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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 명문 슈에이샤, ‘점프툰’을 만든 속뜻은?

슈에이샤의 점프툰은 의의와 일본 만화 시장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2023-07-20 지식공장장

일본만화시장은 다양한 장르와 오랜 역사가 있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이 치열한 시장에서 군계일학의 존재감을 뽐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이 연재된 ‘소년점프’를 발간하는 슈에이샤(集英社, 집영사)다. 그런데 최근 슈에이샤에서 웹툰 서비스인 '점프툰(ジャンプTOON)'을 만들어 웹툰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본에서 세로 스크롤을 도입한다는 것의 의미

소년점프가 ‘점프툰’을 런칭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일본만화 시장 및 특성부터 이해해야 한다. 일본만화는 오랜 역사에 걸맞게 다양한 특성이 있는데, 필자는 세계시장 부동의 1위라는 지위 그리고 그 특유의 읽는 방식에 주목한다.

책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는 달리 일본만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며, 같은 이유로 글을 가로로 쓰는 우리와는 달리 일본만화는 세로로 읽는다. 이유는 한자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세로쓰기의 흔적이다. 2023년에도 E-Mail이 아니라 FAX를 쓰는, 큰 불편함이 있어도 익숙한 대중이 많다면 어지간하면 그대로 가져가는 일본의 특성상, 80년대, 업무에 워드프로세서를 도입한 시점이 되어서 가로쓰기를 도입하는 와중에도 일본만화는 변함없이 세로쓰기로 제작, 편집되고 있다.

이 세로쓰기는 일본만화의 독특한 특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읽는 방식만이 아니라 작품의 연출 그리고 그림과 말 칸의 구성 등 모든 것에 영향을 주므로, 좋은 만화는 네임, 콘티 단계에서부터 세로쓰기를 기준으로 하여 구상된다. 

이후 거품경제가 붕괴 후 일본만화가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면서, 가독성을 위해 대사의 글은 세로쓰기를 유지하되 그 모양은 가로쓰기에 맞도록 가로로 길어진 만화들이 나왔다. 가로쓰기로 번역되는 출판물의 가독성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만화가 수출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므로 세로쓰기를 위한 좁은 말 칸의 만화는 여전히 존재한다.

즉 일본만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쓰기의 글을 읽는 방식의, 가로 스크롤에 최적화된 문화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본만화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의 갈림길에 서버렸다.

2010년경, 소프트뱅크가 일본 시장에 아이폰을 사실상 공짜로 배급하면서 일본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급격히 올라갔다. 덕분에 일본에 모바일 콘텐츠 환경이 빠르게 퍼지면서 여러 산업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었으며 현재 그 비중은 상당한 수준이다. 가도카와 아스키 종합연구소가 2022년 8월 25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2조 엔 규모의 일본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 애플리케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1조3,000억 엔 규모라고 한다. 한때 콘솔 게임에 밀리던 모바일 게임이 주류로 성장한 것이다. 또한, 핸드폰 이메일 서비스로 이뤄지던 커뮤니케이션은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 거의 가져간 실정으로 그 규모는 70~80%에 이른다.

하지만 일본만화 시장은 달랐다. 얼핏 보면 모바일 시장에 뛰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서적으로 출판된 디지털 환경에 제공하는 것일 뿐, 디지털 환경에 맞는 만화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바일 디바이스와 일본만화

일본에서 스마트폰의 보급이 급격히 늘어나자, 일본의 출판 만화계도 모바일 시장에 뛰어든다.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미디어계의 공룡 가도카와 그룹으로, 출판 만화 전자 서점 스토어 '북워커(BOOK WALKER)’, 웹툰에 특화된 '타테스크코믹(세로 스크롤 코믹)'의 투 트랙 전략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굳이 투 트랙 전략을 취한 이유는 기존 체계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기존의 방대한 자원을 디지털 환경에 적합하게 변환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의 출판만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가로 스크롤 방식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웹 기반의 콘텐츠를 소화하는 데 최적화 되어 있는데, 웹 기반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세로로 만들어지며, 경우에 따라선 모바일과 데스크탑 모두에서 서비스하기 위해 반응형으로 제작된다. 그러므로 가로로 구성된 일본만화는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이란 디바이스에 맞지 않는다.


사진1> 슈에이샤의 디지털 만화 플랫폼 ‘소년점프 플러스’에서 서비스되는 ‘최애의 아이’의 화면. 상하의 여백이 많고 좌우 공간 때문에 작품의 가독성에 문제가 생긴다. - 출처: 소년점프 플러스(少年ジャンプ+)


기존 출판만화는 가로 스크롤 형식에 최적화되어 있으므로 또한 일본만화의 상당수의 경우 페이지의 비율이 일반적인 스마트폰의 평균적인 화면비 20:9(해상도가 깔끔하게 맞춰지는 기준비)와 다르기 때문에 전자판에 맞춰 재단하더라도 상·하단의 여백이 남게 된다. 즉 기본적으로 세로 스크롤 환경의 매체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 장인’ 등 기존의 출판만화를 웹툰 형식으로 재편집하는 업체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비용, 수익, 재구성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재편집되는 작품은 일부에 불과한 상황이다.


