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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 만화 : 사회와 마주하고, 시대와 조응하다

2018년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한국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2018년은 어떤 해였을까. 2017년을 휘감았던 막연한 기대감은 2018년 초 평창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함께 한동안은 계속 이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과 부딪쳐야만 했다. 마치 동계 올림픽에서 예상 이상의 성과로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었던 컬링 국가대표팀의 자랑스러운 성과가 하반기에 이르러 추악하고 험난한 실상이 드러났던 것처럼, 2018년의 한국 만화 역시 그랬다.

2018-12-27 성상민



2018년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한국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2018년은 어떤 해였을까. 2017년을 휘감았던 막연한 기대감은 2018년 초 평창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함께 한동안은 계속 이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과 부딪쳐야만 했다. 마치 동계 올림픽에서 예상 이상의 성과로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었던 컬링 국가대표팀의 자랑스러운 성과가 하반기에 이르러 추악하고 험난한 실상이 드러났던 것처럼, 2018년의 한국 만화 역시 그랬다. 분명 산업적인 지표는 상승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작가들과 팬들이 이를 갈았던 ‘밤토끼’나 ‘마루마루’ 같은 사이트를 폐쇄하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 불거진 ‘레진코믹스’를 비롯한 여러 웹툰 플랫폼의 부당 대우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의 기관에서 발표한 만화가의 창작 실태는 한국 만화의 현실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자료였다. 거시적인 판의 크기는 커지고 있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 실제 판을 움직이는 작가들의 상황은 쉽게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한국 만화는 ‘과도기’의 단계에 놓인 셈이다.

하지만 ‘과도기’라는 것은 한편으로 작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을 선보일 수 있는 계기와도 같다. 동시에 적극적으로 판 외부의 흐름과 조응할 수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성장과 위기의 신호가 엇갈리는 한가운데에서 작가들은 치열하게 작품으로 지금과는 다른 길을 보여주기 위해 움직였다. 2018년 한국 만화, 어떠한 흐름과 움직임이 수면 위로 등장했을까.


새롭게 호명되는 ‘여성 만화’에 대한 요구

2018년 한국 사회를 말할 때 결코 ‘페미니즘’를 제외할 수 없다. 한동안 숨을 죽였던 페미니즘의 흐름은 메르스가 한창 한국을 강타하던 2015년 ‘메갈리아’의 탄생과 함께 달궈져, 2016년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으로 새롭게 큰 물줄기를 이뤘다. 2018년 초 서지현 검사가 JTBC에 출연해 용기를 내어 자신이 검찰 내부에서 당한 성폭력을 증언하며 ‘미투 운동’이 사회적인 의제가 된 것은 페미니즘의 흐름이 한국에서 쉽게 멈출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흐름에 한국 만화 역시 작품으로써 응답했다.



가장 두드러진 장르는 ‘에세이툰’ 내부에서의 재해석이었다. 2017년의 맨 마지막날, 12월 31일에 「네이버 웹툰」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쇼쇼 작가의 <아기 낳는 만화>는 작가 본인이 경험한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진솔하게 그려내면서 화제의 작품이 되었다. 한국 만화에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소재가 사용되었던 것이 <아기 낳는 만화>가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품에서 ‘임신과 출산’을 마치 한국 TV 드라마가 흔히 그러듯 연인과 부부, 그리고 가족의 관계를 돈독하게 그리는 선 이상을 쉽게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아기 낳는 만화>에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개인이 서서히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는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서술과 연출 안에서 임신과 출산은 그저 새로운 생명을 낳기에 성스러운 아우라가 씌워진 ‘의식’을 벗어나 개인의 ‘신체’에 초점을 맞추는 현상의 족적이 된다. <아기 낳는 만화>에서 출산의 순간을 “따뜻하고 미끄덩한 무언가가 빠져나간다!”고 표현한 지점은 얼핏 보기엔 단출하지만, 쉽게 표현할 수 없었던 개인의 의식과 감정을 드러낸 중요한 서술이었다.


