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읽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누가 하고 있는가.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나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이때 우리는 이미 우리가 봤던 작품들을 기반으로 추천받는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방식대로 나는 새로운 콘텐츠를 알게 되고 보게 되고, 또 다시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된 정보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경험한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고착화한다. 콘텐츠가 너무 많은 세상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기에 아이러니하게 다양한 콘텐츠를 선택하기보다, 제시된 콘텐츠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의 취향이 온전한 나의 선택인가 하는 의문을 지닐 수밖에 없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서 취향을 ‘권장’받고 있기에. 문제는 우리가 권장받는 콘텐츠는 이미 내가 보았던 콘텐츠의 장르 안에서 표류한다. 따라서 이미 알고 있는 콘텐츠가 인기를 얻기 위해서 선택하는 방식은 조금 더 ‘자극적’인 맛을 첨가하는 것이다. 새로운 주제나 소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다가는 ‘취향’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 국민 콘텐츠의 실종
이제 과거와 달리 하나의 콘텐츠, 아이콘에 ‘국민 00’이라고 호명하기란 쉽지 않다. ‘무한도전’, ‘1박2일’과 같은 누구나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23년 시청률 10%를 넘긴 예능·드라마는 손에 꼽힌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2022년에 <범죄도시2>, <아바타: 물의 길> 두 편이 2023년에는 <범죄도시3> 단 한 편만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침체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는 영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코로나 19 관련 규제가 모두 해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OTT는 대중적 반향이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작품은 2021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징어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은 22억 시간의 시청 시간과 2억6천5백20만 재생 횟수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지옥>, <수리남>, <더 글로리>, <셀러브리티> 등 지속적으로 글로벌 1위 작품들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작품들이 넷플릭스를 구독 중이어야 볼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이다. 나머지 OTT도 마찬가지다. 디즈니 플러스에서는 <무빙>과 <카지노>가, 애플 티비+에서는 <파친코>와 같은 작품이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외에도 <환승연애> 및 여러 예능 콘텐츠가 티빙과 웨이브같은 플랫폼에 독점 공개되며 주목을 받았지만, 대중적으로 파급력이 크지는 않았다. 각각의 OTT를 구독해야만 볼 수 있는 특성 때문이다. 인기있는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 각각의 플랫폼을 구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점 콘텐츠는 양날의 검이 된다.
돈을 내고 구독해야 하는 OTT와 달리 유튜브나 각종 플랫폼을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해내던 유튜버, 크리에이터들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한다.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인기를 얻으면서 유튜버 혹은 인플루언서는 TV의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있다. 최근 웹 예능 <가짜 사나이2>와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로 이름을 알린 ‘덱스’나 과학 부분에서 유명한 유튜버 ‘궤도’, 경제 관련 유튜버인 ‘슈카’와 ‘신사임당’은 이제 유튜브를 벗어나 지상파 예능 교양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가 되었다. 새로운 인물들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채우면서 ‘국민’ 00 는 점차 사라진다. 매일매일 새로운 콘텐츠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유명한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한정된 “유명”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통용’되는 주제가 있는가 하고.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장르는 점차 파편화되어간다. 인기가 있는 장르는 특화되고, 몸집을 부풀린다. 아이러니하게 ‘장르’를 선호하는 사람들만의 장이 펼쳐지게 된다. 따라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파편화된 취향은 알고리즘을 통해서 점차 공고화되고, 공고화된 취향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접근을 막는다.
