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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와 <쌉니다 천리마 마트>는 웹툰 IP 영상화 사업의 변곡점이 될 수 있을까

망한 이야기부터 하겠다. 지난해 11~12월 사이 방영한 tvN <계룡선녀전>,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올해 2월 종영한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는 각각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라는 양대 웹툰 플랫폼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2019-05-22 위근우

망한 이야기부터 하겠다. 지난해 11~12월 사이 방영한 tvN <계룡선녀전>,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올해 2월 종영한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는 각각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라는 양대 웹툰 플랫폼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앞서 지난해 7~8월 방영한 역시 동명의 웹소설과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성공하며 웹툰 IP의 드라마화에 힘이 실린 상황에서 두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 역시 높았다.


 하지만 두 작품은 시청률에서도 평가에서도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는데, 첫 방영부터 어설픈 CG가 논란이 됐던 <계룡선녀전>은 첫 회 시청률 5.6%로 시작했지만 원작 캐릭터들의 개성과 매력, 정합성까지 모두 무너지며 최종회 시청률 3.8%에 그쳤다. 주인공 중 한 명이자 예민하고 이성을 신봉하던 정이현은 한국 드라마 속의 흔한 ‘버럭남’이 되었고, 그런 이현과 적절히 건조하면서도 깊은 우정을 유지하던 이함숙은 드라마에선 이현을 짝사랑하며 선옥남과 이현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만든다.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의 원작 파괴 방식도 <계룡선녀전>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데, 병적인 결벽증을 지닌 청소업체 CEO 장한결은 원작에서도 예민했지만 드라마 안에선 대놓고 타인에게 까칠하게 군다. 또한 여기서도 원작에 없던 최군 캐릭터가 등장해 주인공 한결과 김오솔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룬다. 그 결과는? 첫 회 시청률 3.3%로 시작해 최종회 1.6%로 끝났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말해주는가.





많은 이들이 웹툰 IP와 영상화, 그리고 융복합(혹은 트랜스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명 하나의 IP를 변주해, 다양한 미디어 시장에서 수익을 내고 또 이를 통해 해당 IP의 가치가 더더욱 상승하는 선순환 모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할리우드와 한국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 마블 스튜디오의 성공 사례(그리고 그런 마블 스튜디오를 인수한 디즈니가 오래 전부터 만들어온 성공 사례)는 잘 만든 IP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마블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역시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tvN <미생>의 신드롬적인 인기와 1, 2편 모두 천 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의 성공 사례가 있다. 이쯤 되면 적절한 웹툰 IP를 찾아 영상화하는 것은 콘텐츠 시장의 엘도라도를 찾는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엘도라도를 향해 첫 발을 떼고 싶다면, 황금빛 희망을 향해 고개를 저 멀리 들기 전에 우선은 발밑을 살피는 것이 먼저다.


 앞서 <계룡선녀전>과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의 실패 사례를 든 건 그래서다. 웹툰 영상화에는 필연적으로 해당 미디어 문법으로의 이식이 필요하다. 문제는 종종 이것을 기존 드라마의 서사적 클리셰를 덧붙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계룡선녀전> 원작에서 주인공 선옥남은 환생한 남편을 찾기 위해 이현, 김금 등과 연애적인 관계로 연결되지만, 이 서사의 핵심은 윤회의 굴레 안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을 직시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성애 로맨스의 문법을 강조하느라 캐릭터들의 개성까지 깎아버리는 우를 범했다. 이것이 장그래와 안영이 사이에 로맨스적인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며 더 큰 공감을 끈 드라마 <미생>의 성공 이후 등장했다는 건 그래서 이해하기 어렵다. 어차피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로 범벅된 대본은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웹툰 IP를 원하는가. 정말로 원작의 장점을, 기존 서사 매체에선 볼 수 없던 개성 있는 캐릭터와 서사를 이식하겠다는 욕심은 있던 걸까. 차라리 원작의 이름값 혹은 웹툰 원작이라는 타이틀에 기대려는 얄팍한 수작은 아닐까. 겨우 두 개 드라마의 사례로 침소봉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웹툰 원작 영상화의 첫 사례라 할 강풀 원작 공포 영화 <아파트>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부터 떠올려야 한다. 아예 작품의 이름만 가져오고 배경과 인물, 스토리를 싹 다 바꿔버린 MBC <운빨 로맨스>, <아이템>, SBS <냄새를 보는 소녀>, 역시 제목과 주인공 이름 빼면 다 바꾼 KBS <동네 변호사 조들호>(이 드라마는 다행히 일정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다) 등의 사례를 줄줄이 읊을 수 있다. 마블을 예로 든다면 제목은 <아이언맨>인데 토니 스타크가 안 나오는 식이다. 여기 어디에 IP에 대한 이해와 이식, 혹은 융복합에 의한 파괴적 혁신이 있다는 것인가. 이쯤 되면 웹툰 IP 영상화에 대한 논의와 기대에는 실증적인 분석보단 희망적 사고와 호들갑스런 레토릭이 주도적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네이버 웹툰 자회사인 스튜디오N과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M의 영상 매체 진출은 그래서 기존 웹툰 IP 사업과 궤를 달리하는 중요한 변곡점처럼 보인다. 웹툰-영상 간 가교 역할을 자처하는 스튜디오N의 경우 기존 영화 및 드라마 제작사와의 공동 제작이나 파트너십을 통해 각 웹툰 IP에 맞는 영상화 및 수익 모델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OCN 방영이 예정된 <타인은 지옥이다>를 포함해 <비질란테>, <쌉니다 천리마 마트> 등의 작품이 드라마 혹은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 특히 <타인은 지옥이다>의 경우 임시완의 전역 복귀작인 동시에 비슷한 분위기의 스릴러 장르에 대한 노하우를 지닌 채널 OCN과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이미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요 연예 기획사들을 인수하며 화제가 됐던 카카오M의 경우 스튜디오N보다 좀 더 주도적으로 카카오페이지 IP를 이용한 자체 제작 모델을 준비 중이다. 이 역시 원작 IP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스튜디오N과 궤를 같이 한다. 즉 여기서 중요한 건 익숙한 제목의 웹툰이 줄줄이 영상화 된다는 것이, 임시완과 이동욱이 <타인은 지옥이다>에, 김병철이 <쌉니다 천리마 마트>에 출연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 정말로 우연적이지 않은 IP 영상화 사업의 구체적이고 반복 가능한 성공 모델이 등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야 말로 지금 이 새로운 변곡점에서 냉철하게 확인해야 할 일이다. 이 지점이 우리가 발 디딜 수 있는 꽤 단단한 출발점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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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