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만화가와 반려동물, 공생을 말하다.

혼자가 대세다. 연말연초 또는 명절이 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뉴스가 있다. 1인 가구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 혼행(혼자 가는 여행) 같은 신조어가 흔히 쓰일 정도로 지상파 방송에도 1인 가구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2017-02-14 박정하

혼자가 대세다. 연말연초 또는 명절이 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뉴스가 있다. 1인 가구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 혼행(혼자 가는 여행) 같은 신조어가 흔히 쓰일 정도로 지상파 방송에도 1인 가구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남들 눈에 처량해 보일까봐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도 신경 쓰일 때가 있는데 이제는 혼자서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1인 식사를 위한 전용식당이 생길 정도이다.


그와 더불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프로그램 종류가 한 가지 더 있다. 반려동물 프로그램이다. 공중파 방송의 동물농장>이 전부였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케이블 방송채널과 IPTV까지 가세하여 반려동물 프로그램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연예인과 반려동물의 동거이야기 <개밥 주는 남자> <반려동물극장 단짝>, 반려동물 상담 및 행동교정 프로그램 <마이펫 상담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유기견 입양 프로젝트 <잘살아보시개> 등 내용면에서도 다양해진 국내 제작 프로그램들이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반려견이 시청하는 유료채널도 생겼다. 주인이 없을 때 혼자 지낼 반려견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어디 방송뿐인가. 반려동물과 관련된 산업은 불황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과 반대로 매년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전체 가구의 18%정도가 총 1000만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인구 5명중 1명꼴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현대 도시사회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된 저변에는 1인가구의 증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령화, 핵가족화 되는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사회적 고립을 일정부분 해소해주는 역할을 반려동물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살다보면 활동부족, 부실한 식사, 흡연, 음주 같은 건강에 해로운 습관뿐 아니라 우울하거나 의기소침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럴 때 오롯이 나에게 의존하고 있는 생명체를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은 삶의 의욕이 되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밥을 챙기고 함께 산책을 다녀오고 따뜻한 털을 쓰다듬다 보면 건조한 일상에 훈훈한 온기가 생기며 마음이 안정된다. 물론 책임감에 뒤따르는 고행을 다했을 때 말이다.

또한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은 인간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반려동물의 사진과 정보를 온라인으로 공유하며 친구를 사귈 수 도 있고 오프라인 동호회 모임이라든지 동물카페 등을 통해 직접적인 대면과 사회활동도 활발해질 수 있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변한다. 그저 마당에서 집을 지키고 쥐를 쫒던, 절반쯤 가축으로 키우던 동물이 아니라, 함께 먹고 자고 감정을 교류하는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보, 문제발생시 해결책 등 궁금증이 늘고 자랑이나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방송, 도서, 웹툰 등 다양한 매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최고의 반려인간, 만화가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화가는 함께 살기에 최적화된 직업군일 것이다. 회사에 출퇴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니 동물을 혼자 두거나 외롭게 키우지도 않을 것이고 항상 촉박한 마감기일에 쫓겨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다. 반려동물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는 작업실(또는숙소)에는 작가 혼자이거나 또는 함께 작업하는 익숙한 소수의 인원만 있기 때문에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에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적다. 무엇보다 창작활동을 하며 발달한 감수성은 반려동물의 마음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정도의 상상력도 겸비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 반려묘 웹툰은 여성작가가 많다. 남성작가인 Hun의 <그루밍 선데이>는 남자주인의 시각에서 반려묘를 바라보고 놀아주는 성향이 나타나 색다르다.
만화가의 작업실이나 집을 방문해보면 구석에서 잠을 자거나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한 두 마리쯤은 흔한 일이다. 물론 개를 키우는 작가도 있지만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고양이가 수적으로 우세한 듯하다. 한 작가가 고양이 대여섯 마리를 키우기도 하니까 말이다.개는 고양이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일정시간에 산책도 시켜줘야 된다. 노동집약적 창작환경과 불규칙한 생활에 시달리는 만화가에게 개가 보이는 충성도는 감당하기 힘든 애정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유독 애묘만화가 많다.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고 독립적인 고양이의 습성 때문이겠지만 고양이도 혼자 내버려두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는다고 한다. ‘개냥이’(개처럼 붙임성 좋고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는 작품에도 자주 나오는 소재이다.
어떤 동물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개, 고양이, 토끼, 새 등 반려동물은 종류를 막론하고 외롭고 고립되기 쉬운 1인 창작업종의 만화가에게 든든한 가족이 되어준다. 그러니 만화가가 반려동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 우수한 반려동물툰이 많아 경쟁이 치열한 ‘다음’의 ’만화속세상’에서 2013년도부터 현재까지 오랫동안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뽀짜툰>은 다섯마리 개성 강한 고양이들과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다.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와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가 돋보인다. 작품을 보고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 고양이의 매력에 중독된 집사의 모습을 담은 <탐묘인간>. ‘집사’라는 호칭은 ‘얼마나 애정 어리고 헌신적으로 고양이를 돌보고 아끼는 줄 아느냐’는 반려동물 주인의 자부심과 푸념이 섞인 애증의 호칭이다. 콩테로 그린 독특한 질감이 고양이털의 보슬보슬함을 눈으로 만지는 듯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어느새 ‘나른신’을 영접할 수도 있으니 조심할 것.

