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만화가 시점으로 짜여진 좀비 아포칼립스 웹툰
만화가는 아포칼립스 웹툰의 설계자
k-좀비 웹툰의 계보와 특징을 중심으로
아포칼립스 웹툰 속 비인간성, 비도덕성 등은 현시대의 치부
김산율(만화평론가)
“우리는 불편한 현실을 맞서기보다 편안한 오늘에 안주하길 원한다.”
아포칼립스 세계관에 놓인 사람들은 갈등한다. 여기는 나와 네가 구분되고 우리와 그들이 나눠진다. 필요와 불필요를 검증해 윤리의 경계를 시험하며 냉정한 선택과 불가피한 희생에 번민한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계급화 되고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무시되는 세상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살아있고 행동한다.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세상의 종말’, ‘대재앙’을 뜻한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허구로 그려 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 사상”을 말한다. 두 용어는 유사 관계지만 최근 아포칼립스 세계관이 만화를 비롯해 소설, 게임, 영화, 드라마 등으로 활발하게 창작되면서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다. 재난과 재해, 방사능과 핵전쟁, 외계의 침공 등은 아포칼립스 장르의 주요한 소재이며 좀비 장르 역시 대표 주자이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세계적 성공을 거둠으로써 영화<부산행>과 더불어 ‘K-좀비’콘텐츠가 각광받고 있다.
△ 연상호 감독 <부산행>, 넷플릭스 <킹덤>
좀비는 웹툰 속에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군대<데미지 오브 타임/선우훈>에도 침투하고 아파트<당신의 모든 순간/강풀>에도 출몰하며 학교<지금 우리학교는/주동근>에도 나타난다. 하물며 과거<버닝헬 신의 나라/김선희,양경일>, <조선좀비실록/곤마>는 물론 미래<블러디발렌타인/bluemoon,twenty4>에도 강림한다.
△ 좌측부터 <데드라이프>, <극야>,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 <좀비딸>
좀비 웹툰은 200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창작되면서 현재까지 좀비 소재 서사는 여러 갈래로 다원화하면서 변주했다. 최근 눈에 띄는 좀비 아포칼립스 작품은 첫째, <데드라이프/후렛샤,임진국>이다. 좀비지만 인간화에 성공한 주인공이 치료제를 개발하고 인간과 좀비가 혼재된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면서 재앙을 극복한다. 다수의 좀비작품의 결말이 디스토이파적인 것과 달리 해피엔딩이어서 매우 신선한 맺음이다. 두 번째, <극야/운,한큰빛>는 남극기지 한, 중, 일 3국 공동연구팀에 외계의 좀비바이러스가 퍼진 후 인류 전체로 번지는 대재앙을 막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기이다. 그 와중에 한, 중, 일 3국의 민족 정서까지 얽히고 갈등요소로 겹쳐지면서 이채로운 상황을 야기한다. 세 번째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미역>는 좀비를 새롭게 규정한다.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외모와 행동 다만 인육을 먹어야하는 존재이다. 자연히 여성과 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인육 사냥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여성 주인공, 언어 장애 할머니와 그녀의 닭이 아포칼립스 현장을 해쳐가는 생존형 여성 버디 웹툰이다. 마지막으로, <좀비딸>은 좀비를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내 아이가 부모가 좀비가 되면 나는 어떤 선택지를 받아드는가를 냉철하고도 코믹하게 묘사한다. 독자들은 좀비가 되어버린 수아가 다시 인간화하는 과정에서 혹여 좀비로 발각돼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한다. 작품 속 좀비는 고발 대상이지만 독자들은 수아를 공동육아의 대상으로 맞이한다.
아포칼립스 웹툰의 설계자는 만화가이다. ‘작가 관찰자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을 오가며 작품의 세계관과 등장인물을 구성하고 좀비장르의 클리셰들을 버무려 새로운 좀비 세상을 창조한다. 불쌍하게도 작품 안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들은 정체모를 좀비의 공격과 변해버린 사람들의 공포, 종말을 고한 세상의 암담한 현실에 처절하게 내몰린다. 반면 독자들은 현실의 안위 속에서 그동안 좀비 콘텐츠를 소비하며 얻은 정보를 통해 작품 속 캐릭터들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좀비 웹툰에 그려지는 비인간성, 비도덕성, 비이성 등의 치부는 현시대의 반영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난적으로 소비하며 현실의 고통을 상쇄한다.
좀비 웹툰의 인기 요인은 세계관의 치밀성, 감염자 폭력의 정당성, 생존자들의 이전투구 등 다양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인공은 칠흑 같은 절망의 오늘에 포기하지 않는다. 모두를 위해 불편한 현실로 나아가는 주인공 일행의 결행과 의지에 응원을 보내고 악행을 저지른 캐릭터들의 마땅한 최후를 지켜보는 것도 극적 재미요소이다. 결국 모두 작가가 짜놓은 세상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를 독자들은 웹툰이라는 CCTV로 지켜보는 것이다.
김숭늉 작가의 좀비 웹툰 <사람냄새>의 마지막 화 구절 “이제 우리가 살던 원래 세상은 없잖아. 규칙은 우리가 만들면 돼”, “우리 이제 더 이상…아무도 죽지 말자”를 인용해본다. 어쩌면 이 말은 수많은 좀비 아포칼립스 웹툰 속 모든 생존자들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