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처음 웹툰을 보게 됐던 때는 정확하지 않은데, 네이버 웹툰이었던 건 확실하다. 학교에서 <마음의 소리>라는 웹툰이 있는데 진짜 웃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시작했던 것도 같다. 그땐 다른 플랫폼에는 이런 서비스가 있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네이버 웹툰만 이용하였다. 그러다가 다음에 ‘만화 속 세상’이란 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전혀 성숙하지 않았던 때라 그냥 웃기는 만화나 보고 킥킥거리는 게 더 맞았던 것 같다. 그때 다음에서 봤던 웹툰은 <위대한 캣츠비>였다. 웹툰을 활용한 문구류가 펜시숍에 깔린 걸 보고 뒤늦게 웹툰 일러스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웹툰을 보고 공감하고 이해하기엔 어렸던지라 금방 하차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집에서 버스를 타고 나가야만 갈 수 있던 만화방을 들락거리는 것보다 집에서 컴퓨터만 켜면 만화를 그것도 공짜로 볼 수 있으니 너무 좋았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만화가를 꿈꾸는데 무지 공책을 한 권 사서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나름대로 상상한 이야기를 그리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 어디서 본 적 있는 이야기의 짜깁기였지만 그래도 만화 연재(?)를 기다리는 반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그때 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해줘. 저렇게 해줘’ 하며 자신이 원하는 스토리를 들려주었는데 줏대 없는 작가에 관심받는 게 좋았던지라 친구들이 원하는 스토리를 그때그때 끼워 넣어 주었다. 그만큼 개연성은 없는 스토리였다. 그러다가 한번은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서로를 캐릭터화한 만화를 같이 연재하기도 했다. 「반지의 비밀일기」를 좋아했었기에 비슷하게 생긴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패션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그때 그렸던 만화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때그때 그리고 싶은 걸 그렸는데 어떤 점에서는 교환 일기의 다른 모양이기도 했다. 친구가 한 회를 연재해 주면 친구가 쓴 이야기를 재밌게 읽고 연결된 이야기를 만들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친구는 이에 흥미를 다한 듯했고 혼자서 마지막까지 연재했는데 마무리를 짓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화는 대부분이 이렇듯 개인 창작물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작업하던 작가가 인기가 생기고 작업량이 많아지면 자기 아래에 문하생을 두어 연재하기도 한다. 처음 웹툰 역시 이러한 만화 제작 방식을 따랐다. 이런 방식을 도제식이라 하는데 도제란 스승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거나 그러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일본 만화 산업에서 시작한 방식으로 만화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 제작에 적립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인기 있는 작가에게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탓에 유명 만화가는 여러 명의 문하생을 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이 각각 선화나 먹칠 등의 만화 작업에 필요한 일을 나누어서 맡아 한 회차를 만들었다. 아직 만화 산업에서 흔히 쓰이는 방식인데 문하생을 둘 형편이 안 될 경우엔 가까운 지인의 손이라도 빌려 작업하는 것이 흔한 광경이다. 『월간 순정 노자키군』에서도 유명 로맨스 작가인 노자키군을 도와 등장인물 몇몇이 그의 연재를 도와주는 스토리가 나온다. 이러한 방식에서 파생해 나온 두 가지 방식이 스튜디오와 공장식이었다. 스튜디오의 경우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마음이 맞는 작가들이 뭉쳐 스튜디오를 차리고 서로 품앗이하거나 공동작업을 하는 방식이다. 작업실을 함께 이용하는 형태로 상호 간의 친목에 의존하는 방식임은 기존의 방식과 동일했다. 공장식 만화의 경우 만화를 그리는 데에 필요한 일을 각각의 전문가들이 나누어 작업하는 방식이었다. 기존의 도제식과 달리 계약으로 맺어져 해당 노동에 대한 보수를 어느 정도 받게 된다. 요즘 유명 웹툰 작가라면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려 직원을 두고 작품을 연재하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 제작 방식과 작품을 이끌고 가는 한 명의 주요 작가가 어시스턴트로 불리는 직원을 고용하여 임금을 지불한다. 대표적으로 기안84 작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작가가 스튜디오를 차리고 연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웹툰 초창기에는 웹툰 플랫폼에서 웹툰 PD가 작가의 연재를 보조하는 역할까지 진행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유통만을 담당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때 등장한 에이전시의 경우 앞서 한 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스튜디오나 공장 만화와 또 다른 형태를 띤다. 이렇게 계속해서 제작 방식이 변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웹툰’이라는 작업 자체가 포괄하는 업무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하나의 스토리를 웹툰으로만 제작하는 방식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웹툰의 활용이 드라마,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음악 등 여러 형태의 변주로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효과로 가져올 수 있는 이점을 최고점까지 끌어올리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작품 초기 단계부터 이 모든 분야를 함께 논의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작가가 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기보다는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작업 초기 단계부터 함께 의논하고 작업을 하게 된다. 이때 작가 개인이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도 있고 에이전시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한 뒤 소속 작가에게 작업을 권하게 될 수도 있다.