반려동물 생활툰의 전성시대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어디서든 빠르게 웹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다. 다양한 웹툰의 출현 속에 다방면으로 영역을 늘려나간 장르가 ‘생활툰’이다. 생활툰에 대한 정의는 명확히 정립되지 않아 다소 의견이 다를 수 있으나 문학의 수필에 해당되는 웹툰을 생활툰이라고 본다. 직업, 연애, 결혼, 취미, 가족 등 일상의 모든 것을 소재로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짧은 에피소드 형식이라 출퇴근시간 지하철에서 틈틈이 보기 편하고 잠시 친구를 기다리는 사이 짬을 내서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그중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겪는 일상속의 여러 이야기를 그린 반려동물 생활툰이 늘어나고 있다. 귀여운 그림체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의 반려동물 웹툰은 연령층과 성비에 구애받지 않고 대다수의 독자층이 즐길 수 있는 분야이다. 동그란 눈망울과 보드라운 털, 도톰한 발바닥, 개구진 표정, 골골 잠든 모습까지… 쓰다듬어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함께 키우는 기분까지 든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에게는 정보와 유대감을, 기르지 않는 사람에게도 충분한 공감과 대리만족을 준다.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관심이 없던 사람이 반려동물 웹툰를 보고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만화가 가진 순기능의 좋은 예이다.
출판만화만 있던 시절, 책 말미 후기란에 서너 페이지 정도로 작가 자신과 주변의 신상을 그린 가벼운 일화들이 실렸었다. 반려동물도 꽤 등장하였다. 팬 입장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생활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페이지라 빼놓지 않고 챙겨 읽었지만 항상 분량이 적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웹툰시대가 열리고 개인적으로 기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반려동물 생활툰의 대거 등장이다.
△ 반려동물 웹툰을 거론하면서 스노우캣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정식 매체연재 이전부터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반려묘와의 생활을 꾸준히 그려왔던 웹툰 1세대이다.
그렇다고 웹툰이 나오기 이전에 반려동물 만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처음 접한 반려동물 만화는 강현준의 <캣>이었다. 만화잡지 ‘윙크’에 연재되던 당시만 해도 만화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만화는 드물었다. 더욱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이니셜로 표기하고 고양이와의 동거생활을 코믹하게 표현한 <캣>은 아마 본격 애묘만화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 동물과 어린이를 소재로 꾸준히 만화를 그려온 (故)이향원 선생님의 <이겨라 벤>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 남매(꼭지와 수철)와 점박이 개 벤의 우정을 담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투견에 대한 소재가 지금의 정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반려동물 만화라고 하기엔 논란의 여지가 크다(어린 시절에 커다란 개를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심어준 작품이기에 소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동물을 사랑하게 해준 첫 번째 작품으로 꼽는다.)
△ 캣(강현준 작품)                                                                                 △ 이겨라벤(이향원 작품)

