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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사생활>, 만화로 떠나는 감성 여행

'만화'와 '여행'의 만남, <지역의 사생활99> 프로젝트 소개

2025-07-30 윤민

<지역의 사생활>, 만화로 떠나는 감성 여행

그곳의 일상과 풍경이 주는 쾌락과 상상

_윤민(위클리툰 편집장)

<지역의 사생활 99>이라는 독특한 기획의 시리즈 만화가 있다. 2019년 군산에 자리 잡은 삐약삐약북스에서 지역의 출판사라는 정체성과 문화·정보의 격차를 줄이고자 고심 끝에 만들어낸 재미있는 프로젝트 만화이다.

구성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9곳의 비수도권 도시를 9명의 작가가 9가지 이야기와 만화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만화가 단지 여행지나 관광지를 배경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곳자체가 제목이 되고 그곳에서의 일상이 만화가 되기 때문이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마치 아이가 처음 문자를 배우듯, 대한민국에서의 삶과 풍경을 섬세하게 만화로 떠먹여 줌으로써 '만화가 이끄는 여행'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유명 관광지나 문화재 또는 맛집에 얽힌 사연이 아니라, 그곳의 기억과 일상을 상상과 스케치로 복원·재구성해 우리에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만화를 통해 그곳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만화와 여행,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실 여행호모 노마드라는 종의 태생적·본능적인 유희이자 생존의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었다. 인류를 진화시켜 온 수단이자 욕망은 강, , 사막, 그리고 바다를 건너 세계라는 하나의 공간 겸 무대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더 이상 발견할 곳이 없다고 외치기 시작했던 근대 이후 유행한 그랜드투어는 꿈의 실현이자 당대의 부와 문화를 과시하는 가장 화려한 욕망이 되었다.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와 풍경을 즐기기 시작했다. 특히 짙은 자연, 멀고 먼 세계, 또는 도달할 수 없는 이세계는 정치, 이데올로기, 나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상과는 무관한 어떤 것이자 기분 전환의 놀라운 방법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가보지 못한, 또는 갈 수 없는 세계(시간 또는 공간)는 근대 이후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며 점점 복잡해진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해독제이자 구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개인적인 스케치로 시작된 해독제의 기록은 점차 풍경화로 발전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 힘과 지위를 누렸던 회화의 한 장르 풍경화는 그렇게 네덜란드 상인 부르주아들의 활달한 상업 활동, 그리고 풍경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유행하였다. 그래서 영어에서의 풍경이란 용어는 처음에는 네덜란드 회화를 가리켰다고 한다.

그리고 기계복제시대의 우리는 그 갈망과 실현을 다양하게 복제하고, 공유하며, 과시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세계의 기록은 점차 기술과 함께 사진과 영상으로 발전하더니, 지금은 SNS와 모바일이라는 가상 세계까지 점령한 이미지들로 진화하였다.

풍경을 소비하는 기록과 유행은 근대의 양식이자 시대의 문화인 셈이다. 또한, 그렇게 생산된 풍경의 이미지는 문화적 취향과 기호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정복의 욕망으로 시작되어 축적과 과시의 가치가 되었다가, 가치 소비의 상징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1908년에 69천 명의 관광객이 11개의 국립공원을 참배하러 갔다. 20년 후에는 그 숫자가 3백만으로 늘어났다. 대체 무슨 풍경을 보러 이리 기를 쓰고 달려간 것인가?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들이 감명받은 것은 자연 그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 경탄할 만한 그 풍경 자체를 본 것 대신에, 그림엽서, 기차 광고, 잡지 그림, 입체 사진이나 낭만적 소설, 또 풍경화 등에서 이미 보았던 그 기준을 다시 본 것이었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미술적 형식이었고, 그것에서의 영감은 이미 조건화되어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는 간접 경험이었던 것이다.’

_ <의미의 경쟁>, ‘어머니로서의 자연, 그리고 말보로 맨 : 풍경사진의 문화적 의미에 대한 탐구’, 데보라 브라이트

 

또 다른 세계를 찾는 여행의 진화와 그 풍경을 소유하는 방식에서 욕망과 문화의 언어를 발견하게 된다. 욕망과 열정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또는 가지지 못한 이들, 다시 말해 가보지 못한 이들에 대한 과시와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권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그 권위는 세속적인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처음의 종교적이고, 계급적인 권위는 점점 산업적이고 문화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이는 대중적 기호·취향과 점차 타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타협의 중간에 바로 풍경과 그 이미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어디를 갈지, 어떻게 다니며 무엇을 상상할지에 대한 여행과 풍경의 소비는 당대의 문화적 타협을 담고 있는 셈이다.

