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에 대한 그동안의 지지를 철회합니다. 캔슬컬쳐
캔슬컬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 SNS상에서 팔로우를 취소(cancel)한다는 뜻으로 유명인이 논란이 될 만한 행동을 했을 때, 인종문제나 젠더문제 등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발언을 했을 때 You are canceled(당신은 취소되었습니다)의 메시지와 함께 해시태그를 다는 행위에서 시작되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상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을 넘어 학교나 직장, 공동체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 캔슬컬쳐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례가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의 사례다.
2020년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상여꾼들이 운구 중 춤을 추는 가나의 장례문화를 담은 밈을 패러디했다. 의정부고등학교의 졸업사진은 매년 그해의 화제성 있는 사건이나 인물을 패러디하면서 유명해졌다. 가나 출신 샘 오취리는 SNS에서 관짝소년단 패러디를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했다. 학생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공개한 것,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올렸는데 한국어보다 영어에서 극단적인 표현으로 비판한 것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네티즌은 오히려 예전 비정상회담에서 샘 오취리가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을 찢는 행동’을 한 것을 지적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그동안 샘 오취리에게 보낸 지지를 철회했다. 이 사건으로 샘 오취리는 한국에서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캔슬컬쳐는 우리나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2018년 프랑스 영화 축제인 세자르 영화상 시상식에서 ‘장교와 스파이’로 감독상을 받은 로만 폴란스키는 1977년 미성년자 성폭행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비판과 취소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캔슬컬쳐에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소가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점이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 대한 지지 철회가 대표적이다. 학폭 논란으로 아이돌 그룹을 탈퇴한 멤버가 다수 있다. 운동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쌍둥이 자매 배구선수의 학폭 논란은 이들을 국내에서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어렸을 때 잘 모르고 한 일로 창창한 앞길을 막아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용서만 빌면 끝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잘못 형성된다면 계속해서 학교폭력을 지속시키는 동력만 마련해줄 뿐이다. 캔슬컬쳐는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음주운전, 표절, 성 비위 등 윤리적 도덕성을 사회적 기준으로 형성하고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캔슬컬쳐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발언이나 행동을 잘못했을 때 그 행위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을 하고 행동을 고친다면 충분히 다음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 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했다. 경기 종료 후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송민규 선수가 바닥에 놓인 태극기를 밟고 지나간 것이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필자도 TV로 그 장면을 보면서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역시 다음 날 송민규 선수는 네티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송민규 선수는 너무 기쁜 나머지 태극기를 밟은 것은 인식하지 못하였고 이유를 불문하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과문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이후 송민규 선수는 아시안게임에 별 문제 없이 참여했다. 단체의 구성원이 실수했을 때 그 구성원만 지적하는 것이 아닌 단체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에 물건을 강매시킨 사건으로 인해 남양유업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잘못을 하지 않은 다른 가맹점주들까지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면서 무역 보복사건을 일으켰다. 일본 여행 NO, 일본물건 NO를 주장한 NO재팬 운동이 일어나면서 유니클로 불매 운동이 일어난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이외에도 어떤 사안에 별 관심이 없다가 많은 사람이 어떤 대상을 비난하면 자신도 거기에 편승해서 똑같이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언론보도나 SNS를 통해 부정적인 이슈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기에 동조한다.
[ 그림 2, 2019년 대한민국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
| 웹툰 분야의 캔슬 이슈
웹툰 분야의 캔슬컬쳐 이슈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기안84는 2020년 네이버에 연재하는 <복학왕>에서 여주인공 성 상납을 암시하는 묘사를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여성단체와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기안84의 연재 중단과 플랫폼 퇴출을 요구했다. 거센 비난을 받은 후 기안84 작가는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작업을 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고 밝히고 ‘배 위에 조개를 올려놓고 깨는 장면’을 ‘식탁 위의 대게를 깨는 장면’으로 수정했다.
웹툰 작가 주호민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자기 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특수학급 교사를 고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초등학교 교사는 직위 해제된 바 있으며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로 알려진 뒤 무리한 신고였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초등학교 동료 교사와 학부모 80여 명은 “존경받을 만한 선생님이었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주호민 작가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었다. 주호민 작가 관련 굿즈 판매 게시판에도 악성 댓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주호민 작가를 지지했던 많은 팬은 주호민 작가를 비판했다.
이외에도 별점 테러를 한다든지 특정 이데올로기에 따른 비판과 저격을 통해 그동안 인기 있었던 웹툰 또는 웹툰 작가에 대한 지지를 취소한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 그림 3, 기안84 작가의 '복학왕' ]
| 캔슬컬쳐, 지지를 취소한 이후 던지는 질문들
(1) 작품의 가치도 함께 취소되었는가?