△ 미깡 작가의 <하면 좋습니까?> 중에서.

<아기 낳는 만화>가 임신과 출산에 초점을 맞췄다면, 미깡 작가의 「다음 웹툰」 연재작 <하면 좋습니까?>는 연인 사이의 관계성과 그에 대한 심리를 전면으로 드러낸다. 이미 미깡 자가는 데뷔작이자 전작 <술꾼도시처녀들>로 일상과 미식, 그리고 여성으로 이뤄진 등장인물 간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사회를 해석하는 흐름이 흥미롭게 어우러질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작가는 후속작을 통해 더욱 직접적으로 여성들 사이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려 시도했다. 각각 동거, 이혼, 결혼, 그리고 비혼을 선택한 30대 여성 다섯 명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은 저마다 다른 선택지를 고른 여성 주인공들이 사생활의 영역에서 겪었던 소소한 일상과 갈등, 그리고 이 사적인 경험이 다섯 주인공 사이의 ‘대화 소재’가 되면서 재해석되는 과정을 매화 그려냈다. 2017년을 강타한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가 결혼이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가 공적으로 결합하는 행위가 아니라, 두 남녀를 감싸는 다양한 사적-사회적 관계가 얽히는 과정을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던 것처럼 <하면 좋습니까?>는 결혼에 대한 저마다의 다양한 선택을 진솔하게 그려내며 조금씩 달라지는 사회상을 ‘일상툰’이라는 문법을 통해 바라본다. 이러한 시선 내에서 비혼과 동거는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개인의 선택지가 되고, 결혼 역시 숙고하며 성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상의 두 작품이 일상툰이나 에세이툰이라는 자장 내에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seri 글/비완 그림의 「저스툰」 연재작 <그녀의 심청>은 고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페미니즘적인 재해석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인다. 고전은 분명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읽어볼 가치가 있기에 고전이라는 지위를 얻지만, 동시에 발표된 당대의 시각이 어떠한 가능성과 한계가 있었는지를 망각한다면 동시대적인 독해를 하기 어렵다. 마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처한 남성 중심-무의식적인 인종 차별적인 표현과 묘사의 한계를 진 리스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로 재해석을 하면서 뒤집어내고, 만화가 김달이 <여자 제갈량>과 <레이디 셜록>으로 등장인물의 성별을 역전시킨 선택을 통해 새로운 역학을 드러내듯 <그녀의 심청>은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고전 판소리 <심청전>을 베이스로 다양한 고전을 재치있고 농밀하게 뒤집는다. 여성과 자식의 희생을 쉽게 긍정했던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과 달리 <그녀의 심청>의 ‘심청’은 쉽게 희생양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원작에서 심청을 불쌍히 여겨 스스로 공양미 삼백 석을 내겠다고 자처했던 조연 ‘장승상 부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로맨스와 연대를 바탕으로 둘 앞에 놓인 난관을 헤쳐나간다. 고전의 흥미로운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작품을 고민하는 방면으로도 모두 두각을 드러냈던 작품은 2018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 여성 생활 미디어를 표방하는 웹진 「핀치」는 2017년부터 월정액 구독의 형태로 제공하는 컨텐츠의 일부로 여성만화를 전문적으로 서비스한다.

