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회사들의 전장이 해외로 옮겨간 지 오래입니다. 네이버웹툰은 나스닥 상장을 논하고 있으며,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해외 투자자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두 회사를 맹렬하게 뒤쫓고 있는 리디 역시 '만타'로 해외 시장을 두드리고 있죠. 주로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만화 문화가 자리잡은 국가들이 주요 공략 대상입니다.
이런 변화가 재미있는 것은 국내 웹툰 플레이어들의 해외 진출이 단순히 우수한 국내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의미가 아닌, 웹툰 '문화' 자체의 수출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투톱인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모두 웹툰 작가 양성을 위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웹툰의 경우에는 '베도'의 해외 버전인 '캔버스'를 운영하고 있고요. 카카오엔터는 '타파스'를 인수했죠. 결국 이들이 노리는 것은 각국에 '웹툰 문화'가 뿌리내리는 것인데요. 그 결과로 각국에서 눈여겨볼만한 웹툰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웹툰 작가라고 하면 한국인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겁니다. 그뿐 아닙니다. 작가가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플랫폼에도 연재를 하는 등 생각보다 글로벌한 양상을 띠고 있고요. 이미 인기를 얻고 있던 작가가 새로운 연재 채널 중 하나로 웹툰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한편, 국내와는 달리 캔버스가 무조건 플랫폼 연재를 위한 전 단계이자 아마추어 리그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 창작자를 위한 엄연한 또 다른 선택지로 여겨지는 것도 색다른 지점입니다. 이는 창작자에게 후원을 할 수 있는 '패트리온'과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인데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보다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채널인 셈입니다. 전반적으로 전 세계적인 창작 생태계의 지형도 안에 '웹툰'이 자리를 잡아 가는 모양새죠. 그렇다면 한번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 그림 1. 레이첼 스마이스 (Rachel Smythe ]
웹툰의 해외 진출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이름입니다. 레이첼 스마이스는 뉴질랜드 작가로, 올림푸스 신화를 재해석한 판타지 로맨스 '로어 올림푸스(Lore Olympus)'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2021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에 선정되고, 2022년에는 미국에서 만화상 3관왕을 달성한 메가히트작입니다. '한국발 서브컬처'에 불과했던 웹툰의 위상을 세워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네이버웹툰이 해외에서 발굴해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셈입니다.
레이첼은 원래 사립 여학교에 소속되어 일하던 일러스트레이터였습니다. 레이첼 역시 언제나 자신만의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인터넷에 만화를 그려 올려 본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출판 만화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올리는 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기기괴괴'를 통해 웹툰이라는 포맷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캔버스'에 로어 올림푸스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요. 로어 올림푸스는 빠르게 인기를 끌어 네이버웹툰에 정식 연재되기 시작했으며, 이에 레이첼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정식으로' 웹툰 작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역으로 한국에도 수입되어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네이버웹툰의 '글로벌'이 더이상 한국에서 외국으로 향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탄과도 같았습니다.
[ 그림 2. 인스턴스미소 (instantmiso) ]
인스턴스미소는 2015년부터 웹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계 미국인입니다. 만화를 그리고 읽는 게 취미인 사람이었는데요. 2014년 '소녀더와일드' 덕분에 웹툰을 접하고 캔버스로 유입되었습니다.
인스턴스미소의 작품 중에서도 두 번째 작품인 'Siren's Lament'는 4억뷰 이상을 기록하는 인기작입니다. 다만 인스턴스미소는 웹툰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은데요. 웹툰을 다룬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걸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전까지는 미국의 여성 만화 작가로서 이런 로맨스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인스턴스미소는 필리핀계 미국인이기도 합니다. 이에 한번은 AAPI(아시아계 미국인 및 태평양 제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요. 인스턴스미소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표현된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본인의 작품 'Eaternal Nocturnal'의 주인공 '이브'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필리핀인이며, 작품을 보는 필리핀계 미국인과 아시아계 미국인이 이브에게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언급하면서요.
실제로 네이버웹툰에서는 AAPI와 관련된 웹툰 작품을 모아 소개하는 'AAPI 헤리티지 먼스'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유입되는 만큼 다양한 시각을 담을 수 있게 된 거죠.
[ 그림 3. 준푸르 (Junpurr) ]
준푸르는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Siren's Lament'으로 웹툰에 입문한 사례입니다. 점점 이들끼리도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생적으로 '씬'이 생겨나고 있는 건데요. 준푸르 작가는 웹툰이 단순히 만화가 아니라 음악, 애니메이션, 커뮤니티가 더해져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네이버웹툰에서 웹툰 작가들에게 보수를 지급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준푸르는 웹툰을 통해 전업 작가의 삶에 뛰어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회계 업무에서 너무나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준푸르의 작품 'SubZero'는 무려 3억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재밌게도 준푸르는 네이버웹툰에서 계약을 맺지 않은 작가들에게도 조회수 기준으로 보수를 지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준푸르는 초반부터 한 달에 1000달러(약 128만원)을 벌었습니다. 준푸르가 네이버웹툰으로부터 계약 제안을 받았을 때, 그녀의 구독자는 36만명에 달했죠.
[ 그림 4. 앨리스 오스만 (Alice Oseman) ]
앨리스 오스만은 위의 작가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앨리스 오스만은 17살부터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한 작가로, 주로 영어덜트 분야 작품을 써 왔는데요. 그 중에서도 LGBT 장르로 분류되는 웹코믹 'Heartstopper'는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에미상까지 탔고요. 넷플릭스 시리즈 역시 유명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작가와 웹툰은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요. 2023년 공개된 Heartstopper의 5번째 시즌이 바로 타파스, 네이버웹툰, 텀블러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기존 인기 작품의 연재 채널로 선택된 거죠.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Heartstopper 1화의 댓글을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있는데요. '나는 타파스에서 이 작품을 수없이 읽었는가? 그렇다. 그게 여기서 내가 이 작품을 읽는 데에 문제가 되는가? 아니다.', '하트스토퍼가 네이버웹툰에 연재한다고? 살아있어서 행복하다...', '넷플릭스 정주행 하고 온 사람 손?'. 이런 식입니다.
