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웹툰계에서 가장 뜨거운 소식을 고르라면 대표적인 것이 기안84의 <복학왕>, 그리고 태국 웹툰 <틴맘> 이슈다. 기안84는 작품 속에서 청각장애인을 표현하면서 말풍선이 아닌 생각풍선 속 대사를 어눌하게 표기하거나, 태국인 노동자의 어미를 “~캅”으로 표현해 많은 지탄을 받았다. 장르물에서 흔히 쓰이는 관습적 이미지인 ‘도상(Iconography)’을 아무 고민 없이 사용했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작가라면, 본인의 독자들이 받아들일 때 차별적이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긴 시간을 들여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표현이 차별적인가를 대중에게 보여주기 전에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안84는 자신의 생각만큼은 고민하지 않는 작가였다.
<틴맘> 역시 마찬가지다. <틴맘>은 태국의 남성 작가가 2015년부터 라인웹툰에 연재중인 작품으로, 2019년 5월부터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이 작품은 태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어 2017년 웹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청소년 임신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임신’이라는 사건의 당사자인 주인공이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남자친구에게 차이면 어떡하지”라거나, 컷 너머로 주인공을 포착하는 구도가 여느 만화에서 흔히 그렇듯 주인공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한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흔히 ‘만화적 연출’이라고 부르는 방식이 문제였다.
당연히 독자들은 작가를 매섭게 비판했다. <복학왕>이슈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틴맘>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비판을 받았다. <복학왕>의 경우 기안84 작가가 직접 사과문을 작품 내에 삽입하고 문제가 된 내용을 수정했고, <틴맘>은 작가와 협의 후 작품의 전면 수정 후 업로드를 예고했다. 하지만, 여기서 편집부의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만화에서 보통 편집부는 대중에게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 가장 먼저 작품을 보고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가 차별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묘사를 사용할 때, 편집부가 그것을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문제는, 네이버웹툰의 편집부가 이 지점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르적 문법은 사회가 합의한 수준을 작품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장르적으로 반복되는 도상은 이 장르적 문법의 구성요소이며, 따라서 시대적 한계를 담을 수밖에 없다. 2015년에 연재된 작품을 2019년에 들여올 때, 네이버웹툰은 충분히 사회적 감수성을 고려해서 새로운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할 고민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 없이 작품을 그대로 번역해 들여오는 방법을 택했다. 기안84 역시 자신의 시선을 그대로 담아 작품 속에 녹여냈다. 단순히 주제나 표현이 아니라, 작품이 담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문제였다. 그것이 차별적이라는 사실을 지적을 받고서야 깨달았다는 건, 작가가 사회적 합의 수준보다 낮은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기고백이자, 편집부 역시 그 수준에 미달한다는 자기고백이다.
더군다나 네이버웹툰에선 불과 1년 전 임산부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그린 <아기낳는 만화>라는 작품이 연재되었고,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에는 청각장애인 작가가 자신의 삶을 그린 <나는 귀머거리다>가 연재되기도 했다. 두 작품 모두 독자들과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하루 평균 800만명, 매월 2천2백만명의 방문자가 찾는 네이버웹툰 은 이제 더이상 서브 컬쳐, 인터넷 문화로 분류되는 ‘그들만의 리그’로 한정되지 않는다. 인터넷 문화 자체가 거의 모든 문화생활을 떠받치는 구조가 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그 중에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영상 콘텐츠로 쏠리면서, 서사물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 영화 등의 원천 콘텐츠로서 기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웹툰은 단순히 인터넷 문화에서 머물지 않고, 보다 더 큰 자본이 투자된 매체로 이식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변화했지만 작가와 플랫폼은 이 변화를 버거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터넷 문화 중에서도 가장 말초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데뷔한 작가들과 그들을 만들어낸 편집부가 대중의 감수성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또는 일부러 적응하지 않으면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어느정도 예방하고,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웹툰자율규제위원회는 지난해 연령등급안을 발표했다. 연령등급안에는 주제, 폭력, 공포, 모방위험, 약물, 선정성, 언어 등 다른 자율규제안에서 다루고 있는 요소와 더불어 ‘차별’을 포함해 9가지 기준이 포함된 연령등급안을 만들어 발표했다. 등급안에서는 단순히 묘사의 수위에 따른 등급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표현되는지, 그 시각이 맥락에 따라 이해와 납득이 가능한지 등을 면밀히 따지도록 했다. 연령등급안만 잘 살폈어도 충분히 고민을 통해 막을 수 있는 문제였다는 얘기다.