에이전시는 이렇듯 단지 웹툰 작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OSMU(One Source-Multy Use)라는 웹툰 콘텐츠 시장의 확대에 맞는 방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웹툰 초창기 일본의 도제식이 우리나라에 자리 잡았던 것처럼 요즘에는 국내의 웹툰 제작 방식이 반대로 만화 강국인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만화 산업 규모에서 일본은 부동의 1위로 오랜 시간 집권해 왔다. 글로벌 만화 시장 규모는 2019년 팬데믹의 혜택을 받으며 꾸준한 성장을 이루었다. 2022년 120억 달러의 만화 시장에서 아시아 시장은 90억 달러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아시아 시장 내에서 일본 만화 시장의 점유율은 약 63%로 한국이 24%를 차지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이다. 이러한 일본 시장의 대부분은 출판 만화가 자치하고 있는데 최근 전자 만화로의 변환이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한국의 웹툰 산업이 이끌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데이터닷에이아이(data.ai)에 따르면 일본 시장 기준 지난 한 달 동안 카카오의 픽코마, 네이버웹툰의 라인망가가 일본 앱 스토어 전체 카테고리 기준 매출 순위에서 각각 3위와 6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일본의 전자 만화 시장에 한국의 웹툰 제작 방식이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많은 만화 작가는 웹툰의 스크롤 형태에서 최고의 연출을 낼 수 있는 작화법이나 웹툰 시장에서 인기 있는 그림체 등을 익히고 있다. 이는 웹툰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유통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처음 네이버 웹툰이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면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로켓 스태프’는 일본 최초의 웹툰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리본’을 설립하고 자체적으로 웹툰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재능 있는 신인 작가를 뽑아 그들의 작품을 로컬 라이징할 뿐만 아니라 웹툰 플랫폼에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0년부터 한국의 신인 작가를 일본에 진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공모전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만화 잡지 “소년 점프”를 연재하는 슈에이샤와 현지 최대 애니메이션 굿즈 유통 업체인 애니메이트와 공동으로 글로벌 웹툰 공모전을 열기도 하였다. 국내 웹툰 플랫폼에도 일본의 작품을 유통하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자체 제작한 웹툰 ‘아수라 게이트’를 카카오 페이지 Top 300에 5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1~4까지의 작품이 카카오페이지의 독점 콘텐츠인 것을 생각할 때, 우수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로켓 스태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웹툰 제작 툴 판매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로켓 스태프’의 ‘PLAY TOONS’는 ‘웹툰’과 ‘모션 그래픽’을 융합한 웹툰 독자적인 뷰어 솔루션이다. 또 국내의 딜리헙이나 포스타입과 같이 개인 작가가 자기 작품을 업로드하고 또 금전적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로켓 스태프’는 올해 10월 13일 이러한 사이트인 ‘PLAY TOONS’에서 웹툰 스튜디오와 개인 창작자가 이용할 수 있는 2D, 3D 애셋 판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업을 론칭하면서 웹툰 제작에 많은 애셋들이 사용되고는 있으나 일본을 완벽히 대변하는 애셋을 찾기는 어려웠다는 기존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애셋은 일본의 웹툰 작업에 특화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가구나 데코레이션 더 나아가 이케부쿠로와 같은 공간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특장점으로 꼽았다.