만화로 여성과 여성주의를 풀어내려는 시도는 각각의 작품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기획의 측면으로도 가시화되었다. 매년 「네이버 웹툰」과 손을 잡고 이제는 중견 작가가 된 만화가들의 작품을 ‘한국만화거장전’이라는 옴니버스 기획으로 선보였던 한국만화가협회는 2017년 12월부터 2018년 5월까지 ‘한국만화 1990’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활동했던 작가들의 단편을 매주 게재했다. 한국만화거장전에서도 ‘순정만화 특집’이라는 명목 아래 여성 작가들의 단편을 게재한 적이 있었지만, ‘한국만화 1990’에서는 한혜연은 물론 이향우, 김나경, 최인선, 유시진에 이르기까지 「윙크」, 「나인」, 「화이트」 등 1990년대 대거 탄생한 여성만화잡지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이제는 쉽게 작품을 볼 수 없는 작가들을 선정하며 이전의 비슷한 기획들보다 더욱 깊고 넓게 당대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성공했다. 또한 2016년에 창간해 ‘여성 생활 미디어’를 표방한 웹진 「핀치」(Pinch)는 2017년부터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월 정액 구독제’를 채택하는 동시에 <먹는 존재>의 들깨이빨 작가, <성숙의 지표> 란탄 작가 등 여성만화를 고민했던 만화가를 영입하며 여성만화 전문 웹툰 플랫폼을 선보이는 상황이다.


△ 2018년 12월 말에 창간한 한국콘텐츠진흥원-거북이북스의 만화-웹툰 정보지 <지금, 만화>는 창간호의 특집 주제로 ‘만화와 젠더’를 선정했다.

이렇게 과거의 여성만화 시도를 복기하며, 동시대에 맞는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만화와 관련된 다양한 출간물을 통해서도 감지된다. 2018년 4월에는 방송작가 이력을 지닌 자유집필가 조영주를 통해서 <한국 순정만화 작가사전>이 발간되었다. 책의 제목대로 ‘작가사전’을 표방하는 작품은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특히 1990년대 창작 활동을 왕성하게 드러내던 작가들의 이력과 스타일을 정리하는 저서였다. 이후 2018년 가을 경에는 르포작가 박희정과 만화평론가 조경숙이 문화사회연구소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이 공동으로 기획한 독립연구자 네트워크 프로젝트 ‘궁리’의 지원을 받고 착수한 작업 <코믹스 페미니즘 : 웹툰 시대 여성만화 연구>가 발표되었다. 해당 연구는 ‘페미니즘 웹툰’이라는 용어 대신 ‘웹툰 시대 여성만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며, 근래 한국 만화에서 드러나는 여성 서사는 단순히 ‘페미니즘’이라는 별개의 영역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2010년대 즈음 형성된 창작-수용-비평이 순환하는 여성만화 생태계의 형성이 영향을 미쳤음을 논하였다. 여기에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거북이북스가 발간하고, <아이즈>의 위근우 전 기자가 객원 편집장을 맡은 만화-웹툰 정보지 「지금, 만화」는 직접적으로 창간호 특집을 ‘만화와 젠더’로 선정하며 2018년 한 해 동안 쏟아진 한국 만화가 여성과 젠더성을 고민한 발자취를 집중적으로 조망했다. <코믹스 페미니즘>의 연구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2018년 한국 만화의 움직임은 이전에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던 독자의 요구와 작가의 호응, 그리고 이를 다시 이론-비평적으로 독해하려는 시도가 순환하는 생태계가 발현되었던 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거세지는 ‘독립출판만화’의 흐름

2018년 한국 만화에서 주시해야 할 또 하나의 흐름은 ‘독립출판’이다. 이미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의 출판 시장이 침체 국면에 놓인지 오래이지만, 2010년대 중후반부터 서서히 한국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된 ‘독립출판’은 만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멀리갈 것 없이 2017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는 연재부터 출간까지 모두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며 발간한 작품이었다. 북하우스 계열의 만화-예술 임프린트 ‘미메시스’에서 나왔던 데뷔작 <3그램>, 「올레마켓 웹툰」(현, 케이툰)에서 연재한 뒤 출간한 <스트리트 페인터>와 달리 <며느라기>는 철저히 작가 개인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에서 연재되었으며, 출간도 작가 본인이 직접 독립출판의 형태로 발매되었다. 한국 만화에서도 「만화실험 봄」이나 「COMIX」, 「화끈」, 「히스테리」, 「새만화책」처럼 독립/대안만화의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화제성과 흐름을 만들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부터 「우주사우나」, 「QUANG」과 같은 독립만화 무크, 그리고 김인엽과 김한민 등을 통해 서서히 타오르던 독립만화의 불꽃은 전국 각지에 생기는 독립서점과 ‘언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대표되는 독립출판물 판매회를 통해 점차 기반이 구축되어 마침내 <며느라기>를 통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또 하나의 행로가 되었다.


