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만화 계약과 저작권 양도에 관하여
1. 들어가며
필자는 여러 곳의 만화, 웹툰 계약 관련 컨설팅/자문을 하고 있다. 자문 중 요즘 흔히 받는 질문이 ‘웹툰 관련 계약을 하는데, 저작권 양도를 하는 계약은 불공정한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이다.
저작권법에서는 저작물 또는 저작권의 이용과 관련하여 ‘저작권 양도’와 ‘저작물의 이용허락’ 두 가지를 정하고 있다. ‘양도’는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것이고, ‘이용허락’은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갖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이용만 허락하는 것이다(라이선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작권 계약 관련된 분쟁은 이 중에서도 ‘저작권 양도’와 관련하여 발생한다. 만화 또는 웹툰 계약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 저작권법은 유럽이나 미국의 저작권법에 비해서 저작권 양도가 비교적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독일, 프랑스 등)은 저작권 양도 자체를 제한하거나 특히 일시불에 의한 저작권 양도는 극히 좁게 인정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양도 자체는 별다른 제한이 없지만 ‘종결권’이라는 제도로 저작권 양도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양도를 종결시키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제한을 둔다. 그와 비교하면 일본과 우리나라는 별다른 제한 없이 저작권 양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작권 양도의 대가 지급이 인세 방식 또는 로열티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는 비교적 문제가 적지만, 일시불에 의한 저작권 양도의 경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작권 양도’란 절대 악인가? 또는 저작권 양도 계약=불공정한 계약인가? 본 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2. 저작권법과 판례의 기본 입장
우리 저작권법이 양도를 비교적 자유롭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보았다. 그럼 이런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판례의 입장은 어떨까?
판례의 기본적 입장은 ‘계약에서 양도인지 이용허락인지 외관상 명백할 때는 그에 따른다. 하지만 외관상 명백하지 않으면 양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이용허락으로 본다’는 것이다(대법원1996. 7. 30. 선고95다29130 판결).
즉, 계약서에 ‘저작권 양도’라고 기재되어 있으면 해당 계약은 저작권 양도로 보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계약서에 ‘저작권 양도’라는 내용이 없으면 저작권 양도는 잘 인정하지 않고, 이용허락으로 봄이 보통이다.
다만, 일시불로 저작물 이용의 대가가 지급되는 경우(이를 ‘매절’이라고 한다)는 약간 독특하다. 이때에도 물론 계약서에 ‘저작권 양도’라고 기재되어 있으면 저작권 양도로 보지만, 그런 내용이 없으면, 지급된 대가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아서, 보통 이용료 정도라면 ‘이용허락’으로 보고, 이용료를 훨씬 초과하는 고액이 지급되었다면 ‘저작권 양도’로 보고 있다(서울민사지방법원1994. 6. 1. 선고94카합3724 판결 등).
그럼 이하에서는 만화, 웹툰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자.
3. 구름빵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1. 11. 선고2017가합588605 판결, 서울고등법원2020. 1. 21. 선고2019나2007820 판결(상고 기각으로 확정).)
워낙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해당 사건에서 문제가 된 저작물개발용역계약 계약서 제5조 제1항을 보면 “저작물의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일체의 권리(저작물의 저작재산권, 2차적 저작물 또는 편집저작물을 작성, 응용할 권리 포함)는 저작물의 인도 시에 피고 B에게 양도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사건의 1, 2심 판결은 ‘구름빵’ 서적의 저작권이 양도되었음은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상대방(사업자)이 ‘구름빵’ 원서적에 나온 여러 캐릭터를 이용하여 새로운 만화나 뮤지컬 같은 것까지 제작할 수 있는가 여부였다. 1심, 2심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이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ㅇ ‘구름빵’은 글과 그림(사진)으로 구성되고 이 사건 캐릭터는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이므로 이 사건 캐릭터는 ‘구름빵’의 일부로서 이 사건 계약 제5조에 따라 피고 B에게 양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ㅇ ‘구름빵’과 같은 그림책의 경우 어문저작물, 미술저작물, 캐릭터저작물 등이 결합 된 것이므로 원고와 피고 B는 이 사건 계약을 통해 개별 저작물이 결합 된 ‘구름빵’ 전부를 양도·양수하기로 하였다고 봄이 당사자들의 의사에 부합한다.
