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3. 디지털 만화규장각 홈페이지 변천사 중 일부]
다음 주요 변화는 06년 초에 나타났다. 바톤을 물려받은 백수진 편집장(현 자료관리연구팀장)과 만화 언론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며 출범한 ‘만’의 필진들이 결합하며 새로운 틀의 시도가 이뤄졌다. 웹진의 스페셜이 특정 소재에 대한 만화를 가득 추천하고 엮어보는 방식으로 바뀌고, ‘만’의 필진들이 집필을 담당했다. 연재칼럼들 역시 더욱 다양한 형식으로 진화하여, 지역별 소식 말고도 원로작가의 만화역사 회고, 매체이식 산업론 등 특정 세부소재에 대한 전문칼럼이 다시 강조되었다.
‘만’과의 팀워크 덕분에 일반 취재 기사 역시 공급되었다. 이 시기는 스페셜이 추천작 위주로 편성되어, 좀 더 향유문화로서의 만화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09년 무렵부터는 스페셜이 종종 두 가지가 함께 움직였는데, 하나는 작품 소개형, 다른 하나는 만화계의 주요 화두로 이뤄졌다(‘만’이 활동이 멈춘 이후로도 서찬휘씨 등 주요 필진들이 10년 초반까지는 계속 집필을 담당했다). 반면 소재별 묶음 리뷰는 이 시기에 완전히 사라지다시피했고, 자주 업데이트되는 ‘파워리뷰’, ‘독자리뷰’ 코너 등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모습이 11년의 현행 포맷인데, 만화계 화두 또는 흥미로운 소재요소 중심의 스페셜을 외부 전문가에게 기획을 맡기는 게스트에디터 방식이다. 웹진이지만 특집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수시 업데이트가 되고 있는 상태다. 또한 자체 취재기자들이 취재기사들을 생산하고, 칼럼은 여전히 다채로우며(대체로 재미는 떨어지지만), 11년 하반기부터는 팟캐스트 방송 ‘만화만담’의 방송내용을 공급받아 기사를 올리고 있다. 이런 단계까지 진화한 지금, 지령 100호를 맞이하고 있다.
무엇을 잘 해냈는가
규장각 매거진의 큰 미덕은 무게다. 가끔 부침도 있었지만, 웹진 자체가 틀이 안정될 때마다 결국 만화판의 굵직한 화두에 대한 분석을 담아내는 스페셜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지원기관을 발행처로 한다는 점에서 서로 비견될 수 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웹진 ‘이미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전문가 대담 및 심층 분석의 틀을 버리고 화제 작품이나 장르의 가벼운 홍보 수준 기사로 가버린 것과 달리, 규장각매거진은 만화판에 대한 진지한 토픽들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가끔(아니 자주) 만화업계인, 그 중에서도 다시금 일부에게만 관심 있을 내용이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부적 전문 내용을 담아내도 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중요한 업적이다.
개인적으로 또 다른 중요한 미덕으로 꼽는 것은, 웹진을 위한 웹진이 아니라 한국만화 정보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는 관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는 리뷰들의 기사 활용, 수년 전부터는 칼럼의 총서 단행본 출판 등 해당 호를 채우고 망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자료 수집과 축적의 일부임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그림 4. 디지털 만화규장각 매거진 페이지] 규장각 프로젝트 기획에 처음 참여했을 때부터 내내, 필자는 여전히 한국만화판에 가장 부족한 것은 기록과 축적이라고 본다. 난개발 구멍가게식 유통산업구조에 워낙 오래 시달리기도 했고, 안 그래도 기록문화가 약한 사회에서 하위문화로 자리매김하다보니 더욱 자료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다만 자료는 쌓아놓는다고 만사형통이 아니라 그것에서 현재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끌어내야 비로소 낭비가 아니게 되는데, 그곳에 바로 매거진이 놓여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미덕은 맨 처음에 언급한, 바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즈>에 실렸던 작가분석론들, <코코리뷰>의 준학술적 에세이들, <계간만화>에 실린 업계진단들, ‘두고보자’의 저돌적 문제제기들, ‘올쏘’나 ‘만’의 향유문화에 대한 디테일 같은 뚜렷한 업적들은 규장각매거진보다 나았던 지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지면들이 지속성을 잃고 과거형이 되어버린 반면, 매거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중요한 업계 화두, 세부 분야의 심층적 논의, 수요는 부족하지만 기록해 둬야할 전문적 내용들에 소중한 공간을 할애하며 이전에 제시한 담론들을 계속 이어갈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들
물론, 규장각매거진에 대해 아쉬운 점들 또한 적지 않다. 우선 가장 뚜렷한 문제는, 유포 범위가 무척 좁다는 것이다.