재밌는 것은 앨리스 오스만이 네이버웹툰 오리지널이 아닌 '캔버스'에 연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웹툰 공식 연재가 아니라 베도에 연재를 하는 셈이라 좀 갸우뚱하죠. 캔버스가 단순히 '정식 연재'로 가기 위한 아마추어 리그가 아닌 창작을 위한 별개의 채널로도 취급받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베도와 캔버스의 위상은 좀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캔버스는 패트리온과 연계되어 있어서 수익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23년 6월 15일 기준으로 하트스토퍼의 구독자 수는 10162명이고요. 만약 모든 구독자가 가장 저렴한 1달러짜리 후원만 했다고 쳐도 한 달에 들어오는 수입이 1만 162달러(약 1300만원)인 셈입니다.
[ 그림 5. 한자 아트(Hanza art) ]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가는 말레이시아에서 미국에 웹툰을 연재하는 한자 아트입니다. 원래 애니메이션 전공자였고, 졸업 당시 전업 만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다른 일을 하면서 만화를 병행했다고 합니다. 웹툰을 연재할 당시 한자 아트는 게임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하고 있었고요. 만화가로서 콜라보 만화책을 몇 권 낸 상태였죠.
한자 아트가 웹툰을 알게 된 건 2017년 '외모지상주의'를 통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웹툰 특유의 스크롤 방식이 읽기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재밌게도 정작 해 보니까 스크롤 방식이 페이지 방식보다 쉽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결국 'My deepest Secret' 부터는 일을 그만두고 웹툰 작가로 전업을 결심하게 되었는데요.
말레이시아에서 미국 플랫폼에 연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본사와 10시간 정도 시차가 나지만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웹툰 플랫폼을 통해 다른 나라에 작품을 연재하는 사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프랑스 작가인 True Seba 역시 프랑스 캔버스에 연재를 하는 동시에 스페인 캔버스에도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외 웹툰 작가들 다섯 명의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해외의 작가들에게서 '내 작품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 공통적으로 느껴졌는데요. 창작자들의 욕구란 한국이나 다른 나라나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네이버웹툰의 '캔버스'는 무엇보다도 이 욕구를 잘 파고들어 뛰어난 작가들을 발굴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죠.
특히나 해외 버전의 '베도'인 캔버스는 패트리온을 연계하면서 국내의 베도와는 그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Heartstopper 시즌 5의 연재 플랫폼으로 선택되었듯, 창작자를 위한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한 웹툰의 진출 방향이 단순히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방향뿐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으로, 혹은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끼리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포맷인 웹툰이 정말로 창작 분야의 한 섹터로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처음 로어 올림푸스를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감성'이라고 느껴 '쿠키'를 열심히 구워 바쳤던 기억이 납니다. 보다 다양한 창작자들이 웹툰 분야에 유입돼서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 참고문헌 >
* Goldie Chan(2023.4.4.) How WEBTOON Is Empowering Creators To Tell Original Stories Online
https://www.forbes.com/sites/goldiechan/2023/04/04/how-webtoon-is-empowering-creators-to-tell-original-stories-online/
* Emily Chudy (2023.1.30.) Heartstopper Volume 5 gets new release date as Nick and Charlie’s sweet teen love story continues
(https://www.thepinknews.com/2023/01/30/heartstopper-volume-five-release-date/)
* 이재민(2023.1.18.) 네이버웹툰이 미국 다음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을 선택한 이유
(https://alook.so/posts/vKt6dYz)
* 박인하(2023.1.18.) 미국만화의 구원자 네이버 웹툰 캔버스
(https://alook.so/posts/70tvRWq)
* 이재민(2022.12.29.) 말레이시아에서 미국에 연재하는 웹툰 작가, Hanza Art 인터뷰
(https://webins.co.kr/F/A/8903)
* 조혜리(2022.12.29.)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전략, '로어 올림푸스'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https://outstanding.kr/loreolympus20221229)
* C. M. RAMSBURG(2022.12.22.) INTERVIEW: Instantmiso Discusses Her Webtoon Journey and Eaternal Nocturnal
(https://www.cbr.com/webtoon-eaternal-nocturnal-instantmiso-interview/)
* GENNAH PENALOSA(2022.12.11.) A SHINING STAR IN CREATIVE MEDIA: AN INTERVIEW WITH INSTANTMISO
(https://www.hercampus.com/school/cu-boulder/a-shining-star-in-creative-media-an-interview-with-instantmiso/)
* McDonald's USA(2022.5.2.) McDonald's USA Draws Up Partnership with Digital Comic Platform WEBTOON to Uplift Asian Pacific American Artists and Showcase Their Cultural Experiences
https://www.prnewswire.com/news-releases/mcdonalds-usa-draws-up-partnership-with-digital-comic-platform-webtoon-to-uplift-asian-pacific-american-artists-and-showcase-their-cultural-experiences-301537131.html
* 신현규(2019.10.16.) "내가 내 삶의 주인이게끔 해 준 웹툰" - 북미 인기작가 3인 인터뷰
(https://mirakle.mk.co.kr/view.php?year=2019&no=838280)
* Amy(2019.5.9.) Guest Creator: Hanza
(https://webtoonindepth.com/2019/05/09/guest-creator-han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