| 복수와 정의의 장르
웹툰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 웹툰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는 시장에 각 장르에 특화된 플랫폼과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베스트 웹툰이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나 소재가 아니면 소외받는 방식이 점차 구조화되고 있다. 특히나 웹툰은 영상화된 작품들이 주목받는다. 이슈가 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복수·사회 정의와 관련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물론 이러한 주제들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불공정·불평등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불공정은 사법기관의 단죄에 불만을 지닌 경우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정의와 복수라는 키워드가 2020년대에 콘텐츠에서 확장하는 이유다. <모범택시>, <국민사형투표>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모범택시>는 평범해 보이는 택시회사에서 손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복수를 대신하는 이야기다. 고객으로 통칭되는 복수를 원하는 개개인의 사연은 사회적인 문제점을 직시한다기보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에 집중한다. 동시에 주인공들의 과거사를 담은 에피소드 skit에서 그들이 ‘무지개 택시회사’에 취업하는 동기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국민사형투표>는 개탈을 쓰고 나타난 미지의 인물이 한국 사회에서 법으로 단죄받지 못한 이들을 전국민에게 사형투표를 진행한다는 설정을 통해 스토리를 전개한다. 사법 기관의 카르텔과 정의의 실현 방식, 그리고 대중 심판의 위험성을 드러내며 법적 정의와 심판에 대해서 고찰하도록 한 작품이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기본적으로 ‘복수’가 기인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지금의 콘텐츠는 ‘이상 상황’을 빠르게 감지하고 표현한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제거할 수 있는 법을 넘어서는 복수가 용인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스위트 홈>,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방과 후 전쟁활동>과 같은 작품들 또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강조하고 있다. <스위트 홈>은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는 그린 홈으로 이사한 후, 점차 자신의 아파트에 관한 비밀을 깨닫는다. 왜곡된 인간 욕망을 여러 가지 형태로 투영하면서 인류를 몰아내려는 괴물이 그린 홈을 둘러싸고 있으며, 자신을 포함해 그린 홈 주민들은 그 괴물들에 갇히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옥>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인간들이 직면한 기적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에 맞닥뜨린다. 초월적 존재들이 신이 권선징악을 내려보낸 사자라 주장하는 새진리회가 등장하고, 이후 혼란에 빠지게 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미지의 존재로 인해 사회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다는 기본 설정을 지닌다. 특히 인간의 욕망, 그리고 생존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는 모습이 잔혹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특히 <지금 우리 학교는>과 <방과 후 전쟁활동>의 경우 10대가 극단적인 생존 상황에 내던져진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아이들은 살기 위해 누군가는 죽여야 하고, 모두의 생존을 위해 희생당하는 존재가 된다. 어른들의 보호가 절실한 존재인 청소년은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것이다. 학교에서 발생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작품에서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는 이미 디스토피아이기에,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작품을 통해 점차 더 자극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극단적으로 보일지라도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 모든 텍스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상상력에서 비롯되기에. 하지만 대부분의 인기 작품들이 ‘디스토피아’에만 집중한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반문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 즉 가장 기저에 있는 추악함을 바라보는 것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어두운 내면을 잘 담아내고 표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잔인하고 잔혹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피해자의 관계가 지나치게 관습적으로 통용되고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즉, 이미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우리’는 점차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되고, 이미 관습화된 우리의 취향 안에서 동일한 장르를 다시 탐독한다. 인기를 얻기 위해 점차 더 자극적이고 위태로운 상상력을 담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태로운 세상, 종말과 같은 세상을 표현하는 콘텐츠를 계속하여 접할 때, 우리는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선의를 잃게 된다.
| 꿈과 희망의 세계로
지금-여기를 즉각적으로 포착하되 인간의 본성에서 어떤 기대감을 지닐 수 있어야만 사회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때 플라톤을 다시 소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하여 말한다. 사람들은 정의로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되는 것들’(ta dokounta)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고 실제로 그런 것들(ta onta)을 추구한다. 이처럼 좋은 것은 모든 혼이 얻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행위의 목적이 되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통치자들이 정의로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알아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그것들이 어떤 점에서 좋은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플라톤은 좋은 것에 대한 것을 통치자가 알아야 한다고 정의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통치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좋은 것’에 대한 예시가 언제나 통용되어야 한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만 남을 수도 있다. 다만 ‘좋음’이 무엇인지 인간의 안식처가 되는 감정들을 일깨울 수 있는 콘텐츠는 분명 필요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죽음에 관하여>를 예로 들 수 있다. <죽음에 관하여>는 시니 혀노 작가가 2012년에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 작품이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중심으로 오히려 독자들에게 ‘좋은 삶’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나빌레라>나 <노인의 꿈>은 나이듦과 꿈, 사랑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특히나 소외받기 쉽고, 세대 갈등의 대상이 되는 ‘노인’들과 주변인의 일상에 주목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를 낳았다>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그려낸다. 쉽게 생각하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의 현실적인 고충과 에피소드를 통해 줄곧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이 통용되는 동화속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기에. 그렇다고 행복한 사회, 평온한 사회회를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자극적인 재미가 없다고해서 뒤로 밀려만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인기 작품’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현대 사회에 대한 두려움 대신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콘텐츠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과연 ‘좋은 사회’ 혹은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내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지금-여기의 모두를 관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