다. 이 미래에 기존에 우리가 알던 사이클롭스니, 진 그레이니 하는 엑스맨 멤버들은 거의 다 죽고, 살아남은 인물은 엑스맨 중에서도 어리던 키티 프라이드와 콜로서스, 그리고 불사하는 울버린 정도였다.
 
여기에 날씨를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스톰도 포함. 어찌됐든 인터넷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던 <언캐니 엑스맨 142호> 커버 이미지를 찾아보면 아마 울버린이 로봇 센티널의 손에서 발사되는 광선포에 맞아 증발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노한 울버린이 센티널에게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장렬히 사망하는 장면이다.
 
그러니 2013년의 <더 울버린>은 어찌보면 디스토피아의 미래의 울버린이 사망한 해인 동시에, 울버린 독립 시리즈의 효시인 프랭크 밀러와 크리스 클레어몬트의 <울버린> 미니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개봉했으니 말하자면 <울버린>에 있어서는 알파와 오메가가 공존하는 해인 셈이다. 어찌됐든 원작 만화에서와는 달리 2013년은 뮤턴트 슈퍼히어로들이 비참하게 감시당하고 억압당하는 시대가 아니라 슈퍼히어로들이 수많은 지구인들의 사랑을 받는 멋진 해로 기록되게 되었다.
 
그 첫 포문을 연 영화는 단연 <아이언맨 3>다. 이 영화는 개봉 하자마자부터 연일 기록 경신을 이어가 최고의 흥행 영화로 꼽히는 아바타의 아성까지 넘보았다. 3편의 법칙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아이언맨 3는 앞의 1,2편을 뛰어넘는 월등한 흥행 성적을 보여주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과거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그저 원작 만화에 나오는 히어로의 탄생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거나 재해석 하는 데에만 치중했다면, <아이언맨 3>를 비롯한 최근의 히어로 영화들은 기존에 짜여져 있던 원작 만화 스토리 라인의 뼈대 위에 완성된 현대식 첨단 아머를 입힘으로써 완전히 새롭지만, 동시에 고전에 대한 깊은 경의감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이 흐름은 배트맨 시리즈의 주요 이벤트였던 <나이트폴> 스토리라인을 원작으로 하여 기존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세계에 합치시킨 <다크나이트 라이즈>나 <스테이시 부녀의 죽음>이라고 하는 스파이더맨 최악의 충격적인 사건을 원작으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으로 멋지게 만들어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두 영화 모두 두 히어로의 만화 역사에서 각 히어로가 가장 고통스럽고 위험했던 시기를 중심 소재로 멋진 영화를 만들어냈다.
 