ㅇ 그림책을 원저작물로 하여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할 때는 원저작물의 캐릭터의 사용 및 변형을 수반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므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양도하면서 캐릭터 저작권이 원작자에게 유보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이러한 판결에 대해서는 계약의 대상이 ‘구름빵’이라는 그림책으로 되어 있을 뿐 캐릭터 저작물이 양도 대상인지는 명확하지 않고, 계약상 ‘속편을 제작할 권리’와 ‘캐릭터를 상품화하는 권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계약서 제6조 제1항에서는 2차적 사용(2차적저작물작성)이 매우 한정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는 입장이 유력하다.(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성호 교수의 견해.)
4. 검정고무신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2023. 11. 9. 선고2019가합579315(본소), 2020가합564098(반소). 현재 항소심 계속 중. 다시 한번 고 이우영 작가에게 애도를 표한다.)
해당 사건에서는 고 이우영 작가 등 작가들과 사업자측이 ‘사업권설정계약’을 함과 동시에 ‘검정고무신’ 9개 캐릭터에 대해서 캐릭터 저작권 등록을 하면서 사업자 대표자 명의로 지분 36%를 등록한 부분(아무런 대가도 지급되지 않았음)이 저작권 양도인지 여부가 문제 되었다. 사업자측은 소송 초기에는 자신도 저작자(창작자)이므로 저작권 지분 등록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소송 중간에 저작권 양도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을 바꾸었다.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사업자 대표자 명의의 저작권 지분 등록을 ‘명의신탁’으로 보고, 저작권 양도를 부정하였다.
ㅇ 사업자 대표자는 지분권자로 등록을 마치면서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고, 저작권 양도 계약서도 작성되지 않았다.
ㅇ 이전에 체결된 사업권설정계약서에도 저작권이 양도되었다는 내용은 없고, 저작권 등록과 동시에 진행된 사업권설정계약서에도 그러한 내용은 없다.
ㅇ 사업자 대표 명의의 저작권 지분 등록은 ‘사업자가 저작재산권자로 등록되어 있어야 사업 진행이 용이하고 저작권 침해 단속이 용이하다’는 외관을 만들기 위해 등록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측은 소송에서 사업자 대표자 명의의 저작권 지분 등록이 저작권 양도를 받은 것이라고 매우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정작 저작권 양도를 뒷받침할 어떠한 객관적 문서나 계약서도 작성된 바 없고, 대가도 한 푼도 지불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저작권 등록이 될 당시 ‘검정고무신’은 이미 국내의 가장 유명한 만화 캐릭터 중 하나였다. 따라서 저작권 양도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단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5. 독고탁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2023. 7. 6. 선고2020가합553876 판결, 서울고등법원2024. 1. 25. 선고 2023나2031554 판결(확정).)
해당 사건의 간단한 사실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 이상무 화백(이하 ‘망인’)은 A라는 과자회사와 생전에 ‘독고탁’을 A 회사 과자제품에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망인이 급작스러운 질환으로 사망한 이후 유족이 A 회사에 해당 계약을 정리하자고 하자, A 회사 측은 새로운 계약 체결을 요청하였다.
그러면서 A 회사 측에서 유족과의 만남 자리에 갖고 온 계약서 초안에는 망인의 몇몇 그림에 대해 ‘A 회사 측에서 저작권을 양수하였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유족 측이 그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자, A 회사 측에서는 ‘우리가 그림을 안전하게 쓰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넣은 것이다. 유족의 저작권 행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설명하고 새로운 계약서에 날인을 받아 갔다. 차후 유족과 A 회사 사이에 계약 관련 분쟁이 생기자, A 회사 측은 해당 문구는 망인이 저작권 양도를 한 사실을 유족이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A 회사 측의 저작권 양도 주장을 배척하였다.
