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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독립출판 서점 속 독립출판만화의 경향

작년, 광화문의 한 미술관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전시회가 열렸다. 지난 11월 7일에 열린 ‘서울 아트북 페어 2015 언리미티드 에디션’(이하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그것이다.

2016-11-01 김상희


독립출판 전문서점, 새로운 문화 트렌드?
△ 제8회 언리미티드에디션 전시회 포스터
작년, 광화문의 한 미술관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전시회가 열렸다. 지난 11월 7일에 열린 ‘서울 아트북 페어 2015 언리미티드 에디션’(이하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그것이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2009년에 독립출판물을 대상으로 한 아트북 페어로 올해로 8번째를 맞는다. 이 전시회는 매회 독립출판업계 관련 전문가와 독자들이 참가하는 이벤트로서 작년에만 무려 15,0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유어 마인드’는 독특하면서도 알찬 기획력 때문에 주 무대인 홍대뿐만 아니라 서울을 대표하는 독립출판 전문서점으로써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동네 서점이라고 불리는 독립출판 전문서점이 문화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고질적인 경기 불황과 더불어, 출판사 속 제한된 기획편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창작자들의 실험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독립출판은 그저 콘텐츠를 종이 위에 인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창작자의 예술적 의지와 실험을 물성(物性)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자가 출판과 구별된다. 만화책을 예로 들면, 김인엽의 『신도시』시리즈와 정미진, 싹이돋아의 『해치지 않아』를 보면 작가의 개성과 주제에 공들인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 『신도시』 시리즈 포스터와 『해치지 않아』 표지
이렇듯 독립출판 전문서점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쓰고 그린 창작물을 소규모로 판매하는 커뮤니티가 속속 형성되고 있어 기존의 상업출판물에 지친 창작자와 독자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표한 『2016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15년 국내의 일반서점은 2,116개, 이중 오직 책만 판매하는 순수서점은 1,559개로 나타났다. 2013년과 비교하면 순수서점은 1,625개에서 66개로 4.1%가 감소했고 일반서점은 2,331개에서 215개로 9.2%가 감소했다. 비록 비율은 낮지만 서점이 계속 줄어드는 것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점의 전용면적 변화도 비슷한 추세다. 2005년 즉 10년 전과 비교하면 일반서점의 전체 전용면적이 134,229평에서 120,833평으로 약 10%가 감소했다. 결론적으로 50평 이상에서 100평 미만의 대형서점마저도 2015년에 들어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 강북과 대학가 중심으로 퍼진 독립서점의 바람은 지방까지 이어지고 있다. 구글맵에 검색만 해도 현재 90여 개가 넘는 서울 소재 독립서점뿐만 아니라 경기, 충청과 같은 수도권에도 20여 개가 넘고 경상도, 전라도에도 각각 10여 개 안팎의 독립서점이 운영 중이다. 서울시는 온라인으로 동네 서점 지도까지 만들었다. 서울도서관이 마련한 ‘동네책방 찾기’(http://lib.seoul.go.kr/bookstore/main)는 서울 시내에 있는 400여 개의 서점 위치를 검색해서 찾을 수 있다.
한 주간지는 이러한 독립서점의 열풍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대형서점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면적에 100분의 1도 안 되는 책을 갖고 있지만 대형서점의 축소판이 아니다”라는 평가처럼 독립서점의 위상은 그저 책팔이로써 머물지 않는다.

취향 따라 백인백색, 각양각색 독립만화
독립출판 전문서점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상업출판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출판물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맥주라는 소재를 가지고 인포그래픽과 일러스트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맥주도감』, 한글과 라틴어를 섞어서 짜는 법을 쓴 타이포그래피 서적인『섞어짜기』등 해외에서 발간되는 희귀잡지부터 국내 최초 독립도색잡지까지 백인백색이라 할 만한 다양한 출판물을 만날 수 있다.
만화도 이와 비슷하다. 깔끔한 터치와 심플한 컬러로 빵과 커피를 먹는 인물을 그린 타카하시 유키의 『커피 & 브레드』, 교환학생 시절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래픽노블 풍으로 그린 정민호의 『할로, 케빈!』 등 기존 웹툰이나 출판 만화에서 보기 힘든 개성 넘치는 국내외 일러스트와 만화를 볼 수 있다.
특히 김인엽의 『신도시』 시리즈에 이은 두 번째 장편만화책인 『두경』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쳇바퀴 생활을 반복하는 현실에 지치거나, 막상 연애에 맞닥뜨렸을 때 주저하고 당황하는 현실 속 청춘들의 단면을 그리고 있다. 규칙적인 칸 속에서 드라마틱한 긴장감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서 편안하게 공감을 주고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서 “『신도시』가 본인의 감정과 경험을 1차원적으로 살렸다면 『두경』은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좀 더 객관화시킨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두경』을 보면 정돈된 분위기에서 캐릭터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작가가 말한 만화적 시도와 노력을 알 수 있다.

