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마트폰 인구 14억 명. 지구에 사는 70억 인구 중 5분의 1 이상이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문자를 하고, 뉴스를 읽고, 영화를 보고, 호텔을 예약한다.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쉴 새 없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무형의 콘텐츠를 지구 곳곳에 뿌릴 수 있는 기술은 스마트폰과 만나 종이에 갇혀있던 책을 빠른 속도로 전자책으로 빚어내기 시작했다.
국내 전자책 시장은 크게 스마트기기의 보급과 장르문학의 강세로 정리할 수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의 국내 전자책 독서율은 14.5로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기기가 널리 보급되며 증가하는 추세다. 스마트폰을 통한 전자책 독서는 컴퓨터와 노트북(38.1), 태블릿PC(11.2), 개인 휴대단말기(3.6), 전자책 전용단말기(2.3) 등을 누르고 가장 큰 비율인 44.1퍼센트를 차지했다.
아이이펍(www.i-epub.com/default) 김철범 대표는 “교보, 인터파크, 예스24와 같이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과 카카오페이지, 다음 스토리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웹툰, 웹소설 등의 웹 전용 콘텐츠를 판매하는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이 현재 국내 전자책 시장의 경향이다”고 하며 “포화상태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모바일 기기가 보급됐기 때문에 모바일 전문 디지털 콘텐츠들이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
북잼(www.bookjam.co.kr)의 이명우 매니저는 “북토피아 전자잉크(e-잉크) 단말기 출시로 열린 1차 전자책 시장을 지나 스마트폰의 보급을 통한 2차 전자책 시장이 열렸다. 우리나라 종이책 시장이 매년 감소하고 있는데 이 시장을 선점하기만 해도 충분한 성장률을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업체가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가장 큰 장점이 스마트폰이지만, 가장 큰 단점도 스마트폰”이라고 언급하며 “조그만 화면 안에서 일, 검색, 게임, 독서, 문자메시지, 전화 등 모든 것이 가능하여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다보면 문자나 전화 등의 자극적인 신호가 온다. 책을 집중해서 길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며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의 보급이 긍정적인 영향만 가져오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세계 전자책 시장은 아마존, 애플, 구글, 코보(Kobo) 등의 주도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유통사가 콘텐츠의 가격을 매겨 판매하던 기존의 도매 방식과 함께, 판매 공간만 제공하고 일정 비율의 수수료만 받는 오픈마켓이 전자책 시장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전자책 시장 3분의 2를 점유한 아마존 킨들 스토어(Kindle Store)의 전자책 판매량은 2011년을 기준으로 종이책 판매량을 넘어섰다. 전자책 보유서적만도 85만 권에 달해 빠른 속도로 종이책 시장을 대체하고 있다.
애플은 음악 콘텐츠 마켓 아이튠즈와 애플리케이션 마켓인 앱 스토어를 운영한 노하우를 담아 2010년 1월에 전자책 콘텐츠 마켓 아이북스(iBooks)를 내놓았다. 아이북스가 세상에 나온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1억 권의 전자책이 전 세계로 다운로드 되며 아마존 킨들 스토어에 이어 글로벌 오픈마켓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데스크톱, 노트북, 태블릿PC, e북 전용단말기, 스마트폰 등 기기를 가리지 않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구글 이북스(eBooks)도 세계 전자책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아직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100여 개국에서 전자책을 서비스하는 코보, 세계 각국의 정부, 도서관, 학교, 단체 등과 콘텐츠를 거래하는 오버 드라이브(Over Drive), 최근 중국, 일본, 독일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는 우리나라 오픈마켓 유페이퍼(Upaper) 등이 세계 전자책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명우 매니저는 “지금은 외국 출판사들이 오픈마켓을 통해 한국 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한국에서 책을 판매한다. 한국 출판사가 외국으로 진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책을 출판해서 해외로 진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요즘은 바로 판매가 가능하다. 북잼 매출의 10 이상이 해외 독자인 것도 이런 영향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미지02] 애플 iBooks를 통해 글로벌 오픈마켓에 진출한 오연 작가의 <삼국유사 - 위만왕>(영어).
디지털 콘텐츠 시장은 글로벌 오픈마켓으로 인해 더 넓어지고 치열해졌다. 1인 창작자와 소규모 창작자들에게는 물리적 장벽 없이 세계 시장으로 도전할 수 있는 큰 기회이기도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질 높은 콘텐츠에 잡아먹힐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작품제작을 시작으로 번역, 유통, 홍보 등의 과정도 창작자가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부분을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2013년에 1인 창작자, 소규모 창작집단, 출판사, 기업을 대상으로 ‘만화콘텐츠 오픈마켓 활성화 지원 사업’을 벌였다. ‘글로벌 오픈마켓용 만화창작 및 사업화 지원’은 만화콘텐츠 오픈마켓 활성화 지원 사업의 일부로, 변화하는 전자책 시장에 만화 콘텐츠가 대응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심사를 통해 실력 있는 기성작가와 가능성 있는 신인작가를 두루 뽑았고, 작년 11월에 지원 사업에 선정된 11편의 작품을 글로벌 오픈마켓에 공개했다. 달나무의 <고양이의 숲>, 임현정의 <여행의 발견>을 포함한 9편의 작품이 아마존 킨들 스토어에 등록됐고, 오연의 <삼국유사 - 위만왕>은 애플 아이북스, 이민호의 re.D는 구글 플레이북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글로벌 오픈마켓용 만화창작 선정작은 총 11편 중 두 작품을 제외한 9편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됐다. 세계 21억 명이 영어를 모국어, 공용어 등으로 사용한다는 점과 전자책 환경이 잘 다져진 미국 시장에 진출 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미국은 성인 10명 중 3명이 전자책 단말기나 태블릿PC를 보유할 정도로 전자책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시장이다. 2016년에는 미국 도서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퍼센트에 달할 것으로 점쳐진다. 김철범 대표는 “미국은 디지털 콘텐츠를 보는 기기와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고 우리나라와는 책을 읽는 습관도 달라 올해도 여전히 미국이 전자책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오픈마켓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관심사, 가격, 마케팅 등의 욕구를 명확하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질 높은 콘텐츠,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의 다각화를 염두해 둔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김철범 대표는 글로벌 오픈마켓의 성공 관건에 대해 “국내외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완성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한글로 된 콘텐츠를 제대로 번역하는 것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