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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3D 배경과 소품 표현 기술과 활용: 역사, 현황, 전망

웹툰 제작에서 활용되고 있는 3D, 그 역사와 함께 앞으로를 전망해 보자

2023-05-22 조익상

1. 들어가며


“3D로 하면 나의 재능을 뛰어넘어서 더 좋은 그림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게 주된 거였고 그 다음은 전반적으로 만화든 영화든 비주얼적인 부분들이 질적으로도 높아지지만 양적으로도 굉장히 많아지잖아요. 지금 주위에 보이는 이미지들이. 그에 비해서 만화가 연재되는 속도가…”

“3D를 할 때 가장 장점은 그거에요, 배경이든 인물이든 한번만 만들어 놓으면 수만번 렌더링을 해서 앵글만 바꿔서 쓸 수 있으니까, 처음에 모델링 할 때 준비과정을 오래 했어요.”

- 천계영 작가 인터뷰(1) 


[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 ]


요즘 나오는 웹툰들은 대부분 3D 배경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작화를 자랑하는 <화산귀환>의 화산파 경내는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단순한 그림체인 <마루는 강쥐>의 마루네 집과 동네도 3D 배경이죠. 저는 이처럼 웹툰에서 3D 배경이 널리 활용되는 상황을 크게 두 가지 이유의 종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3D 배경을 통해 1) 만화가 연재되는 속도에 맞는 2) 더 좋은 그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위 인터뷰에서 천계영 작가가 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짚고 있습니다. 다만, “나의 재능을 뛰어넘어서 더 좋은 그림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대목은 따로 조금 따져보아야 합니다. 가령 작화력이 매우 뛰어난 작가는 3D 툴로는 그만한 혹은 그보다 뛰어난 작화를 구현해 내기 어려울 겁니다. 반대로 저처럼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3D 툴은 분명 재능을 뛰어넘은 좋은 그림을 뽑아낼 방법이 되겠지요. 저는 천계영 작가의 <언플러그드 보이>나 <오디션> 등의 예전 작화를 무척 좋아하기에 3D 툴을 활용하기 시작한 후의 그림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 작가가 손목에 무리가 많이 누적된 상황에서 3D 툴을 선택한 만큼, ‘현재’의 한계를 돌파해 구현해낸 그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만화가 연재되는 속도’(때로는 작가의 환경과 조건)를 우선 고려하여, 그에 맞춰 ‘좋은 그림’을 뽑아내는 효율적인 방법이 3D 툴이라는 것을 짚어두고 싶습니다.

이처럼 만화가 연재되는 속도에 맞는 더 좋은 그림을 고려할 때, 3D 툴 활용은 특히 빈출하는 객체(object)를 그리는 데 빛을 발휘합니다. “한번만 만들어 놓으면 수만번 렌더링을 해서 앵글만 바꿔서 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별로 나오지도 않는 단발성 엑스트라나 서너 칸의 무대가 되는 배경 등은 모델링하는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는 직접 그리는 편이 효율이 좋습니다. 만화 작품의 분량도 효율과 관련이 깊습니다. 한번 만들어둔 3D 배경을 100화짜리에 쓰는 것과 1~2화짜리 단편에 쓰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후자라면 모델링 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그때그때 그리는 편이 속도 면에서도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3D 툴의 활용은 만능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조건이 만족될 때에 무척 효과적인 만화 제작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하여 그간의 3D 툴 활용사를 간략히 정리해 봅니다.