시선의 변화, 불편한 이야기의 시작
이웃 일본에서도 동물만화는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이다. 과거 해적판 <당근 있어요?>로 국내에서 불법 유통되기도 했던 <센타로의 일기>와 <방가방가 햄토리 (원제 : 톳토로 햄타로)>는 반려동물 시장에 토끼와 햄스터 키우기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인기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간혹 잘못된 정보가 실리거나 의인화되고 친근하게 설정된 만화를 보고 반려동물 키우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외롭게 자란다. 아이의 외로움을 덜어주려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반려동물이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사례는 많이 발표되었다. 굳이 연구사례까지 찾아보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본인이나 주변에서 동물을 키우면서 성격이 유순해지고 남을 배려하는 사회성이 길러지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항상 곁을 지켜주고 함께 해주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물도 외로움을 탄다. 어떻게 보면 주인만을 바라보는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더 많은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각오했던 것보다 몇 배나 힘이 드는 일이다. 동물을 제대로 기를 수 있는 상황인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입양을 결정했다가 외롭게 방치하거나 심지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단순한 호기심과 인간의 이기심으로 반려동물을 평생 외롭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하는 이유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점차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바뀌어 가면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강조되던 기존의 만화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즐겁고 기쁘고 마냥 좋기만 할 것 같던 반려동물 키우기의 고된 현실과 어려움, 반려동물이 느낄 감정의 희노애락과 이별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마주보기 시작한 것이다.

육아만화 <비빔툰>의 홍승우 작가는 육견만화(?) <안돼! 기다려>에서 강아지 키우는 일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중노동인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보여준다. 에너지가 넘치는 어린 코카스파니엘과의 격투기 같은 육견기를 읽다보면 강아지 키우는 일이 만만치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생활만화의 생생한 밀착표현이 온몸으로 전해져 힘들다가도 이쁘고 귀엽다가도 괴로운, 롤로코스터를 탄 기분이 된다. 정보도 꼼꼼히 나와 있어 반려인 입문서로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을 작품이다.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내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 점은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새와 함께 산다는 것은 똥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하소연하는 <우리집 새새끼>의 작가 골드키위새. 필명만 봐도 새를 사랑할 것 같은 작가가 ‘새’로 등장한다. 스스로 ‘안티문조툰’이라고 자조하며 새와 함께 사는 삶의 그늘만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특이한 동물툰이다. 제목부터 남다르다. 작가는 ‘우새새’라는 애칭을 사용하지만 독자들은 끝까지 ‘새새끼’라고 줄여 부른다. 이마 이치코의 <문조님과 나>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문조’를 소재로 다룬 동물툰인데, 국내 반려동물 웹툰 중에 흔치 않은 개그만화이다.
△ 안돼! 기다려 중에서(홍승우 작품)                                                    △ 우리집 새새끼 중에서(골드키위새 작품)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이 점점 쇠약해져 결국 거동이 불편해진다. 침침하던 눈은 시력을 잃고 설상가상 치매까지 걸리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혼자 화장실에 갈 기력도 없어 실수를 하기도 하고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을 자고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사람의 노년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개의 말년은 사람과 참 닮아있다. 일본의 작가주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는 단편 <개를 기르다>에서 15년간 기르던 개의 노년과 죽음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개의 노화에 따른 미묘한 가족들의 감정 변화가 마치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극사실적인 그림과 건조하리만치 절제된 표현은 비통함을 과장되게 묘사하지 않아 오히려 더욱 슬퍼진다. 밝고 따뜻한 이야기의 반려동물만화가 주류를 이루던 때에 차분하게 노령견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은 반려동물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킬 자신이 있는지 조용히 묻고 있다.
△ 개를 그리다(다니구치 지로 작품)
△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중에서 (초 작품)
웹툰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반려동물의 노년을 그려낸 작품이 늘어났다. 노령견의 이야기로 큰 공감을 일으킨 초작가의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는 대중교통이나 사무실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보기는 곤란한 작품이다. 출근시간 버스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난처했다는 경험담과 한밤중 가족들이 들을까 숨소리 죽여 가며 울었다는 독자들이 태반이다. 짧은 내용과 간결한 그림은 긴 여운을 남긴다. 반려동물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성이 읽는 이의 감정을 몰입시켜 반려동물과의 특별한 소통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더욱 아프다.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동물은 사람과 같은 시간을 살아 갈수가 없다. 우리의 1년이 그들에게는 며칠밖에 안될 수도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응축한 사랑을 짧은 시간 안에 몰아서 받는 특별한 경험이지만 반듯이 찾아오는 이별도 감내해야함을 잊지 말아야한다.