사진2> 출판만화를 웹툰으로 재구성한 예 - 출처 : 디지털 장인(デジタル職人)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자료


또한 기존 비즈니스모델은 가장 큰 장벽이다. 일본 출판사들은 연재만화가 수록된 잡지를 저렴하게 판매하여 홍보한 후, 실제 매출을 만화 단행본, 애니메이션 등의 부가 상품으로 올린다. 다시 말하자면 연재만화가 공개되는 잡지는 이후 파생상품을 위한 홍보물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주된 매출이 출판 단행본에서 나오니 모바일 서비스는 홍보 매체의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점프툰’의 슈에이샤도 마찬가지다. 슈에이샤는 웹 코믹 연재플랫폼인 ‘소년점프 플러스(少年ジャンプ+)’를 갖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기존 출판잡지인 ‘소년점프’의 작품들은 물론 소년점프 플러스를 위한 웹 오리지널 작품도 연재된다. 하지만 이 웹 오리지널도 작품기획은 출판 단행본에 맞춰져 있다. 이렇듯 슈에이샤는 디지털 만화 콘텐츠 시장을 의식했을 뿐, 세로 스크롤 기반의 웹툰 시장에 적극적인 회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회사가 왜 갑자기 ‘점프툰’을 시작한 것일까?


슈에이샤가 점프툰을 시작한 이유

일본에서 스마트폰 보급이 활발해지자 방대한 콘텐츠를 갖춘 한국의 포털만화는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네이버웹툰의 라인망가가 2014년,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픽코마는 2016년에 픽코마(ピッコマ) 서비스를 시작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픽코마의 성장이다. 라인망가의 경우 주류 작품들이 일본 시장에 맞는 가로읽기 출판만화 형식의 작품들이라면 픽코마는 한국의 세로 스크롤 웹툰을 로컬라이징하여 출간하고 있다. 

그리고 픽코마가 진출한지 1년이 되던 2017년, 디지털 만화가 종이 만화 매출을 처음 넘어섰다. 이는 매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젊은 독자들의 종이 만화 이탈 현상이 드러난 것이다. 그 중심에는 K-드라마가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크게 히트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원작을 찾아보기 위해 웹툰을 이용하면서 급격히 성장한 것이다. 이후 웹툰이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드라마로 제작돼 수익을 극대화하는 모델, 즉 웹툰 비즈니스 모델 규모가 갈수록 커졌고,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 웹툰 플랫폼으로 유입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앞서 말했듯 일본만화 업계는 출판만화 플랫폼 중심이라 디지털도 출판만화의 부산물처럼 운영했다. 하지만 한국의 업체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출판만화가 웹툰의 부산물이기에 기본적으로 세로 스크롤에 맞게 기획된 작품을 기획했다. 그리고 이런 콘텐츠와 방식이 만화를 처음 접하는 젊은 층에게 어필했다. 

세로 스크롤 콘텐츠가 주류인 픽코마는 초반에는 큰 반향을 보이지 못했지만, 꾸준히 성장하여 유의미한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9년 2월 13일자 닛케이신문의 기사에는 웹툰 시대에 자란 젊은이들이 주 소비자가 되는 시대에 일본 출판 만화 부수는 극적으로 떨어질 것이란 말이 나온다.

그리고 이후 이런 트렌드가 급진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출할 수 없게 되면서 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10~20대가 늘어난 것이다. 기존 종이 만화의 판형을 전자책으로 옮기는 일본 출판사 방식은 태블릿PC가 없고 스마트폰만 갖고 있는 경우 불편했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웹툰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빨랐다. 

이는 웹툰 시장의 성장이 보여준다. 2020년에는 일본만화 단일 플랫폼 거래액 1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일본 웹툰 애플리케이션(앱) 상위 6곳의 월간 이용자 수는 2021년 10월 기준으로 2,438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2019년 10월, 코로나19가 이슈가 된 시기와 비교해 볼 때 132%나 늘어난 것이다. 급기야 2022년에는 일본 전체 앱 매출 1위, 글로벌 만화 앱 매출 1위, 글로벌 전체 앱(게임 제외) 매출 7위, 글로벌 전체 앱(게임 포함) 매출 20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만화 이용자들이 점점 세로 읽기 만화, 웹툰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봐도 좋을 것이다.


점프툰의 탄생

슈에이샤는 만화 잡지·단행본이라는 종이 주체의 콘텐츠 중심이어서 디지털 사업 전개에 소극적이었다. 기존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한국 사례를 연구해 변화를 도모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웹툰이 급성장하면서 웹툰 시장은 월평균 사용자(MAU)는 무려 1천만 명에 이용자층은 10대부터 40대까지 폭넓게 분포한 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장의 70%는 한국의 웹툰 플랫폼이 잡고 있으며, 슈에이샤의 비중은 고작 10% 남짓에 불과하다. 이는 세계 1위 일본만화 시장의 최강자라 불리는 슈에이샤에겐 위험신호가 아닐 수 없다.