2. 웹툰 배경에서 3D 툴 활용 역사

웹툰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3D 툴을 활용한 작품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웹툰이 무엇이고 그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를 우선 짚어야겠습니다만(2), 생략하고 웹툰을 ‘웹툰 플랫폼에 연재된 장편 세로스크롤 디지털 만화’로 한정해 봅시다. 그러면 웹툰계 삼엽충이라 불리는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2003년 10월)를 웹툰의 시작점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3D 툴을 배경에 활용한 최초의 작품이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바로 2006년 5월에 연재를 시작한 <로맨스 킬러>입니다. 이 작품을 준비하며 강도하 작가는 3D 프로그램으로 도시 배경 전체를 구현했고, 지금은 사라진 후기에 모델링 추출 이미지를 소개해 두기도 했습니다(3). 다만 이 작품 속에 활용된 배경은 3D 프로그램에서 직접 추출된 이미지를 활용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즘 웹툰의 3D 배경과는 다른 방식의 리터치 흔적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웹툰에서 3D 툴을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아래 5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방식이 다양한 구도의 연출 측면에서 큰 도움을 준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각 방식을 살펴 봅시다.


1. 배경 구도와 인체 비율을 잡기 위한 보조 툴로 활용

2. 배경 및 소품 트레이싱을 위한 보조 툴로 활용

3. 선과 그림자 중심으로 출력하여 클립이나 포토샵에서 채색. 주로 배경에 활용.

4. 선과 면을 포함한 모델링 전체를 배경(및 소품)으로 활용

5. (매우 드물게) 인체 모델링까지 그대로 활용


요즘 웹툰의 3D 배경은 4번 방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3D 툴에서 출력한 이미지를 웹툰 칸에 붙여 넣는 것이지요. 이때 3D 툴 상에서 그림자나 기타 효과를 따로 출력해 클립스튜디오와 같은 웹툰 제작 툴에서 레이어로 활용하기도 합니다만, 핵심은 3D 툴에서 출력된 ‘선과 면’을 포함한 모델링 전체를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가장 시간을 덜 들이는 방식이죠. 하지만 초기의 활용 방식은 1~3이 많았습니다. 1과 2는 작가가 직접 선을 긋는다는 면에서, 3D 툴을 보조적으로만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작품만 봐서는 3D 툴을 썼는지 판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역시 판별하기는 어렵지만, <로맨스 킬러>에서 활용된 방식으로 추측되는 것은 3번 방식입니다. 선과 그림자 정도만 가져오고 채색은 다른 객체들과 같은 자리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작화의 통일성을 유지하기에 좋고 노하우만 갖추고 있다면 시간도 크게 걸리지 않습니다. 3D 배경이 보여주는 빈틈없이 정확한 선과 면과는 달리, 약간의 균열이나 변색 등 손맛을 추가하기도 좋습니다. 그런 만큼 인물과 배경 사이에서 위화감을 줄이고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로맨스 킬러>는 작가가 후기에서 밝히지 않았다면 3D 작업을 눈치채기 어려울만큼 위화감 없는 배경을 잘 구현한 작품입니다.

<로맨스 킬러> 이후로 2011년까지 3D 배경을 활용한 대표적인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해당 리스트는 3D 배경을 활용한 모든 작품을 담았다기보다는 3~5 방식으로 3D 배경을 활용한 초창기 작품의 예시에 가깝습니다.


* 2006.5 강도하, 로맨스 킬러(다음만화속세상) – 배경 도시 공간을 구현. 툴 확인 어려움. 3.

* (2007.8 천계영, 하이힐을 신은 소녀(윙크) _3ds max) *출판만화지만 5의 예시.

* 2007.12 손제호, 이광수, 노블레스(네이버웹툰)_배경 일부 스케치업 추측_3과 4 혼용.

* 2008.2 지강민, 와라 편의점(네이버웹툰) – 편의점 및 소품 일부 스케치업_3과 4 혼용.

* 2008.12 팀겟네임, 우월한 하루(네이버웹툰) - 배경, 소품 일부 스케치업 추측_3과 4 혼용.