<상상고양이>의 엔딩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늙은 반려동물을 기르며 느끼는 감정들과 떠나보낸 후의 마음을 그리고 싶었다는 김경 작가는 주제의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최대한 덜 슬프고 따뜻하게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디지털로 작업했지만 지극히 아날로그 감성의 웹툰이다. 갈색과 연초록색으로 나뉘는 두 개의 네모난 칸은, 하나는 사람의 시선에서 진행되고 다른 하나는 고양이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고양이가 녹색계열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고양이 시선의 컷은 그린톤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동물의 의인화는 많이 사용되어온 만화의 장르적 특징이지만 한 화면에서 두 주인공의 입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칸 구성은 웹툰에서 흔한 진행방식은 아니다. 게다가 손글씨로 직접 대사를 쓰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매끈하고 화려한 칼라그림이 다수를 이루는 웹상에서 종이만화의 질감이 오히려 고유의 개성을 만들어냈다. 유승호 주연의 동명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2016년도에 MBC EVERY1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
반려동물의 노령화와 죽음에 대한 주제가 개인의 경험에 관한 성숙한 고찰이라면 <개와 토끼의 주인>과 <환상의 파트너>는 한걸음 더 나아가 동물과 사람을 아우르는 사회문제와 그 관계에 관한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비인기 드라마작가 여자주인공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보유한 성공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남자주인공의 러브스토리’ 이렇게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순진한 여자와 까칠한 남자가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전개가 예상되었다. 적어도 1화를 봤을 때는 말이다. 그런데 <환상의 파트너>의 중요 포인트는 작품 소개의 한 쪽에 있다.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이 부분이 핵심이다.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을 통해 버려지고 상처받은 유기동물들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러브스토리는 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생소한 직업과 로맨틱 코미디물의 형식은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유용한 장치이다.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살아있는 생명까지 상품으로 취급한다. 단순히 유행을 쫒아 허영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반려동물을 받아들였다가 그 효용가치가 떨어질 때 가차 없이 버려져 유기동물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의 반대, 건강, 이사 등 다양한 이유로 버려지는 동물이 한 해 동안 1만 마리 가량 된다고 한다. 대부분 사고와 학대, 굶주림으로 거리에서 죽고 구조된 유기동물마저도 3분의 1 가량은 안락사 처리된다. 단순히 반려동물 산업의 팽창이 가져오는 부작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작은 생명에 대한 죄가 너무 무겁다.
<환상의 파트너>를 함께 쓰고 그리는 김예린과 장유라 작가는 반려동물에게 받은 넘치는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유기동물만화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반려동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 <상상고양이>의 ‘복길이’와 <뽀짜툰>의 ‘봉구’도 유기묘였다. <뽀짜툰>은 ‘뽀또’와 ‘짜구’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다. 이미 4마리의 고양이를 기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유기묘 입양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막둥이 봉구가 구조되는 과정을 그린 ‘85~86화 꼬물이를 만나다’ 편을 보면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일에 많은 고민이 뒤따름을 알 수 있다.
△ <상상고양이>의 김경작가는 본인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컷으로 두 주인공이 비오는 거리에서 처음 만나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을 꼽았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후의 고단한 삶을 그린 ‘3화 인간이 했던 짓’을 보고나면 그 이유를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환상의 파트너>가 가공의 로맨스스토리를 통해 감정에 호소한다면 이원진 작가의 <개와 토끼의 주인>은 직접적이고 전투적인 자세로 문제를 제기한다. 제목 그대로 이 만화는 반인동물이 아닌 ‘주인’이 주인공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특별편에서 서구화로 너무 빨리 변해버린 반려동물에 대한 세대 간의 견해차를 좁혀보고 싶다는 의도를 밝혔다. 대형경비견 도베르만을 키우면서 겪은 편견과 견주로서의 고민을 개인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공론화하여 함께 의논해보자는 취지이다.

