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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인공지능, 다른 분야에서는 어떻게 쓰고 있을까

영화, 문학, 게임 분야의 인공지능 활용 사례들을 살펴본다

2023-06-26 손주형

2023년 가장 뜨거운 분야라고 하면 바로 인공지능이다. 다른 이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열기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지만, 사실 지금 당장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변화는 생각보다 느리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인공지능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 수 있는 정량적인 방법은 없다. 정량적으로 측정하기도 힘들거니와, 어디서 얼마나 쓰였는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한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 ‘어디까지’를 인공지능으로 볼 것인지도 아직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기여도를 평가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는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논란만 있을 뿐 두드러지는 성과를 찾기 힘든 인공지능 분야에서 실제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영화의 사례

영화의 경우 그 어떤 분야보다 인공지능을 도입한 실험이 빨랐다. 이미 지난 2016년 미국에서는 9분짜리 단편영화 <선스프링Sunspring>을 작성한 각본으로 제작한 바 있다. <선스프링>은 인공신경망을 통해 학습하는 인공지능 봇 ‘벤자민(Benjamin)’을 활용했고, 이 벤자민은 장단기 기억 Long Short-Term Memory, LSTM)을 활용했으며, <스타워즈>와 <스타트렉>과 같은 영화와 시리즈 수백 편을 학습한 다음 대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영화를 직접 본 건 아니고, 각본과 대본을 학습해서 그럴싸한 결과물을 ‘추출’할 수 있도록 학습한 것에 가깝다.



이 <선스프링>이라는 작품은 당시 신인급이던 오스카 샤프(Oscar Sharp)가 감독을, 미국 드라마 시리즈 <실리콘 밸리>로 유명한 토마스 미들디치(Thomas Middleditch), 엘리자베스 그레이(Elisabeth Grey),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 험프리 커(Humphrey Ker)가 각각 H, H2, C라는 인물을 맡아 미래를 배경으로 삼각관계를 그렸다. 이 영화는 ‘사이파이 런던 페스티벌(Sci-Fi London Festival)’에 출품돼 ‘인공지능이 각본을 썼다’며 주목받았지만, 정작 입소문조차 타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맥락에 맞지 않는 대사들, 개연성과 터무니가 함께 없어진 이야기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작팀은 한번 더 팀을 꾸려 2017년 <It’s No Game>이라는 작품을 다시 한번 내놓는다. 우리에게는 <전격 Z 작전>으로 잘 알려진 배우 데이빗 핫셀호프를 캐스팅하는 등 주목을 끌었는데, 헐리우드 작가들이 파업을 선언한 사이 인공지능이 시나리오 작업을 맡게 된다는 내용으로 7분 30여초짜리 단편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지만, 여전히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인공지능 언어모델이 이런 능력이 있다’를 확인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It’s No Game>은 지금 2023년 미국 작가노조가 파업을 벌이고 있는 시기에 생각해보면 오히려 근미래를 예견한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음 사례는 <상품판매원(Solicitors)>이라는 영화다. 2020년 10월 GPT-3 모델을 활용해 제작된 이 영화의 각본은 초반부 몇 줄만 인간이 쓰고, 나머지는 인공지능에게 맡겼다. 지금 우리가 챗 GPT(CHAT GPT)에 ‘피노키오가 인간에게 복수를 하고 후회하는 내용을 아이작 아시모프 스타일로 작성해줘’라고 명령하는 것 처럼, GPT-3 모델이 참고할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준 셈이다.

이 작품은 컬레머티 에이아이(Calamity AI)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3분 56초짜리 영상으로, 집을 찾아온 방문판매원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고, 마침 찾아온 집주인이 그와 총격전을 벌인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다. 다만 영화의 문법을 지키고 있지만 내용의 맥락을 짚어내지 못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영화계는 이렇게 꾸준히 인공지능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꾸준히 실험하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그 결과로 지금 헐리웃 작가노조의 파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건 조금 무리한 해석이겠으나, 가장 가까이 인공지능을 다루어 온 분야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문학의 사례