취소는 해당 인물과 작품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지지를 철회했을 때 작품이 지닌 가치도 취소되는가? 많은 사람이 지지할수록 작품의 가치는 올라가고 지지를 철회했을 때 작품이 가진 본래의 가치는 떨어지는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제품이나 상품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찾으면 그만큼 가치가 올라간다. 많은 사람이 가지고 싶어 하는 사과 브랜드 휴대폰은 가치가 높기 때문에 비싼 가격대를 형성하지만 잘 팔린다. 사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하면 브랜드의 가치는 떨어지고 사람들은 다른 브랜드로 이동한다. 가치는 자연스럽게 떨어지며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바뀐다. 만화 작품도 제품이나 상품과 비슷한 면이 있다. 만화의 가치도 일단 사람들의 관심과 수요로 형성된다. 많은 사람이 찾으면 웹툰의 가치가 올라간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지만 만화가 가진 가치와 격이 있다. 대중이 잘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대중이 많이 찾는 웹툰에 부정적인 이슈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부정적인 이슈 때문에 기안84나 주호민 작가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철회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웹툰이 가진 본래의 가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예술 작품의 가치와 격은 제품이나 상품에 비하기 어렵다. 작품의 가치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 취소는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였는가?
두 번째 살펴봐야 할 것은 지지를 철회한 계기가 되었던 정보의 사실 여부이다. 캔슬컬쳐의 부정적인 현상 중 하나가 무조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SNS가 결합되어 누명을 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이슈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대부분 언론보도나 SNS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해당 이슈가 발생한 그 자리에 있지 않는 한 정확하게 그 사안의 진실 여부를 알기는 어렵다. 어떤 부정적인 이슈 때문에 지지를 철회했다가 지지를 철회했던 계기가 된 정보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때 우리는 지지를 철회한 것을 취소하고 다시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지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 아니면 이미 관심 밖에 밀려나 버린 후다. 1990년 삼양라면에 공업용 소기름을 넣었다는 이른바 ‘우지파동’이 일어났다. 소비자가 먹는 라면에 공업용 소기름을 넣었냐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 1997년까지 이른 법정 다툼 결과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이미 소비자들은 삼양라면을 외면했고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삼양라면은 아직도 예전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SF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정보장교 바그다쉬는 이제르론을 떠나는 율리안에게 “정보에는 방향성이 있어서 어떤 정보를 분석할 때 그 정보를 통해 가장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면 그 정보의 진실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우리는 언론보도나 SNS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그 정보의 진위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주호민 작가의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그 자리에 있지 않는 한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대중은 알 수 없다. 우리가 그동안 가져온 경험치나 사회적인 인식으로 그럴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언론보도나 SNS상에 올라온 소문을 듣고 지지를 철회했다가 그 사실이 잘못된 정보라고 밝혀졌을 때 그 ‘철회’를 다시 ‘철회’할 것인가?
(3) 취소한 판단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인가?
시대에 따라 가치관은 변한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예전에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고, 예전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연예인 홍석천 씨가 자신이 성소수자인 것을 커밍아웃을 했을 때 동성애를 반대하는 측과 지지하는 측 모두에게 비판받았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소수자들 역시 홍석천 씨를 비판했다. 홍석천이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하는 것이 흔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성소수자를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이제 사회적 분위기상 지지할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는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와도 연결된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을 동반한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에 다른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타인 역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는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 인식이 바뀐다. 계속 지지를 하거나 지지를 취소한 결정한 가치관이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취소를 결정한 가치관은 시간이 지나 어쩌면 바뀔 수도 있다.
| 사회적 현상으로써 캔슬컬쳐 바라보기
[ 그림 4, UMI, 슬리피-C, 싱숑 작가의 '전지적 독자 시점' ]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에는 스타스트림 방송에서 여러 성좌가 주인공 김독자를 지지하는 장면을 많이 보인다. 코인을 통해 김독자를 후원하는가 하면 김독자가 짊어져야 할 개연성의 폭풍을 함께 나눠서 지는 등 주인공을 지지한다. 반면 김독자를 지지하다가도 사소한 계기로 손바닥 뒤집듯 갑자기 지지를 철회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현실에서의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전 시대에 군중은 한곳에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산했던 반면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초연결시대의 군중은 쉽게 해산하지 않고 익명성을 가지고 집요하게 행동한다. 어느 사안을 지지했다가 다른 정보를 습득하면 지지를 쉽게 철회한다. 캔슬컬쳐는 부정적인 이슈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지만, 반면 사실을 파악하지 않고 곧장 낙인찍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을 촉발하고 오히려 문제를 해결 불가능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캔슬컬쳐의 장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에 캔슬컬쳐가 좋은 문화인지 나쁜 문화인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캔슬컬쳐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점이다. 캔슬컬쳐는 무엇을 캔슬했는가? 캔슬컬쳐는 대상에 대한 지지를 취소한 것에 단순히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더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