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 기행기
-웹툰시사회! 당신이 첫 번째 독자입니다-
제 9회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전당에서 수상한 게이트를 발견했다. 붉게 깔린 100미터 남짓한 레드카펫이 길게 펼쳐져 있고, 순간 이 길을 걸었던 배우들이 누구일까 상상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게이트 옆으로는 영화 포스터가 아닌, 2000년대 초반 오래된 웹툰부터 가장 최근에 세상에 나온 데뷔작 웹툰의 포스터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치 영화제의 화려한 무대가 ‘실사에서 웹툰의 세계로 넘어가는 문’으로 바뀐 듯, 관람객의 발걸음을 서서히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부산글로벌웹툰전시장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건물 꼭대기에는 페스티벌의 마스코트인 거대한 대형 만냥이가 익살스럽게 영역을 지키고 있고, 영화관을 연상케 하는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전시장 입구는 이미 초대장을 받은 듯 관객을 맞이한다.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서면, 따뜻한 빛의 조명이 길게 뻗은 복도를 비추고 있고, 벽면 곳곳에는 웹툰의 말풍선들이 마치 “당신은 이제 웹툰의 세계 안에 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부산글로벌웹툰전시장
전시장 안으로 발을 들이기 전, 벽을 가득 채운 초대형 모니터가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는다. 화면에서는 이번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알리는 오프닝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산 작가들의 이야기’, ‘작가를 찾아가는 독자’, ‘세상 밖으로 나온 캐릭터들’ 매년 새로운 테마와 이야기를 선보여 온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매번 다른 서사로 관객을 맞이해왔다. 그리고 올해의 주제는 바로 ‘웹툰 시사회’다.
이야기는 한 명의 웹툰 작가로부터 시작된다. 잊고 지냈던 오래된 컴퓨터 폴더를 정리하던 작가는 우연히 미완성 작품을 발견하고, 그 순간 스크린 속에서 튀어나오듯 자신의 캐릭터와 마주한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캐릭터는 실제로 말을 걸어오고, 작가는 그 대화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아 마침내 작품을 다시 세상에 내놓을 용기를 얻게 된다. 이 환상 같은 시나리오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이번 전시 전체를 이끄는 하나의 거대한 은유이자 이야기였다.
부산의 웹툰 작가들은 한 컷 안에 작품의 이미지와 제목, 로그라인만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숨겨진 작품을 페스티벌 전시를 통해 첫 공개 한다. 총 40작품 중 세 작품을 선정해 신작발표회까지 열려 단순히 전시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연재로 연결시켜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 또 완결작품 세 작품을 따로 선정, 영화제작자들을 초청해 ‘영화가 되고픈 웹툰’ 시사회를 통해 2차 영상화 판권의 기회도 제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웹툰시사회’ 전시는 당장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전시를 통해 향후 완성된 작품과 2차 영상화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대와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강도하 특별전
메인 콘셉트 전시가 끝나면 이어지는 코너는 레전드 웹툰 작가 강도하 특별전이다. 최근작인 「나인틴」부터 「위대한 캣츠비」까지, ‘위대한 청춘과 실험적 성년 3부작’ 시리즈가 역순으로 전시되었다. 이어 실험 출판작인 「금붕어」와 웹툰 이전의 드로잉 원고까지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강도하 작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콘티와 스토리 구상 스케치는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전시였다. 디테일한 캐릭터와 배경 작업을 재현한 입체 포토존은 많은 관람객들의 인기 포토 스폿이 되었다. 또한 개막식 전 행사인 GV에서는 전시와 작품에 관한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웹툰 빌런전
1층 메인 전시와 강도하 특별전을 보고 좁은 전시장 복도에 들어서면, 이번엔 빌런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웹툰 빌런전이다. 같은 작품을 함께 만든 작가와 어시스트가 작품 속 빌런을 선정해, 각각 오리지널과 리메이크를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작가보다 어시스트가 낫다.”, “역시 원작자가 최고다”라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부산 작가들의 한 해
1층 전시를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면, 부산 작가들의 한 해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부산 작가들이 직접 뽑은 어워즈 작품전, 멘토·멘티 특별전, 올해 연재된 부산 웹툰전, 곧 공개될 기대작 ‘Coming Soon’ 전시, 그리고 완결 웹툰전까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부산의 2025년 웹툰이 준비되고, 만들어지고, 완결되는 과정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해외 작가전 - 월드 프리미어 섹션
월드 프리미어 섹션인 해외 작가전은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 대만, 이집트 등 6개국 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대만, 이탈리아 등의 만화 관련 업체들이 부산 작가들과 비즈니스 미팅을 갖기도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만 마스터클래스 전시였다. 부산의 마스터클래스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부산 작가들이 대만에 체류하며 웹툰 수업을 진행했고, 이후 영상 강의를 통해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 결과물이 이번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에 전시된 것이다. 대만 웹툰 플랫폼에서 1회 완성작으로 선보였고, 그중 일부는 정식 연재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대만의 몇몇 작가들은 초청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페스티벌을 찾기도 했다.