매회 본문보다 길게 달리는 댓글을 읽고 다양한 견해 차이를 생각하다보면 한 편 읽는데도 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상당히 까다로운 만화이다. 대다수 반려동물 만화가 위로와 공감, 개인의 경험담 위주라면 <개와 토끼의 주인>은 견사, 국견 복원, 동물실험, 반려동물 등록제 등과 같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사회적 문제를 끄집어 내놓는다.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생길 수 있는 사람간의 입장 차이와 소통의 방법, 견주가 지켜야할 자세, 반려동물을 대하는 주인의 태도 등 줄기차게 각각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작가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고 그로 인해 댓글논쟁이 독자간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분명 생각해 볼만한 이슈이다. 논란거리가 될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은 독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처음엔 불편하고 불협화음이 생기겠지만 조금씩 변화해가는 성숙의 단계라고 믿는다. 대다수 피하고 싶어 하는 논쟁적인 화두를 작정하고 던지는 작가의 각오와 투쟁적인 댓글이 반가운 이유이다.

다른 상황으로 댓글이 많이 달리는 반려동물 만화는 노란구미의 <고양이 희나>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작가의 태도에 대해 애묘인들의 걱정과 우려가 섞인 댓글들이 이어졌다. 노란구미작가는 <한국 일본 이야기> 웹툰을 그린 재일교포 2.5세이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고양이에 대한 인식차이가 크고 주택과 도로 및 교통 사정이 달라서 재일교포인 작가의 자유로운 양육방법에 대해 독자들의 염려가 컸던 것이다.
해외에 나가서 놀랐던 일중에 하나가 길거리에서 만난 고양이들이 사람을 보고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와서 몸을 부비며 친근하게 굴거나 느긋하게 옆을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고 신기했던 적이 있다. 특정 국가에 한정된 일이 아니다. 길거리를 여유롭게 산책하는 고양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일본에서 자란 작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외출 고양이가 우리나라에서는 위험한 방치가 된다는 걱정 어린 댓글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을 말해준다.
△ 개와 토끼의 주인 중에서(이원진 작품)                                                      △ 고양이 희나 중에서(노란구미 작품)
아직 갈 길이 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관련 제도정비가 진행되고 있다지만 한참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더디게 걷는 사이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그들은 인간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여있다. 유기뿐 아니라 학대, 살해와 같은 동물에 대한 잔인한 범죄가 사람에 대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우리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동물학대를 막을 수 있는 다각도의 제도적 장치와 법률 강화가 시급하다.
다행인 것은 국민의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동물학대자의 처벌수위를 높여야하며 동물복지를 위한 법 규제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동물범죄의 심각성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물이 행복한 세상이 사람도 행복한 세상
‘반려(伴侶)’는 사전적 의미로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를 이르는 말이다. 항상 가까이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쓰지만 배우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려’와 ‘동물’을 나란히 사용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금은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표기도 꽤 자연스러워졌지만 아직 ‘애완동물’이란 단어가 더 익숙하게 쓰이는 곳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애완동물(pet)이 잘못된 단어는 아니다. 다만 ‘애완(愛玩)’의 한자적 의미에 놀이감을 이르는 뜻도 있기 때문에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한 인식변화의 한 방법으로 ‘반려동물’이라 쓰자는 의견이 지지를 받고 있다. 반려동물이라는 명칭은 존중의 의도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퍼트린 개념이다. 동물을 단지 인간을 위한 유희의 존재로 바라보지 말자는, 더불어 살아갈 ‘가족’으로 받아들이자는 의미이다. 보다 적극적인 결심과 의지로 보아야한다.

각박한 현실에 상처받은 마음을 따뜻한 위로를 통해 치유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모든 반려동물 만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동물이 행복한 세상이 사람도 행복한 세상이라는 것! 사람과 동물이 공생하는 한 반려동물만화는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것이다. 아직은 ‘반려’라는 명칭을 사용하기가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반려동물만화의 인기를 보며 희망을 가져본다. 진지한 고민 끝에 함께하는 동물가족은, 당신을 유일한 반려로 맞이해줄 것이다. 당신은 반려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 <환상의 파트너> 마지막에 항상 표기되는 짧지만 깊은 부탁은 유기동물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작가들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