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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경기국제웹툰페어를 가다

2025 경기국제웹툰페어는 웹툰·AI·교육 등 다양한 주제로 국내외 웹툰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 행사로, 웹툰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과 과제를 함께 드러냈다.

2025-10-06 김병수

2025 경기국제웹툰페어를 가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니 오랑캐의 침략을 걱정해야 하는 가을.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함이 찾아오나 싶더니 간간이 부슬비가 내렸다. 그렇게 우중충한 하늘을 배경으로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사흘 동안 열린 2025 <경기국제웹툰페어>에 다녀왔다.

킨텍스 제1전시장 앞에는 다양하고 화려한 코스튬을 차려입은 코스어(Costume Player)들이 카메라를 든 이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다고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 당사자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은 엄연한 ‘도촬’이다. 철컹철컹 신세가 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도 코스프레는 웹툰 행사의 꽃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경기국제웹툰페어는 3만여 관람객이 방문하였고, 공식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1,610만 달러의 수출계약추진액을 달성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올해는 또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줄지 기대하면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자.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건 ‘근로계약서’ 홍보 데스크였다. 서울시가 개발한 웹툰 보조작가 표준계약서를 토스뱅크 앱을 통해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웹툰 생태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중요한 한 축이 바로 ‘웹툰 보조작가’다. 우리가 자칫 소홀히 여길 수도 있는 창작환경에 관한 문제가 첫 번째로 관객을 맞이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고 인상 깊었다.



그 뒤쪽과 행사장 양 옆엔 웹툰 홍보 부스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행사 참여업체는 11개 대학 및 교육기관과 제작업체, 작가 등을 합쳐 총 84개에 이른다. 많은 수만큼이나 장르도 다양했다. 예쁘고 귀여운 굿즈나 자신의 출판도서를 판매하는 작가부터 웹툰 플랫폼에 연재 중인 작품을 소개 및 홍보하는 제작사,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웹툰 관련 학과 학생들, 일러스트 도서들을 판매하거나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AI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업체까지 다채로운 볼거리들이 눈길을 ‘어마무시하게’ 사로잡았다.


 


전시된 그림을 구경하고 싶어서 슬쩍 다가서면 마치 동대문 옷가게 사장님이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라고 부리나케 달려들 듯 자신들의 작품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작가님들 때문에 ‘웹툰작가들은 대부분 내향인이라고 하던데?’라는 평소 선입견이 조금 깨졌을 정도다.

내가 유심히 본 건 학생들 작품이었다. 경기과학기술대, 동원대, 서울디자인고등학교, 한국영상대, 신안산대, 부산경상대, 백석예술대, 한성대, 세한대, 선일빅데이터고등학교 등이 빽빽하게 부스를 꾸미고 있었는데, 이들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대한민국 웹툰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웹툰의 미래는 ‘대체로’ 밝았다. 소재와 표현에 있어 예비작가님들의 실력은 무척 단단해 보였다. 다만, 장르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아쉬웠다. 이른바 ‘개그물’이라고 일컫는 명랑만화 장르나 전문성 있는 소재를 다룬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긴, 개그물은 ‘천재’만 그릴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이 순간, 어느 천재들이 방구석에 누워 코를 후비며 “심심한데 웹툰이나 그려볼까?”라고 작정해 혜성같이 등장해 주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내 눈길을 잡아챈 것은 웹툰 분야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이라는 AI 관련 업체들 홍보부스였다. 웹툰계의 ‘뜨거운 감자’임에는 틀림 없다. AI는 데이터 형태의 학습이 필수인 만큼 남의 그림을 허락도 없이 수집해 학습에 이용하는 문제라든지, 작가에겐 생명과도 같은 ‘저작권’ 문제 등이 제대로 교통정리되지 않은 현실에서 이미 신기술은 우리 생활로 성큼 들어와 버렸다. ‘도구’로써 편리하게 이용하되 제도 정비와 저작권 인식 개선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행사에 참여한 업체들의 AI 프로그램도 개성이 넘쳤다. 웹툰-웹소설 IP를 이용해 2차 콘텐츠를 AI로 제작해주는 소라다이브의 VOICEON, 웹툰 제작을 도와주는 AI 보조작가 프로그램 AiD를 만든 크림, 나만의 AI캐릭터 프로필 사진을 생성해주는 프로그램 시연을 선보인 스튜디오 질풍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2D, 3D는 물론 피규어, 레고, 심슨 등등 다양한 그림체로 즉석에서 나만의 AI 캐릭터를 생성해주는 스튜디오 질풍의 프로그램은, 재미있고 신기했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역시 (내)원판이 못생기면 극복(?)하기가 쉽지 않구나라는 일종의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여러 부스 중에 단연 인상 깊었던 곳은 ‘청각장애인 웹툰작가 양성사업 하이툰(Hi Toon)’ 부스였다. 사랑의 열매가 지원하고 청음복지관과 ab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하이툰은 올해로 3기째인데,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디지털콘텐츠 창작교육을 제공해 웹툰작가로의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과정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시된 작품들의 내용과 퀄리티는 다른 작가부스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장애’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선입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이툰이 웹툰계의 대작가를 배출해 명성을 드높이길 기대해 본다.