내용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측면을 꼬집자는 것이 아니다. 만화판에 멀게든 가깝게든 관심 가지고 있고 분명히 해당 기사 내용을 읽어보고자 할 만한 잠재적 독자들과의 접촉점조차 부족하다는 것이다. 온라인만화시장 현황이나 작가들의 낮은 수입평균에 대한 자료분석 스페셜이 루리웹이나 디씨만갤 같은 곳에서 무한 쳇바퀴 논쟁을 거듭하는 이들에게 읽힌다면, 조금 더 나은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특정 소재 작품들에 대한 리뷰 묶음이 더 쉽게 누구나 다시 찾아볼 수 있다면, 뭇 언론지면에서 억지로 쓴 듯한 명절추천만화코너류 기사들에 좀 더 알찬 내용이 담길 것이다. 만화의 미학적 성취과정이나 역사에 대한 칼럼들이 좀 더 널리 읽히면, 핍박만 당하는 만화에 드디어 볕든다는 식의 이상한 보도들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원래 매거진은 만화규장각의 일환이 된 이래로, 데이터베이스라는 접근하기 까다로운 것을 사람들에게 더 잘 접하게 만들기 위한 인터페이스다. 그렇다면 다시금, 매거진의 내용을 그간 변모한 미디어 사용 환경에 더욱 효과적이도록 더욱 인터페이스를 추가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실시간 홍보/소통, 포털사이트에 기사 링크 공급 같은 적극적 전략은 필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당장 명료하게 링크를 뽑아낼 수 있는 퍼마링크, 읽다가 단번에 다른 곳에 소개할 수 있는 소셜 공유나 메일링 버튼 같은 기본적인 기술적 요소조차 아직 갈 길이 멀다.
둘째는 검색의 정비다. 규장각사업이 보여준 놀라운 일관성과 지속성에 비해서, 전산시스템은 사업행정상의 부침에 따라서 여러 번 업체와 구축틀이 바뀐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당장 매거진의 그간 콘텐츠가 분명 그 자리에 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검색되지 않은 설계에러가 발생하고 있다. 01년~04년 무렵 매거진 지면을 통해 선보였던 만화 작품들은 아예 어떤 식으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만약 공개기한의 계약상 문제라면 그래도 그런 작품이 게재된 바 있었다는 사실은 기록이 남아있어야 했다. 또한 기사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날짜별, 호수별 말고 분류별로 검색하는 것은 최근 일부 연재칼럼 정도를 제외하고는 문제가 많다.
셋째는 역시, 규장각 데이터를 좀 더 적극적으로 기사로 써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뷰 콘텐츠의 기사 활용 같은 선에 머물 것이 아니라, 등록된 데이터로 여러 통계를 돌려서 기사화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출판사나 장르 등의 분포 현황에서 보는 진기명기, 특정 작가의 작품성향 흐름, 아니면 그저 분류별 출간종수 추이 같은 산업적 내용만 보여줘도 흥미롭다. 그런 것을 격년으로 연감 만들 때에만 쓸 것이 아니라, 수시로 매거진의 기본 콘텐츠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덤으로 한가지를 더 꼽는다면 역시, 무게감과 재미를 같이 지닌 글들을 좀 더 많이 유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지금껏 짧지 않은 기간동안 무겁고 길고 재미없는 글들을 적지 않게 기고한 본 필자가 가장 먼저 반성해야할 지점이 아닐까 한다.
다음 100개 호를 위하여
다시 말해, 규장각매거진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지면을 가꿔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접촉면을 늘리고, 검색과 축적을 정비하고, 더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지니고 있는 장점인 다양하고 전문적인 칼럼, 전문성을 지닌 외부 기획진이 만드는 특집코너에 대한 신뢰 등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더 재미도 챙겨야 한다. 크고 작은 난관을 넘어서 여기까지 온 좋은 “만화에 관한 잡지”가 미덕을 보존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진화하여 건승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