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란 어떤 것인가?

최근 한국에도 일본 만화 편집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쿠만> 같은 만화가 히트하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진출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상에도 일본 만화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인 편집자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 편집자에 대해 알면 2인3각으로 만들어지는 일본의 만화 제작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확한 정보가 아닌 '카더라'식의 오해도 늘어나고 있다.

2012-05-21 이현석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란 어떤 것인가?

최근 한국에도 일본 만화 편집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쿠만> 같은 만화가 히트하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진출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상에도 일본 만화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인 편집자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 편집자에 대해 알면 2인3각으로 만들어지는 일본의 만화 제작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확한 정보가 아닌 '카더라'식의 오해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연재를 생각하는 작가나 작가 지망생, 혹은 일본 만화 업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많이들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바로 작가와 편집자와의 관계다.
 
만화가와 편집자, 정말 상하관계에 있나?
 한국에서 돌아다니는 일본 만화 편집자에 대한 대표적인 소문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편집자와 작가는 상하관계가 확실하며, 편집자는 작가를 자기 의지로 컨트롤하려는 고압적인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편집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출판 만화의 편집자 성향은 잡지에 따라서, 출판사의 사내문화에 따라서, 혹은 편집자 개인 인성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양한 케이스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것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K사는 탄탄한 기획을 바탕으로 하는 만화가 많다. 이런 경우 편집자는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의 의견을 조율하고 각종 자료 조사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편집자의 역할과 권한이 상당히 중요해진다. 이럴 때는 오히려 편집자가 주도권을 쥐는 것이 타당하다. 반면, 러브 코메디물이나 청춘물 등에서 강세를 보이는 S사의 경우를 보자. 인물의 심상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작가의 역량에 많은 것을 맡기고, 스케줄 관리 정도만 해주는 소극적인 편집자가 적합하다. 또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다. 스케줄 등 자기 관리가 잘 안 되어서 편집자가 확 끌어 주는 게 맞는 작가도 있으며, 스케줄 관리나 작품 퀄리티 관리는 철저하지만 독창성이 떨어져서 이를 보조하는 아이디어 제공이나 취재를 시켜주는 편집자가 맞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건조하게 보아도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결코 편집자가 일방적으로 작가를 리드하는 관계가 아니다. 둘은 동등한 입장에서 만화를 만들어가는 파트너적인 관계다. 이는 작가가 일본의 출판사와 맺는 출판 계약서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출판 계약서에서 작가가 [갑]이고 출판사가 [을]이다.1) 그리고 이 계약에서 갑의 위치인 작가는 자신이 가진 '출판과 판매에 관한 권리(판권)'를 정해진 몇 년간2) 출판사에게 빌려준다. 즉, 일종의 한시적인 판권양도 계약이다. 
 왜 이런 계약형태인가. 사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작가가 자신이 만화 콘텐츠를 인쇄하고 직접 책으로 묶어서 서점에 파는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집필에만 전념해도 바쁜 작가가 출판과 유통까지 도맡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 게다가 책의 판매망이나 원고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제작비 등 초기 투자비용를 작가 본인이 부담하는 것은 상당히 버거운 일이다. 그러니 작가는 책이 팔려서 나오는 금전적인 이익의 일부를 출판사에게 넘겨주는 대신에, 책의 제작과 판매에 는 일체 출판사에게 맡겨버리는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작가와 출판사와의 기본 관계를 알 수 있다. 출판사는 작가에게 권리를 양도받아서 그 권리를 행사하는 존재, 즉 작가에게 부탁해서 권리를 허락받는 입장인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관계에서 여러가지로 발전하고 고착화된 것이 지금 일본 잡지 출판만화에서 작가와 편집자가 일하는 형태다.  
 물론, 수많은 예외도 존재한다. 출판사에 따라 신인 작가가 연재를 시작할 때 계약금을 주고 전속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으며, 이미 유명한 프로작가와 독점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작가가 이 출판사에서의 작품을 쉬고 있어도 다른 출판사에서 연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작가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금액은 출판사가 지불한다.
요즘은 불황 때문에 많이 사라졌지만, 일본에서 연말이 되면 흔히 열리던 작가 망년회의 명칭을 보아도 작가와 편집부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보통 이 망년회의 명칭은 '사은회(謝恩会)'다. 즉, 은혜를 입었으니 이를 보답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이에 대한 판매권리를 출판사에 허락해주어서 일 년간 회사가 유지될 수 있었으니 이에 대해서 보답하겠다는 의미의 행사라는 것이다. 회사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지만, 이런 행사에 편집부원이 평상시에는 입지 않는 정장을 착용할 것이 의무화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오늘은 편집부원이 접객을 하는 입장으로 작가분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의사표현의 일종인 것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독자에게 좋은 만화를 공급하자는 파트너적 관계
 작가가 고심해서 만든 플롯이나 콘티, 그림을 보고 편집자는 때로는 신랄하게 말로, 혹은 어렵사리 문서를 작성해서 이런저런 의견을 보낸다. 그 반응을 보고 작가는 다시 고심해서 편집자에게 수정안을 보낸다. 이런 과정은 언뜻 보기에는 편집자가 갑의 입장에서 작가에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원고료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수익들이 출판사 편집부로부터 작가에게 지급이 되니, 작가가 편집부에 어느 정도 종속되는 관계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기는 더욱 쉬울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상하관계로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작가와 편집자는 독자라는, 이미 각양각색의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며 살아와서 입맛이 매우 까다로운 존재를 어떻게든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운명공동체적인 관계다. 서로 협력해서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인 것이다.


1) 참고로 보통 단행본을 출간 전후에 이 출판 계약을 한다. 몇몇 출판사에서 연재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2) 필자가 일본의 모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을 당시는 2년간이었다. 다만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필진이미지

이현석

레드세븐 대표
前 엘세븐 대표
前 스퀘어에닉스 만화 기획·편집자
만화스토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