△ OOO(정세원) 작가의 <무슨 만화> 중에서

2017년을 대표하는 독립출판만화가 <며느라기>였다면, 2018년을 대표하는 독립출판만화는 단연 OOO(정세원) 작가의 <무슨 만화>이다. 작가 본인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 연재되던 작품은 작가 특유의 독특하고 개성있는 연출과 코미디의 센스로 조금씩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의도적으로 도트가 강조되어 있는 작품의 그림체는 얼핏 보기엔 투박해 보이지만 세심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코미디 스타일 역시 어떠한 단어나 행동의 개념을 재조립하며 독자에게 쉽게 알 것 같지만 예상하기 어려웠던 지점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마치 4컷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펼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은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질감의 코미디 만화였다. 이러한 스타일에 독자들도 반응했던 것일까. <무슨 만화>는 올해 8월 발매된 직후 놀라운 판매 실적을 기록하며 베스트셀러 차트에 등극하는 것은 물론, 1쇄를 판매하기 어려운 출판 시장에서 4쇄를 출간할 정도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최근에는 DC코믹스 원작-워너브러더스 제작의 헐리우드 영화 <아쿠아맨>의 홍보 만화를 그리는 등, OOO 작가의 인기는 한동안 오래갈 것으로 예상된다.


△ 황벼리 작가의 <아무런 맛이 나지 않을 때까지> 중에서

<며느라기>나 <무슨 만화>처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어도, 꾸준히 독립출판의 형태를 통해 만화를 발표하는 작가들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웹진 「핀치」에서 <화의 형태>를 연재하는 란탄 작가는 이전부터 <성숙의 지표>를 비롯한 여성이자 만화가로서 겪는 일상의 감정들을 만화로 엮어낸 독립출판 작업을 지속해서 발표했었고, 최근에는 텀블벅과 SNS에서 주목받은 작가 최준혁과 함께 ‘SF소년단’이라는 작가 그룹을 결성하여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저스툰」에서 <식물생활>을 연재하는 안난초,「QUANG」에서 동인 활동을 펼쳤던 최재훈, <다시 또 성탄>과 <아무런 맛이 나지 않을 때까지>를 선보였던 황벼리, 「네이버 웹툰」에서 <우바우>를 연재했던 잇선 등이 꾸준히 독립만화의 형태로 작품을 발표하는 상황이다. 또한 2016년 <김케장 단편선>을 선보이며 온라인-언더그라운드 영역에서 연재된 작품을 주로 펴내는 독립출판사 ‘나무야미안해’는 2018년에는 트위터, 루리웹 등 SNS와 커뮤니티를 자유롭게 오가며 작품을 발표한 반-바지 작가의 SF 단편 만화집 <슈뢰딩거의 고양희>를 발간하며 화제가 되었다.