무척 이른 시기에 3D 배경을 활용했던 위 작품들에 이어 2009년부터는 4번 방식을 주로 활용하는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이종범 작가와 호랑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두 작가가 만화에서 3D 배경을 활용하는 방식의 표준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호랑 작가는 3D뿐만 아니라 그 이후 더 다양한 가능성을 구현했고, 이종범 작가는 널리 활용 가능한 표준 활용법을 정립했고 스케치업 교육에도 나섰습니다. <구름의 노래>는 지금 봐도 엄청난 퀄리티의 배경이 놀라운 작품이고, <닥터 프로스트>는 만화에 ‘어울리는’ 배경에 대한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라 하겠습니다.


* 2009.4 호랑, 구름의 노래(네이버웹툰)_3ds max

* 2009.7 이종범, 투자의 여왕(스투닷컴)_스케치업

* 2011.2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네이버웹툰)_스케치업

* 2011.7 호랑, 옥수역 귀신(네이버웹툰)_3ds max 등.


두 작가 모두 4번 방식으로 전체 모델링을 만화에서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다만 활용하는 툴이 다릅니다. 호랑 작가는 3D 스튜디오 맥스(3ds max)를, 이종범 작가는 스케치업을 활용합니다. 3ds max는 마야(maya)나 시네마4D와 함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3d 시각화 작업을 위한 무척 강력한 툴로 전문적으로 쓰입니다. 전문적인만큼 무겁고 어렵고 비싼 편입니다. 잘 쓰면 호랑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듯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들여야 하는 자원이 꽤 부담스럽죠. 반면 스케치업은 기본적으로 건축을 위한 3D 모델링 프로그램인데 가볍고 배우기 쉽습니다. 그리고 구글이 서비스하며 처음 대중화되었을 때만 해도 무료로 거의 제한 없는 활용이 가능했습니다.

스케치업은 2007년 1월부터 무료로 배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지만, $500 가량의 가격표가 붙어있었기에 비전문가가 편히 시도해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구글이 스케치업 개발사(@Last software)를 인수하면서 전격적으로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하며 스케치업은 가장 유명한 무료 3D 모델링 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6월에 현재의 스케치업 제작사인 Trimble에 인수되기 전까지 스케치업 6, 7, 8 버전은 별도의 유료 버전인 PRO가 있었지만, 계속 무료로 거의 모든 기능이 활용 가능했습니다. Trimble도 인수 후 2017년까지는 스케치업 Make라는 이름으로 무료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그러니 약 10년간, 스케치업은 무료 프로그램이었던 셈이죠.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해, 현재는 스케치업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3D 배경을 위한 툴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스케치업은 엄청난 속도로 만화계에 뿌리내렸습니다. 大스케치업 시대라 불러도 될만큼 웹툰 제작에 빼놓을 수 없는 도구가 되었죠. 청강대 등의 만화과를 설치한 대학에 스케치업을 가르치는 정규강좌가 개설되고, SWA나 YLAB 아카데미와 같은 전문 교육기관에서도 역시 스케치업 강좌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영상진흥원에서도 기존작가 재교육 및 신인 작가 교육을 위한 K-Comics 아카데미에서 2013년부터 스케치업 강의를 열었습니다.(그 강사가 바로 이종범 작가였습니다.) 이처럼 교육 영역에서 특정 프로그램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은 그 프로그램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웹툰 제작의 기본 툴로 여겨지는 클립스튜디오만큼이나,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것이죠.


3. 웹툰의 3D 툴 현황 – 스케치업이 정점을 찍고 저물어가는 시기

스케치업이 그만큼 퍼지게 된 데에는 가격과 용이성 외에도 큰 이유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비실사적 렌더링이라고 불리는 스케치업의 선과 면 처리 방식입니다. “3D 그래픽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쉽게 구현되는 실사에 대한 출력을 빛의 굴절, 반사 등을 조작하여 2D 그래픽스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기법(4)”으로 설명되는 이 방식은, 실사적 렌더링과 달리 ‘외곽선’을 긋는 것으로 주로 구현됩니다. 흔히 카툰 렌더링이라고 부르는 방식이 이와 유사합니다. 3D 객체에 외곽선을 부여하는 것을 통해 3D 그래픽 이미지와 2D 그래픽 이미지 사이의 이질감을 줄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스케치업은 기본 모드가 바로 이 비실사적 렌더링입니다. 그래서 이종범 작가나 조지훈 작가 등의 선구자들은 스케치업을 만화 배경용으로 추천하며 ‘만화 그림에 최적화되어’ 있고 ‘만화 배경에 어울리는 선 효과’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습니다(5)