독립만화잡지의 명맥, 차별화 전략이 살길
△ 『Sal』(살북) 7호 표지
2007년에 첫 발간해서 지금까지 7호를 발간한『Sal』(살북)은 만화가들이 직접 제작, 생산까지 직접 참여한 독립만화 출판잡지다. 김수박, 권용득과 앙꼬를 비롯한 마영신, 백종민, 유창창과 같은 만화가들이 모여서 만든 『Sal』은 초기에는 통신판매로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작가들이 직접 사람들과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기에 블로그에 책을 부쳤다고 하고 받으면 받았다고 글을 남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들이 책을 사는 것을 넘어서게 됐다”고 발간 당시 김수박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또 작가들이 각자 책을 판매했기 때문에 책을 보낼 때 엽서, 그림 등 작가마다 갖가지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팔린 수익은 다음 호 작가의 원고료로 지급했으며 수익금은 참가 작가 수대로 나눈 액수였다고 한다. 친한 작가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만들어진 『Sal』은 ‘속살’이라는 제목에 동의를 얻어 ‘속’자를 뺀 ‘살’이라며 나중에 책을 본 독자들이 저마다의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비록 2014년에 발표한 7호 이후로 후속권 소식이 없지만 독립출판의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외에도 『우주사우나』와 만화와 비평을 함께 담은 『bogo』(보고)도 국내에 몇 안 되는 대안만화 잡지였지만 지금은 휴간상태여서 아쉽기만 하다.
△ 『쾅 코믹 아트 매거진』1호, 7호 표지
그런 점에서 『쾅 코믹 아트 매거진』은 현재까지 꾸준히 잡지를 발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만화웹진으로 시작한 ‘쾅’은 2010년 『쾅 issue 00』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온라인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 『쾅 코믹 아트 매거진 vol.1』이라는 아트만화잡지를 발표했다. 현재 2016년, 7호까지 발표한 이 잡지는 독립만화이면서 동시에 아트북의 특징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창간호인 1호의 검은 바탕에 그래픽 요소가 강한 표지부터 최근호인 7호의 패브릭 소재의 입체적인 효과 위에 그린 일러스트 표지만 봐도 여느 만화잡지와 차별화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들에게 자유로운 만화를 그릴 공간을 제공하여 다양한 한국만화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라는 목적 아래 만들어진 ‘쾅’ 매거진은 최재훈, 안민희, 한유미의 만화와 일러스트 단행본도 출간했다.
‘쾅’의 권성우 에디터는 ‘에이코믹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할 때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쾅 코믹 아트 매거진』을 통해서 “사람들과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이 태어나서 기쁘고 즐겁다”며 덧붙였다. 기존의 독립만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래픽 아트적인 요소가 강한 『쾅 코믹 아트 매거진』으로 작가들뿐만 아니라 독자도 새로운 만화를 즐길 수 있게 된 건 분명하다.

블로그와 UCC, SNS의 발달로 1인 1콘텐츠 시대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인간이 갖고 있는 표현의 욕망은 온라인에서 손쉽게 실현시킬 수 있다. 이런 온라인의 욕구를 오프라인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공감과 연대를 이끌기도 한다. 마치 독립출판 서점들이 책방을 넘어서 문화공간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종이만화책의 갈 길도 궁금해진다. 작가주의 대안만화 중에서 그래픽 요소를 강조한 ‘쾅’ 매거진의 차별화 전략처럼 오프라인 출판물로써의 만화와 만화서점을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다양한 독립만화를 놓고 창작자와 독자들이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독립출판 전문서점처럼 안성맞춤인 곳도 없을 것이다. 최근 다양한 테마를 가진 독립서점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만큼 마음껏 만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만화공간 혹은 아늑한 만화서점이 생기길 기대한다.
필진이미지

김상희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