 둘러보던 중 ‘필력’이 눈에 확 띄는 그림을 마주쳤다. 서은경 작가 부스였다. 박흥용 선생의 문하생 출신이라고 밝힌 서은경 작가는 1999년 서울문화사 만화공모전을 통해 데뷔했으며 2012년 <마음으로 느끼는 조선의 명화>로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문체부장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런 보석 같은 실력자가 독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자리야말로 경기국제웹툰페어가 갖고 있는 존재 의의 중 하나일 것이다. 주최 측에서 섭외력을 발휘해 흙 속의 진주 같은 작가들을 적극 발굴하여 독자들과의 만남의 장을 더욱 넓혀주었으면 한다.

 이 외에도 일본 아이돌 애니메이션 <하나돌*>의 한국어 더빙판 성우들의 깜짝 팬미팅(?)에 소녀팬들의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성우는 분명 목소리로 연기를 하는 직업인데 왜 여느 아이돌 뺨치는 수려한 외모까지 갖췄는지 모르겠다. 역시나 신은 불공평(?)하다.





행사장 가운데 즈음에 반가운 곳을 만났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헬프데스크> 홍보부스였다. <만화인 헬프데스크>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화웹툰 제작 현장의 공정 환경 조성을 위해 만화인들에게 1:1 무료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내가 불공정계약을 맺는 것은 아닌지, 저 나쁜놈(?)이 나를 날로 벗겨먹으려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이 밝은 미소로 다가와 손을 내밀지만 왠지 싸함이 느껴질 때 도움을 청하면 저작권 전문 변호사 군단이 (심지어 무료로) 당신의 든든한 천군만마가 되어 준다. 저작권 문제로 고민하는 만화가도, 계약문제로 고민하는 예비작가도, 사업으로 고민하는 만화기업, 기관도 주저 없이 만진원 <헬프데스크>의 문을 두드리시라!

 사흘 동안 열리는 행사에서 현장 특강 또한 알찼다. 행사 첫날엔 누리마루학원 황건우 교수의 ‘웹툰 프로덕션 취업과 진로의 방향성’, 툰스퀘어 이호영 대표의 ‘AI가 만든 웹툰, 사람이 만든 이야기’, 만화문화연구소의 ‘쉬운 근로계약서 with 웹툰 보조작가’ 특강이 열렸다. 이튿날엔 김동호 작가의 ‘라이브 드로잉’, 오리 작가의 ‘웹툰작가의 시작부터 스토리와 작업 과정까지 한눈에!’, 유튜버 만화선배의 ‘만화선배와 함께하는 WBTI 오타쿠 성향 테스트’가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마지막 날인 21일엔 한산이가 작가의 ‘대중을 사로잡는 콘텐츠’, 진돌 작가의 ‘웹툰작가의 꿈을 이루는 방법’, 조광진 작가의 ‘광진의 초과근무 라이브’가 이어졌다.