여행 서적과 프로그램의 진화를 시대별로 살펴보면 그 시절 타협의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온더로드>를 지나 <여행생활자><세계테마기행>을 만나고, 지금은 <윤식당><지구마블 세계여행>에 다다르고 있다. 우리의 여행방식도 화려한 관광산업에 기댄 패키지여행부터 점과 깃발로 상징되는 여행을 지나, 가게와 거리와 맛집이라는 보지 못하던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여행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일상의 일탈, 그리고 차별의 과시라는 욕망의 진화와 재생산을 그때그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 예술의 필요성과 가치가 존재한다. 단지 복제를 통한 공유와 확장뿐만 아니라 전복적 기능을 통해 새로운 오리지널리티와 아우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술과 여행의 본원적인 기능이자 가치이기도 하다.

사실 복제의 충실한 나팔수인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자체로의 재생산만을 목적으로 하는 듯하지만, 영화는 애니메이션의 상상을 그리워하고, 애니메이션은 영화의 실존을 부러워한다. 물론 그들은 만화를 꿈꾸거나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여행이라는 테마에 있어서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만화를 통해 여행과 예술의 전복적 가치가 만나는 지점이 생성될 수 있다. 빈 곳에서 편안하게 출발할 수 있고, 바로 그곳에 있음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이전에 내 안에 존재했음을 재구성하고 복원할 수 있기 때문에 만화로의 여행은 내 일상의 풍만감으로 여정을 이끌기 때문이다.

만화로 여행하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이유

우리는 지금도 그곳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어디로, 어떻게와 같은 정보는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 얻기 마련이다. 근대 이후 미디어와 여행은 제법 그럴듯한 조합과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근대적 시각예술 중 만화만은 거기서 마치 예외처럼, 집 나온 자식같이 그 친분에서 겉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이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는 여정이 되었다. 홍콩영화 투어라든지 욘사마를 찾아 북촌과 춘천을 오가는 여행은 이제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애니메이션 역시 그런 경험이 낯설지 않다. 신카이 마코토의 골목과 정원이 실재 그곳에서 비롯되었고, <공각기동대>에서 홍콩 거리를 발견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의 홀로 남은 주택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고대 숲속은 이미 유명한 여행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지만 여행이라는 욕망과 정보에 있어서 만화는 여전히 도구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 만화는 단지 친숙함을 위한, 지역과 설명을 위한 도구 이상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근한 캐릭터는 그곳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역할에 딱 맞다. 유명 관광지의 안내판, 가이드, 또는 영상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캐릭터가 그렇고, 지진으로 힘든 구마모토를 돕기 위해 나선 <원피스>의 캐릭터 등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신화와 전설 역시 대부분 만화를 통해 세상으로 나오려고 준비하고 있다. 좋은 말로 만화가 가진 대중성과 친근감의 표현이자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이 만화의 좋은 배경이 되기도 한다. 목포오거리와 창극을 배경으로 하는 <정년이>가 대표적이다. 그 이전의 영화 <목포는 항구다>나 만화 <롱 리브 더 킹> 역시 공간이 이야기를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좋은 의미를 벗어나, 진정한 욕망의 발전과 예술적 전복으로서 만화의 가치는 아직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만화가 너무도 대중적이고, 또 너무도 자유로운 상상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AI의 이슈 중 하나가 지브리풍 프사(프로필 사진)’ 열풍이었다. 스마트 폰이 보급되고, SNS가 일상이 되면서 찍고, 올리고, 공유하는 건 오늘의 보편이 되었다. 그 수많은 디지털의 바다에서 프사는 자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수단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독특한 사진이나 재미난 얼굴이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 프사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의 기술적 어려움을 AI를 통해 해소한 것도 있지만, 차별의 욕망이 이룬 현대적·문화적 타협이자 유행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또한, 이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 애니와 실사의 접점,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는 시대에 표현과 과시의 방식이 새로운 진화를 앞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결국 풍경과 이미지 소비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으며, 풍자와 상상을 기반으로 한 1인 종합예술인 만화가 새로운 여행을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여행은 좀 더 대중적이고, 친근하고, 섬세하고 개인적이면서도 환상적일 수 있다. 만화는 상상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고, 가늘고 긴 감성의 라인에 독자를 몰입시킴으로써 공감의 현실이자 기억으로 만들어주는 매체의 역할을 선보이고 있다. 그렇게 지역의 사생활을 만나는 새로운 여정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보성과 경주, 지역에서 찾은 여행과 만화의 힘

<지역의 사생활 99> 보성편이 있다. 작가는 여름방학 동안 보성에 맡겨졌던 기억을 바탕으로, 보성에서의 시간을 작가적 상상으로 풀어낸다.

