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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만화규장각 100호 특집] 만화 100년, 만화가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 만화진흥법 추진과 그 이후의 과제

만화진흥법(정식 법안 명은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2011년 6월 8일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의 대표발의를 통해 상정되었다. 현재(2011년 11월 24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가 나왔고, 소관 위원회를 통과하면 내용을 심사해 본회의에 간다. 등산으로 치면, 대략 베이스캠프를 떠난 셈이다.

2011-11-28 박인하
만화진흥법(정식 법안 명은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2011년 6월 8일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의 대표발의를 통해 상정되었다. 현재(2011년 11월 24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가 나왔고, 소관 위원회를 통과하면 내용을 심사해 본회의에 간다. 등산으로 치면, 대략 베이스캠프를 떠난 셈이다.
 
만화계에서는 지지서명이 한창이다. 좋은 일이니 일단 지지서명을 하는 분위기다. (나도 했다.) 큰 틀에서 만화진흥을 위한 법안이 만들어지고, 이 법안에 의거해 다양한 진흥정책이 진행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보통 이런 의견을 ‘원론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한다. 이 원론적 동의 안에는 다양한 입장과 태도가 들어있다. 그런데 ‘만화진흥’이란 거대한 상징 앞에서 다양한 입장과 태도는 갈 길을 잃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평범한 보통 사람(나를 포함해서)들은 어떤 법이 내 삶에 아주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산다.
 

 
  
  
  
  
  
  
  
  
  
  
  
  
  
  
     
만화진흥법은 무엇을 하기 위한 법인가?
   
만화진흥법=만화를 진흥하기 위한 법=만화에 좋은 일(아닐까?) 정도의 느낌이다. 그래서 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법안은, 만화진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법안 원문을 보면, 첫 장에 꼼꼼하게 제안이유와 요약이 적혀있다. 제안이유, 전문 인용한다.
 
한국만화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면서 어린이를 포함하여 모든 연령층에서 고른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서 강력한 캐릭터성과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오늘날에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연극, 뮤지컬, 캐릭터, 팬시산업과 같은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 원작을 제공하는 뿌리 산업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음.
 
더욱이 21세기에 들어서는 인터넷과 결합하여 세계최고 수준의 웹툰 문화를 탄생시켰고, 스마트 기기를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 시대에도 강력한 문화콘텐츠로 세계시장에서 한국만화의 위상을 떨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음.
 
그러나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미디어 융합 환경에서 만화창작자 및 만화사업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법적?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고 만화산업의 실질적인 진흥을 이루기에는 정부의 지원이 매우 부족한 실정임.
 
이에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만화가 문화콘텐츠 시대의 첨병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관련 산업의 확대를 통해 미래 문화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함
 
핵심은 마지막 문단이다. “문화콘텐츠 시대의 첨병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관련 산업의 확대”다. 짧게 정리하면, 만화진흥법의 핵심 목적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와 “관련산업의 확대”다. 관련산업은 무엇일까? 아마도 만화산업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본문에 규정이 있다. (제2조 6항) “만화산업”이란 만화 및 만화상품(만화를 이용하여 경제적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유·무형의 재화·서비스 및 그의 복합체를 말한다.)의 창작·제작·배급·대여·판매·활용·수출·수입 등에 관련된 산업을 말한다.
 
창작자의 권리보호와 만화산업의 확대를 위해 만화진흥법은 (1)만화창작 및 만화산업진흥 (2)만화진흥위원회와 만화저작권보호위원회의 설립 (3)만화발전기금의 조성과 집행 (4)한국만화자료보존을 위한 한국만화자료원의 설립과 운영을 규정한다.
 
만화창작 및 만화산업진흥을 위해 만화가, 만화사업자, 관련 단체 등에 자금지원 및 융자를 할 수 있고, 인력양성을 위해 대학이나 전문기관을 양성기관으로 지정하고 교육이나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할 수 있고, 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거나 출연, 보조할 수 있고, 유통활성화를 위해 불법복제나 유통방지를 위한 교육이나 보호노력을 해야 하고, 수출을 위한 전시회 개최, 마케팅홍보 활동, 투자유치, 정보제공 등의 사업에 대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고, 만화진흥단지를 지정하거나 조성할 수 있다. 만화진흥법이 재정될 경우, 정부는 법에서 정한 (1)자금지원 (2)인력양성 (3)기술개발 (4)유통활성화 (5)해외진출지원 (5)만화진흥단지 조성을 시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을 시행하고, 당연히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법안은 친절하게 제정안에 따른 추가 재정소요도 파악한다. 첨부된 재정소요 의견에 따르면, 연도별 사업비를 영화진흥위원회의 준해 계산했다. (전체 산업규모와 비교해 진흥위원회의 인력규모를 뽑고, 그에 따라 인력 대비 사업집행을 산출했다.) 연도별 상업비 소요액의 경우 2012년 71억, 2013년 75억, 2014년 79억, 2015년 84억, 2016년 88억이다. 만화진흥위원회의 운영경비(인건비 및 기본경비 등)를 제외한 순수 사업비 규모만 1년에 약 70~80억 규모가 된다는 말이다.
 

 
 
 
 
 
 
 
 
 
 
만화진흥법으로 만화계에 더 투자되는 예산은 얼마? 
   