[ 비실사적(왼쪽 큰 그림) 렌더링과 실사적(우하단 작은 그림) 렌더링. 출처: 스케치업 공식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X4sJW_9E4VQ ]


두 번째는 ‘무료’ 및 ‘용이성’과 연결되는 강점인데요, 그로 인해 유저가 많아졌고 그러니만큼 소재의 공유도 활발해졌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해 유·무료로 구해 쓸 수 있는 3D 배경이나 소품이 많습니다. 특히 용이성은 제작이 간편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운 받은 배경을 활용하는 데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쉽게 제작할 수 있다고 해도, 3D 모델링은 시간을 꽤 잡아먹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필요한 소재를 누군가 인터넷 상에 올려놓았다면, 그만큼 반가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그 소재가 내 능력으로는 만들기 어려울 만큼 잘 만든 객체라면, 시간과 더불어 질도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입니다. 스케치업과 함께 3D 모델링 공유와 구입, 주문 제작 등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제는 본인 작품의 배경을 ‘모두 직접 제작’하는 작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텀블벅이나 3D 웨어하우스, Acon 등의 플랫폼에서는 만화를 위한 3D 모델링 전문 제작자들이 만화 산업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6)

이러한 두 강점으로 인해 스케치업 유료버전의 유의미한 기능 분화가 시작된 2013년은 물론, 마지막 무료 설치 버전인 스케치업 Make 2017 이후로도 스케치업은 여전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Trimble이 2020년부터 영구버전을 단종시키고 구독형 모델로 단일화시키면서, 연간 구독료가 $300 정도라 조금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비실사 렌더링을 스케치업만큼 구현하는, 혹은 그만큼 쉽지는 않더라도 구현할 수 있는 다른 툴들이 무료 및 낮은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어서 대안도 생겼습니다. 스냅툰 같은 저렴한 프로그램이 스케치업 파일의 확장자인 skp 파일도 지원하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스케치업 모델링을 웹툰 배경용으로 활용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스케치업이 배경 툴로 강세인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5월 2일 ‘디지털 시대 웹툰 제작과 기술포럼’ 발표(7)를 준비하며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배경 작업에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3D 관련툴을 ‘하나만’ 선택하라고 했을 때 82.8%가 스케치업을 선택했습니다.(총 응답자 58명) 하지만 소품을 위한 툴은 이미 스케치업의 파이가 많이 잠식당했습니다. 현재 3d 소품 작업에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3D 관련툴을 ‘하나만’ 선택하라는 질문에 스케치업을 선택한 응답자는 50%였습니다. 소품은 클립스튜디오의 기본 3D 기능을 활용해 쓰는 편이 용이하기도 하거니와, 블렌더와 같은 강력한 무료 툴의 활용도도 무척 높아졌거든요. 제가 가르쳤던 어느 만화가 지망생은, 근 몇 년간 블렌더로 제작한 칼 등의 모델링을 이런저런 플랫폼에서 판매하다 만화가의 꿈을 거의 접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수입이 괜찮다는 거죠.