동시에 기존에 독립출판만화의 영역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 웹툰 플랫폼에 작품을 선보이거나, 기존 출판사에서 연재하던 작품이 독립출판의 영역으로 이전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작가는 마영신과 김성희, 그리고 김수박이다. 지금은 폐간한 씨네21의 만화잡지 「팝툰」에서 <뭐 없냐?>로 데뷔한 마영신은 이후 대안만화 전문 출판사 새만화책을 통하여 <남동공단>을 비롯한 장단편 작업을 꾸준히 발표했다. 이후 「다음 웹툰」에서 연재한 <19년 뽀삐>, 「저스툰」에서 연재한 <콘센트>로 웹툰에 발을 뻗은 마영신은 2018년이 되어 자신이 독립출판을 통해 선보였던 작품의 경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정리하고 웹툰의 영역으로 드러내려는 시도를 보였다. 「새만화책」을 통해 출간한 단편, 독립만화 무크 「Sal」을 통해 발표한 단편을 <연결과 흐름>이라는 단편집으로 묶는 동시에 다음 웹툰에서는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연결과 흐름>에 수록된 단편의 세계관을 하나로 묶는 시도를 선보였다. 창작자의 어떤 ‘찌질한 순간’을 포착하던 단편들의 이야기는 정련된 장편으로 집대성되어 창작의 어려움과 창작자가 지닌 내면의 심리를 모두 바라보며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고 있다. <내가 살던 용산>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르포 만화와 30-40대 여성인 자신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에세이 만화 작업을 선보였던 만화가 김성희는 2017년 「케이툰」을 통해 1980년대 사북, 고한 지역의 탄광촌에 살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검은 물 검은 산>을 발표했고, 이 작품은 2018년 도서출판 창비를 통하여 <너는 검정>이라는 이름의 단행본으로 재구성하여 선보였다. 또한 이 둘과 함께 작업하며, <아날로그 맨>을 비롯하여 작가 개인의 일상을 토대로 한 대안만화 작업을 주로 펼치던 김수박 역시 2014년 <메이드 인 경상도>로 함께했던 사계절출판사와 함께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을 비판적으로 회고하는 작품 <아재라서>를 발간했다.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출판사는 유어마인드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동시에 독립출판물을 펴내는 출판사를 병행하고 있는 유어마인드는 2017년부터 이진경의 <사춘기>를 복간하여 2018년 현재 2권까지 재발매 중이다. 본래 1999년부터 서울문화사의 성인 여성을 타겟으로 한 만화잡지 「나인」에서 연재되던 <사춘기>는 2002년 「<나인」의 폐간과 함께 연재가 중단되었다. 이후 웹진 「코믹스투데이」로 옮겨 다시 연재를 시도했지만, 「코믹스투데이」 또한 사업을 중단하며 오랜 시간 동안 작품은 방황해야만 했다. 그러던 작품을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재발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한국 만화의 중흥기 속에서 여성만화의 물결 또한 본격적으로 흐르던 상황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이자 그의 대표작이 독립출판의 형태로 다시 복간된 것은 무척이나 상징적인 소식이었다.

분명 한국 독립출판만화가 2010년대 중반 이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확장했지만, 현재 한국 독립출판만화의 상황이 완벽하게 전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라 말하기에는 어렵다. 마치 독립영화인들이 그렇듯, 산업의 논리에서 벗어나 독립을 추구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웹툰 플랫폼을 벗어나는 순간 취약하거나 척박했었던 출판만화, 또는 독립적인 만화 출간의 흐름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은 분명 주목해야 할 사건임은 분명하다. 해외 만화의 영역이지만 한국에는 그 어떤 출판사도 손을 대지 않았던 일본의 1990년대 여성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오카자키 쿄코의 <리버스 에지>가,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창작물 속 성평등 정도를 테스트할 수 있는 정량지수 ‘벡델 테스트’라는 개념을 창안할 정도로 서구의 페미니즘-LGBT 만화의 한 획을 그은 앨리슨 벡델의 <펀 홈 – 가족 희비극> 개정판이 모두 독립출판의 형태로 한국에 선을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 만화가 본격적으로 웹툰의 시대로 넘어가며 종전의 출판만화에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던 소재나 연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듯, 한국의 독립출판만화 역시 언더그라운드의 영역에서 한국 만화의 다양성을 넓힐 수 있는 경로가 될 것이다.