<어벤저스>를 통해서 세계관을 크게 넓혀 기대감을 극대화시키고 흥행 대성공을 거둔 아이언맨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 이 영화는 원작 아이언맨 만화 스토리 중에서 <아머워즈>와 <익스트리미스> 등을 그 발상의 틀로 삼으며, 다양한 종류의 아머와 그에 걸맞는 슈퍼솔저 악당들을 출연시켜 큰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맨 오브 스틸>은 개봉 전부터 엄청나게 화제를 불러모았지만, 개봉 후 성적 자체는 기대만큼 미치진 못했다. 개봉 전에 스타 작가인 짐 리가 영화 시사회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고 인터뷰를 하면서 기대감은 더욱 증폭되었지만, 막상 국내 개봉이 되었을 때는 슈퍼맨 원작 만화의 스토리 라인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지루한 영화가 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 상당수가 슈퍼맨의 전투장면을 보면서 일본 만화 <드래곤볼>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전투는 이전의 슈퍼맨 영화들과 확연히 다르도록 빠르고 강력해졌지만, 인류에 대한 슈퍼맨의 애정을 생각할 때 도시 전체를 휘젓는 전투가 보기에는 좋아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평도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80년대 DC 코믹스가 <무한 지구의 위기>라는 우주 전체를 뒤엎는 거대 이벤트를 통해 기존의 모든 만화들의 세계관을 통합하고 리부트 시킨 후 다시 태어난 슈퍼맨의 이야기를 이전 그 어떤 슈퍼맨 영화보다도 잘 반영했다. 슈퍼맨의 고향 행성인 크립톤의 이야기가 비중이 높아졌고, 슈퍼맨의 슬로건 중에서 ‘총알보다 빠르고, 기관차보다 강한’이라는 능력적인 부분보다는 오히려 ‘멸망한 행성에서 온 마지막 생존자’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개봉 전 2013년 아이언맨 3 이상가는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기대를 모았던 점 때문에, 흥행 성적은 상대적으로 낮아보이지만, 그래도 역대 슈퍼히어로 영화들 가운데서는 꽤 높은 성적을 거두면서 앞으로 DC 유니버스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가능성을 높여준 하나의 기점이 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성공 여부에 따라 <저스티스 리그>의 영화화가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팬들로서도 흥행 성적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DC의 경우는 비디오로 출시되는 애니메이션 영화들도 주요하다. 최근엔 프랭크 밀러의 <다크나이트 리턴즈>가 영화화되었으며, DC 만화의 리부트의 기점이 된 <플래시 포인트>도 영화화되었다. 슈퍼맨에 있어서는 2000년대 초에 인기를 얻었던 <슈퍼맨/배트맨> 시리즈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역시 제작되었다. 확실히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DC가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반해 마블은 그간 <울버린>, <아이언맨>, <엑스맨> <블레이드>등을 일본 만화 스타일로 제작한 <마블 아니메> 시리즈로 일본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일본을 주요 무대로 삼은 <더 울버린>은 관점에 따라선 마블의 일본 공략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이 영화는 기존의 국내 깡패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서양 슈퍼히어로의 화려한 SF 액션을 기대했던 팬들에겐 다소 실망스럽게 다가온 부분들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왜색이 짙다’는 말이 이미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돌았고,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도 같은 말들을 많이 했다. 야쿠자들과 일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며 사무라이 액션을 선보이는 울버린은 기존 울버린 원작 만화의 세계관에 익숙지 않은 관객에겐 꽤나 혼란스러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마블은 예전부터 일본 문화와 일본 배경의 이야기, 일본 캐릭터에 개방적이었다. 그것은 동양 캐릭터들 전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언맨이든 헐크든 꼭 동양 캐릭터들이 한둘씩은 들어간다. 특별히 헐크의 경우에는 헐크를 돕는 또 다른 천재 슈퍼히어로 중의 하나로 ‘아마데우스 조’라고 하는 한국계 소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양에 대한 호의는 좋으나 우리 입장에선 때론 일본에 대한 미화가 거부감이 드는 부분도 종종 있을 수 있다. 특히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도 원작 만화에서 종종 발견되는 문제점들이다. 마블이 어떤 악의를 갖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관습처럼 해오던 표기라 그들로서도 난감한 부분이라 보여지지만 걸핏하면 보이는 마블 만화에서의 ‘일본해’ 표기는 비교적 자주 보이는, 그러나 한국인으로서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아이언맨 3>의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처럼 <더 울버린>의 경우도 주연 배우인 휴 잭맨의 명성이 영화의 흥행에 큰 부분이었다. 두 배우 모두 방한해서 국내 팬들과 만남을 가졌는데 영화 개봉 이상의 이슈가 되었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니지만 한국 배우 이병헌이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모은 <지아이 조 2>와 <레드 2>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아이 조 2>는 원작 자체를 논한다면 만화 원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영화. 어쨌든 과거엔 마블에서 연재했고, 최근엔 IDW에서 연재되고 있는 인기 만화인 것은 사실이다. <레드 2> 같은 경우는 전작인 <레드> 때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원작 만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만화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영화다. 적어도 전편인 <레드>가 원작 만화의 줄거리와 설정을 약간은 갖고 있던 데 반해서 <레드 2>는 전편 <레드> 자체에 뼈대를 둔 영화가 되었다.
 
<킥 애스 2>는 개봉 전에 주연 배우인 짐 캐리가 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이슈를 모았다. 원작자인 마크 밀러는 폭력의 비참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반박했다. 어쨌든 이 영화는 그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들보다도 가장 최근에 출판된 원작 만화에 바탕한 영화이며, 또한 가장 원작 만화에 충실한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영화 역시도 로다쥬나 휴잭맨처럼 주연 배우인 클로이 모레츠의 성장에 대한 관심이 또한 이슈가 되고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아이언맨 3>를 시작으로 <토르 다크 월드>로 2013년 슈퍼히어로 영화 행진의 시작과 끝을 찍을 예정이다. 비교적 조용한 DC 계열과 달리 마블 계열은 연일 차기작들 소식을 내보내며 팬들의 관심의 끈을 놓아주지 않는 편이다. <어벤저스 2>와 <가디언즈 오브 유니버스> 등 후속작에 대한 관심은 마블 영화들을 마치 제목만 다른 시리즈물 처럼 여기게 만들어, 결국 통합된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기 위해서라면 마블 영화들을 모두 소비해야 하게 만들어 두었다.
 
기존에 마블 만화의 경우에 연일 거대 이벤트를 터뜨리며 출판되는 수많은 만화 타이틀들을 최대한 소비하도록 독자들을 유도했고, 스토리를 따라가기 위해서 책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이런 방식이 점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곳곳에서 푸념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영화에 있어서도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형성은 팬들에게 즐거움인 동시에 결국은 마블 유니버스 영화 전부를 다 봐야하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2013년 극장가는 연일 터져나오는 블록버스터 영화들로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재미있는 SF 영화들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다 챙겨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 그저 아쉽기만 할 뿐이다. 이 속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꾸준히 그들만의 생존 법칙을 개발해 가며 늘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기 버라이어티 쇼인 <런닝맨> 멤버들이 어벤저스 특집을 할 때는 그 낯설던 미국 만화 캐릭터들이 이젠 이렇게 친숙하게 재탄생할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론 만화 원작도 좋고 다 좋지만 슈퍼히어로 만화 팬으로서 이 영화들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여전히 정정하신 스탠 리 옹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는 것. 슈퍼히어로 만화들을 탐독하다보면 영화는 이들 만화들에 바치는 헌정이요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퀄러티야 어떻든 오랜 역사를 이어온 히어로 만화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작품이라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