[ 그림 2, 로켓 스태프의 이케부쿠로 소스를 활용해 작업한 웹툰의 장면 ]
국내에서는 이미 웹툰 제작에 필요한 소스를 판매하는 업체가 존재해 왔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가 에이콘 3D이다. 에이콘3D를 운영하는 카펜스트리트의 대표는 전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에이콘3D의 누적 거래 수가 30만 건을 달성했음을 밝혔다. 이러한 성공에는 한국의 웹툰 산업의 발전이 있었고 그러면서 독자의 수준이 향상함으로써 한 컷에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로 하는 웹툰 시장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2022년 웹툰 작가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 8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평균 10.5 시간 정도 웹툰 작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주중 평균 5.8일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그림작가의 경우 일평균 작업 시간은 11시간, 주중 평균 작업 일수는 6.4일로 평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웹툰 작업에 사용한다. 연재 자체가 작가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부담이 되는 업무량인데 플랫폼에서는 한 회당 컷 수를 60~80컷까지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배경의 작품이 증가하면서 전체적인 배경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이 증가하게 되었고 에이콘3D처럼 작가의 작업 부담을 줄여주는 소스 판매는 필수적인 분야가 되었다.
다만 만화진흥원에서 조사한 「2023년 2분기 만화∙웹툰 유통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3년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연재가 시작된 작품을 총 34개 플랫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350개의 웹툰이 유통된 만큼 웹툰에 필요한 소스가 새롭게 제공되는 속도가 시장에 웹툰이 유통되는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해외 판타지 웹툰 팬들 사이에서는 캐슬님(Castle+님)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는데, 대부분 서양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 성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컷에서 동일한 성 소스를 각도만 다르게 하여 등장시켜 생긴 별명이다. 이러한 소스의 다양화는 국내 웹툰 산업이 해결해서 가야 할 문제인 점을 차치하고 그만큼 많은 웹툰 작가가 작업에 필요한 소스를 구매해 작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국내에는 앞서 언급했던 에이콘3D 외에도 여러 소스 판매 사이트가 등장하고 있으며 개인 창작자 역시 텀블벅이나 포스타입 등 여러 통로를 통해 소스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 국내에서는 웹툰 시장이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오른 만큼 소스를 판매하는 산업이 생긴 지 몇 해가 지났을 뿐만 아니라 여러 경쟁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이번 ‘로켓 스태프’의 웹툰 소스 판매로서의 사업 확장은 일본 최초의 시도인 점에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웹툰 종주국 입장에서는 기존의 웹툰 작업 방식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던 것처럼 또 한 번 한국의 웹툰 제작 방식이 일본에 진출하는 사례가 된 것이다. 만화 강국에서 한국의 웹툰 제작 방식이 흡수되고 또 비슷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또 세계 전자 만화 산업을 ‘웹툰’이라는 국내에서 태동한 방식으로 리드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일본 외의 여러 국가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팬데믹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며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성장을 이룩한 웹툰 업계를 보며 팬데믹의 종식 이후 그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관점이 많았었다. 물론 인류의 활동 반경이 다시 넓어진 만큼 웹툰 시장의 성장은 더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이 곧 성장의 단절이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웹툰 산업은 단지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뿐만 아니라 웹툰이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구성 방식까지 수출하고 세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의 경험을 쌓게 된 웹툰 생태계는 현재의 체제를 깊고 더하며 또 다른 형태로 변모하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의 만화시장을 쫓던 것에서 새로운 만화 시장을 구축해 선도하는 한국의 웹툰 시장, 앞으로 발전해 나갈 그다음 스태프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