 웹툰작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예비작가라면 눈이 번쩍 뜨일만한 강사진들의 주옥같은 특강으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웹툰PD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취준생들에게도 꽤 실용적인 시간이 될 터였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특강 스테이지 옆으로는 푸드코트가 설치되어 대한민국 웹툰의 미래고 나발(?)이고 닭강정과 불초밥의 향내가 강렬한 유혹을 펼치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았으니 잠시 테이블에 앉아서 냠냠~

 푸드코트 옆으로 관객들이 붐비길래 뉴진스라도 왔나 싶어 가봤더니 <투니고> 홍보부스였다. 전 세계적인 K-컬쳐 열풍에 힘입어 한국어를 공부하려는 외국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외국인들에게 우리 웹툰을 교재로 이용해 한국어를 학습하는 프로그램이 <투니고>라고. 물론, 이세계로 전생한다거나 드래곤과 싸울 일은 현실에선 좀처럼 없겠지만 우리네 실생활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웹툰을 읽고 그 대사를 교재 삼아 한국어를 학습한다는 아이디어가 무척 신선했다. 재미와 학습을 다 잡는 것에 웹툰만한 자료가 어디 있겠는가.

 웹툰 축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웹툰 제작 체험 부스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현장에 설치되어 있는 태블릿에 프로작가도 울고 갈 실력을 뽐내며 멋진 캐릭터를 쓱쓱 그려내는 어린 학생들을 보며 아아... 또 저렇게 한 청춘이 굶어죽.... 아니, 우리 웹툰계를 밝게 빛낼 작가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구나 싶어 감격의 파도가 밀려왔다.

 관객들에 대해서도 짚어야겠다. 주 연령층은 10~20대 젊은 여성들이었다. 말이 그저 주 연령층이지, 실은 압도적인 것이 인상 깊었다. 웹툰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여성향 작품에 힘을 쏟으라고 교육해야겠군이라는 잔머리를 잠시 굴려보았다. 하긴 이미 만화웹툰 관련 대학 전공자의 70~80%가 여학생이고 여성향 작품의 비중이 높다.



올해로 벌써 7회차를 맞이한 2025 경기국제웹툰페어는 그렇게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었다. 거기에는 분명 대한민국 웹툰의 현재와 미래가 오롯이 숨 쉬고 있었고 시장의 트랜드와 관객의 호흡이 뜨겁게 어우러져 있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미래세대의 실력과 상상력은 우리 웹툰의 든든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AI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은 웹툰 창작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여 누구라도 쉽게 웹툰을 만드는 세상이 될 것이다. 여기엔 분명 빛과 그림자가 공존할 것이다. 빛은 살리고 그림자는 헤쳐가는 슬기로움이 경기국제웹툰페어와 같은 행사를 통해 공론화되길 바라본다.

 현재, 미래와 함께 과거도 조명이 되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것은 그저 개인적 취향으로 묻어두자.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신작들이 수천 편이다. 현재를 좇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TT, 숏츠영상 등 웹툰이 경쟁하고 있는 다른 매체들의 약진으로 요즘 웹툰 시장은 암흑기라고 할 만큼 힘들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그런 환경에서 열리는 웹툰 행사는 독자와 직접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에서 웹툰업계 구성원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일이다. 이런 행사가 더욱 많이, 더욱 큰 규모로 열리길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명색이 ‘국제’ 페어인데 ‘국제’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2층에서 9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 동안 해외기업들과 국내기업들을 연결해주는 B2B 비즈니스 상담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됐고 큰 성과도 있었다고 전해 들었지만, 작품 전시 부분에선 해외작품 소개가 그닥 보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비록 그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일본, 미국, 프랑스 등 만화 강국들의 작품이나 제3 세계 만화를 소개하는 통로 역할에 기여한다면 경기국제웹툰페어의 구성과 내용뿐만 아니라 웹툰이라는 장르를 대하는 진정성 또한 확연히 돋보이지 않을까.

 웹툰은 대한민국이 종주국이다. 그러나 우리가 해외작품과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너른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세계 속에서 우리 웹툰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이란, 서로 교류하고 자극받으면서 더욱 발전하는 시너지를 내기 마련이지 않은가.

 내년 경기국제웹툰페어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지 기대가 크다.

필진이미지

김병수

만화가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 교수, 前 목원대 웹툰애니메이션·게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