ㅇ 망인이 해당 그림들에 대해서 저작권 양도를 한다는 계약서 기타 외부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없다. 저작권 양도는 신중히 인정하여야 한다.
ㅇA 회사 측에서는 망인에게 수천만 원을 지급했다고 주장하나 아무런 증거가 없다. 매년 지급한 소액의 돈은 저작권 양도의 대가로 보기 힘들다.
ㅇ 유족이 망인의 그림 저작권 양도 여부를 알기 힘든데, 그런 내용의 계약서 초안을 마련한 것은 A 회사 측이었으며, 유족은 A 회사 측의 일방적인 설명을 듣고 날인을 한 것이다. 따라서 계약서도 저작권 양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도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6. 웹툰 제작 계약에서의 저작권 양도에 관하여
다소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최근 많이 행해지고 있는 ‘웹툰 제작 계약’의 사례이다.
위 구름빵, 검정고무신, 독고탁 사례는 기본적으로 한 명(또는 소수)의 예술가가 완성한, 하나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 귀속이 문제 된 사안이다. 노래로 말하면 한 명의 가수가 작사, 작곡, 노래까지 한 포크송, 영화로 말하면 극소수 사람이 만든 독립영화와 비슷한 형태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웹툰 제작 계약’은 대체로 사업자가 주체가 되어 상당한 돈을 투자하고 원작의 확보(웹소설 등), 콘티, 펜선, 채색, 배경 등의 인력을 조합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형태이다. 노래로 말하면 대형 기획사가 제작한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또는 히트송, 영상물로 말하면 보통 극장에 걸리는 블록버스터 영화 또는 큰 제작비가 투입된 드라마와 비슷한 형태인 것이다.
이렇게 ‘웹툰 제작 계약’을 하면서 콘티, 펜 선, 채색, 배경 작가와 체결하는 계약에서는 저작물의 이용허락을 받는 계약도 있고, 저작권을 양도받는 계약도 있다. 저작권 양도의 대가도 일시불도 있고, 수익 배분 방식(MG+RS)도 존재한다.
이러한 웹툰 제작 계약서에서의 저작권 이용 관계(양도, 이용허락) 계약은 작가가 단독으로 창작한 작품의 저작권 이용 관계 계약과 다소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저작권법에서도 ‘영상저작물’의 경우에는 영상제작자가 기본적으로 저작권을 양도받는 것으로 추정한다(제100조). 영상물 제작에는 상당한 투자가 따르고, 많은 사람이 관여함에 따라 권리관계를 단순화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점점 많은 투자와 인력이 관여되는 웹툰 제작도 그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7.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만화, 웹툰 계약에서의 저작권 양도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만, 오해하지 말 것은, 일단 ‘저작권 양도’라고 기재된 계약이 체결되면 양도를 부정하기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구름빵’ 사건 판결이 법원의 보통 태도이고, ‘검정고무신’, ‘독고탁’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겠다(필자는 후자의 2사건 재판에서 모두 작가 쪽 대리인으로 재판을 진행하였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저작권 양도를 하는 만화, 웹툰 계약은 불공정한가?’ 지금 단계에서 줄 수 있는 답은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적 관점에서 ‘불공정’이라는 말은 판단하기에 애매한 점도 있다. 저작권 양도는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도 있고, 영상저작물의 경우를 봐도 그러하다. 충분한 대가를 받는다면 양도를 백안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만화가인 필자도 저작권 계약 강의 중에 종종 ‘내 만화 한페이지를 000만원에 저작권 양도 받아 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얼씨구나 양도하겠다.’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저작권 양도 그 자체가 문제라 보기는 힘들고, 다만, ‘알고 하자’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양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양도를 할 경우에도 어떻게 대가 지불을 받을 것인지도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