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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올해의 만화 수상작들을 돌아보는 관전 포인트 세 가지

올 한 해 우리를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며 응원과 위로가 되었던 작품을 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해 봅니다.

2022-12-14 최윤주

2022, 올해의 만화 수상작들을 돌아보는 관전 포인트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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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한 해를 기념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그중 하나가 시상식일 것이다. 연예 대상과 가요대상, 각종 영화상 등 연말을 맞아 쏟아지는 수상작과 수상자들을 만나는 일은, 안방극장이라는 말이 어색해진 요즘에도 여전히 축제처럼 흥겨운 일이다. 화려한 시상식을 보는 재미도 재미겠지만, 올 한 해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하며 응원과 위로가 되었던 작품을 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 자체가 작지 않은 기쁨이기 때문일 것이다.

슬금슬금 다른 분야의 수상작들이 하나둘 발표되는 요즘, 만화 수상작들을 돌아보며 만화계의 한 해를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대표적인 만화상인 부천만화대상오늘의 우리만화상은 이미 여름과 가을에 발표되어 각 계절을 빛내 주었지만, 연말을 맞아 되돌아보는 일이 또 다른 즐거움이 되어줄 것이다. 세 가지 관전 포인트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논의에 앞서 일러두자면, 부천만화대상의 대상은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가게>가 선정되었다. 신인 만화상으로는 이명재 작가의 <위아더좀비>, 해외작품상으로는 <원자폭탄>(디디에 알칸트, 로랑 프레데릭-볼레, 드니 로디에/곽지원 옮김)이 뽑혔다. 한편 5개의 수상작을 선발하는 오늘의 우리만화는 <숲속의 담>(다홍), <좋아하면 울리는>(천계영), <집이 없어>(와난), <신의 태궁>(해소금), <위아더좀비>(이명재)에게 수여됐다.


동양 판타지 수상작들

부천만화대상과 오늘의 우리만화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공통점 한 가지는 각각의 수상작인 <미래의 골동품가게><신의 태궁> 모두 동양 판타지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공포 장르를 택한 <미래의 골동품가게>와 순정한 로맨스를 다룬 <신의 태궁>은 아주 다른 이야기를 다른 분위기로 그려냈으나, 한국의 무속신앙을 소재로 했다는 교집합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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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골동품 가게>, 구아진 (출처_네이버웹툰)

<미래의 골동품가게>는 무속인 소녀 미래가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백면을 상대로 싸워나가는 과정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최근의 웹툰 시장에서 비교적 보기 드문 공포 장르라는 점과 무속신앙을 소재로 했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부천만화대상 선정위원회는 한국 설화와 민담 등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점과 작가의 철저한 자료조사가 돋보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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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태궁>. cjst**** (출처_네이버웹툰)

신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인과 그를 사랑한 도깨비라는 토속적인 모티브를 토대로 그려낸 작품” <신의 태궁> 역시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서정적인 분위기와 그림체로 한국만의 독특한 소재를 다룬 많은 작품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이었다. 공통적으로 한국 무속신앙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줄거리와 연출에 있어 참신한 시도를 보여준 점이 높게 평가받은 셈이다.

확실히 서양의 세계관을 취하는 판타지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와중에 이러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돋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단지 흔하지 않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소재를 낭비하지 않는 완성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독자와 심사위원 모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주류를 거스르면서도 자기 길을 잃지 않고 일궈낸 뚝심 있는 두 작품이 같은 해에 인정받은 것은, 기분 좋으면서도 고무적인 우연이라 할 수 있다.


최연소 수상작과 최장수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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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더좀비>, 이명재 (출처_네이버웹툰)

또 다른 관전 포인트 한 가지는 신인 이명재 작가의 수상이다. 2021년 연재를 시작한 <위아더좀비>가 부천만화대상 신인상과 오늘의 우리만화상 모두를 수상했다. 신인 작가로서 연재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받았으니 이번 수상 작가 중 활동기간 면에서 최연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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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울리는>. 천계영 (출처_카카오웹툰)

한편 <좋아하면 울리는>의 천계영 작가는 올해로 3번째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지난 수상작인 <오디션><하이힐을 신은 소녀>, 그리고 이번 <좋아하면 울리는>까지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활발히 활동해온, 이번 수상자 중 최장수라 말할 수 있는 작가다. 그가 오늘의 우리만화상과 함께 받은 한국만화가협회 협회장상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하기 위함일 것이다.

대중들에게 작품을 내보이는 방법이 하나인 것도 아닐뿐더러, 반드시 공모전 등 특정 경로를 통해서만 작가로서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 사실 활동 연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굳이 언급하는 것은 이제 막 작가로서의 여정을 출발한 이명재 작가와 이제는 걸어갈 날보다 걸어온 날이 많은 천계영 작가를 대척점의 자리에, 그럼으로써 같은 선상에 세워 조명하기 위해서다. 활동기간의 측면에서는 양극에 있는 두 작가가 같은 단상 위에 서서 상을 받는 것은, 신인 만화가와 원로 만화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전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풍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우리만화상 특별 언급 작품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관전 포인트는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들과 함께 거론된 심사위원 특별 언급 작품이다. 특별 언급 작품은 이번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되진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종 후보에 올라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애태운, 아쉬운 작품들을 모아 소개한 것이다. <기프트>(정이리이리), <도박중독자의 가족>(이하진), <붉고 푸른 눈>(김민희), <양아치의 스피치>(네온비, 김인정), <우리의 제철은 지금>(섬멍), 총 다섯 작품이 언급되었다.

<기프트>는 선수의 재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가 가미된 스포츠만화이고,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주식 중독에 빠진 가족 구성원으로 인해 벼랑까지 내몰렸던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그려낸 작품이다. <붉고 푸른 눈>우리 사회에 분명하게 자리하고 있는 복잡다단한 정서와 일련의 혐오 심리, 편 가르기, 골목대장 놀이 같은 집단 내부 정치의 면면을 마법의 속성에 빗대어풍자한 작품이다. <양아치의 스피치><우리의 제철>은 각각 청소년의 언어생활과 여성 2인 가족의 삶을 길지 않은 분량에 섬세히 담아낸 작품들이다.

어떤 작품에 상을 준다는 것은 하나의 축제처럼 신나고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늘 아쉬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 아쉬움이란 미처 상을 받지 못한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주는 사람은 주는 사람대로 건넬 수 있는 상이 한정되어 있음이 못내 아쉬울 것이고, 작품에 커다란 애정을 품은 작가와 독자들은 그 나름대로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상을 받은 작품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져 다른 작품들은 그림자 속에서 더욱 외면당하기도 하니 타당한 섭섭함이라 할 수 있다. 특별 언급 작품들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을 받은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것은 부족함이 아닌 다름이다. “낙선하게 되어 참 안타까운 작품이라는 평대로, 애정과 인정을 받기에 수상작들과 비교해도 모자람 없는 작품들이 지나치지 않고 언급되었다는 것이 이번 수상에 있어 주목할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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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만화평론가
2021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2019 만화평론공모전 신인부문 대상, 2020 만화평론공모전 기성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