전형성을 넘어, 한 걸음 더

이상의 두 흐름들은 2018년은 물론, 앞으로의 한국 만화들이 어떠한 노선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한동안 잊힌 이야기였던 페미니즘이 다양한 우연과 필연을 거쳐 2010년대 중후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고, 마치 ‘유튜브’로 대표되는 1인 비디오 크리에이터 플랫폼과 ‘넷플릭스’로 상징되는 OTT 서비스가 그러하였듯 기존의 주류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제작과 유통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018년의 한국 만화가 걸었던 여정들은 이러한 동시대의 흐름을 만화의 형태로 재해석하면서, 앞으로의 만화가 지녀야 할 연출적-서사적-소재적인 고민을 체화시킨 모습이었다.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정신을 작품의 영역으로 고민하고, 특정한 플랫폼에 종속되는 것을 넘어 독립과 주체성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더욱 거세게 드러난다. 그동안의 한국 웹툰이 출판 밖 온라인의 영역에서도 이전보다 더욱 막강한 작가 풀과 장르가 약동하는 동시에 확고한 산업적인 모델로도 정착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던 시기라면, 2018년은 그렇게 많은 이들이 쌓아 올린 발판 위에 새로운 만화의 흐름을 고찰해 나가는 또 하나의 과도기였다.


△ 선우훈 작가의 <Flat is the New Deep>중에서

선우훈의 <Flat is the New Deep>은 2010년대 한국 만화가 ‘웹툰 플랫폼’ 밖의 영역에서 미술의 차원으로 독해되는 새로운 차원을 드러내며 한국 만화가 뻗어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성을 드러내는 차원에서 주목할 작품이었다. 2018 광주비엔날레를 통해서 발표된 <Flat is the New Deep>은 지난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전 ‘하이라이트’를 통해 선보인 <가장 평면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Flat is Political)과 이어지는 연작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다음 웹툰을 통해서 연재한 장편 데뷔작 <데미지 오버 타임>에서부터 픽셀 기반의 2.5D 작업을 통해 표현의 기호화, 공간과 사물-인물의 ‘모듈화’를 시도했던 선우훈은 자신의 작업에서 드러난 기호화와 모듈화를 더욱 극대화시킨 형태로 미술관을 통해서 발표한 두 편의 작업을 창작했다. 픽셀은 그 자체로 깊이와 의미를 지니지 못하지만, 이를 배치하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새롭게 의미를 형성하고 깊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마치 만화를 구성하는 각각의 칸, 캐릭터와 사물의 형체를 만드는 외곽선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 배치되고 그려지듯, 선우훈은 ‘픽셀’을 창작의 기본적인 단위로 삼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낸다. 픽셀들은 모여 하나의 선을 만들고, 다시 그 선들은 면을 이루며 2차원의 ‘평면’ 위에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가장 평면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가 2014년 세월호 참사부터 2017년까지의 흐름을 평면 구도로 형상화했다면, <Flat is the New Deep>은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거주 공간인 ‘아파트’가 영어로는 ‘flat’으로 불리는 것에 착안하여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아파트’가 연상되는 면을 만들면서 구현했다.

곧 있으면 찾아올 2019년의 한국 만화는 어떠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2018년의 한국 만화는 여러 어려운 상황들과 쉽게 끝날 수 없는 갈등과 투쟁 속에서도, 한 걸음 더 미래를 고민하려는 움직임을 여러 각도의 시선으로 드러내고 보였다. 누구도 쉽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듯이, 2019년의 한국 만화에도 지금으로서는 쉽게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요인이 한국 만화에 개입될지라도, 그간 한국 만화가 주목하지 못했던 지점을 새롭게 바라보며 더 나은 창작의 환경과 표현의 양상을 고민하려는 시도는 앞으로 나올 작품들의 면모를 기대하게끔 만든다. 더욱 다채로운 자신만의 색을 가지며, 한 걸음 더 진전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나올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필진이미지

성상민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만화규장각 지식총서 《지금, 독립만화 (며느라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저자, 《미디어오늘》 ‘성상민의 문화뒤집기’ 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