사실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보성은 누구나 찾는 곳이지만 기계적이고 현대적으로 재배한 거대한 녹차밭이나 꼬막, 운주사 등 몇몇 공간과 특산물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런 주마간산의 풍경 속에는 일상과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만나고 싶은 감성의 떨림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은 그저 스쳐 가는 공간이 될 뿐이고, ‘추억은 사진에 담겨 앨범이나 보관함 어딘가에 남겨질 뿐이다.

그곳추억의 드라마이자 상상의 무대로 만드는 힘은 콘텐츠이다. 그중 만화는 가장 일상적이고 자유로운 매체이며, 가는 선으로 창조되는 풍경은 여운과 감성의 떨림을 전해줄 수 있다. 이제 그 만화의 선과 상상을 따라 보성을 다시 가보자.

<지역의 사생활 99-보성> 中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보성 시골집에 홀로 남겨진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그곳에서 한 언니를 만나고, 보성을 떠난 한참 뒤 우연히 다시 만난다.

하지만 기억은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주인공은 언니의 전화를 받지 않고,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

그 아쉬움과 불편함, 중첩된 기억들. 그 불편함과 아련함 사이의 이야기는 바로 그곳이 있기에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해결 역시 그곳에서 찾을 수 있다. 역 앞 식당과 빵집 그리고 녹차밭 아이스크림은 진한 아쉬움을 달달하게 바꿔주고, 메우지 못한 여운은 화려한 노을의 아름다움으로 다독여준다.

면과 선은 지치지 않고 묘한 기억 속을 조단조단1) 돌아다닐 수 있게 안내해주며, 그 다독거림을 참 따뜻하게 전해주기 좋은 매체임을 느끼게 해준다.

경주편은 좀 더 자전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마치 흉터 자국을 돌아보듯 상처처럼 남겨진 사진 앨범을 한 장씩 넘기는 듯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직 순수한 시절, 그래서 더 아프고, 또 더 잘 적응하는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경주의 시골집에 홀로 남겨진다.

<지역의 사생활 99-경주> 中

어른들의 바지를 붙잡는 아이의 불안은 작가의 불편함과 아픔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일상이 있고, 또 사람이 있다. 할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매달려 찾은 첨성대는 아이의 외침과 바람을 묵묵히 들어준다. 결국 불안감과 슬픔은 그곳에서 하나씩 중화되고, 그것은 다시 그곳을 찾게 되는 힘이 된다.

따지고 보면 첨성대와 거대한 고분 역시 우리보다 조금 먼 추억을 간직한 공간일 뿐이다. 단지 예쁘게 쌓아 올린 돌들의 과학만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전하지 못한 사연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정체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만화는 공간 속 일상을 새롭게 만나게 해준다. 좀 더 편하게 그곳에 있는 나만의 상상과 이야기를 풀어낼 용기를 준다. 그럼으로써 그곳의 가치, 우리의 기억을 좀 더 특별한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과 달리, 홀로 자유롭게 상상하고 담아내는 만화는 풍경과 시간을 빠르고 넉넉하게 재해석해 가장 감성적이고 익숙하지만, 새로운 풍경으로 만들어낸다. 지역의 풍경과 일상 속 감성, 스토리를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면과 선의 섬세한 터치로 만화는 문학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보성경주에서 우리는 추억의 단편을 이어낸 드라마를 만났다.

<지역의 사생활 99>은 계속해서 다루는 지역을 늘려나가고 있고, ‘그곳을 만나는 새로운 만화 역시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다.

만화는 어쩌면 당대의 문화적 타협을 위한 실마리이자, 전복이 시작됨을 알리는 매체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바로 만화의 힘이고, 우리가 지역의 사생활을 만나는 이유다.


1) 조단조단: 이야기를 차분히 자세하게 하는 모양. '조목조목'의 전남 지방 방언.
필진이미지

윤민

만화·웹툰 전문 매체 ‘위클리툰’ 편집장이자 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 회원이다.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출판과 퍼블리싱을 위한 교육 및 기획을 통해 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각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