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원작’ 웹툰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웹소설 원작 작품 대세론’은 지난 수년간 웹툰계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다. 만화분야에서 웹소설 원작이 큰 카테고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한편으론, 웹소설 원작 작품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만큼 꽤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독자 중에는 웹소설 원작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입장들이 난무하는 공간에서는 제대로 논의할 수 없다. 입장만 있는 상태에선 입장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역지사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리: 웹소설 원작에 대하여
일단 ‘웹소설 원작’이라는 단어의 정의부터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웹소설 원작 웹툰’이라고 하면 당연히 웹소설 원작이 필요하다. 다만, 웹소설 원작 웹툰에서 흔히 논의되지 않는 부분은 웹소설 원작이 스튜디오 제작 작품과 동일시되고 있다는 지점이다. 웹소설 원작 중에서도 <취사병 전설이 되다>와 같은 작품은 웹소설 원작이지만 개인 창작자가 발굴해서 내놓은 작품이다. 또<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2021년 출간된 종이 소설이 원작이지만 JHS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고 있다. 이 둘을 똑같이 ‘웹소설 원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웹소설 원작 웹툰’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해야 하는 이유는, 비판 지점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 이야기를 나눌 ‘웹소설 원작 웹툰’은 ① 문피아, 조아라, 네이버 시리즈, 카카오페이지 등 웹소설 연재 플랫폼에서 연재된 웹소설을 바탕으로 ② 웹툰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은 작품으로 한정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전체 시장에 사이다와 같은 시원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웹툰 시장은 단일 개체가 아니라 여러 주체의 집합에 가깝다. 개인 창작자도 글작가와 그림작가, 그 두 가지를 모두 다 하는 사람, 그 두 가지를 넘나드는 사람이 다르다. 스튜디오 역시 웹소설 원작만 다루는 것이 아니고, 오리지널 작품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웹소설 원작으로 빠르게 성장해 다른 분야로 확장을 노리는 기업도 존재한다. 이 가운데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은 웹소설 원작 웹툰”을 한정해서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웹소설 원작의 일장: 산업의 측면에서 빠른 도전이 가능하다
웹소설 원작이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웹툰이 드라마, 영화 등 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사업의 주목을 받은 이유와 같다. 완성된 시나리오가 있고, 이미 독자의 숫자로 증명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숫자가 적은 단위에서는 취향 기반으로, 대중으로 갈수록 상위권에 쏠림 현상이 급증하는 비즈니스다. 하지만 대중이 파편화되고 취향 기반으로 흩어지고 있는 2024년의 비즈니스에서는 그조차도 리스크다.
이게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면, 포브스에서 밝힌 ‘10대 파워 유튜버’ 순위를 한번 보자. 2023년8월1일 기준으로 TOP10 중 구독자 500만으로 한국 인구의 1/10 이상이 구독 중인 채널은 5개로 절반이 넘는다. 그중 1천만 구독자를 넘는 채널은 “구래”, “계향쓰”, “크레이지 그래빠”등 3곳이다. 한국 사람 중 5명 중1 명이 구독하는 채널(물론 엄밀하게는 해외 구독자도 있다)이지만 생소한 채널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아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웹소설 원작은 기존 웹소설 독자들을 더 큰 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이미 검증된 콘텐츠의 재미를 웹툰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웹툰을 보고 있는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검증하는 시간과 비용, 즉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웹소설 원작 웹툰은 산업적 측면에서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이었다. 때문에 전문 제작사들이 빠르게 등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제작에 들어가는 리스크 중에서도 특히 프리프로덕션에 해당하는 기획 및 구성 단계의 리스크를 크게 줄여준다. 보통 웹툰 제작에 필요한 기간은 6개월~1년 정도로 생각하면 이 동안 서사나 인물의 갈등과 같이 뼈대를 이루는 것 외에 캐릭터 디자인, 배경, 각색 등 제작에 필요한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해 작화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같은 기간을 고민하더라도 고민의 밀도와 깊이를 다르게 해주는 셈이다. 이야기를 쓰다 갈아엎고 다시 갈아엎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작이 있는 경우 미리 이 경험을 해 본 작품을 그리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웹소설 원작의 일단: 독자들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웹소설 원작은 독자들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미 웹소설이 연재된 것은 웹툰 연재가 들어가기 한참 전의 일인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웹소설과 웹툰이 거의 동시에 런칭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건 ‘대세가 바뀌었다’고 볼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웹소설은 웹툰만큼이나, 때론 웹툰보다 훨씬 빠르게 트렌드가 변하는 시장이다. 이를테면 2021년 말~2022년 초를 흔들었던 웹소설계의 이혼물 유행은 몇 개월간 주목받고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당시 인기를 이끌었던 <이혼 후 코인 대박>은 2년이 지난 2024년 3월에야 웹툰으로 공개되었다.
