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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과 행사 취소로 드러나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구조적 위기

운영사의 도덕적 스캔들과 폐쇄적 구조에 반발한 전 세계 만화인들의 대규모 보이콧이 2026년 앙굴렘 만화축제 취소라는 역사적 사태를 불러왔다.

2025-12-17 강미란

보이콧과 행사 취소로 드러나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구조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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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ée, 이하 앙굴렘 만화축제) 지난 반세기가 넘게 프랑스는 물론 세계 만화계의 중심지 역할을 상징적 행사다. 작가, 출판사, 비평가, 독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화라는 매체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축제는 오랫동안 세계 만화인의 축제로 불려 오기도 했다. 이렇게 중요한 세계 만화인들의 행사가 2026년에는 열리지 않게 된다. 제53회 앙굴렘 만화축제 취소 결정은 단순한 운영 차원의 위기를 넘어 운영진을 향한 불신과 갈등이 폭발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앙굴렘 만화축제는 비영리단체인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이하 FIBD협회)’가 주관하는 행사이긴 하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2008년 이후 민간 기업인 « 눼비엠 아트 플뤼스 (이하 9e Art+) »가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 작가와 출판사들 사이에서는 창작자들의 의견이 배제된 의사결정 구조, 불투명한 재정 및 계약 관계, 축제 현장의 노동 및 작업 환경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렇게 « 9e Art+ »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은 오랫동안 만화계 내부의 불만으로 누적되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2024년 앙굴렘 만화축제 기간에 발생한 이른바 ‘클로에 사건’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해당사의 한 직원이 성폭력 신고를 했고 이후 이 직원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이런 논란이 이어지던 가운데 올해 10월경, FIBD 협회 측은 2028년 이후 축제 운영과 관련하여 이미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던 민간 기업 « 9e Art+ »와 공공기관인 « 만화이미지국제시테 (Cité internationale de la bande dessinée et de l’image) »가 공동으로 축제를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협회 측은 이러한 결정에 대해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절충안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작가들과 출판사의 입장은 달랐다. FIBD 협회의 이번 결정이 문제의 핵심을 회피한 채 기존의 운영 체제를 사실상 유지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결국 FIBD협회의 소위 절충안은 프랑스 만화계 전반의 강한 반발을 일으키는 촉발제가 되었다. 그 결과 2026년 앙굴렘 만화축제에 대한 대규모 보이콧 운동이 본격화되게 된다.

우선 작가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었다. 리아드 사투프 (Riad Satouf), 자크 타르디 (Jacques Tardi), 아트 슈필겔만 (Aart Spiegelman), 포지 시몬즈 (Posy Simmonds), 레위스 트론하임 (Lewis Trondheinm)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은 공동기고문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기고문을 통해 앙굴렘 만화축제의 현재 운영방식이 지속될 경우 축제가 존립 자체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최근 수년 간 앙굴렘 만화축제를 둘러싸고 각종 스캔들, 반복된 소통 부재, 장기적 비전 부재 등의 문제가 누적되어 왔다고도 밝혔다. 이에 대한 피해는 프랑스 만화 산업 전체와 그 종사자들에게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만화가들은 이번 기고문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앙굴렘 만화축제는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만화 축제를 공공의 문화 자산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2025년 앙굴렘 만화축제 대상 수상자인 아눅 리카르 (Anouck Ricard)도 2026년 행사 불참을 선언하며 이번 보이콧에 상징성을 더했다.