드로잉광장과 대학부스
전시장을 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의 시그니처 공간인 미로 전시장이다. 재미있는 배경 그림과 포토존을 즐기며 지나오면, 11개 대학 부스가 이어진다. 이곳은 ‘페스티벌 속 페스티벌’이라 불릴 만큼 가장 시끌벅적하고 흥겨운 공간이다. 학교마다 개성 있게 꾸민 부스에는 작품과 굿즈가 가득했고,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이 공간은 메인 무대와 가까워, 대학생 프로그램이 있을 때는 바로 이동해 참여할 수 있는 재미있는 동선이 만들어졌다.


드로잉 퍼포먼스 - 손끝의 예술
웹툰페스티벌의 백미는 단연 작가들의 드로잉 퍼포먼스다. 이번에는 전시장 내부, 미로 전시장, 대학 부스 등 곳곳에서 드로잉쇼가 펼쳐졌다. 특히 대학 부스 중앙의 크로스형 구조물에서 동시에 진행된 해외 작가 드로잉쇼는 손맛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각 나라별로 뚜렷한 개성이 드러났고, 부산 대학생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루어졌다. 날씨 탓에 한낮의 강한 햇볕과 갑작스러운 비로 장소를 옮기며 드로잉쇼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작가와 관객 모두 즐거워했다. 정규하 작가의 태극기 드로잉 퍼포먼스는 압권이었다. 태극 문양 속에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대한민국을 빛낸 위인과 현대 인물들이 담겼고, 건곤감리 부분은 대학생들이 조각마다 완성하여 페스티벌 마지막 날 마침내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이 결과물은 이후 상설 전시될 예정이다.


메인 무대 프로그램
메인 무대에서는 웹툰 작가 토크쇼와 해외 작가 토크쇼가 열렸다. 특히 대학 교수진이 참여한 ‘더 프로페서’ 프로그램은 입시와 데뷔에 대한 질의응답을 통해 많은 관객과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무엇보다 이번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신작 웹툰 시사회’와 ‘영화가 되고픈 웹툰 시사회’**였다. 작년보다 업그레이드되어, 작가 대신 전문 배우들이 작품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시민 프로그램
매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도 꾸려진다. 올해는 「한림체육관」의 이석재 작가를 포함한 여러 작가들이 시민들과 함께한 **베틀 드로잉 ‘작가를 이겨라’**가 열렸다. 결과는 언제나 독자의 승리였다. 때로는 작가보다 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 독자들이 웃음을 선사했다. 또한 가족만화 그림 대회, 웹툰 골든벨 등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늘 적극적인 참여와 즐거운 분위기를 끌어냈다.

광안리웹툰콘서트
올해 특이한 것은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의 확장이다. 낮에는 부산글로벌웹툰센터에서 전시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오후부터 밤까지는 광안리 바닷가에서 콘서트가 열렸다. 웹툰콘서트의 주요 내용은 작가들의 드로잉쇼와 토크쇼 웹툰 OST 공연, 웹툰 작가들이 그린 그림영상과 뮤지션들의 콜라보 공연 등이다. 일단 바닷가의 특성상 드로잉쇼부터 특별하다. 각각 크고 작은 서핑보드에 작가들이 자신만의 그림체로 드로잉쇼를 선보였다. 캔버스가 아닌 서핑보드라 관람객의 시선을 잡는 데 성공했다. 관람객들은 가까이 와서 조용하게 가격이 얼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광안리 입구에 조금 작게 설치된 무대지만 가을 광안리의 하늘이 설치된 스크린의 연장선처럼 보여 전혀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안나보니따 작가가 직접 부른 자신의 웹툰 OST 「숲, 캠핑카 그리고 고양이」는 큰 박수와 호응을 받았고, 인기 웹툰 작가 「무사만리행」의 배민기, 「마왕의 딸로 태어났습니다」의 은민 작가의 드로잉 토크쇼는 웹툰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시간을 선물했다. 또한 오수민 작가와 뮤지션 순순희가 함께한 ‘광안대교’ 컬래버 무대는 웹툰과 음악이 어떻게 하나의 작업으로 완성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예였다. 모든 공연이 끝난 뒤 마치 계획된 것처럼 펼쳐진 광안리 드론쇼는 웹툰페스티벌의 피날례처럼 보이는 데 손색이 없었다.


올해 9회째를 맞이한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은 하나의 웹툰 종합 선물세트 같았다. 전시 콘텐츠는 행사 이후에도 매년 부산의 도서관, 시민공원, 역사관, 시청 등 다양한 기관에서 이어지고, 작가들의 드로잉쇼와 마인드C 작가의 웹툰 예능 「브로맨쇼」, 보이는 라디오 「작가의 사연」,등은 이미 페스티벌만의 콘텐츠로 자리 잡았고 올해 만들어진 「웹툰콘서트」도 하나의 콘텐츠로 성장할 것이다.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은 단순히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페스티벌 속에서 더 많은 콘텐츠가 파생되고, 지속성을 가진 힘 있는 문화 행사로 성장해 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 알찬 축제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