이 문제들에 대해 일부 작가들은 “이런 식이면 그릴 수 있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에선 “편집부에 의한 검열을 받으라는 말이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대중매체가 된 웹툰의 현실을 몰랐거나, 이미 오래 된 장르적 문법을 갱신할 자신이 없는 작가들의 주장이다. 창작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고, 부조리함과 부당함에 항거하기 위한 무기로서 기능할 때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못한 표현은 창작자의 독창적인 시선이 아닌, 기존의 장르적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현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넘어 문제적 부분을 찌르는 <아기낳는 만화>나 <나는 귀머거리다>와 같은 작품이 소중한 이유는 그래서다. 이런 ‘문제적 작품’과,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비당사자의 시각에서 관음하는 시선이 담긴 ‘문제 있는 작품’은 다르다.
한때 웹툰은 인터넷 문화를 가장 첨단에서 만들어내는 한편,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인터넷 문화’ 향유자들의 놀이터였다. <골방환상곡>의 캐릭터인 “엄친아”와 <마음의소리>에 등장한 “차도남”은 웹툰을 통해 만들어져 인터넷을 타고 대중매체에 소개됐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웹툰의 유행은 대중매체에 ‘소개’되지 않는다. 다만 영화, 드라마 등으로 매체의 전이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소비된다. 인터넷 문화의 생산자에서 대중매체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있는 지금, 작품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는 조회수와 같은 숫자들이다. 아마도 네이버웹툰은 숫자를 믿고 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인 <틴맘>을 선정했을 것이다. 기안84의 경우도 작품이 연재되는 수요웹툰 중 가장 뛰어난 ‘숫자’를 가진 만화다. 하지만 높은 숫자를 보여주는 작품이 곧 ‘좋은 작품’을 뜻하지는 않는다. 작품을 보는 안목을 가진 편집자가 중요하고, 그런 사람들을 키워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지도 몇 해가 지났지만,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대중문화의 원천 콘텐츠이자 그 자체로 대중매체가 된 웹툰은 누구보다 빠르게 대중의 니즈를 캐치해야 하는 장르가 됐다. 웹툰이 원천 콘텐츠로서 각광받는 이유는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빠르게 현실을 반영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검증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간 달라진 독자들의 사회적 감수성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이나 장애등급제에 관한 논의 등을 통해 달라진 시민의 감수성이 구시대의 제도의 변화까지 이끌어내고, 공론장으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이미 독자들의 감수성이 전과 달라진 상태에서 현실을 부정하면서 오래 된 장르적 문법을 고수한다면, 편집부와 작가가 스스로 웹툰의 문화적 가치를 부정하는 셈이다.
‘웹툰 산업규모 1조원’은 이제 더 이상 허황된 말이 아니다. 단순히 산업의 규모를 떠나서,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하는 작가와 그 작가를 ‘픽’한 편집부가 아무런 고민 없이 작품을 만든다는 건 직무유기다. <틴맘>의 관음적 시선과 <복학왕>의 차별적인 표현에는 도발적인 시도나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는 없었다. 독자들의 거센 비판은 독자의 수준에 맞춰서 작품을 만든다는 변명 역시 무력화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창작자들의 고민과 편집부의 역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작가들에게 자율과 책임을 모두 넘긴 플랫폼의 책임이다. 플랫폼에 작품을 싣기로 결정한 것은 결국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대중매체가 된 웹툰 플랫폼이라면, “고민의 범위를 어떻게 넓힐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더불어 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편집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고, 작가들이 창작을 위한 고민을 통해 장르적 문법을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말도 몇 년째 반복하고 있는 말이지만.
만화평론가&칼럼니스트_이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