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1, 오타콘 만화 포럼 전경 ]
2023년 07년 27일, 워싱턴 디씨 다운타운. 눈이 돌아갈 만큼 엄청난 코스프레를 한, 소위 오타쿠들이 거리를 메운다. 대부분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나 디즈니를 비롯한 미국 캐릭터들도 즐비하다. 코스어들은 월터 이 워싱턴 컨벤션 센터와 이어져 있는 메리어트 호텔, 센터 길건너 편에 위치한 르네상스 호텔들을 비롯한 주변 호텔들을 가득 메운다. 체크인을 하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일도 예사롭다. 이런 코스어들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마치 코스프레가 일상인 듯한 이 시공간에선 오히려 코스프레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머쓱할 정도다. 매 년 여름, 워싱턴 디씨의 월터 이 워싱턴 컨벤션 센터 주변에선 항상 보이는 모습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오타쿠들의, 오타쿠들에 의한, 오타쿠들을 위한 축제인 오타콘이 열리기 때문이다.
[ 그림 2, <오타콘> 부스 오픈시간에 맞춰 행사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 ]
[ 그림 3, <오타콘>이 열리는 월터 이 워싱턴 컨벤션 센터 3블럭에 달하는 지하-지상 도합 4층 높이의 건물이다 ]
| 오타콘과 한국 만화 콘텐츠
오타콘은 1994년부터 시작된 행사로 1997년부터 비영리 교육 단체가 주관하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오타쿠들이 서로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본인들이 사랑하는 작품들을 함께 즐기고, 그에 대해 배우고 체험하는 행사로 시작했다. 30여년이 지난 현재는 일본 뿐 아닌 북미, 유럽의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관람객들이 모여드는 큰 행사로 성장했다. 오타콘에서 처음으로 공식 한국 파트를 설립한 것은 작년(2022)이었다.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로 인해 오타콘 공식 한국 파트가 초청한 첫 게스트는 한국의 인디밴드 롤링 쿼츠였다. 한국에서도 인기 인디 걸밴드였던 롤링 쿼츠의 팬층은 오타콘 2022에 참가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23년 올 해, 오타콘 한국 파트에서는 케이팝의 선두주자인 저스트비(Just B)와 함께 ‘한국 만화팀’을 초대했다. 오타콘에 최초로 초대된 한국 만화 회사는 ‘독고탁 컴퍼니’였다. 한국 만화의 역사의 큰 획을 그은 故 이상무 화백이 만든 불세출의 캐릭터 ‘독고탁’과 ‘독고탁 멀티버스’로 7-80년대 만화를 풍미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현재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웹툰 작가들 역시 초대되었다. ‘카카오 페이지’에서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수출 되어 큰 인기를 얻고 드라마화까지 된 <이미테이션>의 ‘박경란 작가’가 초대 되었고, 환경, 여성의 삶 등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심도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로 담아내는 한국 인디 만화의 보물같은 존재인 ‘최인선 작가’도 초대되었다.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학과 교수진도 작가팀으로 초대되었다. 30여년 간 일본과 북미 문화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던 오타쿠들의 관심이 케이팝을 넘어 한국 만화 콘텐츠까지 닿았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오타콘2023 한국 만화 부스
올 해 한국 만화팀은 3mX3m의 작은 코너 부스로 오타콘에 첫 발을 내딛었다. 오타콘을 찾은 수 많은 관객들에게 한국 만화에 대해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인만큼 세일즈보다는 프로모션에 포커스를 두었는데 이것이 큰 실수였다는 것을 부스를 오픈하자마자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한국 만화에 기대 이상의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 그림 4, 3m X 3m 로 오타콘에 첫 발을 내딛은 <독고탁 컴퍼니 (Dokkotak Company)> 부스 ]