소년점프는 초창기엔 10대 초중반, 2000년대 초 데스노트 등의 만화로 독자층을 넓히면서 20대 이상의 독자를 유입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주력 만화의 독자층은 주로 10대이며 이들은 이후 점프의 콘텐츠에 익숙해지며, 점프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주력 소비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10대가 점점 웹툰으로 몰려가더니 코로나19 사태 이후 무시 못 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웹툰보다 출판만화가 익숙한 세대의 등장, 기존 점프 만화들은 가로 읽기에 최적화되어 이를 변환한 디지털 작품은 태블릿이 없으면 여러모로 읽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만화를 접해본 적이 없는 10대는 자신에게 익숙한 스마트폰에서 보기 쉬운 웹툰이 더 접근하기 쉽다. 즉 슈에이샤는 이대로 가면 자신들의 소비자가 될 사람을 웹툰에 빼앗길 것으로 판단했기에 단순히 출판만화를 모바일에 연재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아니라 웹툰을 연재하는 디지털 플랫폼 ‘점프툰을 런칭한 것이다.

슈에이샤는 점프툰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점프툰을 담당하는 편집장은 소년점프의 아사다 다카노리(浅田貴典)이다. 그는 원피스, 블리치, 아이실드21 등의 초히트작을 이끈 편집자로도 유명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의 창간 경험도 갖추고 있다. 2007년에 창간한 월간만화잡지 ‘점프SQ(ジャンプスクエア)’의 창간멤버였으며, 2010년에 주간 소년점프의 부편집장이 되는데 이때 그가 창간했던 매체가 소년점프의 단행본, 소설, 잡지를 디지털 형태로 판매하는 ‘점프 BOOK스토어!(ジャンプBOOKストア!)다. 

앞서 말한 소년점프 플러스가 홍보역할을 한 잡지에 가깝다면 ‘점프 BOOK스토어!’는 디지털 대여, 판매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으로, 소년점프 플러스와 점프툰의 과도기적인 플랫폼이었다. 즉 슈에이샤는 아사다씨의 디지털 플랫폼 런칭 경험을 높게 한 것이다.

또한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능력도 주목할 만하다. 출판만화가 그랬듯 웹툰도 그 형식에 맞는 기획이 필요하다. 그래서 출판만화 작가가 웹툰 작가를 할 수는 있어도 모든 출판만화 작가가 웹툰을 연재할 수는 없다. 물론 구성과 기획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색에 있다. 기본적으로 출판만화는 흑백의 1도 인쇄로 출간되며 때에 따라 2~4도 인쇄, 즉 컬러 및 부분 컬러로 연재된다. 반면 웹툰은 기본적으로 색이 들어간다.

최근에는 툴이 다양하므로 채색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만화기획 단계에서의 색 지정은 이야기가 다르다. 작품의 디자인, 기획에 맞는 지정에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므로 웹툰 작가들은 그림 실력을 일부러 낮춰 색상지정, 채색에 투자한다.

즉 양측 작가의 특성이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기에 점프툰은 출판만화에 익숙한 기존 작가에게 연재시키기보다는 세로 스크롤로 연출과 기획을 할 수 있는 작가, 컬러 원고를 제작하는 데 익숙한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다.


사진3> 점프툰 웹툰 작가 공모 로고, 세로 읽기 한정 공모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결론을 말하자면 점프툰은 기존의 웹툰 플랫폼이 자사의 주 고객층인 10대를 무시 못 할 정도로 흡수했음을 깨닫고, 자사의 콘텐츠가 웹툰 플랫폼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이 시장에 진출하려는 것이며, 이는 미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다. 슈에이샤에 있어 점프툰은 단순히 세로 스크롤 형식의 디지털 만화를 발굴하는 것을 넘어, 웹툰이 더 익숙한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래 만화 시장을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출처 및 인용 >

* 사진 인용

- 소년점프 플러스(최애의 아이) : https://shonenjumpplus.com/episode/13933686331661632099

- 디지털 장인 : https://digishoku.co.jp/webtoon/


* 데이터 및 자료 인용

- 성장하는 일본 디지털 만화시장, 변화하는 일본 출판업계 (KOTRA): https://dream.kotra.or.kr/kotranews/cms/news/actionKotraBoardDetail.do?SITE_NO=3&MENU_ID=180&CONTENTS_NO=1&bbsGbn=243&bbsSn=243&pNttSn=200830

- 일본 게임 산업은 최신 기술과 결합 중 (KOTRA): https://dream.kotra.or.kr/kotranews/cms/news/actionKotraBoardDetail.do?SITE_NO=3&MENU_ID=180&CONTENTS_NO=1&bbsGbn=243&bbsSn=243&pNttSn=202762

- 2028년에는 3조엔시장이란 예측도, 한국발 웹툰은 어째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가 (다이아몬드 시그널):  https://signal.diamond.jp/articles/-/1119

- 웹툰으로 보는 일본 만화의 위기 (TORJA): https://torja.ca/entame-zanmai-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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