이어285명의 여성작가들이 ‘걸콧 (girlcott)’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축제 불참선언이 아니라 여성작가들과 성소수자들이 주도해 만화계에 도사리고 있는 성차별, 성폭력, 권력 남용에 맞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들은 지난 20여년 간 앙굴렘 만화축제에서 창작자들의 작업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는 « 9e Art + » 직원 개인의 일뿐만 아니라 몇 년간 반복되어 왔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운영자 측은 이를 방치하거나 침묵으로 대응해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앙굴렘 만화축제가 더 이상 창작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간보다는 수익성과 국제적 명성을 우선시하는 구조 속에서 폭력과 침묵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많은 면에서 배제되어 왔음을 강조했고, « 9e Art + »가 운영에 관여하는 한 2026년 앙굴렘 만화축제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출판사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프랑스의 주요 만화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델쿠르 그룹 (Groupe Delcourt)은 성명을 통해 앙굴렘 만화축제 차기 운영자 선정 과정이 극심한 긴장과 불투명성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델쿠르는 이런 조건에서는 2026년 축제에 참여가 어렵고 축제 운영 전반에 대한 신속하고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 9e Art + »와 그 책임자가 앙굴렘 축제에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운영 방식 역시 인간적 측면이 배제된 거칠고 폭력적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은 축제 운영자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으며 « 9e art + »를 일관되게 지지해 온 FIBD 협회 역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델쿠르 뿐만 아니라 다르고 (Dargaud), 글레나 (Glénat) 등 주요 만화 출판사들 역시 2026년 행사 불참을 공식화하며 보이콧에 동참했고 이번 일은 프랑스 만화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처럼 작가와 출판사들의 불참 선언이 이어지면서 앙굴렘 만화 축제의 핵심 프로그램인 사인회 및 전시, B2B 미팅 등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재정 지원 기관들도 입장을 표명하게 이르렀다. 앙굴렘 만화축제는 운영 예산의 상당 부분을 공공 재정에 의존해 온 행사다. 따라서 투명성과 공공성의 훼손이 곧 행사 존속의 정당성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공공 기관 및 정치인들은 현재 상황으로는 축제를 정상적으로 개최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축제 취소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게 된다.  그 결과 « 9e Art + » 측에서 2026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공식 취소 결정을 알려왔다. 물론 이번 사건의 중심에 « 9e Art + » 스캔들이 있다는 사실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번 행사 취소는 Covid-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또한 이번 결정은 비단 2026년만의 일이 아니다. 2027년 이후 축제의 지속 가능성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앙굴렘 만화축제의 운영진 문제를 둘러싼 보이콧과 축제 취소 결정은 단순히 다음 한 해 축제가 취소되는 일종의 해프닝이 아니다. 세계적 문화 행사에서 창작자들은 물론 출판 및 산업 종사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어 운영 구조의 변화를 요구한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앙굴렘 만화축제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와 원칙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 나가야 할 때인 듯하다. 남은 과제는 단순한 운영진의 변경이 아니라 앙굴렘 만화축제가 어떤 축제가 되어야 할지 숙고하고 결정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참고

https://cult.news/actualites/lappel-au-boycott-du-festival-international-de-la-bande-dessinee-dangouleme
https://www.comicsbeat.com/angouleme-2026-in-serious-doubt-as-publishers-and-authors-cancel-to-protest-bondouxs-involvement
https://www.lemonde.fr/idees/article/2025/11/21/festival-de-la-bd-d-angouleme-ce-sont-des-autrices-souvent-jeunes-qui-portent-la-colere
https://actualitte.com/article/127421/salons-festivals/gros-bleme-pour-angouleme-le-boycott-des-editeurs-se-generalise
https://www.challenges.fr/entreprise/culture/boycott-critiques-le-festival-dangouleme-senfonce-dans-la-crise-quel-impact-pour-le-secteur-de-la-bd
https://www.lefigaro.fr/bd/les-grands-editeurs-de-bd-annoncent-un-boycott-du-festival-d-angouleme-20251112
https://www.humanite.fr/culture-et-savoir/festival-dangouleme/nous-nirons-pas-au-festival-dangouleme-2026-organise-par-9e-art-le-manifeste-de-285-autrices-de-bd
https://actualitte.com/article/127644/salons-festivals/les-financeurs-publics-du-fibd-appellent-a-l-annulation-de-l-edition-2026
https://www.humanite.fr/culture-et-savoir/riad-sattouf/riad-sattouf-celui-qui-fait-des-bd-pour-ceux-qui-ne-les-aiment-pas-couronne-au-festival-dangouleme-780152
https://www.lagazettefrance.fr/article/france-le-festival-bd-d-angouleme-est-en-danger-de-mort-alertent-22-laureats
https://www.humanite.fr/culture-et-savoir/agressions-sexuelles/violee-et-licenciee-la-double-peine-pour-une-salariee-du-festival-dangouleme
https://www.humanite.fr/culture-et-savoir/bande-dessinee/lettre-ouverte-aux-financeurs-publics-du-festival-dangouleme-quel-avenir-pour-le-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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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란

만화번역가
『기후에 관한 새로운 시선』,『무엇이 여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가!』, 『내 아버지의 집』,  『주름(Arrugas) - 지워진 기억』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