[ 그림 5, ‘한국 만화 부스’의 다양한 굿즈들과 부스를 찾은 많은 손님들 ]
수많은 인파들이 최인선 작가의 <너를 그리며> 한국어판과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키링 및 일러스트 굿즈들에 시선을 빼앗겨 한국 만화 부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멋지고 예쁜 케이팝 아이돌들의 아기자기한 사랑 얘기가 나오는 박경란 작가의 <이미테이션> 영문판과 한국 순정만화 그림체의 정수를 찍은 그림들로 가득 찬 굿즈들을 보고는, 눈을 반짝이며 “이 책들과 굿즈들을 팔아 달라”는 요청을 했다. 독고탁 굿즈들과 이상무 작가의 7-80년대 흑백 만화 한국어판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처음 아시아 만화를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번역 계획은 없느냐, 만약 없다면 한국어판을 온라인에서 구매할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들이 쇄도했다. 올 해는 프로모션 부스이기에 세일즈가 안된다는 사과와 함께 준비해 간 각 작가님들의 엽서들을 제공하자 많은 이들이 아쉬움과 기쁨이 뒤섞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 그림 6, 한국만화부스를 찾은 많은 관람객들을 위해 한국 만화가들이 캐리커쳐를 그려주기도 하고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
그러나 코로나 이후에도 4-5만명의 유료 관객이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오타쿠들의 행사’답게 한 번 한국 만화 부스에 사로잡혔던 팬들은 오타콘 2023 행사가 진행되는 3일 내내 한국 만화 부스를 여러 번 찾았고, 한국 만화팀이 진행하는 여러 이벤트, 포럼 등을 모두 출석하기도 했다. 수많은 한국 만화 오타쿠가 생겨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벅찬 한 편, 그들의 니즈를 맞추지 못한 미안함도 매우 컸다. 이에 한국 만화팀 작가들과 ‘툰토이’의 ‘임덕영 대표’는 한국 부스를 찾는 사람들에게 본인들의 캐릭터 그림을 그려주거나 부스를 자주 찾는 이들의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이벤트를 3일 내내 진행했다. ‘독고탁 컴퍼니’는 독고탁 탄생 50돌을 맞아 리뉴얼한 캐릭터인 ‘꼬마꼰대 독고탁’이 직접 오타콘을 찾아가 많은 관람객들을 비롯,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사진 촬영도 했다. 본인들의 모습을 한국의 프로 작가들이 그려주었다는 사실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들도 있었다. 한국 웹툰 오타쿠들도 부스를 찾아와 본인들이 최근 읽고 있는 한국 만화들에 대한 심도 있는 얘기를 긴 시간 나누기도 했다(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오타콘에선 게스트마다 통역과 전담 스텝들이 제공된다). 이처럼 오타콘 2023의 한국 만화 부스는 감동과 훈훈함, 그리고 열정이 끊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 오타콘 축제 방향성과 ‘한국만화팀’의 활약
해외에는 이미 다양한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페어들이 있고 한국 만화 회사와 작가들은 지난 수 년간 다양한 해외 페어들에 참가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매우 비싼 부스 비용이 들 뿐 아니라 비행기표와 숙박비, 그 외 비용이 매우 많이 들기에 작은 만화 회사들이나 인디 만화가들이 참여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오타콘의 경우 오타콘 측에서 가치 있다고 보는 회사와 아티스트들을 초대하는 경우, 부스, 여비, 호텔비, 식사 및 간식까지 모두 제공한다. 특히 문화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오타콘의 철학 덕에 작지만 의미 있는 회사들이나 인디 작가들을 전 세계에 소개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창이기도 하다. 또한 아티스트 한 명 당 통역과 스텝 한 명이 배정되며, 회사의 경우에도 통역과 전담 스텝들이 배정된다. 오타콘의 통역가들과 스텝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져 있으며, 전 세계와 미국 전역에서 지원한 수많은 사람들 중 오타콘에 참여하는 아티스트와 회사들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로만 팀을 구성한다. 특히 게스트 담당 업무 스텝들의 경우 기존 스텝의 추천이 필수 요건이다.