무엇보다 가까운 장래 스케치업 독점 시대를 위협할 것은 VR과 AR 기술이나 AI 이미지 기술입니다. 그중에서도 AI 이미지 기술에 대해서는 배경이나 소품과 같은 부분에 국한된 논의가 아니기 때문에 다음 지면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배경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불러올 기술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4. 나가며

3D 기술을 활용한 만화 창작의 요점은 만화가 연재되는 속도에 맞는 더 좋은 그림이었다고 서두에서 논한 바 있습니다. 이는 AI 기술을 적용할 때에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스케치업이든 블렌더든, 3D 기술이든 AI든, 관건은 기술의 발전이 만화가의 창작 노동에 미치는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간 스케치업 덕에 작품을 창작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줄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설문조사 결과도 모호했습니다.) 칸 하나당 배경에 들이는 시간은 줄었을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 배경에 들이는 총시간이 줄었다고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예전에는 1주일에 50칸을 그렸는데 지금은 100칸을 그린다면, 칸 하나당 배경에 들이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해도 전체 배경에 들이는 시간은 동일한 셈입니다. 게다가 2배로 늘어난 칸마다 인물 등 배경 외의 작업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체 만화 작업에 들이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3D 툴을 단일 변수로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 몇몇 케이스를 두고 비교해 보았습니다. 와난 작가의 데뷔작 <어서오세오.305호에>(2008~2011)는 1화 13칸, 2화 50칸 정도 분량이었지만, 3D 배경을 활용하고 있는 <집이 없어>(2018~)의 1화는 80칸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3D 배경을 활용한 이종범 작가의 <닥터프로스트> 각 시즌 1화의 길이는 시즌 1(2011) 75칸, 시즌 2(2013) 65칸, 시즌 3(2015) 100칸, 그리고 시즌 4(2019)는 150칸에 이릅니다. 샘플이 너무 적지만 3D 배경과 칸 수에 있어 양의 상관관계가,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칸 수가 많아지는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작화의 질은 와난 작가나 이종범 작가 모두 갈수록 좋아지고 있습니다. 천계영 작가가 생각했던 만화가 연재되는 속도에 맞는 더 좋은 그림은, 어느 사이 ‘더 빨라진 연재 속도’에 맞는 ‘더 많고 좋은 그림’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정확히 짚은 주관식 코멘트가 설문 조사 응답 중에 있었습니다. 이를 소개하며 글을 맺을까 합니다. 만약 기술이 ‘만화가 연재되는 속도에 맞는 더 좋은 그림’을 추구하려는 작가의 적절한 노동량의 꿈을 내버려 두지 않고 더 가속화한다면, 기술 말고 다른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3D툴이나 퀄리티 높은 화상소재 등이 작업시간 단축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더 높은 만화 퀄리티 요구의 주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컷에 고퀄리티를 요구하는 현상은 정작 중요한 만화 가독성 부분에선 도움이 안 됩니다. 이런 유행은 좋은 만화를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안 되고 만화가 체력적으로도 부담됩니다.” 

- 설문 주관식 응답 중에서



(1) 장혜진, 「3D 디지털 제작방식을 통한 컬러만화의 색채 연구」, 홍익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87쪽.

(2) 관심이 있다면 <웹툰 내비게이션>이나 <웹툰 입문> 등의 서적을 참고해 봅시다.

(3) 3D 모델링 이미지 일부를 정규하, 윤기헌, 「웹툰에 나타난 새로운 표현형식에 관한 연구」(만화애니메이션연구 vol 17, 2009) 12쪽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4) 조수민, 웹툰 배경에 활용되는 소프트웨어 연구 –스케치업 활용사례를 중심으로-,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3.2. 27쪽.

(5) 조지훈(엘프화가), <웹툰 스케치업>, 디지털북스, 2016. 이종범. EDUKOCCA 강의 edu.kocca.kr 등 참조.

(6) 2022년 3D 모델링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12억 5천만(약 1.6조원)이라고 하니, 그 중 100분의 1 정도만 만화 관련 모델링이라고 해도 160억 원짜리 시장인 셈입니다. Global 3D Models Market Research Report 2023 참조.

(7) 조익상, 「웹툰 배경과 소품 표현에서 3D 기술 활용 발전사」, 디지털 시대 웹툰 제작과 기술포럼, 국회의원회관, 2023.5.2. 이 글은 해당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다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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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상

만화평론가, 만화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합정만화연구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