그런데 1년 기준 사업비 예산, 그러니까 자금지원이나 인력양성, 기술개발, 유통활성화, 해외진출지원을 다 포괄한 사업비가 70~80억인데, 여기서 기존 만화관련 사업비(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투입된 국고기준)은 2011년 사업기준 38억 9천만원이므로 이 예산을 빼면 만화진흥법이 통과되고, 진흥위원회가 구성되면 만화계에 새롭게 투자될 예산은 일년 기준 약 30~40억선이다. 대략 기존 사업비에서 약 2배 규모가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국책사업을 비교해 보자. (기왕이면 좀 큰 걸로 보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대표적 사업이었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예산은, 6조6664억이다. 6억도, 60억도, 600억도, 6000억도 아닌 6조다. 뭔가 속이 쓰리다. 그래도 이건 건설예산이니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11월 24일, 정부는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제2차 콘텐츠산업 진흥위원회’에서 ‘2012년 콘텐츠산업진흥 시행계획’을 심의, 확정했다. 2012년의 전체 콘텐츠산업 관련 정부 예산은 6,595억원이다. 이중 만화예산은 63억원으로 1퍼센트이다. 올해 예산 38억9천에서 62퍼센트나 ‘급증’한 예산인데 전체 콘텐츠산업 예산의 고작 1퍼센트라는 게 씁쓸하다. 적어도 10퍼센트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600억원대로 훌쩍 올라선다.
  
도대체 정부는 어느 콘텐츠에 예산을 지원할까? ‘3D, CG, e러닝, e트레이딩, 스마트 콘텐츠 등’에 618억을 지원한다. (내가 생각하는 만화지원예산 규모와 비슷하다.) 3D 입체영상콘텐츠 전문인력에 60억을 지원한다. 만화예산이랑 비슷한 규모다.
 
다시 만화진흥위원회가 통과되었을 경우 2012년 만화지원예산을 보면 모두 71억원. 정부에서 발표한 2012년 만화지원예산은 63억원. 차이는 8억원이다. 8억원의 차이를 위해 만화진흥법을 통과시키고, 만화진흥위원회를 구성해야 할까? 이게 맞나? 
  
 
예산을 넘어서 연구, 정책, 집행에서의 전문성
  
일단 맞고, 맞아야 한다. 만화진흥법은 단지 예산의 확대를 위한 법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민간기구로 만화진흥위원회의 설립이다. 만화진흥법이 통과되고 만화진흥위원회가 설립되면 그 안에 현장의 목소리를 보다 수월하게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여러 성과를 낳았지만 콘텐츠진흥원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 흩어진 만화지원기능을 통합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며, 현장과 효과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그야말로 ‘스마트’한 조직으로 만화진흥위원회를 재창조해야 한다.
 
정부는 만화진흥법이 통과되면 제3조(기본계획의 수립)에 의거해 “만화창작 및 만화산업을 육성, 지원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어느 내용이 포함되느냐 하면 아래와 같다. 
 
정부는 만화진흥법이 통과되면 제3조(기본계획의 수립)에 의거해 “만화창작 및 만화산업을 육성, 지원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어느 내용이 포함되느냐 하면 아래와 같다. 
 
1. 한국만화 진흥의 기본방향
2. 만화 관련 법령 및 제도의 개선
3. 만화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방안
4. 만화 창작 활성화를 위한 방안
5. 만화 및 만화산업 관련 전문 인력의 양성
6. 만화산업과 관련된 기반 조성
7. 만화산업 및 디지털만화 관련 기술·표준의 개발과 보급
8. 국제협력 및 해외시장 진출
9. 만화 및 만화산업 관련 재원의 확보 및 효율적인 운용방안
10. 기타 만화창작 및 만화산업의 진흥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제대로만 기본계획이 설립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아이디어로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인데, 여기서부터가 향후 과제에 해당된다. 나꼼수식 어법으로 “씨바 닥치고 만진법”을 벗어나, 치밀한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라는 말이다.
 
개인적 판단으로 봤을 때, 만화진흥법의 핵심은 예산의 확보(도 매우 중요하지만)가 아니라 만화진흥위원회와 만화창작 및 만화산업을 육성, 지원하는 기본계획의 설립에 있다. 만화진흥위원회는 분산되어있던 만화진흥기능을 통합하고, 관의 안정감과 민간의 활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기본계획 역시 말 만들기 식, 보여주기 식, 장미빛 블링블링 기본계획을 넘어 만화계가 머리를 맞대고 진짜를 만든다면 한국만화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조심해야 하는 부분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하는 심정으로, 이제 겨우 해당상임위법안심사소위에 넘어간(심의가 끝나면 해당 상임위로 넘어와 의결한 뒤, 본회의 상정하고, 전체 의원이 참여해 표결통과하면 정부로 넘어간다.) 법안을 두고 운용단계에서 걱정을 하는 모습이 쪼잔해 보이지만, 그래도 노파심에 만화진흥법의 핵심을 만화진흥위원회의 설치라고 봤다. 영화진흥위원회를 보더라도 잘 구성된 위원회는 정부나 산업이 하지 못하는 일을, 발빠르고 우직하게 시행한다. 제일 중요한 위치는 위원장이다. 위원장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9조 제1항에 따른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정치에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영진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자리가 있으면 항상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다. 역시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 다음, 기존 기관들과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만화지원기구로는 콘텐츠진흥원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있다. 법안에 설립을 추진한다고 나온 한국만화자료원과 거의 유사한 기능을 하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만화규장각이 있다. 이들과의 한국만화진흥위원회를 어떻게 통합, 조정할 것인가도 법안 통과 이후 과제가 되겠다. 법안 통과가 끝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우리에게 그동안 조직도, 사업도, 예산도 있었다. 그런데 왜 만화진흥법과 만화진흥위원회인가?
 
비유하자면, 조각맞추기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그렇다. 포맷이 아니라 조각맞추기다. 조각맞추기를 통해 효율성이 좋아진다면, 더 좋은 한국만화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비장함을 넘고, 패배감도 넘어서 이제 시작이니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자.
필진이미지

박인하

만화평론가, 서울웹툰아카데미(SWA) 이사장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
前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정책그룹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