게스트들은 오타콘 행사를 위해 워싱턴 디씨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본인 전담 스텝과 통역가를 만나서 호텔로 이동하며, 외출은 스텝의 동행 하에만 가능하다. 이는 게스트들의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오타콘 측의 입장을 보여준다. 반면에 게스트들은 스텝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오타콘 행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은 선에서라면, 워싱턴 디씨의 다양한 뮤지엄, 갤러리, 및 관광 스팟들을 둘러 보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 만화팀 역시 이번 오타콘 참가기간 동안 백악관을 비롯한 스미소니언 뮤지엄, 홀로코스트 뮤지엄 등 다양한 스팟들을 관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타콘 측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대신 게스트들은 오타콘 행사 동안 창의적이고 다양한 이벤트와 패널을 진행해야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한국 만화팀의 경우 작가들과 회사가 부스를 꾸미고 운영하고, 각자 2개씩의 패널(각 45분)에 참여해야하며, 공동 이벤트를 한다는 조건으로 초대를 받았다. 패널의 경우 학술 패널, 토론, 교육 및 오락 컨텐츠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로 이뤄져 있다. 한국 만화팀은 작가팀과 독고탁 컴퍼니가 함께 ‘한국 만화의 역사,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의 포럼(총 90분)을 진행했는데, 9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패널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관람객들이 한국 만화에 관심을 갖고 찾아주었다. 박경란 작가는 개인 패널로 ‘드로잉 쇼’를 준비했다. 그녀의 작품인 ‘이미테이션’을 미국에서 출간한 ‘옌 프레스’가 박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패널을 찾은 관람객들과의 소통을 통해 박경란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소개를 이어나갔다. 박경란 작가는 패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마법처럼 컬러까지 완성되는 환상의 드로잉 쇼를 기획해서 많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최인선 작가의 경우 ‘캐리커쳐 쇼’를 개인패널로 준비했다.
[ 그림 7, 900여명의 관람객이 찾은 ‘한국만화팀’ 패널 ]
[ 그림 8, ‘박경란 작가’의 드로잉 쇼 ]
꼼꼼하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는 최작가는 ‘캐리커쳐’라기보단 ‘초상화’에 가까운 작품들을 선사해 많은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독고탁 컴퍼니는 ‘독고탁의 타로카드 리딩’ 패널을 진행했는데 수백명의 사람들 중 선정된 참가자들의 고민을 독고탁이 타로카드를 통해 상담해주고, 관람객들이 함께 고민을 가진 참가자들을 응원해주는 가슴 뭉클한 자리가 연출되었다. 오타콘의 수많은 패널들은 새벽 2시까지 이어지기에 한국 만화팀의 패널들은 밤 11시 넘어까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 300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몰려서 즐기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다.
[ 그림 9, ‘최인선 작가’의 캐리커쳐 쇼 ]
[ 그림 10, ‘독고탁’의 타로카드 리딩 ]
오타콘 축제는 아티스트 및 회사들 간의 다양한 콜라보도 가능한 장을 제공하기도 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게스트들 중에 본인이 관심있는 게스트가 있다면 스텝들을 통해 서로 만나고 대화할 기회가 주어지며, 콜라보 콘텐츠를 만들 기회도 주어진다. 실례로 이번 오타콘에서는 독고탁 컴퍼니와 케이팝 아이돌 저스트비가 ‘저스트비의 타로 카드 상담’과 ‘독고탁의 저스트비 공연 관람기’ 콘텐츠를 콜라보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협업은 다른 분야에 관심 있는 관람객들을 팬층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생산하기도 한다. 실제로 저스트비의 팬층이 독고탁을 팔로우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으며, 독고탁을 통해 한국 만화 팬들이 저스트비의 음악을 듣고 즐기는 기회 또한 만들기도 했다.
[ 그림 11, 오타콘에서는 서로 게스트들 간의 콜라보도 이뤄질 수 있는 장이다 ]
[ 그림 12, 독고탁과 저스트비는 함께 두 건의 콜라보 콘텐츠를 만들었다 ]
3일간의 오타콘 행사(실제론 워싱턴 디씨 도착부터 떠날 때까지 총 5박 6일의 여정이었다)를 되돌아보면, 모두가 기이할 정도로 행복한 곳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마치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한 오타쿠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아티스트들, 그리고 이 행사를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오타쿠 스텝들로 가득 찬 행복한 이세계(異世界)에 다녀온 느낌이다. 1년 가까이 되는 준비 기간동안 게스트들과 오타콘 담당팀이 끊임 없는 소통을 나누며 준비를 하기에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기 전부터 친한 동료가 될 수 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높은 완성도와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행사를 위해선, 초청받은 게스트 측에서도 그 정도의 시간과 열정을 들여 서로 간의 긴밀한 소통을 나누고 협업하여 준비하는 과정이 필수적인 행사다. 이 과정을 잘 준비할 수록 오타콘의 경험이 더욱 더 소중해질 것이다. 오타콘이 어떤 행사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렇게 소개할 것이다: “서로를 사랑해주고 새로운 것들을 보고 즐기며 끊임 없이 서로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따뜻한 시공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