아무리 빠르더라도 6개월~1년, 많으면 2년의 시차가 있는 웹소설 원작의 웹툰화는 독자들의 변화를 예측하고 따라가기는 어렵다. 이미 제작에 들어갔다면 제작 과정에서 독자들의 입맛에 맞추어 각색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웹소설 독자들의 니즈와 웹툰 독자들의 니즈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는 노하우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각 업체마다 어느 정도 쌓였지만, 이 노하우가 없던 시기에는 이것조차 큰 부담이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더 폭넓은 독자를 만나고, 웹소설에서 검증된 콘텐츠일수록 경쟁력이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웹소설 IP를 조기에 잡기 위한 경쟁 역시 치열해지면서 비용 부담이 증가했다. 또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순히 웹소설 원작의 장점에 기대기보다, ‘성공한 원작’을 빠르게 붙잡고 수개월~1년 안에 런칭을 목표로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웹툰 원작을 붙잡기 위한 영상업계의 눈치싸움이 치열한 만큼, 웹소설 원작을 붙잡기 위한 웹툰업계의 움직임 역시 치열해진 셈이다.
만화계의 득: 전에 없던 산업적 효과
웹소설 원작 웹툰이 대거 등장하면서 웹툰업계가 누린 효과는 전에 없던 산업적 효과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웹소설 원작이 등장하기 전까지, 웹툰업계는 ‘유망하지만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너무 큰’ 시장이었다. 산업으로 불리기 위해서 가져야 할 기업 자체가 에이전시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작가 육성이 곧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지도 불투명한 산업이었다. 또한 투자를 하려고 해도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곧 플랫폼 투자를 의미했지, 플랫폼을 제외한 곳에서 투자를 받은 사례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웹소설 원작이 등장하면서 웹툰 분야에서 투자를 받는 업체들이 늘어났고, 그로 인한 고용창출과 파급효과가 적지 않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웹소설 원작인<재벌집 막내아들>의 대성공으로 웹소설-웹툰-드라마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이제는 반대로 드라마를 선공개하고 웹툰으로, 또 기존에 존재하는 IP를 웹소설과 웹툰으로 확장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를테면 애니메이션 원작인<라스트 에어벤더>를 실사 드라마로 만든 넷플릭스와 출판권을 가진 다크호스와 협업해 웹툰으로 제작한 네이버웹툰의 사례, 가상 아이돌 ‘이세계 아이돌’을 소재로 웹툰을 만들고 굿즈 펀딩까지 성공적으로 마친<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이 그것이다. 이처럼 웹툰 산업이 마켓, 작은 시장의 규모에서 산업의 규모로 확장되는 데 있어 가장 주효한 역할을 한 것이 웹소설 원작 웹툰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만화계의 실: 다양성 문제
이렇게 득이 있다면, 당연히 실도 있는 법. 웹소설 원작 웹툰이 늘어나면서 산업적 성공이 아주 빠르게 전개된 후폭풍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신진 작가들의 개성 있는 작품보단 상업적으로 눈길이 가는 작품, 그리고 되도록 안전한 선택을 하고 있는 신인 창작자들이 눈에 띈다. 당연히 파격적인 작품만 나와야 한다거나, 요즘 신인들이 패기가 없다는 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웹툰이 발전해 온 과정을 보면 우려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웹툰은 인터넷 문화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해 성장해 온 콘텐츠다. 초창기 인터넷 문화의 흐름에 맞추어 발전한 일상툰, 유료화 시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다양성은 역설적으로 산업 규모의 확장에는 어려움을 주었지만, 반대로 산업규모의 확장이 일어나자, IP 확장의 다양성은 살아났지만, 웹툰 시장 자체에 활력을 주던 웹툰의 다양성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교육현장에서도 학생들이 개인창작자 외에 취업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에 대해서는 고무적이지만 개인창작자를 준비하는 예비창작자-신진창작자들이 ‘한방 대박’을 노리는 풍조가 짙어졌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제는 웹툰이 ‘상업적으로 갈고닦은 작품으로 한 방에 대박을 내는’ 시장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웹툰의 ‘산업적’ 성공은 곧 대중적 성공이라는 키워드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짙어짐에 따라 웹툰을 산업적 성공, 즉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작품에 집중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거꾸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산업적 전략이 웹툰계의 다양성, 그중에서도 신인 작가, 그리고 예비 작가들의 다양성에 타격을 주지는 않았는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작가 전체의 다양성을 생각해 보면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대형 플랫폼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작가들이 늘어나는 것은 웹툰계 전체로는 좋은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꾸준히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 내는 작가가 유리하다는 점이 더욱 돋보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꾸준히, 그리고 오래 고민해야 하는 것
우리는 흔히 일본 만화의 다양성에 대해 경탄하곤 한다. 일본 만화시장의 다양성이 가능했던 건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시장 규모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조~7조 원을 넘나드는 단일 시장 안에서도 지난 2월 출판과학연구소가 펴낸 보고서에서는 “출판만화의 인기작 쏠림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또는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하더라도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개인 창작자들의 다양한 작품으로 연결하고, 나아가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신인 개인 창작자들이 작품을 플랫폼에 실을 때 받게 되는 ‘최저선’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또 아마추어 작품을 수익화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마련되고, 창작자들이 플랫폼 정식연재가 아니라도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수익화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팜(Farm) 형성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까지 웹소설 원작 웹툰을 사이에 둔 일장과 일단, 득과 실을 살펴봤다. 웹소설 원작 웹툰이 등장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온 고민을 한순간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의하는, 입장이 아닌 자세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