인공지능은 비슷한 시기 문학계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성공시켰다. 2016년 2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개최하는 문학상인 ‘호시 신이치 SF 문학상’의 단편 부문에서 인공지능이 작성한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 그 시작이다. 공립 하코다테 미래대학의 마쓰바라 진(松原 仁) 교수팀이 이끄는 연구팀이 2012년부터 4년간의 연구끝에 호시 신이치 SF문학상 공모전에 4편의 작품을 출품했고, 그 중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 1심을 통과했던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인공지능이 작성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때가 2016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공지능이 작성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1차 심사 통과지 당선이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2017년 중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학습시킨 ‘샤오이스(小氷)’가 쓴 시들을 모은 시집이 출간되기도 했는데, 이 인공지능은 현대 시인의 작품 수 천편을 스스로 학습했고, “비가 해풍을 타고 드문드문 내린다”, “태양이 서쪽으로 떠나고 나는 버림받았다”같은 표현을 생성하기도 했다. 시집의 제목은 <햇살은 유리창을 잃다>라는 제목도 인공지능이 직접 지었다. 다만, 이 시집 역시 ‘최초의 인공지능 작품 모음집’이라는 ‘칭호’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함께 합작하는 사례는 MIT 개발팀이 만든 인공지능과 인간이 힘을 합쳐 호러 소설을 쓰는 ‘셸리(SHELLEY)’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7년 MIT 개발팀은 인터넷의 괴담을 모아 셸리를 훈련시켰고, 트위터를 통해 셸리가 직접 괴담을 써내려갔다.


특이한 점은, 셸리는 작품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트위터(@Shelley_ai)에 계정을 운영하며 독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작품을 ‘늘려나간’ 점이다. 셸리나 트위터 유저가 글을 작성하면, 셸리가 ‘답 멘션’을 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이 계정은 2017년 9월부터 2017년 11월 13일까지 2달여간 운영하며 약 450개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나온 어떤 형태보다 진보한, 일종의 ‘호러 챗봇’형태로 운영했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만하다.


게임의 사례



사실 게임과 인공지능은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을 것 같지만, 게임과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융합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넷마블이 만든 A3: 스틸 얼라이브는 2020년 3월 등장한 게임인데, 넷마블이 인공지능을 통한 개발 효율화 사업 ‘마젤란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낸 밸런스 자동화 등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게임이다. 또 넷마블은 ‘콜럼버스 프로젝트’를 통해 사업 분야의 인공지능 분석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넥슨 역시 인텔리전스 랩스를 설립,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을 이용한 분석도구를 2017년부터 활용하고 있다.



이런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은’ 경우 말고, 우리가 플레이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없을까? 이 지점까지 오면, 더 최근으로 점프가 필요하다. 중국 넷이즈에서는 2023년 2월 15일 업데이트를 통해 넷이즈가 서비스하는 게임 ‘역수한 모바일’에 GPT 기술을 접목시켜 무협과 관련한 내용을 학습한 NPC가 반복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넷이즈는 당시 업데이트 보도자료에서 “NPC의 지적 능력을 (게임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송나라 시대 사람의 기준에 맞게 수정했다”며 “농부 NPC의 경우 다른 대화는 어렵더라도 벼 모종과 모판, 모내기 시기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해 NPC별로 다른 대화를 ‘생성’해내는 기술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또한 NPC는 플레이어의 행동을 보고 신고해 마을에서 추방시키거나, 자신을 공격했다며 비난하고 도망칠 뿐 아니라 이를 기억했다가 대화를 걸면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묻는 등, 플레이어의 행동이 나비효과처럼 다른 NPC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동하게 된다고 알리기도 했다. 여기에 더불어 던전과 퀘스트 등 게임 내 성장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도 NPC와 대화를 통해 무한히 생성하고 반복할 수 있지만, 플레이에 좋은 영향을 줄지 확실하지 않아 업데이트를 아직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 최근으로 오면 아예 NPC끼리의 세상도 등장한다. 스탠포드 대학이 4월 챗 GPT를 이용해 함께 연구해 발표한 2023년 논문 “생성 에이전트: 인간 상호작용의 복제품”에서는 ‘스몰빌(Smallville)’이라는 게임의 25개의 NPC(Non-Playable Character)에게 각각 생성형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이 NPC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살펴봤다. 그랬더니 25개 캐릭터는 서로 의논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알아서 파티를 개최하고, 파티가 열린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건 연구논문이기 때문에 우리의 플레이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다만, 넷이즈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NPC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6월 19일 오전10시부터 26일(태평양 기준시)동안 스팀 넥스트 페스티벌에서 공개되는 인워드 AI(Inward AI)사의 오리진스(ORIGINS)다. 데모플레이만 공개되긴 했지만, 소개 영상과 유튜버와 스트리머들에게 선공개된 영상 클립을 보면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고 ‘마이크’를 사용해 대화를 나누며 추리를 하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게임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마이크를 활용해 주문을 외워야 마법이 나가는 ‘인 버비스 버투스(In Verbis Virtus)’와 같은 형식의 정해진 스크립트를 읽는 게임이 아닐까 싶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NPC들은 모두 생성형 인공지능을 장착해 게이머의 말을 듣고, 직접 단서를 제공하거나 게임을 풀어나갈 힌트를 제공하거나, 답변을 거부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등 실제로 형사가 되어 추리해 나가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웹툰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해봤다. 주로 2016년 시작해 지금까지 점점 발전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만큼, 웹툰계에서도 충분한 논의와 함께 다양한 상상력을 작가들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이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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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형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